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흑자? 애들은 병원비 없어 죽는데…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어린이 병원비, 국가가 보장하라

해마다 이맘때면 구세군과 같은 불우 이웃 돕기 캠페인을 흔히 볼 수 있다. 꼭 연말이 아니더라도, TV에서, 라디오에서, 휴게소에서, 길거리에서 어린이의 병원비를 모금하는 풍경은 아주 일상적이다. 날씨가 추워지는 지금, 가난한 이웃이 조금이라도 따뜻한 연말을 보낼 수 있도록 작은 성금을 기꺼이 내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그런 따뜻한 마음은 불우한 이웃의 추위를 녹인다.

어린이 병원비, TV 방송에 의지해야 하나?

하지만, 여기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우리 사회의 많은 복지 현안들이 과연 성금과 모금만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왜 복지를 해결하는 데 국가는 보이지 않는가. 왜 소아암, 백혈병, 희귀 난치성 질환 등의 병원비까지도 국가가 해결하지 못하고, 성금에 의지해야 하는가.

사회복지사들이 나섰다. 적어도 어린이의 병원비는 성금과 사적인 후원이 아닌 사회가, 국가가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난한 사람, 아픈 사람, 돌봄이 필요한 사람 등 복지가 필요한 국민을 가장 일선 현장에서 만나는 사회복지사들이 나선 것이다.

보통 병원비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 혹은 무상 의료를 실현하기 위한 단체들이 많이 있다. 20년 이상 건강권 운동을 해온 단체들이 적지 않다. 그간 사회복지사나 사회복지 단체들은 이 운동에서는 비켜 있었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들이 병원비 문제나 건강권 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확대해 가고 있다. 복지 현장에서 가장 고통받는 이웃을 가장 일선에서 만나는 사회복지사들은 그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복지사 관련 단체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서울사회복지사협회,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 지역아동센터 등의 활동가들이 먼저 모임을 갖고 어린이 병원비를 사회적으로 해결하자는 목소리를 냈다. 초기에는 서너 단체들이 참여하였지만, 이후 점차 많은 사회복지 관련 단체들이 속속 함께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리고 어린이 병원비에 대한 국가적 해결을 요구하는 연대 단위를 꾸리기로 하고, 그 문제의식을 공론화하기 위한 토론회를 지난 1일 개최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도 그 취지에 백번 공감하면서 참여하였고, 나는 어린이 병원비 해결에 필요한 재원과 방안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맡고 있다.

어린이 병원비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재원은 그리 결정적인 장벽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의료비는 특히 고령층에서 상당 부분을 지출하기에 어린이 병원비를 해결하는 데는 큰 재원이 소요되지 않기에 그렇다. 오히려 가장 큰 장벽은 사회의 무관심이다.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당장이라도 해결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매년 5000억 원이면 어린이 입원비 무상 의료 가능

그렇다면 전체 소아의 병원비를 해결하는데 얼만의 재원이 필요할까? 2014년 전체 병원비는 67조 원 규모다. 이중 국민건강보험공단이 41조2000억 원을 보장해 주었다. 환자가 직접 부담한 병원비는 법정 본인 부담금이 13조7000억 원, 비급여 본인 부담금은 12조 원으로 총 27조 원에 이른다. 전체 병원비 중 국민건강보험이 대략 62%(2013년 기준) 정도만을 보장해주고 있다.

▲ 2014년 병원비 및 본인부담금 현황(자료 : 통계청). 비급여 본인부담금 규모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조사한 2013년 건강보험 진료비 실태조사 결과의 비급여 항목 비중을 적용하여 필자가 추산하였다.

이를 0~14세 어린이(소아)로만 한정해서 살펴보자. 어린이가 지출한 총 병원비는 6조 원 규모다. 그중 어린이 환자가 직접 부담한 병원비는 2조3838억 원이다. 2조4000억 원을 추가로 투입하면 어린이 병원비는 전액 지원할 수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아이들이 지출하는 의료비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어린이 병원비는 우리나라 전체 국민의 지출한 병원비의 9% 정도만을 차지한다. 대부분의 병원비는 65세 이후의 고령층이 지출하기에 그렇다.

물론 어린이의 모든 병원비를 지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외래 진료나 약값의 본인 부담금은 그대로 놔두고, 주로 큰 병원비가 발생하는 입원 진료비만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0~14세 어린이의 입원 병원비 총액은 1조6000억 원 규모이며, 입원 시 환자가 직접 부담한 병원비는 4863억 원 규모다. 즉, 대략 5000억 원 정도의 추가 지원을 하게 된다면, 적어도 소아의 입원 병원비 전액을 지원할 수 있는 셈이다.

만일 그 대상자를 더 줄여 4대 중증 질환으로 한정할 순 있다. 4대 중증 질환이란 암, 뇌 질환, 심장 질환, 희귀 난치성 질환을 말한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대선에서 4대 중증 질환 100% 국가 보장을 내걸고 당선되었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일부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했을 뿐이었다.

따라서 여전히 그 병원비 부담이 적지 않다. 국민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비급여 병원비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병원비로 인한 고통은 지속된다. 0~14세 소아의 4대 중증 질환 병원비 총액은 2617억 원이다. 그중 환자가 직접 부담한 병원비는 575억 원이다. 이는 경우 575억 원 정도를 추가로 지원한다면, 소아의 4대 중증 질환 진료비 전액을 국가가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2조4000억 원의 재원을 추가로 투입하면 소아의 모든 병원비를 지원할 수 있고, 5000억 원 정도면 소아의 모든 입원 병원비가 해결되며, 575억 원이라면 소아의 모든 4대 중증 질환 병원비를 충당할 수 있다. 큰돈이 들지 않는다. 정부가 의지가 있다면, 우리 사회가 조금만 힘을 모은다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10대 미만 민간 의료 보험 가입률 높아

하지만 우리 사회는 사회적 해결보다는 사적 해결 방식을 찾고 있다. 모금이나 성금 외의 대표적인 사적 해결 방식이 바로 민간 의료 보험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병원비 공포가 커서 너나할 것 없이 민간 의료 보험에 가입한다. 특히 민간 의료 보험 가입률이 가장 높은 연령층이 10대 미만이다.

한국의료패널 자료에 의하면, 2012년 전체 국민의 74%가 민간 의료 보험에 가입하고 있으며, 10세 미만의 가입률은 85%에 이른다. 소아 1인당 보험료도 월 4만8429원이다. 전체 소아로 환산해 보면, 0~14세가 납입하고 있는 민간 의료 보험료는 연간 3조9000억 원 정도다.

적어도 입원 병원비 부담 정도만이라도 국민건강보험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민간 의료 보험에 가입할 필요는 대폭 줄어들 것이다. 5000억 원 정도면 국민건강보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을, 사회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개인에게 전가한 결과 오히려 국민의 부담을 늘리고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들과 나들이를 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건강보험 17조 원 흑자가 있는데도…

사실, 국민건강보험이 여력이 없어 어린이 병원비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지금 현재 국민건강보험의 재원은 역사상 유례없을 정도의 엄청난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2013년까지 누적 흑자가 12조8000억 원이었다. 올해에도 흑자가 발생되고 있어 8월까지 누적 흑자는 총 16조6000억 원에 이른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 흑자 재원을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하는 데에 사용하기 주저한다. 이 재원이면 전체 국민의 보장성을 대폭 확대하고도 남을 재원인데도 말이다.

만일 현재의 흑자 재원을 소아의 병원비를 지원하는 데 사용한다면, 그것의 14%만으로도 소아의 모든 병원비를 해결할 수 있다. 현재 흑자 재원의 3%만을 지원하면 소아의 모든 입원 병원비를 지원할 수 있다. 소아의 4대 중증질환을 100% 보장해주는 데에 현 흑자 재원의 0.35%만 지원하면 된다. 결코 어렵지 않다.

흑자 재원을 활용하지 않고 국민이 좀 더 부담하더라도 가능할 것이다. 국민건강보험 재원은 국민 55%, 사업주 30%, 국고 15% 정도 분담하고 있다고 한다면, 소아의 병원비를 전액 보장하는데 필요한 재원은 국민 1인당 월 3870원 정도다. 입원 병원비로 한정한다면, 국민 1인당 월 790원 정도다. 만일 4대 중증 질환만이라도 보장을 한다면, 국민 1인당 월 93원 정도만 추가 부담하면 된다. 도대체 안 될 이유가 무엇이 있는가.

소아의 병원비 부담을 줄이는 데는 재원이 크게 들어가지도 없을 뿐더러 이미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곳간이 넘칠 정도의 돈을 쌓아놓고 있어 얼마든지 가능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하고, 재원도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우리 사회는 해결 못하고 있다. 오히려 안 하고 있다는 의구심이 든다.

날씨가 많이 추워지고 있다. 가난한 이웃과 온정을 함께 나누자는 활동이 더욱 필요한 때다. 하지만 앞으로는 최소한 소아암이나 백혈병, 희귀난치성 질환 등 어린이 병원비를 모금하는 풍경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으면 좋겠다. 성금 활동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병원비 문제만큼은 성금이 아닌 사회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김종명

어린이 병원비, 우리 사회가 함께 해결하자

모금이나 기부, 혹은 민간 의료 보험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자. 적어도 아픈 아이를 가진 부모의 마음에 병원비 걱정이라는 고통까지 물리진 말자. 그 병원비 걱정은, 그 고통은 우리 사회가 함께 나누어 없애 버리자.

이와 같은 문제 의식으로 '어린이 병원비 국가 보장 추진 연대(준)'라는 모임을 결성 중이다. 지난주 토론회를 계기로 좀 더 많은 단체들이 참여해주길 기대한다. 어린이 병원비라도 먼저 국가가, 우리 사회가 함께 해결하자는 작은 운동에 함께 참여하고 연대해주길 바란다. 우리의 작은 관심과 참여가 모인다면, 적어도 어린이 병원비 국가 보장은 어렵지 않다.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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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시민들이 복지국가 만들기에 직접 나서는, '아래로부터의 복지 주체 형성'을 목표로 2012년에 발족한 시민단체입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사회복지세 도입, 기초연금 강화, 부양의무제 폐지, 지역 복지공동체 형성, 복지국가 촛불 등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칼럼은 열린 시각에서 다양하고 생산적인 복지 논의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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