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중요하다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세월호를 기억하는 구체적 실행

세월호 사건이 우리 사회에 남긴 상처는 너무나 크다. 세월호 유가족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세월호 사건의 피해자다. 지난 2년 동안 세월호 사건의 진상 조사를 위해 검찰, 국회, 감사원, 해양안전심판원 등 각종 기관들이 조사 결과를 내놓았고 법원에서는 이미 책임자로 지목된 사람들에 대한 판결도 확정하였다. 그러나 세월호를 기억하는 우리는 충분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대목이 많다.

세월호 사건은 배가 수입되고 운항되는 과정, 사고 이후 승객 구조 과정 등 각각의 과정에 관련된 사람들이 각자의 일을 다 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건이다. 모두가 각자의 일을 제대로 했더라면 304명은 구할 수 있었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침몰 원인과 관련한 책임자 처벌 부분인 업무상 과실 선박 매몰죄에 대한 부분을 검토하고 구조 상황과 관련한 책임자 처벌에 아직 제대로 검토되지 못한 자료들을 소개한다. 여러 자료들 중 하나이지만. 다른 세부들과 마찬가지로 책임자 처벌과 관련된 쟁점들을 집약적으로 담고 있는 부분이다. 세월호 사건은 '여전히' 중요하고, 그래서 세월호 사건의 진상 규명은 그 과정에서도 좀더 사려깊게 접근할 것이 요구된다. 그것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일의 구체적 실행이 아닐까. (필자)

(☞원문 보기 : 세월호는 '여전히' 중요하다)

왜 아직도 세월호인가? 세월호가 우리 사회에 남긴 상처가 크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그 날부터 근 반 년 동안 전 국민은 매일 매일 세월호가 기울어 가라앉는 모습을 화면으로 지켜보고, 삼풍백화점 때처럼 혹시나 극적으로 생존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까 마음 졸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마주한 것은 기적이 아니라 비극이었다. 매일 매일 실종자가 희생자로 옮겨지는 숫자의 나열들을 바라보며 발견된 희생자가 마치 그 순간에 사망한 것 같은 기분을 맛보았다. 거의 실시간으로 사람이 죽어서 나오는 광경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세월호 사건의 피해자는 비단 유가족과 생존자들만이 아니다. 언론을 통해 세월호의 사고 소식을 목도하고 전원 구조 기사에 안심했다가 오보인 것을 뒤늦게 알게 된 후 죄책감을 느낀 모든 사람들이 세월호 사건의 피해자다. 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2년 전에는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라 말하며 사건의 상처를 함께 나누고자 했다. 그리고 여전히 마음 한 켠에 노란 색 리본을 담아두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치유 공간 '이웃' 이명수 대표의 말처럼 제대로 된 진상을 알게 되는 것에서 상처의 치유는 출발할 수 있다. 나름으로 합리적인 설명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순간을 맞이하고 나면 그제야 매우 오랜 시간을 들여 조금씩 상처를 달래나갈 수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호 사건은 '아직도'가 아니라 ‘여전히’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마땅하고, 우리 사회는 오랜 시간을 들여 세월호 사건으로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지며 나아가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세월호 사건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세월호 사고 관련 진상 규명 작업을 통한 책임자 처벌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세월호의 전복 및 침몰의 원인을 밝히는 것, 304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키게 된 경위를 파악하는 것. 그래서 사건의 각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다. 전자는 업무상 과실 선박 매몰죄에 대한 것이고 후자는 살인죄, 유기 치사죄, 업무상 과실 치사죄에 관한 것이다.

각각의 기록은 저마다의 목적을 가지고 생산된다. 검찰은 수사를 통해 법률상 죄가 있는 사람을 찾아내기 위해 기록을 만들고 법원은 검찰이 기소한 혐의 사실이 인정되는지를 판단한다. 감사원은 공무원이 징계를 받을 만한 일을 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기록을 만들고 국회도 국정 조사를 통해 기록을 남긴다. 필자는 지난 10개월 동안 세월호의 위 기록들을 검토했고, 그 가운데 아쉬웠던 점 몇 가지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조사 대상들에 대한 충분하고도 철저한 조사 및 수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세월호의 침몰 원인에 대한 고찰

법원은 세월호가 증개축으로 인해 복원성이 나빠져 있었음에도 규정을 지키기 않고 화물 과적을 하여 더 복원성이 나빠져 있는 상태로 출항을 했다는 점, 그러다가 사고 지점에서 급격히 우회전을 했고, 배가 원심력에 의해 크게 좌측으로 기울었으며, 부실하게 고정되어 있던 화물들이 기울어진 쪽으로 쏠렸고 그래서 더 기울게 되었다고 보았다. 기울어진 배에 침수가 시작되면서 배는 점차 더 기울어져 전복에 이르렀고 침몰되었다고 인정했다. 급격한 우회전 구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단계에 대해서는 각 주체들이 처벌을 받았다.

세월호는 급격하게 우회전을 함으로써 기울어지게 되었다. 검찰은 세월호 사고 당시 당직 조타수가 조타 실수를 하는 바람에 세월호가 급격하게 우회전을 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복원성이 좋지 않았던 배가 원심력에 의해서 왼쪽으로 기울어졌다고 보았다. 그러나 당시 조타실에는 당직 항해사와 기관장 밖에 없어서 조타수가 조타기를 어떻게 조작했는지를 본 사람은 없었고 당직 조타수는 조타 실수를 부인했다. 검찰은 당직 조타수를 업무상 과실 선박 매몰죄로 기소했다.

배가 급격하게 우회전을 하게 되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파도나 암초 등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돌아가는 경우, 둘째 선박 방향을 바꾸는 장치인 러더가 조타기 조작과 관계 없이 기기 결함 등의 이유로 돌아갔을 경우, 셋째 조타수가 조타기 조작을 잘못한 경우이다. 검찰은 이 중 세 번째 가능성을 채택했다. 검찰은 우선 세월호가 전복되었을 때 촬영된 영상을 보면 세월호에 이렇다 할 파공의 흔적이 없다는 점, 근처에 부딪힐 만한 암초가 없다는 점 등을 이유로 첫 번째 가능성을 배제했다. 두 번째는 사고 시점보다 앞서서 당직을 섰던 선원들이 배에 이상에 없었다고 진술한 점, 세월호가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변침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추가로 변침하던 중 사고가 났는데 러더는 중립에 놓여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사고 당시 조타기는 고장난 것이 아니고 충분히 조작 가능한 상태였다고 판단했다. 러더가 한쪽 방향으로 고착되는 문제가 발생했다면 계속 한쪽 방향으로 고정되어 있었어야 한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두 가지 가설을 배제하고 나니 당직 조타수의 조타 실수가 가장 유력한 사고 원인으로 정리되었다.

그러나 형사 재판은 합리적 의심이 없는 정도에 이르도록 검사가 피고인의 죄를 증명해야 유죄 판결을 내린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의 가설을 받아들여 조타 실수를 인정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세월호가 아직 인양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기 결함 등 다른 원인이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당직 조타수에게 업무상 과실 선박 매몰의 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항소심과 같은 취지로 검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재판부가 지적한 대로 세월호가 인양되지 않은 상황에서 세월호의 급격한 우회전 원인을 조타 실수로 단정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① 전복된 상태의 세월호에 파공이 없었다는 평가는 사실 세월호의 좌측 단면을 제외한 평가다. 해경이 세월호를 촬영하기 시작한 때에는 이미 세월호의 좌측 단면이 바다에 잠긴 상태였고 전복될 때도 좌측 단면은 촬영하지 못했다. 근 반 년 동안 진행된 생존자 및 희생자 수습 과정을 진행하는 것 못지않게 세월호의 좌측 단면을 촬영하고 이를 검토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진상을 밝혀 책임자를 처벌해야 할 수사 기관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좌측 단면과 관련해 제출된 증거는 없었다. ② 기기 결함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 기관은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당장 세월호를 인양하지는 못하더라도 관련 기기만이라도 확보하거나 촬영을 통해 분석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단적으로 선원들에 대한 재판에서 항소심 재판부는 검사에게 조타기 관련 장치를 수거해보았냐고 묻는 일이 있었는데 검사는 기본적으로 조타기 작동과 관련된 사람들이 조타기에 사고 이전까지 문제가 없었다고 진술해 수거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검찰은 재판이 시작된 2014년 5월부터 대법원에서 판결이 난 2015년 11월까지 약 1년 6개월 동안의 시간이 있었지만 물적 증거를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 했다. 결국 법원은 조타수의 조타 실수 외 다른 가능성을 배제하기에는 검사의 증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로 인해 세월호의 급격한 우회전 원인에 대해서 결국 '모른다'라는 결론이 났다.

세월호 사건은 사고 현장도, 범행이 있었다면 범행 도구도 바다에 가라앉아 있는 사건이다. 심하게 말하면 결정적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사건이다. 선원들과 생존한 승객들의 사고 상황에 대한 진술이 대략적으로 일치하고 여러 전문가들도 침몰 과정을 유사하게 평가하는 것으로 보아 재판 과정에서 어느 정도는 침몰 원인에 대해 일정 정도 원인을 규명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결정적인 부분에서는 '모른다'가 답인 것도 사실이다. 결국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는 침몰 원인을 일반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명하기에는 아직 조사가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뜻이다. 위의 다른 원인들을 배제하기 위해서 혹은 원래의 가설이 타당한지를 검증하기 위해서라도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이 이루어져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세월호 승객들 구조 실패와 관련한 문제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 팀(기록 팀)은 세월호 선원들이 배에서 도주하기 직전인 9시 40분경 제주운항관리실과 교신한 사실을 발견했다. 세월호 1등 항해사는 제주운항관리실에 "경비정이 옆에 와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승객이 450명이라서 경비정 이거 한 척으로는 부족할 것 같고, 추가적으로 구조를 하러 와야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 뒤 교신을 끊었다.

해당 교신은 감사원이나 검찰 조사에서도 한 번도 발견되지 않았다. 교신을 했던 당사자가 관련 내용에 대해 진술하지 않은 탓에 수사 기관에서 원본 음성을 찾아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해당 선원은 그 앞선 시간인 9시 10분, 15분경까지 제주운항관리실과 했던 교신 내용에 대해 진술하고 있는데다가 검찰은 그 음성 파일의 녹취록을 작성해 위 선원에게 어떤 취지로 교신을 한 것인지 추궁하기까지 했다.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제주운항관리실과 세월호 조타실 사이의 교신을 확인할 목적으로 음성 파일 전체를 확인해보기만 했어도 발견할 수 있었던 사실이다.

물론 위 증거만으로 곧바로 선원들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 달라졌으리라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이를 단서로 하여 선원들에게 탈출 직전 조타실의 상황에 대해 더 추궁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교신한 내용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나 선원들이 승객들을 세월호 선내에 내버리고 도주한 그 내심의 의사를 더 자세히 그려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과연 여전히 선장에 대해서만 살인죄가 적용되었을까,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원본 자료에 대한 검토 부족은 비단 선원들에 대한 수사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적인 예로 TRS 녹취록에 대한 부분이 그렇다. 해경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검찰은 해경을 상대로 광범위하게 수사를 벌이다가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해 현장 지휘관이 된 소형 함정의 정장만을 구조 임무 소홀의 이유로 업무상 과실 치사죄로 기소했다. 수사 대상을 좁혀나가는 과정에서 검찰은 해경이 제출한 TRS 녹취록을 그대로 인정하고 이를 전제로 수사를 진행했다.

해경은 이 TRS 교신 녹취록을 감사원과 국회, 검찰, 특조위 등 각 기관의 조사를 받으면서 매번 제출했다. 세월호 특조위는 제1차 청문회에서 위 녹취록들이 형태나 내용이 각기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런데 녹취록들이 서로 형태와 내용이 다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원본 음성과도 일부 다른 부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록 팀이 확인했다. 각 조사 주체들이 원본 음성과 해당 녹취록들을 대조해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청문회를 진행했던 세월호 특조위마저 이를 간과했던 것이다.

TRS 교신은 해경이 사고 당시 실시간으로 어떤 지시나 보고를 했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이 교신을 통해 해경지휘부가 현장에 있는 소형 함정과 헬기에 적절한 지시를 했는지, 과도한 보고 요구로 구조 활동을 방해하지는 않았는지, 지시가 제대로 내려왔는데 정장이 현장에서 임의로 이를 무시한 것인지 등 구조 상황에서 해경의 상부와 현장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여러 기관들이 피조사 대상인 해경이 제출한 녹취록을 그대로 믿고 검증을 제대로 해보지 않았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해경의 구조 상황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인 TRS 교신에 대해서만 소홀히 조사하고 나머지 다른 증거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조사를 한 것으로 받아들여도 되는지 고민스럽다. 현장에 출동한 소형 함정의 정장만이 구조 실패의 책임을 지는 것을 구조 실패 책임자 처벌에 관한 적절한 결론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것인지 여전히 의문이 있다. 이러한 의문들이 바로, 이미 이루어진 조사들에 대해서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이유다.

ⓒ프레시안(최형락)

세월호 사건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2014년 4월 16일 아침 8시 49분, 세월호가 왼쪽으로 기울어졌고 10시 30분, 배가 기울어진 뒤 101분 만에 침몰했다. 사건 발생 하루 만에 검경합동수사본부가 설치되었고, 검찰은 사고 발생 한 달 만인 2014년 5월 15일 승객들을 배 안에 놓아두고 도주한 세월호 선원을 기소했다. 곧이어 노후한 배를 무책임하게 운영하던 청해진해운 임직원, 사고 당일 세월호가 안전 운항을 할 수 있도록 점검해야했던 운항 관리자 등을 기소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사고 현장에 제일 먼저 출동한 해경 소형 함정의 정장도 기소해 형사 절차를 밟았다. 이들에 대한 재판 절차는 2015년 11월 대법원에서 유죄로 확정되었다.

대형해양재난사건이 발생했을 때 설치되는 해양수산부 산하 해양안전심판원의 특별조사부는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뒤 8개월만인 2014년 12월 특별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감사원도 마찬가지로 사건 관련자들 중 공무원을 상대로 감사를 진행해 6개월만인 2014년 10월 감사 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국회는 2014년 5월 '세월호 침몰 사고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국정 조사를 진행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엄청난 진통 끝에 '4.16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및 안전 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세월호 진상 규명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 따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세월호 특조위)가 곧바로 설치되어야 했지만 예산과 구성을 정할 동법 시행령이 표류하게 되면서 구성에 차질을 빚었다. 특조위는 2015년 8월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세월호 특조위와 종종 비교되는 것이 미국의 '미국에 대한 테러 공격에 관한 국가위원회'(9.11 위원회) 인데 여야 국회의원 10명으로 구성된 9.11 위원회는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 콜린 파월 국무장관 등 전, 현직 고위 공무원을 청문회에 불러냈다. 20개월 동안 10개국에서 1200명을 인터뷰하고 12회에 걸친 청문회를 연 후, 585쪽에 이르는 보고서를 발행했다고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세월호 특조위는 2016년 4월 현재 두 번의 청문회를 개최했고 예산 및 인력 문제로 사실상 다가오는 6월 말까지 활동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본격적으로 운영되었던 기간은 10개월 남짓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으로 세월호의 진상 규명 작업은 충분한가? 앞서 살펴보았듯 책임자를 처벌하는 과정에서도 아쉬운 점이 발견되는데 우리는 이걸로 만족해도 되는가? 우리 사회는 앞으로 세월호로 말미암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인가?

사건을 구성하는 것은 사람들이다. 이 사건을 구성하는 하나 하나의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제대로 그 일을 해내기만 했더라도, '관행' 이니 '책임자가 아니니까'라는 말로 자신이 본래 해야 했던 일을 회피하지만 않았더라도 세월호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가 참여했던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 팀은 각자가 모두 자기가 할 일을 잘 했더라면 304명의 승객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결론을 냈다. 사회가 잘 운영된다는 것은 모두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역량을 다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다. 자신이 본래 해야 하는 일, 적어도 그것만이라도 제대로 해내면 그것으로 족하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세월호 사건에 관한 법정 기록에서도 빈틈이 존재한다. 비록 작은 쟁점이지만 이와 같은 사실로도 세월호 사건을 여전히 이야기하고 더 연구해야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월호 유가족의 마음을 정서적으로 헤아리는 것 못지않게 세월호 사건의 사안 하나 하나를 사려깊게 밝혀내야 한다. 그게 세월호를 기억하는 일이고 우리 사회가 받은 상처를 직시하는 일이다. 또한 치유하기 위해 한걸음 뗄 수 있는 용기를 보태는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세월호 사건은 우리에게 '여전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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