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무엇보다 '참신한' 것은 이슬람과 동성애 반대를 전면에 내건 정당의 등장이었다. 심지어 이들은 60만 표를 넘게 획득했다. 뉴호라이즌스가 명왕성을 지나고,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이 격돌하는 21세기에 벌어진 일이다.
사실 이런 일이 벌어질 조짐은 충분했다. 열혈 혐오주의자들의 신실한 믿음, 저돌적 행동력은 차별 금지법 입법에 참여했던 정치인들을 후퇴하게 만들었고, 선거에서 유력한 야당 후보마저 혐오 발언에 가담하도록 만들었다. 성 소수자에 대한 적극적 지지는 고사하고 동성애 혐오에 반대한다는 이야기마저도 '위험한' 것으로 만들었다. 많은 이들이 '괜히 시달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혐오와 차별을 못 본 체 할까봐 걱정이다.
최근 보스턴 대학교의 포티엣 교수 팀이 <학교심리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은 성 소수자 괴롭힘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닌, 이러한 제3자들의 개입에 초점을 두었다. 학교 폭력이나 집단 따돌림 문제는 비단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인종이나 성 정체성 같은 '편견'에 기초한 따돌림은 많은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성 소수자 청소년들이 겪는 고통의 크기는 간혹 보도되는 자살 뉴스로부터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관련 자료 : Who intervenes against homophobic behavior? Attributes that distinguish active bystanders)
그동안 대부분의 연구들은 학교 폭력이나 따돌림의 가해자, 혹은 피해자에 집중해왔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다수를 차지하는 제3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취약한 조건에 처한 피해 당사자들만의 노력이나 투쟁으로는 상황을 변화시키기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다수의 제3자들이 이러한 폭력/괴롭힘 행동을 목격하고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는 것은 암묵적으로 그러한 행동을 승인, 동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가해자에게는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피해자에게는 도움 받을 곳이 없다는 절망의 메시지를 주는 셈이다. 피해자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성소수자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피해 학생을 옹호하는 것도 현실에서는 매우 어렵다. 그들 자신이 이미 한계 상황에 처해 있고, 섣불리 나섰다가 더한 피해 당사자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어떤 학생들이 이러한 폭력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는지 파악하는 것은 학교 폭력이나 따돌림 문제를 해결하는 개선안을 만드는데 중요한 단서를 줄 수 있다.
연구진은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의 한 고등학교에서 설문을 통해 동성애 혐오 행동을 얼마나 자주 목격했는지, 목격 당시 피해 학생을 옹호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 파악했다. 또 성별과 나이, 성 정체성, 리더십 성향, 정의에 대한 감수성 수준, 이타심과 용기 성향, 성 소수자 친구의 숫자 등도 함께 조사했다.
동성애 혐오 행동을 목격했을 때 피해자를 옹호하기 위해 취한 행동에는 '사건에 대해서 어른에게 알렸다, 그러한 행동을 말렸다, 피해 학생의 편을 들어주었다, 피해 학생을 돕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불러왔다, 피해 학생이 사건을 어른에게 알리도록 도왔다, 해당 사건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런 행동에 가담하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었다(온라인상에서 혐오 내용을 리트윗하거나 코멘트를 남기지 않았다)'의 보기 중에서 해당하는 것들을 표기하도록 했다.
조사에 참여한 722명의 학생들 중에는 여학생이 55.5%, 백인이 87.3%였으며, 86.4%가 스스로를 분명한 이성애자라고 밝혔다.
조사 결과, 놀랍게도 67%의 학생들이 지난 한 달 이내 최소 한 번 이상 동성애 혐오 행동을 목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 소수자 학생들일수록 이러한 사건을 더 자주 목격했으며, 남녀 차이는 없었다.
한편, 지난 한 달간 이러한 사건을 목격했을 때 최소 한 번 이상 이를 저지하기 위해 개입했던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이 78%나 되었다. 여학생인 경우, 리더십 성향이 강하거나, 용기, 이타주의 성향이 강한 경우, 정의에 대한 민감성이 높은 경우에 개입 빈도가 높았고, 성 소수자 친구들이 많은 학생일수록 적극적으로 상황에 개입하는 경향이 있었다.
선행 연구들이 보고했듯, 여학생들은 남학생들에 비해 성적 편견이 적은 경향이 있었다. 연구진은 이러한 현상이 남학생들의 사회화 경험과 관련 있다고 주장했다. 대개 남학생과 청년들은 동성애 혐오적인 남성성 규범을 갖거나 옹호하도록 사회화된다. 따라서 동성애 혐오 행동에 반기를 들었을 때 또래들로부터 보복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고, 또 스스로의 남성성 믿음에 부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개입을 덜 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남학생들이 부당한 혐오 행동에 맞서는 걸 주저하게 만드는 상황을 이해하고, 이를 변화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안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 리더십이나 용기, 이타심 성향, 정의에 대한 감수성 등은 일정 정도 개인의 타고난 성향이기도 하지만, 적극적으로 육성되는 것들이기도 하다. 연구진은 동성애 혐오에 맞서는 적극적인 3자 개입이 많아지면, 이러한 혐오 행동이 줄어들고 상호 존중의 문화가 촉진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성향을 적극적으로 양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또 실질적인 개입의 기술을 개발하고, 이러한 상황을 목격했을 때 학생들이 갖게 되는 부담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학생들과 함께 토대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만일 피해자를 옹호했을 때 그에 대한 2차 가해를 학교가 그대로 방치한다면, 아무리 정의감과 이타심이 강한 학생이라도 다시 적극적 개입을 하기는 어렵다.
꼭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 문제가 아니더라도, 학교 폭력과 따돌림 문제를 해결하려면 소수의 가해자/피해자에 대한 처벌/보호만큼이나 용감하고 양식 있는 다수의 청소년을 키워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을 돌아보면 암울하다. 청소년들의 정의감과 이타심을 고양시키고, 평등한 성 규범을 심어주는 것은 언감생심. 재단 비리를 고발한 교사가 해임되고, 세월호 유가족을 모욕한 어른들이 처벌받지 않고, 공당이 인종적/성적 혐오를 전면에 내세우고도 아무런 제제를 받지 않으니 말이다.
과연 이런 모습들은 청소년에게 어떤 시그널을 주고 있을까? 그저 청출어람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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