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후예>와 4.13 총선

[장시기의 '영화로 읽는 세상']

I. 거짓과 현실의 절묘한 타이밍

소설과 마찬가지로 영화나 드라마는 거짓의 이야기이고, 우리의 삶은 현실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소설이나 영화, 혹은 드라마와 같은 거짓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현실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런 거짓의 이야기에 열광하고 매료된다. 그 이유는 거짓과 현실이 상호 뒤바뀌는 역설의 아이러니가 오늘날의 삶과 세계의 역사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이응복·백상훈 연출, 김은숙·김원석 극본)에 등장하는 유시진 대위(송중기 분)와 강모연 의사(송혜교 분), 그리고 서대영 상사(진구 분)와 윤명주 중위(김지원 분)는 거짓의 인물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짓의 드라마를 보는 순간, 마치 드라마에 등장하는 송중기나 송혜교, 혹은 진구나 김지원처럼 '유시진 되기'나 '강모연 되기', 혹은 '서대영 되기'나 '윤명주 되기'를 경험한다. 이러한 허구의 감각적 경험은 단순히 드라마를 보는 순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현실 속에서 우리는 유시진이 되어 강모연과 만나는 것을 상상하고, 윤명주가 되어 서대영과 만나는 것을 상상하고, 마침내 나의 연인에게 강모연 되기를 하거나 서대영 되기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삶과 사랑은 우리가 열광하고 매료되었던 소설이나 영화, 혹은 드라마의 반복이다.

거짓과 현실이 상호 뒤바뀌는 역설은 개인과 마찬가지로 사회와 국가의 경우에도 동일하다. <태양의 후예>에 등장하는 유시진 대위를 보호하는 대한민국이나 강모연 의사가 교수가 되는 이야기는 '거짓의 대한민국'과 그 사회이다. <태양의 후예>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대한민국과 그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마치 우리가 유시진 되기나 강모연 되기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꿈을 꾸거나 상상하는 미래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와 국가에 대한 꿈과 상상의 미래도 또한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유시진과 같은 남성, 혹은 어떤 윤명주와 같은 여성을 만나는 사랑의 사건과 마찬가지로,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사회가 등장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지난 4월 13일은 그런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사회의 거짓과 현실이 뒤바뀌는 역설(逆說)이 절묘하게 이뤄진 날이다. 앞으로 4년 동안 대한민국 국회를 책임지는 20대 국회의원을 뽑는 4.13 총선과 지난 14일 16회를 마지막으로 종영된 아름다운 대한민국과 정의로운 대한민국 사회를 꿈꾸는 <태양의 후예>가 절묘한 타이밍을 이룬 것이다. <태양의 후예>가 이야기하는 거짓의 대한민국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대한민국이 '바뀔 수 있다'는, '역설의 가능성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 출연진. 왼쪽부터 송중기(유시진 역), 송혜교(강모연 역), 김지원(윤명주 역), 진구(서대영 역). ⓒ프레시안

II. 유시진과 서대영의 남성적 아름다움과 박근혜의 식민지적 열등감

<태양의 후예> 방영 일정과 4.13 총선 과정이 겹치는 절묘한 타이밍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여소야대'의 제20대 국회를 만드는 '사건'을 일으켰다. <태양의 후예>의 주 시청층이었던 20~30대 젊은이들의 아름다운 반란이었다. 4.13 총선에서 내가 던진 한 표가 마치 강모연이 된 내가 유시진을 만나는 것처럼, 혹은 서대영이 된 내가 윤명주를 만나는 것처럼, 드라마를 보면서 꿈궜던 아름다운 대한민국과 정의로운 대한민국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만난 것이다. 과거의 베트남 파병은 차치하고라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미군의 용병으로 참여했던 현실의 대한민국 군인이 미군 특전사 군인들과 당당히 겨루고, 영어만이 아닌 그들의 언어로 대화하면서 우르크 어린이를 돌보는 군인이 존재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꿈꾸는 것, 더더욱 한 명의 국민이 납치되어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군인 본연의 임무"라며 청와대 곽인준 외교안보수석(이한수 분)에게 목소리를 높이는 특전사 사령관 윤중장(강신일 분), "국민을 무사히 살려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외교와 안보의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대통령. 정말로 거짓과 상상의 극치를 이루는 대한민국이다.

드라마와 달리, 현실의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사회는 너무나도 추한 국가이고 불의가 판을 치는 사회다. 수백 명의 단원고 학생과 시민들이 몇 시간 동안 바다에 떠 있었지만 군인과 경찰은 국민을 구조하기는커녕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던 '세월호 사건'은 2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대통령은 묵묵부답이다. 그리고 권력의 입맛대로 만든 '세월호 특별법' 때문에 이후의 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세월호 사건'만이 아니다. 역사를 권력과 지배자의 역사로만 재단하고 그것을 미래의 젊은 세대들에게 주입하겠다며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대통령과 이에 맞서 단식투쟁도 못하는 야당 지도자, 그리고 국민을 가상 범죄자로 만드는 테러방지법 제정에 저항해 192시간 27분 동안 필리버스터를 한 국회의원을 단상에서 끌어내린 한 야당 지도자는 자신이 정한 비례대표 순번 때문에 당 대표를 하느니 마느니 하면서 철없는 투정을 부리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태양의 후예>에 등장하는 거짓 대한민국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대한민국의 격차는 남북관계에서 가장 크게 드러난다. 드라마에서 새로운 한류 스타로 떠오른 유시진 대위 역의 송중기나 서대영 상사 역의 진구가 지닌 남성적 매력과 젊음의 강인함은 그들이 가진 '평화'에 대한 사랑 때문에 더욱 빛난다. 우르크에 파견된 강모연을 비롯한 여성 의료진에게 매일 아침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특수부대원의 행군은 평화에 대한 사랑을 토대로 한 남성적 매력과 젊음의 강인함이 드러나는 아름다움의 극치다. 그들은 마치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과 닮지 않았나. 그래서 유시진 대위와 각각의 조국애를 바탕으로 맺어진 미군 특수부대 델타포스 출신의 아구스(데이비드 맥기니스 분), 남북대화 과정에서 만난 북한군 안정준 상위(지승현 분)와의 우정은 더욱 아름답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그리고 지구촌 세계의 평화가 비록 국적은 달라도 평화에 대한 사랑을 토대로 한 남성적 매력과 젊음의 강인함이 각각의 조국애로 표출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대한민국은 식민지적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 있는 비뚤어진 아집(我執)이다.

대한민국의 식민지적 열등감이 만든 비뚤어진 아집은 박근혜 정부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한민국은 러시아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아 인공위성을 발사했다. 그러나 세 번 모두 실패했다. 반면, 북한은 성공했다. 그렇다면, 북한의 성공을 축하하고 그 인공위성 발사가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대화를 시도해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올바른 일 아닐까?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남북 대화의 끈으로 하나 남은 개성공단마저 폐쇄해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가까스로 성사된 대북방송 중단 약속마저 깬 채 비무장 지대의 대북방송을 재개했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평화를 깨고 오직 전쟁의 공포 속에서 두려움과 적개심만을 키우는 것은 일제 식민지 시절과 미군정 시대에 만들어진 식민지적 열등감이다. <태양의 후예>에 등장하는 유시진 대위나 서대영 상사처럼 평화를 사랑하는 남성적 매력과 젊음의 강인함은 적에 대한 그 어떤 두려움이나 적개심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강인함에는 평화에 대한 사랑과 단 한 명의 국민이라도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 드라마 <태양의 후예> 중 한 장면. ⓒKBS

III. <태양의 후예>와 20대 국회

지난 2월 24일부터 4월 14일까지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총 16회가 방영된 <태양의 후예>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일정인 4.13 총선의 절묘한 타이밍이 '여소야대'의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희망을 만들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드라마를 보면서 21세기의 새로운 남성성과 여성성, 그리고 이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국가와 사회의 형상을 고민했던 필자에게는 4.13 총선이 만든 '여소야대' 결과는 <태양의 후예>를 통해 마침내 이뤄진 문화 한류와 정치가 만난 절묘한 타이밍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개인 간의 아름다운 사랑과 국가나 사회에 대한 소중한 사랑의 꿈을 현실로 만들려는 희망은 각 개인의 죽음이나 국가의 소멸에 다다를 때까지 절대로 끝나지 않는 삶과 문화의 주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이나 영화 그리고 드라마가 만드는 상상의 세계는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며, 그러한 예술적 상상의 세계 속에서 우리는 열광하며 매료되는 것이다. 그 예술적 열광과 매료는 우리의 삶과 사회와 국가를 새롭게 만든다.

<태양의 후예>에 열광하고 유시진과 강모연 그리고 서대영과 윤명주에게 매료됐던 우리는 그것이 절묘한 타이밍으로 이루어진 결과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새롭게 만들어진 '여소야대'의 제20대 국회에게 가슴 벅찬 희망을 가질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국회를 기반으로,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제20대 국회가 '세월호 특별법'을 개정해 21세기의 벌건 대낮에 어떻게 학생과 시민이 몇 시간 동안 바다에 떠있다 무참하게 죽어야만 했는지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또 하루라도 빨리 '테러 방지법'을 개정해 시민의 사생활이 공권력에 침해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폐쇄된 개성공단을 다시 살려 시들어가는 대한민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그리고 식민지적 열등감이 만든 북한에 대한 두려움과 적개심으로 남북전쟁을 부추기는 '북한인권법'을 폐지하고, 평화에 대한 사랑을 토대로 한 대화와 타협의 '한반도 평화유지법'을 제정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는 미국이나 중국, 혹은 러시아나 일본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한과 북한의 상호 대화와 타협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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