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이어 2회째를 맞은 평화통일 시민강좌는 남북 교류협력 재개 촉구를 주제로 오는 6월 25일까지 총 5회에 걸쳐 진행됩니다.
지난 5월 14일 두 번째 순서로 서울 시민청 워크숍룸에서 '개성공단이 끝나고 우리가 잃은 것들'을 주제로 정기섭 개성공단기업인협의회 회장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강연에서는 개성공단 폐쇄로 잃은 것들을 되짚어 보고 남북관계 복원에 대해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음은 강연 주요 내용입니다.
<제2회 평화통일 시민강좌>
① 고구려·백제·신라, 혈투 속에서도 교류했다…지금 우리는? (정호섭 남북역사학자협의회 기획총괄위원 / 한성대학교 역사문화학부 교수)
그런데 지난 설 연휴 마지막 날 2월 10일, 개성공단이 삶의 일상이고 소중한 일터였던 우리 기업인들과 근로자들은 정부의 전격 중단 결정과 이에 대한 북측의 추방 조치로 2월 11일 개성공단에서 쫓겨나듯 나온 후 언제 다시 개성공단에 갈지 알 수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개성공단 전면중단 결정에 대해 억울하고 심지어 분노도 느끼지만, 중단결정의 원인과 이후의 과정에 대해 기업인의 입장에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대통령께 결재받은 사안, 재검토는 안된다
2016년 초 북한의 핵실험으로 개성공단에 상주하는 남측 인원을 줄이는 조치가 있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 개성공단 운영에 지장이 있었으므로 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통일부 장관과 면담 요청을 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2월 9일 연락이 와서 10일 오후 2시 삼청동 회담본부에 가보니 그 자리에 장관뿐 아니라 차관의 명패도 놓여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개성공단에 무슨 일이 터지는가보다 직감을 했죠.
그 자리에서 통일부 장관은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을 했고 이것은 대통령한테 결제받은 사항이니 재검토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개성공단 내의 많은 자재와 완성품을 들고나올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통일부는 이틀 동안 차 한 대, 사람 한 명만 들어갈 수 있게 했습니다. 결국 다음날 11일 북측의 추방조치로 우리는 개인 사물도 제대로 못 챙기고 황망히 피난 나오듯이 나와서 지금까지 못 들어 가고 있습니다.
통일부 장관도 모르는 개성공단 핵개발 전용론
정부는 개성공단 전면 중단의 이유를 세 가지로 이야기 했습니다.
첫째,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개성공단 자금이 쓰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금까지 개성공단으로 6200억 원이 들어갔고 이 금액을 연간으로 따지면 600억 원이 채 안 되는 돈입니다. 이 돈 중에 50%를 핵 개발에 썼다 하더라도 일 년에 300억 원 가지고 조 단위 비용 규모가 들것이라 추측되는 핵과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습니까. 통일부 장관도 잘 모르니 근거를 못 대는 것 아닙니까.
지난 2월 국회 개성공단 관련 대정부 질의에서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의원이 "개성공단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외화는 북측 근로자 및 개성 시민들을 위한 생필품 구매에 쓰인다"고 말했습니다. 개성공단 근로자 임금이 70달러에서 시작해서 개성공단 중단 직전에는 200달러 정도였습니다. 많지도 않은 이 금액의 대부분이 개성공단 근로자 및 가족의 생필품 구매에 사용된다고 생각했을 때 개성공단 중단으로 핵·미사일 개발에 들어가는 자금을 차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또한 북한의 핵 개발 문제는 개성공단이 태동조차 하지 않았던 1990년대부터 있어 왔던 문제입니다. 핵 문제는 남북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이 관심 있는 사항이고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남과 북이 다자간 협상을 통해서 풀어나가야 할 문제입니다. 핵 문제와 별개로 남북관계의 긴장 완화와 관계 개선을 위해서 경제협력은 해야 합니다. 또한 남북 간 교역을 활발히 하는 것이 군사안보 문제 해결에도 보탬이 됩니다.
신변안전 문제? 연평도에 포가 날아 올 때도 그런 일은 없었다
두 번째 이유는 "우리 국민의 신변안전에 대한 우려, 즉 개성공단 주재원들의 인질화 가능성"이었습니다. 개성공단에서 10여 년간 생활해 왔던 기업인들과 주재원들은 신변안전을 문제 삼는 정부의 주장에 전혀 동의하기 힘듭니다. 2010년 연평도 포격이나 2015년 목함지뢰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도 신변안전 문제에 대해 우려할 만한 상황은 없었습니다.
정부에서 예로 2013년 개성공단 잠정 중단시의 최후의 7인을 이야기합니다. 개성공단의 임금은 일반회사처럼 그달이 끝나기 전에 주는 것이 아니라 그달의 초과근무시간, 주말근무 등을 계산해서 다음 달에 지급합니다.
2013년 4월 8일 북측이 근로자를 철수시켰던 당시에도 지난달 임금을 못 준 상태였습니다. 몇 달 혹은 일 년씩 임금이 밀려있는 기업이 있었고 세금도 안 낸 것이 있어서 모두 1300만 달러를 정산했어야 합니다. 북측에서 이를 정산하기 전에는 관리위원장이 남을 것을 요구했고 그래서 실제로 관리위원장이 일주일 남아있었습니다.
현대아산 직원 유모 씨 사건도 신변안전문제의 예로 들고 있는데 그 사람은 북측의 여성을 남쪽으로 탈출시키려고 했습니다. 그 사실이 알려져 상당 기간 북측에 억류되어 조사 받다가 현대 현정은 회장이 데리고 나왔습니다. 이런 것을 예로 들면서 정부가 신변안전 문제로 개성공단을 갑작스럽게 중단한다고 했는데 기업들로서는 솔직히 진정성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정부가 법적 절차도 없이 민간기업 문 닫게 할 수 있나?
세 번째 이유는 "핵과 미사일 개발을 막기 위한 국제적인 제재 동참"이었습니다. 그러나 유엔에서도 북한 주민들의 생계를 크게 저하시키는 제재는 못 하게 되어 있습니다. 개성 공단 전면 중단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 사람들은 개성공단 내의 북측 근로자 5만4000명과 개성에 있거나 서울에서 관련 업무를 했던 남측 근로자 2000명, 그리고 123개 입주기업과 70여 개의 영업 기업입니다. 왜 애꿎은 우리가 벌을 받아야 합니까?
개성공단 처음 시작할 때 정부가 기업들에 적극 권유를 했고 모든 것을 책임지고 보장하겠다고 했습니다. 또한 국회에서 개성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도 만들었습니다. 정부는 개성공단을 경제 원칙에 입각한 국제경제력 있는 공단으로 육성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업을 시작할 때 정부로부터 복잡한 절차와 승인을 거쳤기 때문에 정부가 승인사항을 변경하거나 해지할 때에는 법률에 의거, 적법한 과정과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남북교류협력법에 의하면 남북협력사업을 정지할 때에는 '국가안전보장을 명백하게 해칠 경우에 한하여 6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청문 절차를 거치도록'되어 있습니다. 작은 기업이 사업을 할 때에도 계약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에는 계약서에 의거한 위약금을 물고 해약을 합니다.
우리는 공기업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정부 마음대로 손실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개성공단을 중단시킬 수 있습니까? 이러한 조치를 보고 정부의 대북제재에 대한 의지가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대한민국은 아직도 정부가 민간기업을 마음대로 문 닫게 하고 법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나라임을 입증해 주는 것입니다.
개성공단이 중단되고 우리가 잃은 것들
지난 2013년 개성공단 잠정 중단 이후 남북의 치열한 협상 끝에 나온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합의서' 1항은 "남과 북은 통행 제한 및 근로자 철수 등에 의한 개성공단 중단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 받음이 없이 남측 인원의 안정적 통행, 북측 근로자의 정상 출근, 기업재산의 보호 등 공단의 정상적 운영을 보장한다"입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처음 3~5년 동안은 적자를 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북측 노동자들이 제품 품질에 대한 개념이 없으므로 '이 정도면 쓰는데 지장 없는데 왜 불량이냐'며 많이 싸웁니다. 납기일 맞추느라 애 많이 먹습니다.
그러한 어려운 과정을 거쳐 이제 기업들이 이익을 창출하는 단계와 이르렀는데 하루아침에 사업장이 없어졌습니다. 우리가 잃은 것의 첫 번째는 정부에 대한 신뢰입니다. 앞으로 경제협력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공장도 짓고 영업소도 차려야 하는데 이번 경우를 보면서 누가 투자를 하려고 하겠습니까?
두 번째는 남북경협의 실험장이자 작은 통일이 이루어지고 있는 공간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개성공단을 두고 '통일의 옥동자'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과거의 남북경협사업은 주재원이 파견되어 장기간 일상적으로 북측 성원과 협력한 경우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개성공단은 상주하는 주재원 850명이 북측 근로자와 함께 생산을 같이 하는 곳입니다.
당장 눈에 띄지는 않지만 항시적인 만남을 통해 변화를 이루어 나가는 곳입니다. 체제와 제도 및 문화가 상이한 남과 북이 만나서 서로를 이해하고 어떻게 하면 협력할 수 있는지를 매일매일 실험하는 작은 통일의 공간이었습니다. 개성공단의 전면 중단으로 남북경제협력 및 작은 통일의 모델이 사라지게 되었으며 이는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습니다.
세 번째는 개성공단 입주 기업의 경제적 피해입니다. 기업의 직접투자 손실로만 8000억 수준입니다. 그보다 더 큰 것은 영업손실로 개성공단에서 쫓겨났지만 주문상품의 납품기한은 맞춰야 하므로 개성공단에서 100원 가지고 할 것을 200원, 300원 들여 다른 공장에서 생산하고 자재도 다시 발주하면서 손실을 크게 입었습니다. 이러한 영업손실까지 합치면 조 단위가 훨씬 넘어갑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부품 중에 북한 내에서 생산 못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국정원이 그런 것을 열심히 파악해서 그 부품들이 북한으로 못 들어가게 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인 제재 아닙니까. 핵미사일 개발은 북한 당국이 했는데 왜 남북의 근로자와 우리 기업이 벌을 받아야 합니까. 제재의 대상과 제재 조치로 인해 피해를 입는 대상이 다르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정당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입니다.
□ 질의 응답
질문 : 개성공단 손실에 대해서 정부도 인정을 했으니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하면 이기지 않을까요?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은 개성공단의 조속한 재개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정부의 공권력에 맞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므로 개성공단 피해보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국회에 요청하고 있습니다. 향후 이런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도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질문 : 개성공단 중단으로 기업들의 피해는 어느 정도인가요?
정기섭 : 개성공단에만 공장이 있는 50개 기업과 개성공단의 생산 비중이 50%가 넘는 회사까지 합쳐 입주 기업의 70%가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보험 이야기가 나오는데 보험은 공단 중단 기간에만 주는 무이자대출입니다. 재개되면 다시 갚아야 합니다. 2013년 중단되었을 때 지급받은 보험은 한 달 이내에 갚으라고 했습니다. 못 갚은 회사는 첫 달은 3%, 두 번째 달 6%, 세 번째 달 9% 이자 쳐서 갚아야 했고 지금도 갚고 있는 회사가 있습니다.
질문 : 정부가 2월 10일 개성공단 중단 결정을 하고 북측이 11일 오후 5시까지 나가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밤늦은 시간에 나왔습니다. 그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정기섭 : 11일 아침에 차 한 대씩 가지고 올라갔습니다. 북측 인원도 출근을 안 했으니 혼자서 완제품과 몰드 같은 중요한 부품들을 차에 잔뜩 실었습니다. 3시 반에 나가기로 신고되어 있는데 5시에 나가면 이전까지는 벌금 50달러를 내면 됐기 때문에 우리 회사도 벌금 낼 생각을 하고 5시에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가다 보니 물건은 안되고 몸만 나가라고 해서 다시 물건을 내려놓고 나왔습니다. 나오는 차가 한두대가 아니고 실랑이를 벌이다 보니 밤늦게 나오게 된 것입니다. 어떤 회사는 급하니까 회사 건물 안까지도 못 들어가고 마당에 그냥 쌓아놓고 나오기도 했습니다. 3시 반에 나온 회사들은 물건을 가지고 내려왔습니다.
개성공단의 전기는 남측이 공급하고 물은 개성 인근 저수지 물을 끌어와서 공단 내에서 정수해서 급수했습니다. 남는 물은 개성 시내에 줬습니다. 2월 11일 밤 10시에 남측 인원이 다 내려오자마자 밤 11시에 한전에서 전기를 끊었습니다. 아마 수도도 끊겼을 것입니다.
물과 전기는 전략물자도 아니고 생활에 필수적인 것인데 끊을 때 끊더라도 며칠 여유를 줬어야 했습니다. 개성 시내 사람들이 북한 지도부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에게 그런 예기치 않은 고통까지 주어야 합니까. 우리 정부의 조치가 너무 성급하고 졸렬하여 안타까웠습니다. 2013년 조치 때는 최소 전력은 보내고 수도공급도 계속 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번에는 아예 안볼 것이라 생각하고 전기도 끊으면서 수도 공급도 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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