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담화문이 나온 지 닷새 뒤인 어제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 자리에서 정부가 협상을 하는 동안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협의를 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반박하면서 "2015년에만도 외교부 차원에서 총 15차례에 걸쳐 피해자와 관련단체와의 면담 또는 접촉 등을 통해 피해자들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담당 국장이 지방 소재 위안부 관련 단체를 직접 방문해 협상과정을 설명하고 피해자 측 의견을 경청했다는 주장도 덧붙였습니다.
청와대 담화문과 외교부 브리핑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각을 세우고 구도를 짜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부 대 야당, 정부 대 위안부 할머니라는 구도 하에서 정부의 정당성과 맞은편 세력의 부당성을 틀 지우려 하는 것인데요. 야당은 딴족 거는 사람들로, 위안부 할머니들은 딴청 피는 사람들로 이미지화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덧칠 작업이 횡렬로 병행되는 건 아닙니다. 야당에 색칠하려는 바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색칠하려는 게 미묘하게 다릅니다. 야당에 대해서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정략성 색칠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사사건건 딴족 거는 야당이 이번에도 정략에 따라 정쟁을 유발함으로써 국론 분열과 국격 추락을 야기하고 있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색칠작업은 다릅니다. '입장'과 '정치적 의도'가 아니라, '팩트'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몰아가고 있습니다. 거짓말 하는 존재로, 그때 다르고 지금 다른 집단으로 덧칠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가 이렇게 덧칠을 하는 이유는 보수단체의 '궐기'를 유발하기 위해서입니다. 보수단체의 궐기를 통해 사안을 선과 악, 읋음과 그름의 틀에서 끌어내 정치적 공방의 전선으로 내동댕이치기 위해서입니다. 정부는 거리의 공방이 만들어낼 정치적 틈새를 최대한 벌리면서 불가역적 조치를 시행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까 너무나 비슷합니다. 2014년 여름의 세월호특별법 정국 때 펼쳤던 정부여당의 전략과 지금 진행되는 기획이 너무나 흡사합니다. 그때 그랬죠? 감히 범접하기 힘든 피해자 유족의 진정성 권위를 천문학적 배상금이니 자녀 특례입학이니 하는 '팩트'를 가장한 마타도어로 훼손한 다음에, 사안의 성격을 정쟁거리로 격하시켜버리고, 정쟁이 벌려놓은 틈새 사이에서 특별법 물타기를 감행했었죠? 지금 진행되는 작업도 그때 그 작업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세월호 특별법에 이어 위안부 문제까지도 꼼수와 계략과 공작의 진창 밑으로 매장하려 하고 있는 겁니다. '위안부'마저 '세월호'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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