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와의 동거 3개월… 지옥을 보다

[나나이(Nanay), 슬럼을 떠나다 ①] 재난과 죽음의 동거 중인 필리핀 난민

지옥이 있다면 이런 곳일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것은 여기저기 널브러진 시체들이었습니다. 목이 꺾이고 물에 퉁퉁 불은 시체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갔습니다. 시체를 그저 쌓아둘 공간도 모자랐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한 공간 속에 뒤섞였습니다. 발 아래로는 구더기 떼가 득실거렸습니다.

농구장, 대피소, 시체, 그리고 태풍. 에블린이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은 단어들입니다.

▲필리핀 마닐라 도시 빈민 밀집 지역 '사와타'. ⓒ프레시안(손문상)

2009년 9월이었습니다. 태풍 '온도이'는 필리핀 마닐라 전역을 물바다로 만들었습니다. 한 달 치 비가 불과 반나절 만에 쏟아졌습니다.

강가에 있던 에블린의 집은 완전히 물에 잠겼습니다. 세간을 챙길 틈도 없이 지붕 위로 올라가 보니, 동네는 제 모습을 잃은 채였습니다. 바로 코앞에서 이웃 사람이 급류에 휩쓸려가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악을 지르며 손을 뻗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도, 집들도, 가축들도 모두 다 떠내려갔습니다.

그렇게 에블린의 가족은 '기후 난민'이 되었습니다.

▲필리핀에는 야외 농구장이 많다. 이곳은 필리핀 기후 난민들의 임시 대피소로 쓰이기도 한다. ⓒ프레시안(서어리)

재난과의 죽음의 동거

필리핀은 자연 재해가 무척 잦은 나라입니다. 환태평양 조산대에 속한 데다 태풍의 주요 경로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매년 지진, 태풍으로 인한 이재민이 속출합니다. 지난 2013년 필리핀 타클로반을 강타한 태풍 '하이옌'은 6000명 이상의 사망자와 40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을 낳기도 했습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아태 지역 기후변화와 이주에 관한 대처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필리핀은 해수면 상승, 홍수, 토양 퇴화 등으로 대규모 난민 발생 가능성이 매년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필리핀은 재난과 죽음의 동거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고향을 잃은 이재민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대개는 야외 농구장에 임시 대피소를 차리고 적게는 3개월, 길게는 1년을 지냅니다. 시체가 뒹굴고, 땅에 묻히지 못한 관들이 여기저기 흩어진 끔찍한 곳에서. 바로 에블린의 가족처럼 말이죠.

▲사와타 풍경. ⓒ프레시안(손문상)
▲사와타 풍경. ⓒ프레시안(서어리)

강제 이주, 그러나 다시 마닐라로… 버림받는 여성들

필리핀 정부에 매년 늘어나는 기후 난민들은 골칫덩이입니다. 기후 난민들이 머물던 곳들은 점차 슬럼화되고, 그 지역이 점차 넓어져 도시 미관을 해치니까요. 결국 정부가 대책이라고 내놓는 건, 산꼭대기, 황무지 같은 싸디싼 땅에 이들을 몰아넣는 일입니다. 더욱이 지난해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 회의를 앞두고는 대규모 강제 이주를 단행했습니다.

마닐라에서 차로 2시간 거리 정도 떨어진 불라칸주 산호세델몬테시의 '타워빌'. 이곳은 필리핀의 대표적인 강제 이주민 밀집 지역입니다. 정부는 타워빌 1구역에서 5구역까지 차례차례 난민들을 밀어 넣었고, 최근엔 6구역을 조성해 또다시 강제 이주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타워빌 전경. ⓒ프레시안(손문상)

누군가는 말합니다. 정부가 알아서 새로 살 동네를 마련해주면 고마운 것 아니냐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정부가 집을 구해주긴 하지만 무상 임대가 아닙니다. 민간업자로부터 대량으로 주택을 공급받은 정부가 이주민들에게 20년 이상 조건으로 장기 임대를 합니다. 가뜩이나 가진 것도 없는 이주민들은 정착도 하기 전에 '렌트 푸어'가 되는 셈이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정부의 강제 이주 지역은 기본 인프라가 전혀 갖춰지지 않은 곳이 대부분입니다. 타워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엔 물도, 전기도 나오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이런 곳에 일자리가 있을 리 만무합니다. 집이 있으면 뭘 하나요. 이주민들은 흙 파먹고 사는 신세가 될 뿐이었습니다.

결국 남편들은 일자리를 찾아 다시 마닐라로 떠났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일용직 막노동밖에 없지만 그래도 마닐라로 가면 돈은 벌 수 있었습니다. 하루종일 열심히 일하면 300 페소(약 7500원) 정도의 수입이 생깁니다.

문제는 교통비였습니다. 타워빌에서 마닐라까지 매일 왕복 4시간을 오가는 데 드는 교통비만 100페소(약 2500원)입니다. 일당의 3분의 1이 교통비로 나가는 셈입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지요. 마닐라로 떠난 남편들은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대부분 평일에는 마닐라에서 지내다 주말에는 타워빌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뜸해지기 일쑤였습니다. 수많은 여성들과 아이들은 결국 버림받았습니다.

타워빌은 점차 절망의 마을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프레시안(서어리)

타워빌에 들어선 작은 봉제 센터가 만든 꿈

그러던 2011년 어느 날, 동네 곳곳에 벽보가 붙었습니다. '타워빌에 봉제 센터가 생기니, 이곳에서 무료로 기술을 배우라'는 안내였습니다. '캠프'라는 한국 NGO 단체가 운영한다고 했습니다. 황무지 같은 동네에서 뭘 하겠다는 걸까 의심도 많았지만,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40여 명의 여성이 자원했습니다.

한국에서 온 천 쪼가리들을 자르고 다시 이어 붙이는 일은 생각보다 즐거웠습니다. 함께 웃고 떠들 친구도 생겼습니다. 4개월 간의 교육이 끝나고는 근사하게 졸업 기념 패션쇼도 열었습니다. 그리고 인근 교회에서 단체 주문이 들어와 직접 제작한 티셔츠를 납품하기도 했습니다. 봉제 센터에서 배운 기술로 얻은 첫 수입이었습니다.

▲타워빌에 세워진 봉제 센터. ⓒ프레시안(손문상)

이후 4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음울한 기운만이 가득하던 타워빌 곳곳에선 이제 엄마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봉제 센터에서 일을 마친 엄마는 식료품을 한 아름 안은 채 유치원에서 놀던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갑니다.

4년 전 이 동네에 들어선 작은 봉제 센터는 마을 주민들에게 단순한 일터가 아닙니다. 타워빌에 희망의 기운을 불어넣은 마법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제가 해드릴 타워빌의 이야기는, 절망이 아닌, 재봉틀처럼 힘차게 돌아가는 희망의 이야기입니다. (계속)

* 이 기사는 미디어 다음과 공동 게재합니다.

(☞바로 가기 : "나나이(Nanay), 슬럼을 떠나다")

▲퇴근 후 손자를 데리고 가는 타워빌 주거 여성 에블린. ⓒ프레시안(손문상)
▲봉제 센터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회의 모습. ⓒ프레시안(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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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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