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물질 범벅, 제2의 옥시 사태는 계속된다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자연 지수를 높이자

한참 늦은 감은 있지만, 최근 들어 가습기 살균제 사태의 내막이 드러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큽니다. 타인의 고통에 관한 현대인의 공감 능력이 많이 떨어졌다고는 해도, 내 아이와 가족을 위한 선택이 초래한 비극적 상황은 많은 사람에게 슬픔과 안타까움, 그리고 분노와 불안을 일으키는 듯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런 종류의 사태는 끊이지 않고 발생합니다. 멜라민 분유, 쓰레기 소각장의 다이옥신, 불산 누출 사고, 식품 첨가물, 학교 운동장에 깔린 인조 잔디, 골프장의 농약이나 농부의 농약 중독 등 유해한 화학 물질로 인한 피해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최근에는 의약품과 관련해서도 여러 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이고요.

문제는 우리가 노출되는 화학 물질의 유해성이 충분히 알려지지도, 조사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통계를 보면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가히 화학 혁명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화학 물질들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수십 년의 짧은 기간에 수백 만 가지가 넘는 물질이 만들어졌으니 가히 혁명이라 불릴 만하지요. 물론 그 이전에도 우리는 이미 자연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화학 물질에 둘러 싸여 살았습니다(인체 기능도 다양한 화학 물질로 유지되지요). 그리고 오랜 기간을 두고 이런 환경에 적응해 왔지요.

그런데 근대에 나타난 수많은 화학 물질은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는 지극히 짧은 기간에 너무나 많은, 새로운 화학 물질에 노출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 몸은 채 적응할 시간을 얻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유해성이 판명된 물질 외에도 새로운 화학 물질에 우리가 수십 년 동안 노출되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게다가 개별적인 물질이 아니라 여러 물질이 우리 몸에 들어왔을 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제 생각에는 없을 듯합니다.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태처럼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 경우에나 우리는 조금 관심을 가질 수 있을 뿐이지요.

조금 더 들어가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얼마나 많은 인공 화학 물질에 노출되는지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수돗물에 포함된 염소, 샴푸와 비누, 옷에 존재하는 세제와 섬유 유연제, 그리고 드라이 크리닝 용제, 화장품, 향수, 헤어스프레이, 가공 식품에 포함된 다양한 물질, 자동차 배기가스, 오염된 공기, 청소용품, 살충제, 건축 자재에서 발생하는 가스, 오염된 실내 공기, 약물, 술과 담배연기 등. 특별히 어떤 유해한 물질이나 환경에 노출된다는 의식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많은 화학 물질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것들이 효과적으로 처리되어 배출되지 않으면, 몸속에 쌓여서 질병의 발생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저 드러나지 않아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뿐이지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모든 것을 등지고 살아가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알 수 없는 화학 물질을 줄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본인이 쓰는 물건의 성분이나 그 유래를 알 수가 없다면, 가능한 쓰지 않아야 합니다. 도저히 그럴 수 없다면 검색을 통해 유해성이 판명된 물건이라도 치우는 것이 좋습니다. 이와 함께 우리 몸이 스스로 이 물질을 처리할 수 있도록 주기적으로 채우는 것을 잠시 멈추고 비워내는 시간을 갖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다음으로는 가능한 자연과의 거리를 좁히도록 노력합니다. 인간은 실험실에서 만들어지고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이지요. 따라서 자연과의 접점이 클수록 건강할 수 있습니다. 먹고 마시고 숨 쉬고 접촉할 때 인위를 줄이고 자연을 늘려가는 것이 건강을 위한 가장 좋은 비결입니다.

이처럼 소극적 행동과 함께 가능한 유해 물질이 우리 생활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할 필요도 있습니다. 유해한 것들을 사람들이 소비하지 않도록 시장에 경고해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도록 해야 하고, 내가 하지 못하겠으면 이러한 운동을 하는 시민 단체나 기관에 후원이라도 합시다. 또한 우리 삶의 뿌리와 바탕이 되는 자연환경이 건강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사소한 운동을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늘 그렇듯, 보이지 않는 위험이 우리가 인지하는 위험보다 큽니다. 문명이라는 이름의 인위를 가까이 하고 생명의 본래 자리인 자연에서 멀어질수록 정체불명의 문제와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주어진 시간을 건강하게 살고 싶다면 삶의 자연지수를 높이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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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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