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욕하지 마라. 넘쳐야 흐른다!"

[독서통] <거품 예찬>

우리는 효율성 추구가 극에 달한 사회에 삽니다. 모든 재원은 적재적소에, 필요한 만큼만 투입해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 깊습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실업률을 걱정하고, 기업은 신규 인력 채용을 꺼리고, 공무원 임용 시험 경쟁률이 수백 대 일을 넘어서겠죠.

그러나 자연은 원래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오히려 자연은 넘쳐흐르기 때문에 움직인다고 합니다. '통섭'의 아이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이 새 책 <거품 예찬>(문학과지성사 펴냄)에서 주장한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통념과는 많이 다른 소리입니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드는 입심과 글심으로 대중을 과학의 세계로 안내해 온 최재천 원장은 새 책에서도 독특한 사유와 착착 감기는 글맛으로 독자에게 새로운 생각의 틀을 제시합니다.

김종배 <시사통> 대표와 강양구 <프레시안> 기자가 진행하는 '독서통'은 삼일절, 최재천 원장을 모시고 생태학자의 눈으로 본 세상 읽기를 경청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터뷰 전문을 정리했습니다.

▲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으로 취임한 생태학자 최재천. ⓒ프레시안(최형락)


개미 농사 보여주는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

김종배 : 매주 화요일 오후를 장식하는 독서통입니다. 오늘 어떤 책 다루는지 소개해주세요.

강양구 : 지난 달에 눈에 확 들어온 책이 한 권 있었어요. 그런데 저자께서 너무 바쁘셔서 일정 때문에 이제야 청취자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게 됐습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거품 예찬>이라는 책입니다.

저자께서 아주 유명하신 분이에요. 우리나라 시민이 가장 잘 아는 과학자, 제가 알기로는 글을 제일 잘 쓰시는 과학자, 또 말씀도 제일 잘하시는 과학자입니다. 바로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십니다.

최재천 : 반갑습니다.

김종배 : 지금 충청남도 서천에 계시죠?

최재천 : 네.

강양구 : (서천의) 국립생태원이라는 기관의 초대 수장을 맡으셨어요. 국립생태원이 어떤 곳입니까?

최재천 : 환경부에서 만든 기관인데요, 우리나라 모든 환경 문제를 제대로 다루려면 생태학이라는 기초 학문이 필요해요. 그런데 갑자기 대한민국 정부가 '대한민국에 생태원이라는 기관이 필요하구나' 해서 이 기관을 만든 것은 아니고요. (웃음)

서천 주민이 데모를 엄청나게 했어요. "강 건너 군산은 새만금 개발해서 뭔가 돈이 도는 것 같은데, 역시 갯벌이 있는 서천은 왜 개발 안 해주느냐. 서천 갯벌도 메워서 공장 지어 달라"는 요구가 있었죠. 그런데 당시 이미 새만금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하나둘 나오는 상황이었어요, 정부가 더는 갯벌을 건드리지 말고, 대신 생태를 보존하면서 경제적 이득을 얻는 새로운 실험을 해보자고 해서 국립생태원을 이곳에 설립했어요.

처음에는 서천 주민이 극렬히 반대했다고 하더라고요. 돈이 안 된다 여겼으니까요. 제가 2년 전에 서천으로 왔는데요, 마을 주민께서 저를 바라보시는 눈초리가…. 이건 그냥 느껴지더라고요. (웃음) '공장 지어서 돈 좀 벌게 해 달랬더니….'

강양구 : 그런 적대적 시선은 생전 처음 받아보셨겠네요? (웃음)

최재천 : 그렇죠. 그런데 요즘은 많이 변했습니다. 요즘 제가 마을을 돌아다니면 제 손을 잡아주세요. 제가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면 뽑힐 기세입니다. (웃음) 저희가 잘하고 있거든요.

강양구 : 오랜만에 뵈었는데, 수척해지셨어요.

최재천 : 제가 대학 교수 생활을 오래 하면서도 보직을 한 번도 안 맡았거든요. 얌체처럼 내 일만 하면서 살았는데, 말년에 평생 안 해보던 조직 행정을 하려니 힘드네요.

김종배 : 생태원 직원이 몇 명이나 됩니까?

최재천 : 500여 명가량 됩니다.

김종배 : 와, 많네요. 생태원 홍보 조금 해주세요. (웃음)

최재천 : 전체 면적은 30만 평(약 99만 제곱미터) 정도 됩니다. 앞으로 10년 정도 더 지나면 야외도 즐길 만하게 변할 텐데요, 지금은 아직 몇 년 안 돼서 '에코리움'이라는 실내 전시관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에코리움에 오시면 세계 일주를 한 기분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세계 5대 기후 생태계를 구현해 놓았습니다. 열대관, 사막관, 지중해관, 온대관, 극지관입니다. 바오밥나무도 심었고요, 사막관에 들어가면 큰 선인장도 있고요. 세계의 서로 다른 기후대를 한 번에 느껴보실 수 있습니다.

강양구 : 다 둘러보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립니까?

최재천 : 15분에 다 보는 분도 계시고요, (웃음) 찬찬히 둘러보시면 서너 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오셔야 합니다. 저희가 굉장한 전시를 지난주부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다큐멘터리에서 가끔 보셨을 테고, <정글의 법칙>에도 나왔어요. 중남미 열대지방에 가면 이파리를 잘라서 입에 물고 집에 돌아와서, 이걸 거름으로 활용해 버섯을 길러 먹는 개미(잎꾼개미, Atta cephalotes)가 있습니다. 지구 최초의 농사꾼이죠. 한 5500만 년 정도 농사를 지어온 동물이에요.

이 농사 과정을 관람객이 눈앞에서 보실 수 있는 전시가 생태원에 마련이 되었습니다. 개미가 이파리를 자르는 모습부터 그걸 끌고 와서 버섯을 재배하는 모습까지 다 보여드립니다. 제가 알기로 이 전시가 아시아권에서는 없었습니다. 일본도 실패했습니다. 유럽이나 미국의 자연사박물관에 가면 이런 전시를 하는데요, 그래 봐야 양팔간격 정도 면적밖에 안 됩니다. 저희의 전시 공간은 10미터 정도 됩니다. 보는 분마다 다 신기해하십니다. 아이들이 정말 좋아합니다.

▲ 민들레는 엄청난 수의 씨앗을 뿌려 종을 이어간다. 자연은 원래 거품으로 유지된다. ⓒflickr.com

거품은 당연한 것

김종배 : 이제 책 얘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죠. 한 마디로 어떤 책이죠?

강양구 : 생태학자의 자연, 문화, 세상 읽기?

최재천 원장님 독자가 꽤 있거든요. 예전에 내셨던 책의 독자라면 생태학자 최재천이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세상사를 어떻게 독해하는지 흥미롭게 확인해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기존에 원장님 책을 읽지 못한 독자라면 다른 책을 읽기 전에 워밍업을 하는 입문서로 좋습니다.

그런데 읽으면서 많이 놀랐어요. 적재적소에 문학 작품을 인용하시고,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인문·사회과학자 뺨치는 사유와 분석을 하시고, 심지어 저널리스트적 감수성마저 드러내십니다.

최재천 : 그런데 생태학이 원래 그런 학문입니다. 영어로 생태학을 '에콜로지(Ecology)'라고 하는데요, '에코(eco)'라는 단어가 경제학(economics)의 '에코'와 같은 단어입니다. '집'이라는 뜻이에요. 경제학, 생태학 모두 집을 연구하는 학문이죠. 여기서 '집'이라는 건 환경이죠.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입니다. 이걸 경제학은 먹고사는 문제로 보지만, 생태학은 더욱 포괄적으로 우리가 사는 모든 세계를 둘러보죠.

아마 일본 사람이 했을 텐데, '에콜로지'를 '생태학'으로 참 잘 번역했다고 생각해요. '생태'가 '사는 모습'이잖아요? 생태학은 사는 모습을 관찰하는 학문이에요. <거품 예찬>에 제가 한 얘기가 모두 생태학입니다. 생태학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 게 없어요. 제가 뭘 깊이 아는 건 없는데요, 세상 여러 일을 조금씩은 다 알게 되죠.

김종배 : 이제 책 내용을 본격적으로 여쭤보죠. 키스의 유래가 이유식을 주는 방법에서 유래했다고 하셨는데, 맞습니까?

최재천 : 저 같은 사람(진화생물학자)이 주로 기대는 게 진화인데요. 우리가 어떤 진화의 역사를 거쳐서 지금처럼 행동하느냐가 저희 관찰의 기초입니다.

요즘 우리가 사랑할 때 애정의 표시로서 키스가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데요, 사실 인류 집단 전체를 둘러보면 키스하는 문화가 절반도 안 됩니다. 그렇다면 이건 인간의 보편적 행동으로 보기 어렵죠.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몇몇 분은, 키스가 (애정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엄마가 소화하기 힘든 음식을 씹어서 아이에게 먹이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해요.

김종배 : 그러고 보니 우리 어릴 때만 해도 그런 모습을 많이 봤는데 말이죠, 요즘은 엄마가 아이에게 뭘 씹어 먹이는 모습을 보지 못하네요.

최재천 : 요즘 대한민국 웬만한 사람의 턱 너비가 예전보다 줄어들었어요. 왜냐하면, 딱딱한 걸 예전만큼 씹지 않으니까요. 저 오징어 구운 걸 먹어본 지가 몇 년이 돼요. 옛날 사람은 그 질긴 걸 질겅질겅 많이들 씹었잖아요? 요즘은 예전보다 부드러운 음식 위주로 먹죠. 예전에는 우리가 지금보다 훨씬 딱딱하고 질긴 음식을 많이 먹었죠.

강양구 : 그런데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 침팬지나 보노보와 같은 유인원(Ape)인데, 이들도 키스하잖아요. 그 역시 어미가 새끼에게 음식을 먹이는 데서 유래한 건가요?

최재천 : (키스가 이유식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을 지지하는) 증거가 유인원에서 먼저 연구돼 나왔어요. 그걸 바탕으로 제가 인간의 키스 유래를 설명한 거죠.

강양구 : 책 제목이 '거품 예찬'이잖아요? 처음 책 제목을 들었을 때 도발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보통 거품은 나쁜 거로 생각하잖아요?

최재천 : 글쎄요, '거품'을 거품 물고 싫어들 하시는데, 자연은 늘 거품투성이에요. 그 많은 씨앗 중 실제로 꽃을 피우는 건 얼마 안 돼요. 그 많은 유충 중에 성충이 되는 건 극히 일부입니다. 그런데 이걸 사람 사회에서는 안 된다고 해요. 그렇게 거품이 없도록 노력하면서 사는 게, 과연 자연스러운 일일까요?

김종배 : 원장님께서는 책에서 경제학의 '효율성'과 대립하는 개념으로 거품을 설명하셨어요.

최재천 : 네. 우리는 툭하면 수요 이상으로 너무 많이 만들었다거나, 시장 논리에 안 맞는다고 이야기하죠. 교육 문제로 넘어오면 한국 사회에는 박사가 조금밖에 안 필요하다는 둥, 대학생이 너무 많다는 둥 이런 이야기도 하고요. 저는 그 필요성을 누가 그렇게 정확히 계산하는지 궁금합니다. (웃음)

우리는 수요와 공급을 어떻게든 맞춰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한 번이라도 성공한 적이 있나요? 절대로 못 합니다. 그렇다면, 그걸 맞추려고 노력할 이유가 있느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누가 선택을 받느냐를 다윈이 관찰했어요. 자연이 만약 효율성 중심으로 진화했다면, '자연 선택' 자체가 필요가 없었겠죠. 그런데 자연이 그렇게 움직이는데, 자연의 부분인 인간이 그런 움직임을 거부하면서 살 수 있을까요? 인간 사회에서도 거품은 자연스러운 것이죠. 그런 거품을 자연스럽다고 받아들이는 게 오히려 문제를 똑바로 바라보는 일이고요.

김종배 : 거품을 사회적 용어로 다시 바꾸면 '과잉'이나 '잉여'가 될 텐데요, 그것은 쓸데없는 것, 가치 없는 것으로 생각하죠.

강양구 : 단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취직하지 못한 젊은 세대, 은퇴한 어르신을 잉여로, 거품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그런 예죠. 거품을 무조건 경계하는 시각에서 보면, 다시 말해서 효율성만 최선에 놓고 보는 시각에서 보면, 이들은 없애야 하는 대상이죠. 거품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건 바로 이들을 어떻게 바라볼지의 문제와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최재천 : 사실 이렇게 반론할 수도 있습니다. 자연에서도 그 많은 씨앗 가운데 일부만 살아남지 않느냐? 나머지는 다 쓸모없는 잉여가 아니냐고 말이죠.

그런데 자연에서는 그 가운데 누가 살아남는다는 게 정해져 있지 않아요. 더구나 지금은 잡초처럼 보이던 것이 주목을 받기도 하고, 지금 잘 나가는 종이 순식간에 몰락하기도 합니다. 환경이 변하면 새로운 동식물이 득세하죠. 이게 자연에서 늘 벌어지는 일이에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잉여'로 판단하는 분들을 쓰레기 취급하는 건 자연의 원리로도 맞지 않는 일이죠.

더구나 그 많은 민들레 씨앗에 '민들레권'을 부여한 적은 없습니다. 그 많은 산호 유충에 '산호권'을 부여한 적도 없죠. 하지만 인간은 우리끼리 '어디서, 어떻게 태어나든 한 사람 한 사람은 인권이라는 불가침의 권리를 갖고 있다'고 합의했잖아요. 그렇다면, 우리는 거품 하나하나까지 어떻게 보살필 수 있을지 고민을 해야 할 책임이 있는 거죠.

강양구 : 그리고 거품이라고 생각했던 분들이 뭔가 해낼 가능성이 있고요.

최재천 : 그렇습니다. 제가 서문에도 썼습니다만, '넘쳐야 흐릅니다!'

김종배 : 흔히 적자생존이라 불리는 논리를 우리가 우승열패의 논리로 받아들이잖아요?

강양구 : 그렇게 생각하는 분이 많습니다. 다윈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 가운데 하나고요.

최재천 : 맞아요. 자연에서 일어나는 선택은 우리 기준으로 강자가 약자에 승리하는 식이 아니에요. 그냥 그때그때 우연에 따를 뿐입니다. (여전히 그런 생각을 반복하는 분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김종배 : 거품의 존재 의미 자체를 인정해야 한다?

최재천 : 그것이야말로 다윈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가장 큰 교훈이에요. 서양의 사상사가 플라톤에서 시작했다고 하는데, 플라톤은 이른바 '예표론'을 제시했죠. '이데아'라는 절대적 원형이 있고, 이데아에 어긋나는 건 다 잘못됐다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도 절대적 원형이 있다고 생각했죠. 예를 들면, 백인 남성이 그렇죠.

그러니 자기들이 보기에 이상한 아프리카 사람은 인간 대접을 안 해주는 식이 됐죠. 그런데 다윈은 어떤 하나가 진리가 아니고, 서로 다른 모든 것이 진리다. 변이 자체가 현실이라는 걸 우리에게 일깨워줬어요. 중심이 있고 변방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윈은 거부했습니다. 존재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고, 내가 남과 다르다는 것 자체가 귀합니다. 제가 말하는 거품 이야기는 다윈의 이야기를 풀어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양심 있는 사회 만들자

강양구 : 저는 정치·사회·문화 현상을 최재천의 시각으로 해석한 책 뒷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어요. '조금만 비겁하게 살자'고 하셨어요. 각자가 조금은 비겁하게 사는 게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주장도 거품 예찬처럼 파격적인데요. (웃음) 제가 이 대목에 눈길을 끈 것은 비겁하게 사는 것이 갈등을 예방하는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 각자가 양심의 소리를 듣고 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프레시안(최형락)
최재천 :
그럴 수도 있겠네요. 남자 대부분이 비겁하잖아요. 아내와의 관계에서 적당히 비겁하게 삽니다. 저부터가 그런데요. (웃음) 그 이야기의 취지는 세상을 지나치게 흑백으로 바라보면 살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어요. 이 얘기를 잘못하면 '눈치만 보고 살아라'는 소리가 될 것 같은데, 그건 절대로 아닙니다.

요즘 '양심'이라는 얘기 못 들어보죠? 10년 전만 해도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하는 얘기를 많이 한 것 같은데, 최근 몇 년 동안 사람들이 양심을 거론하지 않아요. 제가 새로운 책을 또 낼 예정인데, 출판사에서 저에게 "용감하게 산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그간 한 일이 동강 댐 건설 반대, 4대강 사업 반대, 호주제 폐지 같은 건데, 그걸 보고 "용감하다"고 해요.

그런데 전 용감하지 않거든요. 당시도 비겁했어요. 제가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 움직인 적은 없어요. 제가 펭귄 같아서 옆 사람이 먼저 찬물에 들어가는 걸 봐야 저도 들어가는 식이거든요. (웃음) 호주제 얘기는 몰라서 잘못 터뜨린 면도 있고요. (웃음)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용감한 짓을 몇 차례 한 것처럼 보이는 거죠. 저는 제가 비겁한 걸 아는데, 어떻게 이런 일을 했는지 돌이켜보다가 떠오른 단어가 '양심'이었어요. 숨다가, 조금 뒤로 물러서다가도 양심 때문에 나서게 된 거죠. 제가 용맹해서 나선 게 아니에요.

제가 '비겁하자'고 하는 건, 마냥 비겁하게 살자는 게 아니고요, 일견 비겁해 보이더라도, 양심을 갖고 할 일은 하자는 뜻이죠.

강양구 : 보통 용맹하기만 한 사람이 사고 치면 양심 있고 비겁한 사람이 뒤처리하죠. (웃음)

최재천 : 또 세상사가 그렇게 되나요? (웃음)

김종배 : 저는 밑줄 치면서 읽은 부분이 있어요. 이전에 내신 책 <과학자의 서재>(움직이는서재 펴냄)를 복기하신 부분인데,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은 가장 자기답게 사는 사람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고 하셨어요.

한 20년 전 언론계 선배가 제게 해 준 얘기가 있어요. "출세는 세상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고, 성공은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라는 말이에요. 원장님 주장과 맥이 같아요. 책에서 "'자기답게'라는 걸 사람들이 얼마나 알고 살까"라고 하셨어요. 사실 그렇죠.

최재천 : 사람들이 소위 '잘 나가는 분야'를 찾잖아요? 그런데 지금 잘 나가는 분야에 가서 줄 설 때 '10년, 20년 뒤에도 잘 나가겠지' 하고 기대하면 전혀 아니에요. 저는 확신합니다. 제가 어린 친구들에게도 자주 하는 말이에요. "너희가 성인이 되었을 때도 지금 잘 나가는 분야가 잘 나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부모님 말씀을 절대 듣지 말아야 할 이유가 거기 있다"고 말이죠. (웃음)

지금 아이들의 부모님은 그것밖에 못 보니 그리로 가서 줄 서라고들 하시는데, 아이가 거기 가서 줄 서면 안 돼요. "네가 끌리는 곳으로 가라"고 하죠. 가서 운 좋게 그 분야가 뜨면 성공하는 거고, 운 나빠서 안 뜨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죠.

물론 세상이 원하는 대로 살면서 성공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렇게 살아본들, 과연 인생의 마지막이 왔을 때 어떤 느낌일까요? 제 얘기를 하자면, 제가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알려진 게 사실 신기해요. 제 분야가 중요한 분야도 아니고요, 제 연구 분야가 망한다고 대한민국이 망할 일도 절대 없어요. 아무것도 아닌 분야를 하는 사람이라서 전 연구비도 별로 못 받아요.

저는 연구비에 신경 안 쓰고 고집스럽게 살았어요. 초지일관 제가 하고 싶은 연구만 했어요. 다행스럽게 제 연구가 돈 없어도 웬만큼 할 수 있는 연구이기도 했고요. (웃음) 적어도 저는 학자로서 삶에서는 돈을 따라가진 않았어요.

그런데 큰 연구실을 운영하면서 연구비를 많이 받는 교수에게 막상 '당신 연구를 설명해 보라' 하면 3~4분에 끝내는 분도 계세요. 그런데 저는 밤새도록 하거든요. 제 연구는 다 제가 좋아서 했기 때문에 그래요. 저는 그렇게 사는 걸 자기답게 사는 거로 생각해요.

김종배 : 진로를 정할 때 왜 전략적으로 사고해야 하는지 궁금할 때가 있어요. 오감이 이끄는 대로 살 수도 있을 텐데요.

강양구 : 기왕 진로 얘기가 나왔으니 하나만 덧붙이죠. 저는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가 <거품 예찬>을 아이와 함께 읽고 토론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과학자를 꿈꾸는 친구가 관심을 가질 만한 대목이 여럿 있거든요. 그런데 생태학을 공부하려는 친구에게 딱 두 가지, 영어와 통계 공부를 권한다고요?

최재천 : 제 연구실에 들어오고자 하는 친구들이 1년에 30명 정도 됩니다. 매우 많은 숫자죠. 이들을 다 받을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걸러내요. 이때 가장 먼저 보는 게 이 친구가 촌놈인가 아닌가죠. 자연 다큐멘터리 보고 꽂혀서 찾아온 친구들은 견디지 못하더라고요. 시골에서 어려서부터 쇠똥구리 같은 걸 만지고 살았던 친구들은 잘 버티죠. (웃음)

그다음 제가 보는 게 영어 실력이에요. 왜냐하면, 과학의 언어는 영어잖아요. 과학을 공부하면서 국내에서만 연구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세계의 여러 과학자와 협력하고 경쟁해야 하는데 영어가 부족하면 힘들어요.

영어 다음으로 강조하는 게 통계예요. 생물학은 물리학이나 화학과 달리 '1+1=2'인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2 이상이죠. 또 그 결과도 매번 다를 때가 많고요. 그러니 결국 생물학은 통계의 과학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과학자, 특히 생물학자가 되려면 통계를 열심히 공부해라, 하고 권하죠.

김종배 : 시중에 논술 시험을 대비하는 책이 많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논리학책이에요. 그런데 저는 제 아이에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 이 책을 권하고 싶어요. 원장께서 단편적 현상에서 하나의 주제를 뽑아서 생각을 펼쳐나가는 식으로 글 하나하나를 쓰셨거든요. '아, 이걸 이런 관점으로도 볼 수 있구나' 하고 무릎을 친 글들이 많습니다.

강양구 : '거품 예찬'도 좋은 제목이지만, 제가 편집자라면 '최재천처럼 생각하기' 같은 제목도 붙여 봤을 것 같습니다. (웃음)

DMZ 보전, 지금부터 준비해야

김종배 : 그런데 개미 생태학이 원래 전공이셨잖아요. 지겹지 않으세요? 개미를 계속 쳐다봐야 하잖아요. (웃음)

최재천 :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개미는 보면 볼수록 신기합니다. 우리는 혼자서 하루에 다 할 일을, 개미는 모두가 함께 하루에 해치웁니다. 병렬적으로 일하죠. 동물을 실제로 관심 두고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심심할 틈이 없어요.

강양구 : 사람 관찰보다 더 재미있습니까?

최재천 : 저는 동물 관찰하는 게 더 재미있는데, 보통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제 연구실이 있어요. 동물원에 이런저런 도움을 주고 나서 연구실을 하나 받았습니다. (웃음) 그런데 저희가 오랑우탄을 데리고 인지 실험을 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열에 아홉은 오랑우탄을 안 보고 연구진을 봐요. 동물원에 오신 분들이 말이죠. (웃음)

인간은 인간이라는 동물에 가장 관심이 많은 거죠. 저는 동물 행동학자이다 보니 인간보다 (개미 같은) 다른 동물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동물의 모습에서 인간을 보는 거죠. 그냥 동물을 연구하라면 지쳤을 것 같은데, 동물에게서 자꾸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돼요. 이 점이 저를 끊임없이 흥분하게 만들죠.

강양구 : 그렇게 동물에서 발견하신 인간 모습에 대한 단상을 정리한 책이 바로 <거품 예찬>이죠.

책에 워낙 여러 주제를 얘기하시고 계셔서 할 얘기가 너무 많은데, 생태학자로서 중요한 제안을 하셨으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네요. 바로 비무장지대(DMZ)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전 남북 관계가 좋을 때 자주 나온 얘기가 비무장지대 개발이잖아요? 굉장히 걱정을 많이 하셨습니다.

▲ <거품 예찬>(최재천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최재천 :
통일할 때까지 비무장지대에 관한 합의가 되지 않으면, 그곳의 생태계는 망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 땅을 가만 놔둘 리가 없잖아요. 실제 사유지도 많고요. 통일했는데 그곳에 길을 만들지 말자는 사람은 없을 거 아니에요. 적어도 철도 둘, 국도 여섯, 지방도 예닐곱 개 등. 그러면 이곳이 다 토막이 나겠죠.

DMZ는 60년 동안 사람이 안 들어가서 온대 기후대에 자연환경이 가장 완벽하게 보전된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그런데 기껏해야 길이 248킬로미터에 폭 4킬로미터의 좁고 길쭉한 띠 모양의 땅에 불과합니다. 치밀한 준비 없이 덜컥 통일하면, 그래서 앞에서 열거한 길들만 연결해도 DMZ는 보존할 가치가 없는 허드레 땅이 되고 말죠.

통일 이후에 DMZ를 어떻게 보전할 것인지를 놓고서 지금부터 고민해야 합니다. DMZ뿐만이 아니에요. 북한에 민둥산이 많습니다. 앞으로 통일되면 북쪽의 생태계를 어떻게 복원할지가 중요한 화두가 될 거예요. 그런데 마치 우리가 옛날에 했듯이 외국에서 리기다소나무(Pitch Pine,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소나무, 원산지는 미국 애팔래치안 산맥으로 1970년대 대규모 조림 사업 때 도입됐다)를 가져다 심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북한 생태계를 복원할 때 DMZ에 서식하는 종을 이용하면 어떨까요? DMZ 생태계가 엄청나게 중요한 종의 원천이 될 수 있거든요. 이곳을 잘 보전했다가, 한반도 전체 생태계 복원에 썼으면 좋겠습니다. 통일에 대비해서 현명한 기획을 했으면 좋겠어요.

김종배 : 남북을 연결하는 도로를 놓으면 DMZ의 생태 통로가 사라지니 결국 생태계가 파괴되겠죠.

최재천 : 김대중 정부 때 이미 남북 철도를 이으면서 양쪽을 막았잖아요? 당시에 제가 통탄하면서 "그곳의 동물은 완전히 갇혔다. 이제 너희는 독 안에 든 쥐"라는 식으로 글을 썼죠. (웃음) 좋은 의미에서 한 일이지만, 그럴 때 생각을 조금 더 깊이 해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DMZ를 복원할 때, 모든 도로나 철도를 지하나 고가로 한다는 식으로 대안을 찾을 수 있죠.

김종배 : 오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께서 쓰신 <거품 예찬>을 두고 알찬 이야기 나눴습니다. 원장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에 새 책을 가지고 대화를 나눌 일이 있다면 꼭 국립생태원에 직접 가서 녹음해야겠어요.

강양구 : 좋은 생각입니다.

최재천 : 꼭 초대하겠습니다. 오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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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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