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화, 그 헤어날 수 없는 매력

[프레시안 books] <소문의 시대>

한 부부가 중국의 어딘가로 신혼여행 갔다. 그곳에서 부지불식간에 남편과 아내는 헤어졌다. 남편은 아내를 찾아 계속 헤맸다. 마침내, 남편은 중국 시골의 한 시장에서 아내를 찾는다. 아내는 팔다리가 잘린 채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어 있었다.

세부적인 내용은 다르더라도,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한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내 친구의 친구가 겪은 일이라던데?" "우리 과 선배네 친척 일이라는데 말이야." 듣는 이는 전혀 알지 못하는 제삼자의 엽기적인 피해 사례는 우리 주변을 맴돌기 일쑤다.

이런 도시 괴담은 연령별로, 시대별로 유형을 바꿔 떠돈다. '입 찢어진 여자' 이야기는 어떤가. 길을 가다 만난 마스크를 쓴 여자가 "나 예뻐?"라고 물어본다. 그렇다는 대답을 들은 그녀는 마스크를 벗는다. 그녀의 입은 가로로 죽 찢어져 있다. 그리고 말한다. "너도 나처럼 예쁘게 만들어 줄게!"

택시에 탄 귀신 이야기도 잊을 만하면 나오는 단골 소재다(심지어 TV 프로그램에서도 변형된 형태의 이야기를 여럿 다룬다). 한 택시기사가 자유로(또는 대한민국의 어느 도로)에서 흰 소복 입은 여자를 태운다. 여자는 공동묘지로 태워달라고 한다. 가는 길에 택시기사가 뒤를 돌아보니, 여성은 사라지도 없다.

위 사례들은 모두 거짓이다. 다만 출처는 있다. 가장 처음 든 사례인 '팔다리 잘린 아내' 이야기의 발상지는 프랑스다. 1980년대 프랑스 오를레앙에서 떠돈 '유대인 가게의 탈의실에서 여성이 사라진다'는 괴담이 일본을 거쳐 한국에 상륙한 이야기다. 모티프만 유지한 채, 세부적 내용은 그 나라 현실에 맞춰 변형됐다. 마스크 쓴 여성 이야기와 택시 귀신 이야기 역시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와 부분 각색되었다.

우리는 이 이야기가 거짓임을 안다. 앞서 도시 괴담은 시대뿐만 아니라 연령에 맞게도 변화한다 했다. 당장 우리는 십대 시절을 온갖 다양한 형태의 학교 괴담과 함께 했다. 어른이 된 뒤에는 "OO 초등학교의 이순신 상이 밤 12시가 되면 책을 읽는다"는 식의 괴담을 들어도 피식할 뿐이다.

우리는 소문의 바다에 산다. 직장 내 연애담은 회식 자리를 떠도는 유령이다. 선거철만 되면 온갖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 온 나라를 뒤덮는다. 때로는 소문의 위력을 권력이 이용하기도 한다. 1986년 독재 정부가 온 나라를 상대로 친 사기극 '평화의 댐' 사건을 기억해 보라. "북한이 금강산댐에 모은 물을 고의로 방류하면 9억 톤의 물이 한 번에 밀어닥쳐 서울 전역이 물바다가 된다"는 '공식 발표'로 군부는 국민의 돈을 뜯어냈다. 온 국민이 사재기에 나섰다. 나중에서야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직접 지휘한 평화의 댐 사업 전부가 거짓이었음이 밝혀졌다.

왜 이런 이야기가 계속 번질까. 정보기술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의 유산이라 할 수 있지만, 인터넷의 시대에도 소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괴담은 오히려 인터넷을 타고 더 빠른 속도로 번진다. 지카 바이러스 발발 소식이 인터넷에서 어떤 식으로 비틀어져 유통되었는가를 우리는 안다. 괴담은 인류 문명과 함께 탄생했다. 사라지지 않는다.

지난해 말 출간돼 화제가 된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김영사 펴냄)에서 유발 하라리는 "사람(호모 사피엔스)은 뒷담화와 함께 문명 시대를 열었다"고 강조한다. 뒷담화로 공동체가 태동했고, 이 정형화되지 않은 이야기가 상상력을 자극해 인류가 본격적으로 역사의 시대로 나아가기 시작했다고 강조한다.

<소문의 시대>(마츠다 미사 지음, 이수형 옮김, 추수밭 펴냄)는 이 뒷담화의 의미와 유형을 분석하고 뒷담화가 널리 번져 만들어지는 소문의 사회적 기능을 세밀하게 짚어보는 책이다. 우선 소문(뒷담화, 괴담)이 어떤 식으로 번지는지 생각해 보자. 소문은 친밀한 관계를 통해 번진다. 우리는 낯선 이와 김 과장의 불륜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친한 동료와 함께 그를 험담한다. 소문은 관계의 윤활유다. 내 관계의 자장에 들어온 모든 이가 함께 즐길 이야깃거리가 소문으로 채택되어 유통된다.

여기서 우리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나는 친구와 진실만을 이야기하는데?" 지금은 사라진 TV 프로그램 <가족오락관>의 '고요속의 외침'은 소문이 어떻게 왜곡되어 번지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야기는 전달되며 왜곡된다. 나는 지인 A에게 "김 과장이 야근 후 이 대리와 술을 마시더라"고 이야기했다. 이 이야기가 A를 통해 몇 차례 거치면서 변주되면 "김 과장이 야근한다는 핑계로 이 대리와 불륜관계를 유지한다"는 식으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소문의 시대>는 이처럼 이야기가 전달되면서 정보가 붕괴되는 과정을 온갖 실험 사례로 보여준다. 미국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와 레오 포스트맨이 1947년 발간한 이 분야 고전 <소문의 심리학>은 지하철에 여러 사람이 탄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준 후, 이를 다시 설명하게 유도하는 실험을 실었다. 이 그림의 중간에는 흑인 남성과 백인 남성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백인 남성은 면도칼을 들었다.

그런데, 사람들 대부분은 흑인 남성이 면도칼을 든 것으로 기억했다. 무의식중에 사람들이 가진 편견(흑인은 저급한 인종)이 작동해 정보를 왜곡했다. 이처럼 왜곡된 정보는 전달 과정을 거쳐 본래와 전혀 다른 이야기로 탈바꿈한다. 우리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용하는 가벼운 뒷담화가 우리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완전한 거짓이 되어 온 나라를 뒤덮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책은 <소문의 심리학>에서 소문 유포의 공식을 떼온다.

R~i*a

소문(R)은 문제의 중요성(i)과 증거의 애매함(a)의 곱에 비례한다. 따라서 중요함과 애매함 중 어느 한 쪽이 0이라면 소문은 나지 않는다. 이는 당장 우리의 생활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김 과장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김 과장이 나의 직장 동료이기 때문이다. 즉, 그는 나에게 중요한 인물이다. 김 과장은 이 대리와 분명히 술을 마셨으나, 그가 이 대리와 불륜관계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즉 증거가 애매하다. 따라서 '김 과장과 이 대리가 불륜관계'라는 소문은 유포될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이 공식이 직접 다루지 않지만, 우리는 이미 소문의 조건 하나를 더 알고 있다. 소문은 인관관계가 탄탄히 유지되는 사회에서 번진다. 뒷담화는 우리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활용하는 언어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디어의 발달은 소문의 전파를 더 북돋운다. 전화가 탄생한 후, 이제 나는 전화를 통해 '내 친구 A의 직장 상사인 김 과장의 불륜' 이야기를 멀리 떨어져 사는 내 친구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됐다. 인터넷의 시대에는 이 속도가 훨씬 빠르다. 다시금 역사적 사례가 등장한다. 1973년, 일본 전역에 사재기와 예금 인출 열풍이 일어났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닉슨 정부의 변동환율제 도입과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제1차 오일쇼크가 존재한다. 이 때문에 일본 전역에서 소비재 가격이 빠른 속도로 올랐다.

이 사회분위기에 더해 1973년 고마츠 사쿄의 <일본침몰>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가 널리 읽혔다. 이와 같은 사회 불안 심리가 전화를 타고 일본 전역으로 번져, 순식간에 확실한 근거가 없이 "화장지가 다 떨어졌다"는 소문, "지금 곧바로 예금을 인출해야 한다"는 소문으로 커졌다.

이 이야기에서 소문은 불안심리라는 토양이 존재할 때 더 빨리 번진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소문의 시대>는 1973년의 사재기 열풍에 동참했던 평범한 이들과의 인터뷰를 기록했다. 여기서 이들은 일제히 말한다. 그 소문이 확실히 믿을만하다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서 온통 그 이야기만 하고, 실제 슈퍼마켓에 가면 사람들이 화장지를 사기 위해 줄을 섰다. 나도 이 참에 하나 더 사두는 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문의 시대>(마츠다 미사 지음, 이수형 옮김, 추수밭 펴냄) ⓒ프레시안
저자는 구체적 연구 결과를 들며 소문에 휩싸이는 사람들이 결코 비이성적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만, 그럴싸한 정보로 탈바꿈한 이 매혹적 이야기가 자신에게 결코 나쁘지 않다는 이성적 판단에 따라 행동을 결정할 뿐이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소문은 관계에 의해 번진다. 정확한 증거가 없으면 더 빨리 번지고, 그 이야기가 중요할수록 더 널리 번진다. 사회적으로 불안 심리가 가득할 때 소문은 더 힘을 얻는다.

이제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보자. 소문이 번지기 딱 좋은 조건이 마침 우리 앞에 놓여 있다. 4.13 총선을 앞두고 북한의 정세는 불안하다. 북한이 남침하리라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북한은 핵실험 등으로 '하필 선거를 앞둔' 남한을 도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이야기는 중요하다. 마침 우리의 국내 정세는 한치 앞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하다. 어떤 소문이 돌 수 있을까?

그리고, 이를 뒤집어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북한이 남침할 가능성이 없다'는 단언 역시 명확한 증거가 없는 이야기일 뿐이며, 어떤 식으로든 저 소문의 발생 경로를 타고 우리의 네트워크를 나돌 수 있다. <소문의 시대>는 우리가 '뒷담화 종족'으로서의 정체성을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고, 세상을 넓은 눈으로 관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책을 읽고 나면 우리의 세상이 얼마나 재미있게 유지되는가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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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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