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에 맞선 성동구의 실험

[작은것이 아름답다] 젠트리피케이션·②지속가능 공동체

'배를 갈라 단번에 황금알을 얻으려던 탐욕'이 황금도 암탉도 모두 잃게 만들었다. 이솝이 기원전 6세기에 쓴 우화는 시대를 거듭하며 현실이 되었다. 인간의 과욕이 반복해서 암탉의 배를 가르며 허망한 결과를 만들어왔다. 2015년 대한민국에서도 이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한 현실이다.

지역 스스로 만드는 지속가능한 공동체

도시 재건축·재개발이 힘을 잃고, 원주민을 위한 도시재생이 정부와 서울시 주요 정책으로 시행되면서 자연스레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낯선 외국어가 방송과 신문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현상으로 문화와 예술로 채워졌던 공간은 사라지고, 다양한 지역문화가 획일화되고 있다. 1990년대 신촌 상권 몰락의 원인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지금도 서촌, 성수동, 삼청동, 경리단길에서 사람들이 내쫓기고 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암탉'의 배를 가르고 있다.

성동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물꼬를 트기 위해 '성동구 지역공동체 상호협력과 지속가능발전구역 지정에 관한 조례(이하,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조례)'를 제정했다. 조례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났거나,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지역을 '지속가능발전구역'으로 지정하고 해당 구역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부 계획 수립을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담았다.

▲ 주민협의체는 주민, 건물주, 임차인, 문화예술인, 사회혁신가로 구성하고 '지속가능발전구역' 운용에 필요한 여러 사항을 결정하게 된다. 주민협의체가 결정하면 행정이 이를 집행하는 구조다. ⓒ성동구

조례 시행을 통해 네 개에서 다섯 개 정도 주민협의체를 만들게 된다. 주민협의체는 미국 뉴욕시 '커뮤니티 보드' 체계를 본보기 삼은 것이다. 협의체는 주민, 건물주, 임차인, 문화예술인, 사회혁신가로 구성하고 지역 내 임차인 권리보장 계획과 신규 입점 업체 허용 여부, 상권 영향 분석을 비롯해 '지속가능발전구역' 운용에 필요한 여러 사항을 결정한다. 주민협의체가 결정하면 행정이 이를 집행하는 구조라서 협의체의 구성과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조례 시행 계획에는 소상공인 법률지원단 구성안도 포함되어 있다. '법률지원단'은 건물주 횡포로부터 임차인을 보호하는 조직이다. 이는 서울시와 성동구 자문변호사와 세무사의 지원으로 이뤄진다. 또한 쫓겨난 소상공인이 임시로 영업할 수 있는 대안상가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쫓겨난 소상공인이 고객을 잃지 않고 안정된 상가로 이전하기 전까지 구에서 정해진 기간 동안 공간을 싸게 임대해 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인중개사 집중교육'을 통해 조례 시행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안내하여 투기자본가와 공인중개사로 인한 임대료 상승을 미리 막을 계획이다.

한편, 성동구 조례는 건물주가 상생협약 체결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인책도 준비했다. 지속가능발전계획 안에 상상협약을 체결하는 건물주에게 건축 시 용적률 상향과 세금혜택을 주는 보상도 마련하고 있다. 성동구 조례는 단순히 나쁜 건물주의 횡포를 막아 임차인을 보호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공동체 상호협력과 지속가능발전구역 지정에 관한 조례'라는 조례명이 말해 주듯 지역공동체와 상생을 도모하고, 건물주와 임차인이 지역의 가치를 함께 나누는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들려는 것이다.

무엇보다 건물주와 임차인이 지역의 상승된 가치를 함께 공유하고, 이를 이어가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구청과 건물주, 지역주민, 그리고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사는 길을 찾는 것이다. 서울시도 지난 11월 23일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대책'을 발표했다. 서울시가 앞서서 방지 대책 실행을 약속했으니, 성동구 계획에도 큰 보탬이 될 것이다.

삶의 터전인 땅과 건물은 투기의 대상이 아니다

성동구의 정책 방향에 대해 지역 소상공인들과 '착한' 건물주들은 크게 반기며 빠른 시행을 바라고 있지만, 아직도 혹자들은 토지와 건물을 소유한 주인의 권리를 공공이 막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토지와 건물 소유주들은 땅과 건물의 가치가 상승한 이유를 아직도 간과하고 있다. 도시계획이란 시각으로 볼 때, 대부분 개발이 완료된 서울에서 앞으로 2~3년 사이에 가파르게 땅값 상승이 일어날 여지는 거의 없다. 과거 강남개발과 1990년대 재개발 사업으로 막대한 이익을 남겼던 중산층의 기억은 이젠 현실이 아니다. 사실 당시 중산층이 얻은 이익은 정부가 사회기반시설을 짧은 시간 안에 조성하기 위한 접근과 시혜성 대규모 건설사업 추진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결과다.

▲ 성동구 수제화 공동판매장 모습.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나는 주변 지역에 대안상가를 조성할 계획이다. 소상공인이 안정된 상가로 이전할 때까지 구에서 공간을 임대해 주는 것이다. ⓒ성동구

최근 이른바 '뜨는 동네'의 토지와 건물 가치 상승은 건물주 노력으로 얻은 결과도 아니고, 우연히 얻은 결과는 더더욱 아니다. 이미 슬럼화가 시작된 구도심에 문화예술인과 소상공인이 들어와 그 공간을 기반으로 고유하고 독특한 활동을 활발하게 펼친 탓이다. 이러한 문화 가치를 알아본 사람이 몰리면서 공간의 가치가 다시 올라간 것이다. 이렇게 상승된 가치를 땅 주인과 건물주만 누리는 것은 불공정하다. 상승된 가치를 공정하게 나누고 공유해야 지역이 살아나고 오랜 시간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땅과 건물을 투기 수단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처음부터 막으려면 인식 전환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집과 땅은 사람이 사는 곳이며, 사람이 사는 곳은 투기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는 시민의식이 무엇보다 앞선 가치가 되어야 한다. 토지와 건물을 이익 창출의 '매개물'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안식처'로 인식할 수 있는 문화,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와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 아직 갈 길이 멀고 아픔을 당하고 있는 지역과 공간이 있지만, 최근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들고, 공간 가치를 공유하려는 움직임도 있어 퍽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성동구의 작은 움직임이 든든히 뿌리내리고, 널리 퍼져가기를 기대한다.

월간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 환경 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이야기와 정보를 전합니다. 생태 감성을 깨우는 녹색 생활 문화 운동과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 재생 종이 운동을 일굽니다. 달마다 '작아의 날'을 정해 즐거운 변화를 만드는 환경 운동을 펼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과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바로 가기 : <작은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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