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연합 사태'로 본 전경련 해체 이유

[기자의 눈]'정경유착 구현'과 '국민 사상 개조'가 본업인가

대표적인 민간경제단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1961년 출범 이후 조직이 해체될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이 단체가 반사회적 단체라는 지탄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도 아니고, 대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익단체에 불과한 전경련에 대해 왜 해체 여론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일까?

이익단체가 합법적으로 회원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상적 활동을 한다면 누가 해체하라 마라 할 권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경련은 흔한 이익단체는 아니다. 한때 전경련 회장은 이 나라의 총리급 대우를 받을 정도로 군림했다. 총리급 대우 요구는 전경련 스스로 했고, 이것을 인정받았다는 것은 전경련이 나라의 경제를 위해 헌신하는 국가기관의 위상을 자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경련의 역대 회장을 보면, '재벌 중의 재벌'이라는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들이 번갈아 가면서 회장직을 맡았다. 하지만 현재 GS그룹 총수인 허창수 회장 대에 이르러서는 4대 그룹의 총수들은 외면하는 단체로 위상이 떨어지고, 후임자를 구하기도 어려워 2011년부터 3연임째 하고 있을 정도로 위상이 추락했다.

회원사 대부분이 국가기관급의 위상이 아니라 정경유착이라는 어두운 유산을 그리워하고, 그러다보니 시대착오적인 이런 요구를 관철하려는 의지로 가득찬 인물들이 움직이는 단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익단체 전경련, 불법활동까지 드러나


전경련이 정치권에서 정경유착을 근절하려는 입법을 추진하면 이를 막는 입법 로비에 나서다가 들통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전경련이 이런 작태를 보인 것은 전경련의 과거 위상으로 볼 때 실망스러운 것이지만, 이미 일개 이익단체로 전락한 전경련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입법 로비' 정도는 눈 감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전경련은 박정희 시대의 정경유착을 그리워한 나머지 국민의 '사상 개조'와 정경유착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정권을 만들기 위한 '정치단체'로 변모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져갔다. 지금까지 이런 비판의 근거는 의혹 수준이었다.

하지만 끝내 전경련의 정체가 드러나는 폭로가 나오고 말았다. 그것도 '불법을 서슴지 않는 정치단체'라는 정체까지 들통나고 만 것이다.

4.13 총선을 통해 여소야대로 정치권의 세력균형이 바뀌자 권력의 향방에 눈치빠른 자들이 야권과 언론에 스스로 폭로하며 나서고 있다.

전경련에 일격을 가한 자폭성 폭로는 '까스통 할배'로 악명높은 어버이연합에서 나왔다. 어버이연합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시위 등 박근혜 정부가 싫어할 만한 온갖 시위에 '종북'이라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반대 시위' 전문 단체다.

이들이 도대체 무슨 자금으로 온갖 시위에 조직적으로 움직일까 의문이 컸는데, 그 일부가 전경련 자금이라는 폭로가 나온 것이다. 지금은 사라진 기독교 선교복지재단의 계좌를 이용해 이 자금이 전달된 것으로 확인됐다. 전경련의 이 자금 지원 행위는 여러 면에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일단 차명계좌를 이용해 자금을 거래한 것은 금융실명제법 위반이라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또한 사단법인이라는 이 단체의 법적 성격으로 볼 때 이 자금 집행을 결정한 자는 배임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사단법인의 정관에 정치적 활동이나 종교단체에 돈을 지원해도 된다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 자금 집행은 이사회나 감독기관인 산업자원부의 승인도 거치지 않고 전경련을 사실상 움직이는 이승철 상근부회장의 전결로 처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 측은 이 폭로에 너무나 놀라 'NCND(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로 고슴도치처럼 웅크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렸다. 전경련은 공식적으로 입을 다물고 있지만, 전경련 전직 고위간부들의 폭로성 발언과 언론들의 팩트 취재가 집중적으로 보도되고 있다.

폭로된 어버이연합 지원자금은 '빙산의 일각'?


20일 JTBC 등 언론 보도에 따르면 현재 어버이연합에 지원됐다는 1억2000만 원의 자금은 2014년 하반기 9월에서 12월까지의 4개월여 걸친 금융거래 기록에 근거한 것일 뿐이다. 어버이연합이 연간 수백차례의 집회와 시위를 벌인 단체라는 점에서, 최소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 걸쳐 훨씬 더 많은 자금이 전경련을 통해 흘러갔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야권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특히 전경련이 그냥 어버이연합의 돈줄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청와대가 지시했다는 의혹에 주목하고 있다.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어버이연합 핵심인사는 아예 "청와대에서 집회를 열어달라고 지시했다"면서 청와대 정무수석실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 소속 행정관 현모 씨를 지시자로 지목했다. 현 행정관은 80년대 운동권으로 활동하다 전향해 뉴라이트 운동을 주도한 '전향386'과 '시대정신'이라는 단체의 핵심 멤버였다.

전경련이 알아서 자금을 지원했든 청와대의 지시를 받아서 했든 전경련이 불법적 활동을 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런 단체는 해체해야 마땅하다는 비판을 벗어나기도 어렵다.

전경련은 직접 또는 산하기관인 한국경제원이나 전경련이 설립해 자금을 지원하는 자유경제원 등 외곽단체를 동원해 정치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왔다. 지난 대선을 앞둔 2012년 6월 한국경제원이 헌법 119조 2항에 명시된 경제민주화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자 당시 새누리당 비대위원으로 활동하던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주제 넘은 소리라고 일축하면서 "전경련이 쓸데없이 자꾸 사회통합 저해하는 소리를 계속하면 존재할 필요가 과연 있겠느냐"고 경고하기도 했다.

중소기업청장 출신인 새누리당 이현재 의원도 바로 한 달 뒤인 2012년 7월 "시대적 요구인 동반성장에 귀를 막고 대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전경련이라면 해체하는 것이 국민적 정서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자유경제원은 뉴라이트 역사교과서와 친일·독재 미화 논란에 휩싸인 국정 역사교과서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선 단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저서를 자기들의 시각에 맞춰 의도적인 오역을 한 국제적 사건의 당사자가 원장으로 있다. '국정교과서 전도사'로 불렸던 자유경제원 사무총장 출신 전희경 씨는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4.13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전경련은 정관 1조에서 '자유시장경제의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올바른 경제정책 구현과 우리 경제의 국제화를 촉진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전경련 홈페이지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961년 민간경제인들의 자발적 의지에 의해 설립된 순수 민간종합경제단체로 자유시장경제의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올바른 경제정책을 구현하고 우리경제의 국제화를 촉진하는데 설립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며 설립목적을 소개하고 있다.

"전경련, 경제·사회 걸림돌된 지 오래"

하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보여준 전경련의 실제 활동을 보면, '정경유착 구현 사회 건설'과 '국민 사상 개조'라는 비밀 정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불법행위를 저지른 단체에 대해 검찰이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이지 않자 시민사회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어버이연합에 차명계좌로 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21일 대표적인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실련은 이날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경련이 친정부적 시위를 주도한 어버이연합에 복지재단의 차명계좌로 자금을 지원한 의혹이 제기됐다"며 "금융실명법 위반과 업무상 배임 혐의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경실련 김삼수 정치사법팀장은 "전경련이 자금을 지원했던 기독교 선교 복지재단은 법인명부에 등록돼 있지 않은 단체"라며 "전경련이 어버이연합 차명계좌를 이용해 단체에 자금을 지원한 건 금융실명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전경련 측은 복지단체에 기부를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팀장은 "특정 종교 단체 지원을 금지하고 있는 전경련이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지원한 점은 업무상 배임에 해당한다"고 반박했다.

경실련은 전날 '전경련 해체'를 촉구하는 성명도 발빠르게 냈다.

경실련은 이 성명에서 "대기업·재벌들의 이익단체인 전경련이 극우행동단체인 어버이연합에 억대 자금을 지원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며 "전경련은 재벌기업들의 경제력과 사회적 영향력을 이용한 노골적인 정치개입 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당장 조직을 해체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정경유착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고도성장기의 경제성장을 주도한 대기업들의 과거를 그리워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나마의 긍정적인 역할도 기대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양혁승 연세대학교 교수는 "경제민주화 실천이나 양극화 해소에 반하는 재벌중심, 불균형성장을 주장해온 전경련은 그동안 경제,사회 발전의 걸림돌이 돼왔다"고 질타했다.

나아가 경실련은 "전경련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에서도 위장계열사인 자유경제원을 이용해 이념 논쟁과 정치에 개입에 나섰다"면서 "당시 자유경제원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력히 주장하고, 일부 야당의원들을 종북·좌파라고 낙인찍고 내년 총선에서 반드시 낙선시켜야 한다며 노골적인 선거개입 행위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국론분열, 사회통합을 거스른 재벌단체 전경련의 행태는 더 이상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며 재계에 즉각적 전경련 해체를 촉구했다.

이제 전경련은 해체 압력을 피하기 위해서는 '가습기 살인 살균제'의 핵심 제조사로 지목받자 원래 회사명을 알아 볼 수 없게 'RB코리아로 바꾼 옥시레킷벤키저처럼 단체명을 바꾸는 꼼수라도 부릴 처지로 몰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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