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압록강 건너면, 한반도는 지옥이다

[박홍서의 중미관계 돋보기] 중국은 제2의 항미 원조에 나설까?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중국은 다시 한 번 '항미 원조(抗美援朝)'에 나설 것인가?"

"중국과 북한은 떨어질 수 없는 동고동락의 관계다. 중국은 북한과의 전통적 우호관계를 중시하며, 북한이 발전과 안보를 필요로 한다면 지지와 지원을 다할 것이다."

3월 16일 폐막한 중국의 양회(兩會) 기간 중 열린 기자회견의 한 대목이다. 관영 <환구시보> 기자가 한반도 분쟁 발발 시 중국의 대응 여부를 묻자 외교부장 왕이는 이와 같이 답변했다.

신현실주의 이론가인 케네스 왈츠(Kenneth N. Waltz)는 한반도 분쟁 상황 시에 중국의 대응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중국의 경쟁 상대국이 한반도를 통해 대륙으로 북진해 오면 '어떠한 중국들(any Chinas)'이라도 압록강을 건널 것이다."

이러한 이론적 전망은 역대 한반도 분쟁 상황 시 중국의 실제 대응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표적으로 1592년 임진왜란 명의 개입과 1950년 한국전쟁 중화인민공화국의 개입 과정은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358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전쟁 구호만 '항왜 원조'에서 '항미 원조'로 바뀌었을 뿐이다. 유교적 봉건 국가인 명이건 사회주의 신중국이건 한반도 군사 개입은 결국 현실의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한반도 분쟁 시 중국이 '반드시' 개입한다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 그럴 능력이 없다면 당연히 한반도 군사 개입은 불가능하다. 1627년의 정묘호란과 1636년의 병자호란 때에 명은 조선을 '구원'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이미 대내적으로 왕조가 쇠락하고 또 후금과의 세력 격차도 벌어질 대로 벌어졌기 때문이다.

1895년 청일 전쟁 때는 청이 군사 개입을 하긴 했지만, 외교를 총괄하던 이홍장은 전쟁 직전까지 일본과의 전쟁을 회피하려 했다. 그 역시 이미 청일 간의 세력 격차로 인해 일본을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구 열강을 이용한 외교 중재가 실패로 돌아간 이후에야 '부득불' 일본과의 전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호란 떄나 청일 전쟁 때의 중국에 비해 2016년 중국의 세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한반도 유사시 개입할 현실적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한반도 분쟁 상황이 발발해 한미 연합군이 북한 지역을 '독단적'으로 접수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중국은 북중 동맹 조약에 근거해 압록강을 건널 가능성이 농후하다. 제2의 항미 원조인 것이다.

2014년 5월 일본 <교도통신>은 북한 급변 사태 상황에 관한 중국의 '비상 계획'을 특종 보도했다. 중국은 북-중 접경 지역에 난민 캠프를 설치하고 북측 고위 인사들을 관리하겠다는 것이 비상 계획의 주요 내용이었다. 중국 정부는 이를 강력히 부인했으나, 당시 이러한 보도에 근거해 중국이 북한 급변 사태 자체를 막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사실, 북한 급변 사태 시 엄청난 난민의 월경 및 혼란으로 동북 지역이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중국은 당연히 그에 대한 준비 계획을 마련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위와 같이 미군의 한반도 북부 지역 점령을 용인하는 형태로 진행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북한이라는 지정학적 가치의 수호는 여전히 중국 안보의 '핵심 이익'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으로서도 이러한 시나리오를 모를 리 없기 때문에 중국을 배제한 채로 군사 행동을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국 전쟁 떄 중국의 경고를 무시하다 패퇴한 트라우마가 여전히 남아있고, 현 국제 질서의 안정적 관리를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인 상황에서 한반도 문제로 대중국 관계를 파탄 낼 합리적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북한 급변 사태에 대한 미-중 간의 타협 가능성만이 남는다. 미-중 양국이 상호 간 무력 충돌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 뇌관일 수 있는 북한 문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는 것은 자연스런 수순일 수밖에 없다. 사실, 1885년 청-일 간 천진 조약이나 1945년 미-소가 주도한 신탁 통치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언론에서 간간히 흘러나오는 북한 급변 사태에 대한 미-중 간의 사전 협의는 이러한 맥락과 닿아 있다. 실제로 미국 동아태 차관보였던 커트 캠벨은 2009년 중국 측과 북한 급변 사태에 대해 "모든 측면(every aspects)"을 논의했었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중국은 당연히 그러한 미국과의 논의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자신의 동맹국인 북한의 급변 사태를 북한의 주적인 미국과 협의한다는 것 자체가 중국으로서는 극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북한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한반도 유사시 미국과 중국이 완전한 협조 체제를 가동시킬 수 있겠는가의 것이다. 중국은 "변죽만 울리고 전면적이고 궁극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는 캠벨의 발언에서 드러나듯, 중국은 북한 급변 사태에 대해 미국과의 논의 자체는 필요하다고 보는 듯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결국 현재와 같은 조건 속에서 중국의 최선책은 북한 급변 사태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한반도 안정'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은 한반도 현상 유지에 대한 희망이 담겨있다. 만약 이에 실패해 북한 급변 사태가 현실화된다면 중국은 차선책으로 미국과의 협의를 통해 북한에 대한 '공동통치(condominium)'를 기도할 수도 있다.

중국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는 미군이 중국을 배제하고 독자적으로 북진하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중국은 또 한 번 압록강을 건널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는 미-중 양국뿐만 아니라, 그들의 전쟁터가 될 한반도에게 있어서도 최악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막아야한다. 한반도에서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언제나 통치 권력들의 잘못된 상황 판단에서 비롯되었던 것이지 이 땅에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그 하등의 잘못이 없었다.

당파 논리에 빠져 명-일 간의 쟁투를 읽지 못했던 선조, 집단 사고에 빠져 죽더라도 후금과 싸우겠다는 인조, 청-일 간의 경쟁 구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권력 강화에만 열중하던 고종, 미-소 권력을 등에 업고 '민족 해방'과 '북진 통일'을 외치던 한국 전쟁 때의 남북한 권력.

이들의 무책임한 행태로 수백만 한반도 주민들이 죽임을 당했다. 물론 그 통치 권력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임금이시여, 임금이시여, 우리를 버리고 어디로 가시나이까?"

1637년 1월 30일자 <인조 실록>에 기록된 장면이다.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내려와 환궁하는 길에는 광포한 청군에 의해 끌려가던 수만의 조선 백성들이 이렇게 울부짖었다. 인조와 사대부들은 서로 밀치며 한강변 배에 올라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2016년. 한반도 분쟁을 막는 차단목이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이라는 사실은, 전쟁을 확실히 막아준다는 점에서는 다행이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만 하다. 한반도 통치 권력들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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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서

한국외국어대에서 중국의 대한반도 군사개입에 관한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덕여대 연구교수 및 상하이 사회과학원 방문학자를 역임하고, 현재 강원대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관계 이론, 중국의 대외관계 및 한반도 문제이다. 연구 논문으로 <푸코가 중국적 세계를 바라볼 때: 중국적 세계질서의 통치성>, <북핵 위기시 중국의 대북 동맹 딜레마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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