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땅콩버터·콜라, 안녕~

[귀농통문] 도시 남녀의 로컬푸드 도전기

1년 동안 로컬푸드만 먹기로 하다

캐나다 밴쿠버에 사는 30대 프리랜서 커플 앨리사와 제임스는 2005년 어느 날 전기도 수도도 없는 외딴 시골의 80년 된 농가에 지인들을 초대했다. 함께 저녁을 먹어야 하는 사람은 여섯 명, 가진 것이라고는 달랑 양배추 한 통뿐이었다. 이들은 개울에서 산천어를 낚고, 숲에서 버섯과 솔잎을 구하고, 방치해두었던 텃밭에서 감자를 캐고, 어린 민들레 잎을 뜯고, 버려진 과수원에서 사과를 땄다. 그리하여 호주산 와인을 빼고는 모두 집 근처에서 즉석에서 구한 재료로 저녁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날 제임스는 생각했다. "여생을 오늘 저녁처럼 먹을 방법은 없을까?"

일주일 뒤 밴쿠버의 아파트로 돌아온 제임스는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보게 된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보통 생산지에서 식탁까지 1500~3000마일(mile)(약 2400~4800킬로미터(km))을 이동해오는데, 1980년부터 이 연구가 처음 발표된 2001년에 이르기까지 그 이동 거리가 25%나 늘었으며, 계속 느는 추세라는 것.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느낀 제임스는 아침을 먹다가 이렇게 말한다. "1년 동안 로컬푸드를 먹어보는 건 어때?"

이렇게 "어느 날의 멋진 식사 한 끼와 먹을거리에 관한 끔찍한 통계" 때문에 이들은 1년 동안 사는 곳을 기준으로 주변 100마일(약 161km) 안에서 나는 음식만을 먹기로 한다. 이름 하여 '100마일 다이어트'. 친구의 식사 초대나 업무상 외국 음식점 방문, 여행을 할 경우 그리고 그전에 샀는데 집에 남아 있는 재료는 쓴다 등 최소한의 '예외 조항'도 따로 만들었다. 마지막 예외 조항 때문에 집에 있던 코코아 가루를 먹다가 첫날부터 다투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들은 1년은 아이스크림 없이 지내야 하고, 샐러드드레싱, 밀가루, 믹스 수프, 올리브 오일, 케첩, 땅콩버터, 콜라 같은 많은 익숙한 것들과 "안녕"을 고하게 된다.

음식을 먹는 행위를 통한 깨달음

"…텔레비전의 플러그를 뽑는다면, 동네 인근에서 생산된 식료품을 구입하기 시작한다면,…그러니까 말하자면 내리막길로 달음박질치는 현대 사회에서 벗어나 용기 있게 뒤로 첫 발자국을 뗀다면, 그 현명한 선택에 대한 보답으로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스코트 새비지가 <플러그를 뽑은 사람들>(김연수 옮김, 나무심는사람 펴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제임스와 앨리사도 "인근 100마일 이내에서 생산된 식료품만을 사"는 선택을 한 결과 많은 경험과 깨달음을 얻게 된다. <100마일 다이어트>(구미화 옮김, 나무의마음 펴냄)는 그 1년 동안의 과정을 두 사람이 한 달씩 돌아가며 기록하고 있다.

100마일 다이어트 첫날 장을 보러 간 식료품점에서 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되고, 농산물 코너에서 겨우 몇 가지 식재료를 "어렵사리 찾아낸다." 일주일에 한 번 유기농 농산물을 집까지 배달해주는 서비스에 가입하고, 명세표에 기록되는 '푸드 마일'을 보며 브리티시컬럼비아와 인근 워싱턴 주에서 생산한 로컬푸드만 주문한다. 머지않아 집 근처 텃밭에 채소를 가꾸고, 주말에는 농민 장터에 나가 농산물을 사고, 나중에는 진짜 농장의 농부와 부두의 어부를 찾아다니게 된다. 텃밭과 농장을 다니다 보니 제철음식에 대한 인식이 생기고 양파나 마늘같이 늘 쓰는 기본적인 양념에도 제철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지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그곳에 오래전부터 살고 있던 사람들과 유럽에서 온 정착민들, 도망쳐온 노예들의 삶이 그 지역의 역사가 되면서 음식문화를 서서히 바꿔온 과정을 이해하게 된다. 북서부 태평양 연안을 상징하던 대표 음식 중 훈제연어 딱 하나만 남았다는 사실도, 최초의 글로벌 푸드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기 시작했는지도.

"우리는 주변 세계와 이해관계를 맺게 되었다. 생산 이력 추적 가능성은 우리로 하여금 갑자기 비까지 신경 쓰게 만들었다. 탐스러운 붉은 딸기와 내가 맛본 최고의 벌꿀이 걸린 일이었다. 생산지와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런 느낌을 알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석유가 경제적'이라는 논리로 먹을거리의 이동거리가 자꾸 길어지는 이면에는 댐 건설 비용이나 저수지와 농지로 탈바꿈한 자연 지역, 생물들의 떼죽음, 사라진 식물들, 집약 농업과 비료공장, 농산물 운송으로 발생하는 온갖 오염에 대해 직접 값을 치르지 않아도 되는 모순이 있음도 보게 된다.

"이런 식으로 당장은 비용이 들지 않는 것 같아도 언젠가 대가를 치러야 할 빚이 계속해서 쌓이고 있다. 우리가 샐러드 한 접시를 먹게 되기까지 그 배경엔 아주 절망적인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우리 스스로 지금 바로 여기에 집중한다면, 음식을 먹는 행위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깨달음의 한 방식이 될 것이다."

▲ <100마일 다이어트>(앨리사 스미스·제임스 매키넌 지음, 구미화 옮김, 나무의마음 펴냄) ⓒ나무의마음

장거리 채식에서 로컬 유제품으로

제임스와 앨리사는 100마일 다이어트 첫날 저녁을 로컬푸드만으로 준비하기 위해 동네 식료품점을 다 뒤졌다. 그 결과 그날 저녁 먹은 음식의 평균 이동거리는 약 43마일로 성공적이었다. 문제는 그 한 끼를 준비하는 데 든 식료품값이 무려 128.87달러였다는 사실. 지나치게 비싼 '100마일 식사'는 지속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들은 뿌리채소와 추위를 잘 견디는 채소 등 얼마 안 되는 겨울 수확물 확보에 주력한다.


자신들이 사는 지역에서 생산한 식용유를 구할 수가 없어 식용유 대신 버터로 버텨야 했다. 밴쿠버에 설탕공장이 있음에도 사탕무와 사탕수수 줄기가 먼 곳에서 오기 때문에 먹을 수 없고, 부근에는 차를 재배하는 곳도 맥주를 만드는 데 필요한 보리를 재배하는 곳도 없었다. 그전까지 거의 날마다 먹던 쌀밥도 더는 먹을 수 없었다.
15년 넘게 콩과 두부, 견과류 같은 식물성 단백질 식품을 먹으며 채식주의자로 잘 지내던 제임스와 앨리스는 100마일 반경에서 콩과 견과류를 구할 수 없어 단백질 공급원을 유제품과 달걀로 바꾸는 중대한 변화도 마다치 않는다. 물론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것으로. 그들의 채식 식단은 "장거리 푸드 시스템에 의존함으로써 환경적으로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고 있었던 것이다."

깨달음은 또 다른 의문으로 이어진다. 자신들이 먹어온 '로컬(local)' 채소는 '로컬이 아닌 먹이'를 먹고 자란 '로컬'' 소의 배설물로 만든 거름으로 재배됐다는 의문이 제기됐다. "채소농장 주인에게 어디서 생산된 비료를 사용하는지까지 물어야 할까?" 그들은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기로 한다.

밀 때문에 겪은 스트레스는 자못 심각했다. "무엇보다 조바심내고 연연했던 건 밀이었다. 나는 밀 역시 어디서나 자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떠올린 석양에 물든 황금 들녘의 모습은 어릴 적 캐나다 대초원에서 보았거나 미국의 평야를 가로질러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할 때 본 기억 속에나 있었다." 파이 하나 샌드위치 하나도 1년을 기다려야 먹을 수 있을 판이었다. 아는 농부를 통해 그 전해에 밀을 시험 삼아 재배했던 사람으로부터 헛간에 남아 있던 밀을 어렵사리 구하기는 하지만, "줄기에서 훑어내기만 했을 뿐 탈곡하지 않은 상태의 밀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지린내가 심한 밀을 집에 가져와 도마 위에 늘어놓고 신용카드를 이용해 왕겨를 벗겨 내고 쥐똥과 밀알을 분리해보기도 하지만, 나중에 그 밀에서 쥐똥에 이어 엄청난 바구미를 발견한 이들은 결국 "눈물을 머금고" 밀알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만다. 이들은 일곱 달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밀 재배자를 찾아낸다.

하나둘 늘어가는 저장식품

100마일 다이어트를 실천하면서 두 사람은 서서히 제철식품 확보와 저장의 달인으로 변모한다. 시골에서 여름휴가를 보낸 뒤에 저온 저장한 사과와 잼을 만들 야생 능금, 자두 몇 상자, 연어 두 병과 생육 저장한 사과 열두 병, 하이부시 크랜베리 세 병 그리고 베리 케이크 두 개와 거대한 가재버섯 말린 것을 가지고 "이곳에 올 때보다 훨씬 더 부자가 되어" 집으로 돌아간다.

가을이 되자 옥수수 농장에서 160자루에 달하는 옥수수를 사서는 새벽까지 끓는 물에 데치고 알갱이들을 떼어 "지나치게 비싼 냉동팩"에 담아 보관한다. 늦가을에는 토마토 농장에 가서 상자에 수북하게 토마토를 담아온 다음 몇 시간 동안 끓는 물에 토마토를 삶고 찬물에 담갔다가 껍질을 벗겨 병조림을 만들어둔다. 옷장으로 쓰던 벽장 선반에는 양파와 다양한 감자가 놓여 있고, 냉장고 위에는 호박이 수북하다.

"지난 몇 달 사이 우리 집 주방은 두고 먹을 저장식품들로 하나둘 채워져 갔다. 이런저런 구색을 갖추고 이만한 양을 갖게 되리라고는 이전엔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할머니들에게서 물려받은 긴 나무숟가락, 쇠젓가락과 함께, 유리병을 만지지 않고도 뚜껑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자석까지 생겼다. …찬장과 천장 사이의 좁은 공간엔 우리의 수고를 기다리는 빈 유리병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상의를 걸어두는 옷장엔 고추 세 종류를 널어 말리고 있었고, 오레가노와 세이지, 딜, 로즈마리도 다발 째 거꾸로 매달아 놓았다. 내가 공동체 텃밭에 있는 나무에서 따다가 엮어 놓은 월계수 잎도 있었다. 모두 키우기가 아주 쉽다는 걸 확인한 뒤로 슈퍼마켓에서 허브를 비싸게 파는 것이 괘씸하게 느껴졌다. 지금껏 비싼 돈을 주고 사먹었기 때문이다."

"병조림으로 만들어 놓은 연어와 토마토, 인디언 자두, 피클, 크랩애플 젤리, 딸기, 수제 케첩은 냄새는커녕 모두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었다.

100마일 다이어트가 가져온 변화

오늘날 글로벌 푸드 시스템 속에서 생명의 근본인 농사는 화석 연료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해 환경을 망치는 행위로 변질되었다. 또 농산물의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지나치게 중요해지면서 농사는 산업이 되었고 먹을거리의 생산(생산지, 생산자)과 소비(소비 장소, 소비자) 사이의 공간적 거리(푸드 마일리지)뿐 아니라 시간적 거리(제철음식)와 사회적 거리(신뢰)도 함께 멀어졌다. 수입 유기 농산물과 국내산 일반 농산물, 먼 거리를 돌아온 채식과 가까운 곳에서 난 육식, 풀을 먹고 자란 수입 고기와 사료를 먹고 자란 국내산 고기 등 어느 쪽이 더 환경적이고 자연스럽고 윤리적인가를 헤아리기가 쉽지 않은 상황도 생기게 된다.

이 책의 주인공 제임스와 앨리사는 먹는 것의 원산지와 그것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방식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이러한 글로벌 푸드 시스템의 한계에 도전하고 일상생활의 작은 변화를 이루어간다. 두 사람의 찬장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먹을거리 중 로컬푸드가 아닌 것은 소금 한 가지였다. 1년에 걸친 100마일 다이어트를 마친 뒤 어느 날 두 사람은 1년 치 소금을 확보할 요량으로 직접 바닷물을 퍼서 끓여 소금을 만드는 방식을 시도해보기도 한다. 100마일 다이어트가 끝난 다음 제임스와 앨리사의 식단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들이 먹는 글로벌 음식과 로컬푸드의 비율은 그전과 비교하면 "정반대가 되었다"고 한다. 도시의 남녀가 1년에 걸쳐 이 작은 변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을 함께 따라가며 우리의 상황과 오버랩시켜 보는 것이 이 책의 소소한 재미이다.

귀농통문은 1996년부터 발행되어 2016년 1월 현재 75호까지 발행된 전국귀농운동본부의 계간지입니다. 귀농과 생태적 삶을 위한 시대적 고민이 담긴 글, 귀농을 준비하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귀농일기, 농사∙적정기술∙집짓기 등 농촌생활을 위해 익혀야 할 기술 등 귀농본부의 가치와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긴 따뜻한 글모음입니다.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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