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서 '워킹맘'이 사는 방법

[쿠바, 지구의 국경을 산책하다 ④]

이 이야기는, 두 명 이상의 쿠바인 인터뷰를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친구가 생겼다. 이름은 마를리네, 직업은 의사다. 70세 엄마, 그리고 8살 딸과 함께 산다. 그녀의 오빠는 현재 마이애미에 있다. 쿠바에서 여성으로 살아가기란, 한국과 마찬가지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여성 셋이 모인 집에는 아마도 세 배로 어려운 삶이 얹혀 있으리라.

마를리네를 처음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아바나에 머물면서 가장 즐겨 찾았던 곳인 베야 아르떼스 뮤지엄, 즉 국립 미술관에서 토마스 산체스(Tomás Sánchez) 특별전을 감상하던 때다. 미술관 직원은 너를 흘끔흘끔 쳐다보더니, 네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스페인어로 말을 걸기 시작했다. 요컨대, 당신은 한국인이고, 내 조카는 한국 드라마와 K팝을 매우 좋아한다. 내일이 조카의 생일인데, 여기 있는 빈 종이에 한글로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을 적어주면 나는 조카에게 최고의 이모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더듬더듬 스페인어로 소통하고 있는데, 한 여성이 다가왔다. 내가 통역해 줄 수 있어요. 마를리네의 영어는 유창했다. 미국식 억양이었고, 미국식 관용구를 자연스럽게 사용했다.

빈 종이에 정성들여 한글을 적어내려갔다. 한글을 적을 줄 아는 사람을 난생 처음 만나봤을 직원은 상형문자와도 같은 한글을 보며 연신 감탄을 뱉어냈다. 역시 문자는 힘이 세다. 너의 글을 읽을 수 있는 쿠바인이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한국을 떠나 온지 오래 되진 않았지만 공기와도 같은 말과 글의 소중함을 깨닫는 데는 며칠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한 세계와 한 세계의 경계라는 것은 그렇게 가깝게 있지만, 너는 그들의 세계로, 그들은 너의 세계로 건너지 못한다. 피부를 맞대고 서로 눈을 마주보고 있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경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세계는 그렇게 떨어져 있다. 그 간극에서 헤매는 것이 여행이다.

ⓒ프레시안(박세열)

너는 이 우연한 기회를 통해 나는 마를리네와 친해질 수 있었다. 마를리네는 자신은 의사고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휴가를 냈다고 했다. 쿠바에서 휴가를 내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일주일의 여름 휴가를 위해 일 년을 쏟아붓는 너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녀는 집에 보드카가 있으니, 혹시 좋아한다면 놀러 오라고 말한다. 그녀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받아 적었다. 낯선 사람의 집에 찾아간다는 것은 사실 어느 정도 두려운 일이다.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 너는 잠시 망설여야 했다. 그녀와 헤어지고 태양볕이 쏟아지는 아바나 비아헤의 한 호텔 노천 카페에서 흐르는 땀을 닦고 맥주를 주문해 목을 축인다. 30분도 채 안 지났는데 거짓말처럼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다. 비가 올 것 같다. 아바나에서 이런 날씨는 흔하다. 카피톨리오의 거대한 돔 위로 결국 번개가 내리 꽂힌다. 맥주의 마지막 모금을 넘긴다. 마를리네에게 전화를 해 볼까?

의사라니, 그리고 마이애미에 친척이 있다니. 너는 스페인에 친적을 둔 주인이 운영하는 괜찮은 민박집에 머물러 본 적이 있었는데, 컬러 티비와 대형 냉장고, 최신형 오디오와 큰 오븐이 갖춰진 곳이었다. 그래서 그녀 역시 나름 갖춰진 집에서 살 것이라고 상상을 했다. 전화를 걸었다. 찾아가겠노라고 말하자 약간 놀란 눈치다. 오겠다면 환영하지만, 주소와 전화번호를 받을 때 네가 즉답을 하지 않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가 내리고 있기 때문에 오늘 내가 그녀의 집에 방문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오히려 비가 왔기 때문에 너는 고민을 덜어낼 수 있었다. 택시를 잡았다. 그리고 택시 기사에게 그녀의 주소를 보여줬다. 주소가 가리키는 곳에 희고 큰 집이 있을 것이라고 한 그녀의 말을 기억해 내고 두리번거렸다. 아바나의 주소 시스템은 심플하고 훌륭하다. 택시 기사는 정확히 그녀의 집을 찾아냈다. 그녀는 너를 반갑게 맞았다.

그녀는 티벳 혈통의 까만 시추 두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그녀의 70살 어머니, 8살 딸 훌리아가 나를 즐겁게 맞아줬다. 믿진 않았지만, 그녀가 말한 그대로 누추한 곳이다. 물은 잘 나오지 않고, 조명은 어두웠다. 베다도에 있는 그녀의 집은 널찍했고, 고풍스러웠으나, 부족한 것이 많아 보였다. 그녀의 오빠가 마이애미에서 보내 준 작은 컬러 티비가 거실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티비를 빼면 백 년 전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집인 것 같았다. 그리고 거실 벽과 탁자 위에는 가족 사진을 담은 액자들이 걸려 있다. (요즘 한국에는 보기 드문 풍경이다. 과거 시골집의 대청마루 같은 곳에는 대개 모자이크로 만든 가족 사진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사진이 귀한 시절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흑백 사진과 증명사진이 난잡하게 섞여 있는 그 모자이크는 그 집의 내력과, 가족의 삶을 품고 있었다. 쿠바 사람들의 집에 가면 십중팔구 거실에 걸린 가족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옛 생각이 난다. 따뜻한 느낌이다.) 넓은 베란다에는 작은 열대 우림이 있었다.

ⓒ프레시안(박세열)

그녀는 서른 두 살이다. 아바나에 줄곧 살았고, 공부를 잘해 의사가 됐다. 영어는 순수 '국내파'라고 했지만, 어디에서 누구에게 배웠는지, 미국식 발음이 유창하다. 그녀의 남편은 아바나에 살지 않는다. 아니, 사실 그녀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많은 쿠바의 젊은 연인들이 그러하듯, 그녀는 동거를 했다. 아바나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1년 반 동안 그녀의 남자친구와 함께 살았다. 그때 태어난 아이가 훌리아다. 남자친구는 아이가 생기자 그녀를 떠나버렸다. 많은 쿠바 남자들이 그렇듯.

전 남자친구는 지금 산타클라라 인근 도시에 산다고 한다. 직업을 가지고는 있는 것 같다. 남자친구는 아마도 아이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카톨릭걸'이라고 소개한 그녀는 아마도 피임을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훌리아는 지금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다.

"믿을 수 있어요? 그 자식은 자기 딸인데도 훌리아에게 어떤 애정도 없다구요. 가끔 연락을 하기는 해요. 제게 전화해서 잘 지내느냐, 필요한 것 없느냐 묻고 돈을 보내려 하죠. 그러면 나는 '필요한 것은 없고 훌리아를 위해 돈을 좀 달라'고 해요. 그런데 그 자식은 훌리아를 위해서는 돈을 쓰고 싶지 않다고 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항상 남자들이 문제다.

"쿠바 남자들은 쿠바 여자들이 조신하고, 가정에 충실하고, 가사일을 잘 하길 바란답니다. 놀라셨다고요? 여성들이 개방적으로 보이죠? 그게 전부에요. 한국이나, 쿠바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에요. 경제 주도권은 언제나 남자들이 가지고 있죠.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도 남자들이 대부분 가져가고, 여성들은 거기에서 항상 소외돼 있어요. 단언컨대 쿠바는 남자들의 나라예요. 그들의 끈끈한 유대는 좋은 일터에 여성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볼까요? 나는 의사에요. 내가 의사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형편이 좀 괜찮겠네'라고 물어보는데, 천만에요. 한달 월급이 15세우세입니다. 일을 열심히 해도 소용이 없죠. 집은 있지만, 전기세 낼 걱정도 해야 하고, 아이를 먹일 걱정도 해야 해요. 보세요. 집도 제대로 돼 있는 게 없어요. 게다가 난 싱글맘이에요. 일이 끝나면 아이를 돌봐야 하죠. 도대체 제 생활은 어디에 있는 거죠? 돈을 벌기 위해 노력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남자들은 경제 영역에 여자를 들이려 하지 않아요. 절대로."

아바나 비아헤에는 많은 '경제 인구'들이 있다. 아마도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공식적인 취업률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일부러 실업자가 돼 지하 경제, (블랙 마켓도 아니고, 화이트 마켓도 아니다. 정부에 의해 묵인되는 지하경제, 이른바 '그레이 마켓'으로 부를 수 있겠다.)에 뛰어든다. 하루 벌이로 의사 봉급의 서너 배를 수익으로 올리고, 의사 봉급의 두세 배를 맥주를 사먹는데 쏟아 붇는다. 지상에는 쿠바의 진짜 경제가 뿌리박고 있고, 공중에는 쿠바의 가짜 경제가 구름처럼 떠 있는데, 놀랍게도 이 구름은 가끔 손으로 직접 만질 수도, 혀로 맛을 볼 수도 있다. 소수의 사람들만 가능한 이야기지만. 지상에서 올려다 보는 구름 경제라….

ⓒ프레시안(박세열)

마를리네는 똑똑한 여성이었다. 이런 현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이 구름 속에 섞여들고 싶다. 대단한 부자가 되지 않아도, 훌리아를 먹이고 입힐 돈은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 낡은 모터 위에서 작은 날개를 회전시키고 있는 저 구질구질한 선풍기 대신, 조금 더 큰 날개를 가진 조금 더 모던한 디자인의 선풍기 하나를 가지고 싶을 뿐이다. 날씨가 덥다. 너도 덥고, 쿠바인들도 덥다.

그녀의 서른 여덟살 오빠는 마이애미에 살고 있다. 많은 쿠바 가정이 그렇듯. 그런 가정들, 즉 친척이 마이애미에 살고 있는 가정들은 대체적으로 생활 수준이 높은 편이다. 그러나 그녀의 집은 보아하니 그렇지 않다. 짐작컨대, 그녀의 오빠는 마이애미에서 돈을 썩 잘 벌지 못하는 것 같다. 그녀도 '마이애미에서 쿠바인이 직업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오빠의 직업은 3D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뭐라고 부르든 IT 관련 디자이너다. 아바나 근교에 있는 정보대학교를 졸업한 엘리트이지만, 디자인을 위한 컴퓨터 언어는 독학으로 배웠다고 한다. 쿠바의 IT 기술은 상당하지만 게임 제작을 위한 기술은 가르치지 않는다. 최근 그녀의 오빠는 모바일 게임 캐릭터 디자인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 기업인 삼성과도 같이 일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오빠가 보내준 게임 캐릭터를 보여줬다. 문어를 닮은 귀여운 외계인이, 작은 어항에서 춤을 추고 있다. 아마도 프리랜서 디자이너인 것 같다. 그래도 집안에는 오빠가 보내준 돈으로 사들였을 작은 티비가 있다. 그녀의 오빠는 여성 3대가 모여 살고 있는 이 집안의 기둥이다. 어쩔 수 없다. 어느 세계나 남성들의 경제 활동은 더욱 잘 보장되기 마련이니까.

그녀의 어머니. 올해 70살이다. 무지막지한 헤비 스모커이며, 지금 당뇨를 앓고 있다. 친절한 분이다. 별로 재미는 없지만, 쿠바식 농담을 몇 개 선보여 줬는데, 너를 이해시키기 위해 딸을 통역으로 삼고 과장된 손짓을 아끼지 않는다. 고마운 일이다. 그리고 너를 위해 그녀의 어머니는 스파게티를 저녁 식사로 내 준다. 치즈 가루를 듬뿍 올려냈다. 이런 식단은 당뇨에 당연히 좋지 않다. 어머니는 스파게티 면을 잘게 썰기 시작했다. 면을 돌돌 말아 먹는 너와 다른 방식이어서 흥미롭게 지켜본다. 스파게티를 먹던 어머니가 별안간 딸에게 신호를 보낸다. 마를리네는 곧바로 주방으로 가더니 인슐린 주사를 꺼내왔다. 그녀는 스파게티를 앞에 둔 어머니에게 능숙한 솜씨로 바늘을 꼽고 주사를 놓았다. 어머니가 말했다.

"나도 알아요. 당뇨에 스파게티와 소금, 담배가 좋지 않다는 것. 다 알죠. 그러나 어쩌겠어요. 평생 이렇게 살았고, 앞으로 살 날이 얼마나 남아있겠나 싶어요. 그냥 즐기는 거죠. 평생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 겁니다. 게다가 우리 딸이 보살펴 주니 얼마나 행복해요."

ⓒ프레시안(박세열)

어머니는 평생 스페인어 교사로 살았다. 즉, 국어 교사다. 소설을 써서 책을 낸 적도 있다고 했다. 1945년 생인 그녀는 14살 때 혁명을 지켜봤다. 혁명 초창기에 그녀는 교사가 됐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녀는 유쾌했고, 친절했다. 그녀의 남편은 농업 전문 엔지니어였다. 아마도 사탕수수 대량 생산 시기에 농법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최근의 농업 엔지니어들은 유기농법을 연구한다고 했다. 그녀는 남편을 사랑했지만, 결국 이혼을 해야 했다. 알콜중독. 그녀의 남편은 절제력이 없었고, 마초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혼을 후회하지 않는다. 마를리네도 엄마 편이다. 아버지에 대한 애정은 없다고 했다.

"여자 셋이 사는 게 어때서요? 오히려 남자들이 없으니 눈치 안 보고 편하답니다."

이야기 도중 혁명이라는 주제가 나오자 모녀는 논쟁을 시작했다. 마를리네는 말했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맑스? 다 거짓말이에요. 아름다운 이야기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이야기들이에요. 새로운 걸 찾아야 해요. 그렇다고 우리는 부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아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 격차가 큰 문제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살기 어렵다는 것도 잘 알죠. 오빠가 미국에 있다고 제가 말했죠? 아마 힘들 거예요. 우리는 그저, 삶을 조금 더 나아지게 하길 바랄 뿐이에요. 일종의 '실용주의'랄까."

젊은 세대의 생각은 이렇다. 혁명은 50년 넘게 진행되고 있고, 그 피로도를 체감하고 있다. 혁명 이후 세대라도 40대, 50대는 비교적 쿠바의 풍요로운 시기를 겪었다. 그러나 마를리네와 같은 30대는 자라면서 풍요를 겪은 적이 없다. 1990년대 '특별한 시기(소련의 붕괴와 미국의 금수조치로 심각한 경제 위기가 찾아왔던 시기)'때 사춘기를, 청소년기를, 대학생활을 보냈던 세대다. 그리고 밀려오는 헐리우드식 문화를 접했던 세대다. 우리로 비교하면 '일본 문화 개방', 그리고 IMF 구제금융 시대를 겪었던 세대와 비슷할 수도 있겠다.

그녀의 어머니도 말을 꺼냈다. 비슷한 생각이지만, 결은 조금 달랐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조금 다르단다. 공산주의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나누는 것을 말하고, 그런 체제는 부작용을 가져오지. 그러나 사회주의는 사람들의 형편에 맞게 나누는 거야. 더 자유롭고 더 민주적인 체제야. 우리는 좋은 사회주의를 추구해야 해. 혁명은 끝났어. 나는 한평생을 혁명 속에서 살아왔는데, 과거에는 혁명이 추구하는 가치에 동의를 했어. 그런데 지금은 혁명이 이제 수명을 다 한 것 같아. 이제는 조금 더 나은 길을 찾아야 해. 그렇지만 사회주의를 버리면 안돼."

마를리네는 너를 보며 말한다.

"오해하지 말길 바래요. 우리는 부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 돈을 벌어 우유와 빵을 사면 그만이지, 더 많은 돈이 왜 필요하겠어요? 많은 관광객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식당에 가고, 술집에 가고 클럽에 가고, 호텔에 가죠. 그들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쿠바인은 돈을 밝힌다'는 거예요. 그런 얘기들이 들릴 때마다 안타깝고 화가 나고 그래요. 그런 사람들은 어딜 가나 있죠. 그런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쿠바 사람들은 가난해, 돈을 더 벌고 싶어해'라고 쿠바를 평가하겠죠. 그러나 진짜 쿠바는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가난하지 않아요. 모두가 평화롭게,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길 원할 뿐이에요. 오해하지 말길 바라요."

그녀의 말은 쿠바 사람들의 지금 심리상태를 정확하게 요약하는 것 같다.

마지막 얘기는 그래도 다소 충격적이었다.

"저는 이 나라를 떠나는 게 꿈이에요. 마이애미로 갈 거에요. 거기에서 오빠랑 엄마랑 소피아랑 같이 살 거에요. 가족이 함께 살던 시절이 그리워요. 어떻게 가냐고요? 뭐, 멕시코로 미션(임무)를 받아 떠나서 국경을 넘게 되겠죠. 다들 그렇게 하고 있어요. 불법이긴 한데, 우리가 그것을 할 수 있을까요?"

ⓒ프레시안(박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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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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