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돈을 빌려줬더니, 애인 사이였다고…"

[이변의 예민한 상담소] 지인에게 돈을 빌려 줄 때는…

봄이 시작되던 즈음이었다.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30대 후반의 남자가 사무실 문 앞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등 뒤에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화들짝 놀랐다.

남자는 내가 변호사가 아니라 사무실 직원인줄 알았는지, 이런 일로 변호사를 만나도 괜찮겠냐고 물어왔다. 남자는 상담 예약을 하고 찾아온 의뢰인이 아니었다. 답답한 마음에 법원 무료 상담을 찾았다가 법원 앞 건물에 들어와 엘리베이터를 내려 법률사무소 앞을 망설이는 중이었다.

사연이 딱했다. 남자에게는 서른이 넘어 우연한 기회에 친하게 된 '여자 사람 친구(여사친)'가 있었다. 친구는 모 대학 인근에서 작은 커피 전문점을 하고 있었다. 알고 지낸 지 수년째 되던 해에 친구가 가족 수술비로 돈이 급히 필요하다고 했다. 남자에게는 오래 사귄 약혼녀와의 신혼집을 마련하기 위해 모아둔 목돈이 있었다.

약혼녀의 아버지가 병환이 있으셔서 결혼을 좀 미루고 있는 중이었다. 친구는 커피 전문점의 사업자 명의와 임대차 계약서의 임차인 명의를 이전해주겠다며 남자를 설득했다. 설령 돈을 못 갚더라도 절대 손해를 보지는 않을 것이라 말했다. 그렇게 남자는 친구에게 적잖은 액수의 돈을 빌려주게 되었다.

그런데 친구는 돈을 빌려간 지 1년이 가까워지도록 원금은커녕 이자도 한 푼 갚지 않았다. 남자가 독촉을 해보았지만, 친구는 전화를 잘 받지 않으며 차일피일 미뤘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는 친구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커피 전문점을 처분한 것을 알게 되었다. 커피 전문점을 찾아가보니 스탠딩 호프집으로 바뀌어 있었고, 세무소에는 폐업 신고가 되어 있었다. 황당했다.

남자는 약혼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결혼 날짜를 잡게 됐다. 신혼집을 구하기 위하여 돈이 필요했다. 오해가 생길까봐 약혼녀에겐 저간의 사정을 말하지도 못했다. 남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일단 경찰서에 사기로 고소를 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생각보다 사연이 길어서 계속 동네 주민처럼 서서 듣기엔 한계가 있었다. 들어가자고 말했더니 남자가 화들짝 놀랐다. 남자는 내가 변호사라고 말하자 당황했다. 일련의 일을 겪으면서 남자에겐 그새 상처가 생긴 것 같았다. 딱했다.

앉아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니 상황은 더 난감했다. 친구는 경찰에게 남자와 사귀는 관계였기 때문에 남자가 자기에게 사업에 보태 쓰라고 그냥 준 돈이라고 우기는 중이었다. 남자는 돈을 빌려주던 당시에 커피 전문점을 넘겨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차용증도 받지 않았더랬다.

친구가 커피 전문점 운영을 해야 하니 인감 증명서와 남자 명의의 사업자 통장 등이 필요하다고 하여 만들어준 것이 화근이었다. 권리금 등을 주고 점포를 넘겨받은 새로운 임차인이나, 여자에게 임대차 보증금을 넘긴 임대인에게 청구를 하기에도 본인의 과실이 너무 커보였다.

남자는 경찰이 정말 사귄 거 아니냐 의심의 눈길로 보는 것 같다며 억울함으로 없던 병이 생길 지경이라고 했다. 남자에게 남아있는 것은 당시 돈을 건네 준 은행 계좌 이체 내역과 넘겨받았던 당시의 임대차 계약서, 사업자 등록증뿐이었다.

남자가 민사 소송으로 그 친구에게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냐는 별론으로 하고, 친구가 남자를 속여서 돈을 편취했다는 것을 입증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독촉은 통화로만 해서 독촉했던 증명이 없는 것도 문제였다. 남자는 10년 가까이 교제한 약혼녀가 알고 오해할까봐 전전긍긍이었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자 여자 변호사인 내가 자기 말을 의심하는 건가 걱정했다.

남자에게 사기죄로 고소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남자는 법무사와 법률 상담을 통해 가게를 넘겨 줄 것처럼 하고 돈을 빌려놓고 가게를 처분하였으니 대여금 사기로 고소장을 작성했었던 것이라고 했다. 남자가 말한 대로라면 친구가 처음부터 갚을 생각 없이 돈을 빌려간 것이니 대여금 사기에 해당하겠지만, 상대가 남녀 관계를 이유로 한 증여를 주장하니 '기망'이냐는 부분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아 사건이 표류 중인 것으로 보였다. 남자의 친구는 이런 금전 사기로 주변에 피해를 많이 끼쳐온 것 같았다. 기소가 되어야 얼마간이라도 돈을 토해낼 텐데, 사건이 표류하자 더 의기양양인 중이었다.

그렇게 우연히 사건을 맡은 후, 방향을 달리 잡아 의견서를 제출했다. 커피 전문점을 넘겨주겠다고 하고 돈을 빌렸는데 실제 커피 전문점을 넘겨는 줬었으니, 처음부터 커피 전문점을 남자에게 넘겨주지 않을 것을 작정했었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면 사기죄가 불성립될 우려가 컸다.

그 보다는 남자에게 넘겨준 커피 전문점을 보관하는 입장에서 임의로 처분하고 그 처분액마저 돌려주지 않았으니, 매도 담보에 대한 횡령으로 주장했다. 친구에게는 남자에게 빌려간 금원의 일부라도 우선 변제에 나서지 않으면 세무서에 문서 열람 복사 신청을 해서 폐업 신고와 관련하여 사문서 위조와 그 행사의 죄도 묻겠다는 내용 증명을 다시 보냈다.

혹시 몰라, 남자와 친구를 함께 알고 있는 주변인을 설득해서 둘이 사귀는 관계가 아니었고 남자에게 약혼녀가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는 진술서도 확보해서 제출했다. 다행히 사건이 경찰에서 검찰로 횡령죄로서 기소 의견 송치가 되고 사문서 위조 등에 대한 추가 고소가 들어올 것에 대한 압박감이 커지자, 친구가 뒤늦게 합의에 나섰다.

일상에서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법률 다툼 가운데 하나가 이러한 지인과의 돈거래이다. 때로는 사정을 알면서도 빌려주지 않기 어려운 관계라서, 때로는 바닥을 치는 저금리 시대에 믿을만한 이로부터의 돈을 불릴 수 있다는 믿고 싶은 말에 혹해서. 문제는 건너갈 땐 수월하게 건너간 돈이 돌아올 땐 그렇지 못하면서 발생한다.

지인 관계의 금전 관계이다 보니 담보 설정이나 차용증을 작성하지 않는 경우 역시 의외로 많다. 돈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경우도 많다. 후일에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모르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에 아무것도 남아있지가 않으면 민사적으로나 형사적으로 다투기가 어려워 난처한 입장에 처할 수 있다.

빌려간 쪽에서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렇더라도 받지 못하는 쪽에선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간혹 가다가는 빌리는 사람이 처음부터 돌려줄 생각이 없는 상황에서 돈거래가 발생하기도 한다. 빌려준 사람이 그런 것을 알게 되었을 즈음에는 금전적 손실 외에도 관계가 망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금전 관계를 전혀 안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했던 돈거래가 관계를 처절하게 망치는 부메랑이 되기도 한다. 돈을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할 때 문제가 될 정도의 금액이라면, 상대가 금융 기관에서 융통할 수 있는지 점검하자. 그러기 어려운 상황에서 빌려줄 수밖에 없다면 조금 민망하더라도 차용증 작성은 기본이다.

특히 돈을 현금으로 건네주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나중에 차용증이 있어도 안 받았다고 할 때 입증의 책임은 고스란히 빌려준 사람의 몫이 된다. 관계가 소중해 하게 된 행위라면 불편하더라도 그 소중함을 지키기 위한 불편 정도는 감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을 위해서도 상대를 위해서도 관계를 위해서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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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의

이은의 변호사(ppjasmine@nate.com)는 이은의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위 글의 내용에 대한 추가적인 문의 사항이나 법률 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메일이나 아래 전화로 연락을 주십시오. (평일 오전 9시 30분~오후 6시 : 02-597-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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