양재동 현대차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나?

[여기, 유성 잇다 ①] 삼성 직업병 피해자와 유성 노동자가 만나다

3월 17일, 한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동료들은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5년이 넘도록 현대차와 유성기업은 노동조합을 파괴하기 위한 온갖 공작을 펼쳤다.

그러나 파괴된 것은 노동조합만이 아니다. 일상, 평화, 우정, 희망, 관계…. 노동조합은 이런 말들의 다른 이름이었다. 깨져본 사람은 안다. 이런 말들은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의 말로 만난다. 인간의 존엄.

한광호 열사를 이대로 보낼 수 없는 유성 노동자들을 또 다른 사람들이 만난다. 직업병 피해자, 장애인, 성소수자, 철거민, 밀양 할매….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지만 누구보다 속 깊은 친구들이 되어줄 사람들의 만남을 전한다.

삼성 직업병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요구하며 강남역 8번 출구 앞에 240일 넘게 농성을 하고 있는 반올림 농성장에 육영수 유성 영동지회 조합원이 왔다.

"불법적인 직장 폐쇄와 징계를 사회에 알려야 하지 않겠냐 해서 2012년 5월부터 본사 앞에 천막 농성을 시작해요. 11월 말까지 천막 농성을 하는데 주로 본사 앞에 근거지를 두고, 국회 앞, 현대기아 본사인 양재동 1인 시위를 하고 환경노동위원회 위원들을 만나고 이러면서 은수미 의원을 통해 창조컨설팅의 노조 파괴 문건들이 나오게 되요."

물 한 모큼 들이킨 후 얘기를 시작한 그의 눈은 얘기를 듣는 사람의 시선을 시종 비켜서있다. 당신의 얘기인지, 누군가의 얘기를 전하는 건지 애매하다. 조합원이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며 담담히 털어놓는 건, 슬픔과 분노의 양을 충분히 담을 감정과 표정이 없기에 담담한 말투를 이어가는 게 아닌가 싶다.

▲ 유성기업 노동자 육영수 씨. ⓒ반올림
그는 1994년에 유성기업에 입사하여 영동지회 조합원으로 열심히 활동했단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지회장을 했었고. 지회장 전에는 사무장 했었고, 조직부장 했고. 지회장을 하면서 근골격계 투쟁을 열심히 한 걸 자부심으로 갖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직장 폐쇄가 된 건 2011년 5월 18일. 직장 폐쇄 되면서 암울해졌고, 용역 깡패가 조합원 출입을 막기 때문에 아산으로 집결 하자고 해서 전 조합원이 올라갔고. 그 뒤부터 투쟁이 이어진다. 그 이후 징계와 해고 회유와 집회 법적인 싸움 얘기가 이어진다. 산재 신청하고 당한 억울함은 아직 한참 뒤에 있다.

그는 현재 약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잠을 못 이루고 있다. 그런데도 그에게 일어난 일과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가 얘기를 시작하면 이와 비슷하다. 자신에게 500만 원을 내밀며 시민단체 만나지 말라고 했던 삼성 인사과 직원의 이름도, 유미 씨가 속초에서 서울로 오가다 숨 넘어가던 그 순간의 날씨도, 유미 어머니의 표정도, 삼성이 그럴리 있냐며 오히려 소리치던 근로복지공단 산재신청 받던 직원의 멘트도 자세하게 기억한다. 게다가 언제나 똑같은 순서로 얘기를 풀어낸다. 누구를 만나도 토씨하나 다르지 않게 털어놓는 황상기 씨의 모습에 <또하나의 약속>을 만든 김태윤 감독은 너무 슬프다 했다. 아무도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지도 믿어주지도 않던 시절, 그가 얼마나 외로웠을까라며. 육영수 씨의 모습에서 황상기 씨의 모습을 본 건 그이들이 느꼈을 억울함과 외로움이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에 들어섰어도 부당함, 굴욕감, 열악함이 계속됐다는 육영수 조합원의 얘기,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도 똑같다. 삼성전자에서 반도체와 LCD를 만들던 노동자가 각종 암과 희귀 난치성 질환으로 고통을 당했다며 반올림에 제보한 이만 230명이 넘고 그 중 76명이 세상을 떠났는데, 삼성전자는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건을 은폐하고 "진정한 사과, 투명하고 공정한 보상, 사회적 대화 재개"를 요구하는 정당한 목소리조차 언론 플레이로 덮는다. 산재 인정을 방해하고, 피해자를 얼마의 돈으로 회유하는 건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여기는 것 같다. 영업 비밀이라며 정보를 내 놓지 않아도 노동자가 산재를 증명해야하는 제도까지 있으니 회사가 '내 알바 아니다'라고 버티기도 쉬운 세상이다. 기업도 정부도 언론도 한 패로 무섭다. 억울하다. 건강하던 내 딸이 죽은 것도 서러운데, 그러한 죽음이 75명이나 더 있는데.

육영수 조합원과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상황도 반올림과 다르지 않았다. 감시, 협박, 회유, 차별, 징계, 고소고발 등 회사의 괴롭힘이 심해지는 고통스러운 나날 속에서 산재인정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근로복지공단은 시간만 질질 끌었다. 그나마 최근에서야 산재로 승인되었다한다. 고통을 당한 이가 증명하고, 그 시간을 기다림과 싸우는 것, 기업과 정부는 노동자에게 가혹했다. 그 가혹한 세상의 동질감일까? 육영수 씨를 통해 반올림 피해 노동자들이 보이는 것은. 우리는 다른 공간에 다른 질병과 아픔을 맞이했지만, 아픔을 준 이들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외치고 권리를 요구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같은 모습이었다.

유성기업 노조원들은 목숨을 끊은 한광호 님의 영정 사진을 들고 현대 자동차 앞 사옥에 자리를 잡았다. 반올림은 76개의 솟대를 세우고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농성 중이다. "더 이상 죽지 않겠다. 억울한 죽음에 대해 회사의 사과를 받겠다. 자본의 힘에 노동자들이 밀려서진 않겠다. 재벌의 탐욕을 멈추겠다"며 밤낮으로 힘을 모아가고 있다. 약한 힘과 약한 힘이 모이고, 건강하게, 온전하게 일하고 싶다는 정의로운 마음이 강남역과 양재역에 모이고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우리를 이어지게 하고 있다. 유성 조합원과 반올림이 더 단단하게 이어져 무책임한 기업에 따지고 무관심한 정부에 문제제기 할 힘으로 모아질 것이라 믿는다. 반올림, 유성기업 노동자 우리의 이어짐과 싸움이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드는 작은 힘이 되길 바라본다.

▲ 현대차와 갈등을 빚는 자동차 부품 회사 대전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3일 부산 모터쇼가 열리는 벡스코 행사장 현대 제네시스 부스 앞에서 현대차를 규탄하는 피켓팅 시위를 벌이다가 보안요원에게 쫓겨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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