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위안부 합의, 헌법 어겼다"

[토론회] 피해자들 요청한 적 없는 '재단 설립'…누구를 위한 합의인가

"이번 (위안부) 합의에서 '피해자'는 대체 누구였나"

5일 국회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일본군 '위안부'연구회 설립 추진 모임 등은 '긴급진단, 2015년 한일 외교장관회담의 문제점'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양현아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외교 장관을 통해 발표된 '위안부' 합의에는 피해 당사자가 빠져있었다면서, 이 합의에서 언급한 피해자는 대체 누구냐고 되물었다.

이 교수는 "(이번 합의에는) 피해자를 협의의 주체로 여기지 않고 기껏해야 배상의 객체 정도로 위치 지우고 있었다"면서 "피해자가 아니라 역사인식을 새롭게 끌어낸 주체로서 자리매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5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진단 2015년 한일외교장관회담의 문제점' 토론회에서 양현아(왼쪽 두번째)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이번 합의는 피해자 권리에 관한 국제인권기준을 따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유엔 인권 피해자 권리장전 (‘반보벤-바시오우니 원칙)과 국제형사재판소(ICC) 규정에 따르면 피해자에 대한 원상회복, 손해배상, 사회복귀 지원, 회복조치, 회복 등 피해 회복을 위한 다양한 개념과 기준을 제시한다"면서 이번 합의는 이러한 조건도 충족시키지 못한 합의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베 총리가 책임을 인정하고자 했다면 본인이 직접 나서서 일본 국회나 한국에서 인정과 사과를 공식화해야 하는데 '대독 사과'를 하면서 더 이상의 사과는 없다고 한다. 대신 피해자들이 요청한 적도 없는 '재단' 내지 '사업'을 위한 10억 엔의 일본 정부 각출을 약속하고 있다"면서 피해자들의 의중과는 상관없는 합의가 이뤄졌다고 꼬집었다.

양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절대다수가 전장에서 이름도 없이 사망했거나 적진에서 귀국하지 못한 채로 고인이 됐다"면서 "일본 정부의 '책임의 통감'이 생존자뿐만 아니라 사자(死者)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면 소녀상은 철거의 대상이 아니라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참회해야 할 존중의 표상이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국 정부, 스스로 헌법 어겼다


정부가 이번 합의를 통해 헌법을 어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2011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따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창록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1년 헌법재판소는 지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명시된 청구권을 둘러싸고 양국 간 '해석상의 분쟁'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한국 정부가 이 해석상의 분쟁을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했고, 정부가 나서지 않아서 피해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번 합의에서도 여전히 청구권을 둘러싼 해석상의 분쟁은 해소되지 않았다. 김 교수는 "일본은 합의 이후에도 여전히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한-일 간에 재산 청구권 문제는 끝났다고 못 박았다.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며 "그런데 한국 정부는 이번 합의에서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에 합의했다.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는 말인데, 이는 해석상의 분쟁 역시 문제 삼지 않겠다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한국 정부가 지난 2011년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따르지 않은 것이고, 위헌 상태에 진입하게 된 셈이다"라며 "정부가 위헌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일본과 재합의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합의가 법적인 구속력이 있는 조약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왔다. 조시현 전 건국대학교 법학과 부교수는 "국제법상 조약이 되려면 국제법에 대한 언급이 있고 권리와 의무를 정해 놓아야 한다. 하지만 이번 협상은 이 조건들을 만족하지 못한다"면서 "정치적 합의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합의가 "정부가 피해자들의 동의 없이 이들의 권리를 처분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면서 "'피해자들이 수용할 수 있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방안'이 아니라 '일본이 수용할 수 있고 일본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방안'"이라고 일갈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은 곧 일본의 과제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일본변호사연합회 인권옹호위원회 부위원장 가와카미 시로우 변호사는 아베 정부가 자신들이 양보했다는 것을 강조하며 위안부 해결의 노력은 이제 한국으로 넘어갔다는 구도를 짜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와카미 변호사는 "일본에서는 이번 위안부 협상을 두고 그동안의 아베 정권 기조와 비교했을 때 한 걸음 나아간 형태를 만든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면서 "이러한 시각에 비춰 일본 정부는 자신들이 한 발 양보했다면서 이제 공은 한국 정부 쪽에 있다는, 해결 노력이 한국 측으로 넘어갔다는 식"으로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실제 일본 내에서는 이러한 구도가 형성되려고 하고 있다"면서 "이는 일본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라며 "일본 여론이 이 구도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가려는 기미가 보이는데, 이때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가와카미 변호사는 "진정한 해결은 일정한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 자리에서 어떤 말을 했으니까 거기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라면서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으로,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한-일 양국 정부의 결론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일본 정부가 피해자 앞에서 사실 인정하고 사죄하고, 그걸 언어화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며 "그런데 일본 정부가 정말 신뢰를 받으려면, 행동으로 그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가와카미 변호사는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것은 배상일 수도 있고 누군가가 위안부 피해 사실을 부정하는 발언을 할 경우 정부 책임 하에 제대로 반론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며 "그런 행동 하나하나를 켜켜이 쌓아 올려 갈 때 그 결과로 피해자가 사죄를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이 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말을 통해 최종적으로, 불가역적으로 해결 됐다고 해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라며 "일본 정부가 그런 행동을 하나 하나 쌓아갔을 때 말로 하지 않아도 피해자들이 그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와카미 변호사는 "위안부 문제 해결은 곧 일본 자신의 문제 해결이다. 일본 사회 안에서 진정으로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가 실현되려면 과거 인권 침해에 대해 확실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인권이 보장되고 지켜지는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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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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