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농민의 죽음 가져온 송전탑, 진상 규명하라

[주간 프레시안 뷰] "밀양 주민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송전탑'이라고 하면 연관 검색어로 뜨는 지역이 있습니다. 바로 경상남도 밀양입니다. 밀양 안에서도 시골인 밀양시 부북면, 산외면, 상동면, 단장면은 지난 10년 동안 송전탑 때문에 몸살을 앓아 왔습니다.

여러 차례 공사 강행과 중단을 반복하다가, 박근혜 정부는 수천 명의 경찰을 동원하여 2013년 10월부터 공사를 밀어붙였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저항은 무참하게 짓눌러졌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69개의 송전탑이 들어서 있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어제(12월 17일)는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 10주년을 맞아서, 밀양 주민들이 그간의 경위를 담은 백서와 사진화보집을 발간하는 기자회견을 서울에서 가졌습니다.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은 한국 주민운동의 역사에서도 특별한 존재입니다. 10년이 넘는 반대운동 속에서, 그리고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한국전력의 회유와 압박 속에서도 200가구 가까운 주민들이 여전히 합의를 거부하고 송전탑 반대운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주로 60대 이상으로 구성된 주민들은 송전탑 반대운동에서 시작해, 핵발전소 반대운동, 그리고 우리 사회의 여러 현안들에 대한 연대활동까지 해 나가고 있습니다. 어제의 기자회견에도 그동안 밀양 주민들이 연대해 온 용산 참사 유가족분들, 해고노동자들, 다른 지역의 송전탑 반대대책위에서 참석을 했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의 가슴 속에는 말 못할 고통과 아픔이 쌓여 있습니다. 10년의 반대운동을 거치는 동안에 2명의 농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연행되고 구속되고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희생을 치렀는데도 송전탑이 들어서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물론 주민들은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을 통해서 여러 제도들이 고쳐지고 핵발전소와 송전탑에 대한 여론이 환기된 것을 성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의 와중에, 정부는 '송.변전설비 주변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일명 송주법)'을 통과시켰고, 이후에는 초고압 송전선 건설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문제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송주법은 기존에 이미 설치되어 있는 송전선 주변지역을 보상에서 제외하고 있고, 보상범위가 비현실적으로 좁은 등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정작 밀양 주민들은 반대했던 법입니다.

정부는 밀양을 계기로 초고압 송전선 건설을 자제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계획한 것은 그대로 건설해야겠다는 식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지역에서 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갈등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또한 핵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를 바닷가에 계속 짓겠다는 것이 정부계획입니다. 이런 식으로 발전소를 지으면 내륙의 소비지까지 연결하기 위해 송전선을 건설하지 않을 방법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정부는 밀양 주민들의 치열한 저항 때문에 여론이 악화되는 것을 모면하려고, 임시방편으로 '앞으로는 초고압 송전선 건설을 하지 않겠다'고 둘러댄 것입니다. 밀양 송전탑 이슈가 한참 뜨거울 때에는 '지역분산형 발전'으로 가겠다고 얘기했지만, 올해 7월에 발표한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핵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를 계속 건설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나온 백서를 보더라도, 정부와 한국전력의 비상식적인 행태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주민들이 분통을 터트리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필요도 없는 핵발전소를 짓겠다는 명분으로 송전선 건설을 강행했다는 것입니다. 발전소가 남아도는 것이 예측되는 상황에서도 핵발전소 건설을 강행했고, 타당성이 의심스럽다는 문제제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송전탑 건설을 강행했다는 것입니다. 당초에는 신고리3, 4호기까지는 기존의 송전선으로 송전이 가능하고 신고리5, 6호기 때문에 송전선이 필요하다고 해 놓고, 중간에 말을 바꿔 신고리3, 4호기 때문에 송전선이 필요하다고 한 것에 대해서도 주민들은 납득하지 못합니다.

밀양을 지나가는 신고리-북경남 76만 5천볼트 송전선이 과연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의문이 많습니다. 당초에 이 송전선이 계획될 당시에는 송전선이 수도권으로 연결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수도권연결계획은 오래 전에 폐기가 되었습니다. 수도권과 가까운 충남에 발전소를 많이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 송전선 건설계획은 폐기되지 않고 강행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조단위에 가까운 전기요금이 낭비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굳이 새로운 송전선을 건설하지 않고 기존의 송전선을 잘 활용하더라도 송전이 가능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이런 지적은 무시되었습니다.

만약 국가적으로 불필요한 사업을 무책임한 관료주의와 관련된 기업들의 이권 때문에 강행한 것이라면, 그것을 그냥 놔 둘 수 있을까요? 국가로부터 물리적, 정신적 폭력을 10년 동안 당한 주민들의 억울함을 그냥 놔둘 수 있을까요? 2분의 농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참담한 일의 원인을 그냥 덮고 넘어갈 수 있을까요?


▲ 지난해 12월 31일 1차 단전 당시 밀양시 상동면 고답마을 115번 철탑 아래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밀양 주민들. ⓒ밀양 765킬로볼트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면에서 보면 밀양 주민들도 우리 이웃입니다. 우리 이웃이 영문도 모르고 폭력의 피해자가 되고, 평생 살아온 삶터가 망가졌습니다. 게다가 마을주민들 사이를 이간질시켜서 마을공동체가 파괴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더라도 진상이 꼭 밝혀저야 하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진상을 규명해야만 문제를 바로잡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밀양 송전탑 문제가 그렇습니다. 핵발전과 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검은 이권 카르텔의 진상을 반드시 규명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돌아가신 분들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만 평생 평화롭게 농사짓고 살던 주민들을 범법자로 몬 것을 바로잡고, 주민들의 명예를 회복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핵발전소 밀집도 세계1위, 초고압 송전선 밀집도 세계최고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나는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어제 기자회견에 참석한 밀양 주민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송전탑을 뽑아내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순수한 믿음이 꼭 현실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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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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