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말씀처럼 남에게 관대한 세상이 되기를"

[이 주의 조합원] 대학생 조나연 조합원

대학생. 공부에 매진하고, 세상과 충돌하며 성장하는 청춘의 지표, 라고 하면 옛이야기가 된다. 지금 한국의 대학생을 상징하는 용어는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 '엔포세대(포기한 게 너무 많다는 뜻)' 등의 비관적 단어다. 전공 학문의 바다에 빠져 토론과 연구의 재미를 알고, 이성 문제로 씨름하며 성인이 되어가는 사람의 이미지는 없다. 바늘구멍만큼 작은 취업 관문과 싸우고, 학자금 빚과 싸우느라 청춘을 소모하는 게 우리 시대 대학생의 이미지다.

조나연(24) 조합원은 이런 현실과 싸운다. 싸운다, 라기엔 조금 거창하지만, 대학생만이 가질 수 있는 공부의 즐거움을 깨달았으니 현실과 싸운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아 보인다.

올해 3월 4학년이 될 예정인 조 조합원은 회계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다. 그리고 부전공으로 철학을 공부한다. 외환위기 이후 부전공, 복수전공이 늘어나며 학생 대부분은 인문학 혹은 자연과학을 전공하면서 상경계열을 함께 공부하는 게 일반적 모습이었다. 조 조합원은 이런 분위기에 역행하는 셈이다.

"대학에 갈 땐 남들과 다르지 않았어요. 부모님 권유로 회계학과에 입학했죠. 3학년 때 철학 교양 과목을 들었는데, 그 분위기에 압도됐어요. 교수와 학생이 토론하는 수업이었죠. 학생의 모자란 질문에도 다양한 사고방식을 인정해주는 교수님의 강의 분위기를 제 전공 수업에서는 느껴보지 못했어요. 철학에 빠져들더라고요."

'대학다운 대학'의 의미를 철학에서 발견했달까. 철학과로 전과하는 것도 고려했지만, 부모님과의 타협 끝에 부전공에 만족하기로 했단다. 그래도 지금은 철학과의 모든 동료가 그를 철학 전공자로 생각할 정도라니, 빠져도 단단히 빠진 모양이다.

조 조합원은 특히 동양사상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공자의 철학에 관심이 많다. 보통 동양사상이라면 고루한 학문이라거나, 조선식 사대주의나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게 아니란다.

"원래 유학이라는 게 위계질서를 강요하고자 만들어진 건 아니거든요. 상호 간에 지켜야 할 예의의 덕목이 정치적 맥락으로 해석되면서, 위계만 남게 된 것 같아요. 교육을 중시하고, 수양을 강조하는 공자 철학이 전 좋아요."

조 조합원이 특별히 좋아하는 공자의 가르침이 있다. 인(仁)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말이다. 더 자세히는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남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이 그렇게 매혹적이란다.

"우리가 보통 자신에게는 관대하잖아요. 그 마음만큼만 남에게도 관대했으면 좋겠어요."

이러다 전화하는 내내 공자의 가르침만 배울 것 같아, 화제를 돌렸다. 아무래도 대학생이니 청년 실업 문제나 '헬조선'으로 상징되는 우리 시대 청년 문제의 어려움을 같이 얘기해보고 싶었다.

조 조합원은 요즘 들어 또래들의 생각이 바뀌는 게 느껴진단다. 예전에는 자신을 탓하는 이가 주변에 많았는데, 요새는 구조적 문제를 더 깊이 인지하는 지인이 늘고 있다고.

"이제는 스스로 노력한다고 그만큼 얻지 못한다는 걸 모두가 아는 시대가 된 것 같아요. 안타깝고, 뭔가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계속해서 이런 이야기를 모두가 하는 데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면서도 조 조합원은 무턱대고 비관의 정서에 묻히는 건 경계하자고 말했다. 권태와 무기력증만 남는 것 아니냐며. 맞는 말이라고 고개를 끄덕이고, <프레시안>과의 인연을 이야기했다.

3학년 수업시간 때 교수님의 소개로 <프레시안>을 알게 됐단다. 사실 전달에 치중하는 다른 언론과 달리,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현상을 깊이 분석하는 지면 분위기가 좋았단다. 그러다 <프레시안>의 협동조합 전환 취지를 알게 돼 지난해 9월, 조합원에도 가입했다. 그 인연은 지난해 말 열린 '송년의 밤' 행사에까지 이어졌다. 지금은 젊은 조합원들과 함께 단체 카카오톡 방에서 가끔 수다 떨기도 즐긴다.

조 조합원은 거의 매일같이 <프레시안> 대부분 기사를 읽는 애독자다. 조 조합원에게 어떤 기사가 좋았는지, 개선할 점은 없는지 물어봤다.

"역사 문제를 다채롭게 다루는 게 좋아요. 특히 양민학살의 역사를 깊이 있게 전달해주셔서 많은 도움이 돼요. 다만, 지면이 지나치게 정치 편향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환경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데, 이 문제를 더 자주 다뤄줬으면 좋겠어요."

현재 휴학을 즐기면서도, 그 흔한 취업용 ‘스펙쌓기’ 대신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다는 조 조합원. 일본어 공부도 한자를 더 익숙하게 쓰고 싶어서라고 하니, 동양사상-한자-일본어로 이어지는 그의 학문적 관심이 어떤 결실을 볼지 벌써 기대된다.

"아직 졸업 후 계획은 없어요. 당장 취업을 고민하기에는 대학생활이 너무 아까워요. 이런 수업을 즐길 기회가 평생에 다시는 없을 텐데, 이 시간을 취업 공부하느라 허비하긴 싫어요."

이런 대학생활을 생각해본 게 언제던가, 하는 생각에 빠져 인터뷰를 마쳤다. 아무쪼록 더 많은 대학생이 조 조합원처럼 대학생활의 즐거움을 깨닫는 세상에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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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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