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상생·화합', 해군은 '34억' 청구…진심은?

[언론 네트워크] 해군 구상권 청구 논란②

해군이 제주해군기지 공사 지연에 따른 손해를 책임지라며 강정마을 주민과 평화활동가 등을 상대로 34억여 원의 구상금을 청구해 제주사회가 들끓고 있다. 강정마을은 물론 시민사회, 정치권, 4.13총선 당선인, 제주도의회까지 '뺨을 때려놓고 손바닥이 아프다며 맞은 상대방에게 손해를 물어주라는 격'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구럼비 발파 못지않게 제주사회를 들쑤셔놓은 해군의 구상금 청구에 대한 강정 현지의 반응과 해법 등을 3차례에 걸쳐 다룬다.

"우리는 지금, 국가와 국민이 동반의 길을 함께 걷고,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이 선순환의 구조를 이루는 새로운 시대의 출발선에 서 있습니다. 우리가 그 길을 성공적으로 가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민이 서로를 믿고 신뢰하면서 동반자의 길을 걸어가야만 합니다."

2013년 2월25일, '100% 대한민국'을 표방하며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사 중 일부다.

그로부터 정확히 3년이 지난 2016년 2월26일 박근혜 대통령은 제주해군기지(민군복합형 관광미항) 준공식 때 "오늘 준공식이 그 동안의 갈등을 극복하고 지역사회와 상생하고 화합하는 뜻 깊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축전을 보냈다.

과연 박 대통령이 바라는 대로 해군기지 준공은 그 동안의 갈등을 극복하고, 지역사회와 상생하고 화합하는 계기가 됐을까.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월26일 열린 제주해군기지 준공식에서 "상생과 화합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한 한달 뒤인 3월28일 해군이 강정마을 주민과 평화활동가 등을 상대로 34억여원의 구상금을 청구해 제주사회가 들끓고 있다. ⓒ제주의소리

해군은 4.13총선을 앞둔 지난 3월28일 보란 듯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제주해군기지 공사 지연에 따른 손해에 대해 강정마을회와 주민들, 반대운동에 나섰던 평화활동가와 단체 등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구상권 청구의 소를 제기한 것. 청구 금액은 무려 34억5000만원에 달했다. 청구대상은 5개 단체를 포함해 121명이나 됐다.

강정주민들이 겪는 고통은 이 뿐만이 아니다. 해군은 공사장 입구 농성천막 등을 철거하면서 든 행정대집행 비용 8900여만원을 강정주민들에게 받아내겠다는 입장이다. 강정주민 등이 지금까지 부과 받은 벌금만도 3억원이 넘는다.

게다가 항만 제2공구 공사를 담당한 대림건설도 강정마을 주민 등이 공사를 방해해 공사가 지연됐다며 손실비용(230억)을 청구하는 절차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죽했으면 강정마을회가 벌금을 납부하기 위해 마을회관 매각을 추진했을까.

해군의 '34억 구상금' 청구가 박 대통령이 준공식 축전에서 밝힌 "지역사회와 상생하고 화합하는 계기"는 아닐 것이다. 대통령은 군통수권자다. 겉으로만 보면 해군이 군통수권자의 바람을 완전히 뭉개버린 셈이다.

해군은 국책사업을 방해해 국민세금의 낭비를 초래한 것에 책임을 묻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강정마을 주민들을 포함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나랏님이 하라고 하면 무조건 복종하는 독재국가가 아니다. 주권재민의 원칙에 따라 의사 표현의 자유와 저항권이 보장된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돌이켜보면 제주해군기지 사업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곳곳에서 충돌한 것이었다.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해놓고, 대규모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것부터 쉽게 받아들기 힘든 것이었다.

그래도 해군기지가 필요하다면 주민들의 동의를 밟는 것은 필수다. 하지만 민주적 의사결정은 실종됐고, 1000명이 넘는 마을주민들 중에서 87명만 모인 자리에서 얼렁뚱땅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해버렸다. 나중에 이를 안 주민들이 마을총회를 열어 당시 마을회장을 탄핵하고, 유치 반대를 결정했음에도 해군은 공사를 강행했다.

강정의 비극은 이렇게 시작됐고, 강정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은 이러한 부당함에 맞서 싸운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다친 사람도 있고, 전과자 딱지가 붙은 이들도 있고, 벌금 폭탄을 맞은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흘린 '강정의 눈물'이 헛되지는 않았다. 전 세계의 평화활동가들이 연대 의사를 밝히면서 해군기지 반대투쟁은 이제 생명평화운동으로 승화됐다.

하지만 이번 해군의 '34억 구상금' 청구 소송은 강정주민과 평화활동가들에게 다시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 말았다.

강동균 전 강정마을회장은 "이번 해군의 구상금 청구는 때린 사람이 자기 손이 아프다며 맞은 사람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격이다. 맞은 사람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한 번 더 패대기치는 것"이라고 절규했다.

제주도민사회는 발칵 뒤집어졌다. 시민사회 뿐만 아니라 제주도민의 대표기관인 제주도의회까지 나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분개하고 있다. 도의회는 18일 열린 제339회 임시회 첫날 '해군의 구상금 청구소송 철회 촉구 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도 19일 도의회 도정질문에서 "4.3추념식 때 제주를 찾은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해군의 구상금 청구를 철회해줄 것을 건의했다"고 밝혔다. 해군에 대해서도 유선(전화)을 통해 같은 입장을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로 20대 총선에서 당선된 김종대 국방개혁기획단장은 "해군참모총장 출신 3명이 줄줄이 뇌물과 방산비리 혐의로 기소되어 있다. 해군은 총장 이하 전·현직 장성들이 무더기 구속된 비리의 온상"이라며 해군의 구상금 청구를 넌센스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김 단장은 "만약 해군이 구상금 청구소송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똑같은 법적 논리를 적용해 해군을 상대로 방산비리 책임을 물어 200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하겠다"고 말했다.

사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100% 대한민국'에 대한 희망과 염원은 절박했다.

하지만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지 3년이 지나고 있지만 국민통합 과제 1순위로 꼽혀온 제주해군기지 문제해결은 감감무소식이다. 오히려 이 기간 해군은 공사를 밀어붙였고, 강정의 눈물은 피눈물이 될 정도로 수습 국면이 아닌 악화일로를 걸었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해군기지는 완공됐고, 좋은 싫든 해군은 지역사회의 일원이 됐다. 대통령은 "지난날의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고 화해와 상생의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런 와중에 해군의 '34억 구상금' 청구는 지역사회와의 동행을 거부하겠다는 몽니일 뿐이다.

이제는 도민사회의 '구상금 청구' 철회 요구에 '100% 대한민국'을 표방한 박근혜정부가 응답해야 할 때다. 아니, 군통수권자인 박 대통령이 해군의 오만함에 대해 사과하고, 구상금 청구를 철회하라고 명령을 내려야 한다. 그게 바로 국책사업을 추진한 주체로서의 결자해지 자세다.

프레시안=제주의소리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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