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5.16 쿠데타'라 쓴 교수, 국정화 찬성 이유는?

[심층취재] '국정 교과서 지지 교수' 102인 전격 해부 ④

국정 교과서 지지 선언 참여 교수 가운데에는 과거 국정 역사 교과서 시절, 검정 체제 전환을 주장하며 급진적 내용의 교과서 집필 기준을 마련했던 학자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6일 국정 교과서 지지 교수 명단 공개 이후 각계에서 지탄의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역사학계에서는 '의아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역사학자들을 혼란에 빠뜨린 이는 이존희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다.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출신으로 서울역사박물관 관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서울시시사편찬위원회 위원장 등을 두루 거친 이 교수는 학계 동료와 후배들로부터 존경받는 명망 있는 학자다.

특히 역사 교과서와 관련해선, 과거 국정 교과서 집필 시안 가운데 가장 민족‧민주적 사관에 가까운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1996년도 '국사 교육내용 전개의 준거안'을 주도한 학자로 알려져 있다.

▲1994년 3월 19일 자 경향신문. 1996년도 역사교육기준 준거안에 대한 당시 기사 제목은 '교과서에 北주체사상 실린다'였다.


당시 준거안은 종전 교과서의 5.16 '군사혁명', 12.12 '사태' 등을 '쿠데타'로 정의하고 4.19 '의거'는 4월 '혁명'으로, 6.25 전쟁은 한국 전쟁으로 바꾸는 등 용어 손질을 했다. 또 북한 주체사상과 수령 유일 체제, 김정일 후계 체제의 성격을 설명하는 등 북한 관련 서술 비중을 대폭 상향 조정해 현대사 서술에서 20~30%를 차지하도록 했다. 이같은 준거안은 1994년 9명의 학자로 구성된 '국사 교육내용 준거안 연구위원회'가 내놓은 것으로, 이때 연구위원장이 바로 이존희 교수였다.

5.16을 군사혁명이 아닌 쿠데타로 정의하고 북한 주체사상을 설명하자는 등의 주장은 당시로써는 매우 급진적이어서 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보수 성향 학자들은 연구위원회가 '좌편향'이라며 매카시즘적 여론 재판을 이끌었고, 뭇매를 맞은 교육부는 결국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며 현행 교과서 내용으로 되돌렸다.

여론의 집중 포화를 계기로, 역사학계 안에서는 유신 때부터 시행된 획일적 국정 제도 대신 다양한 역사관을 담을 수 있는 검인정 제도로 환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검인정 문제점, 긍정적 측면에 비할 바 아니"라더니…

▲<역사교육, 달라져야 한다>(이존희 지음, 혜안 펴냄)
이 교수는 이후 2001년 저서 <역사교육, 달라져야 한다>(혜안 펴냄)를 통해 역사 교과서 검정 체제 전환을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역사 교과서 편찬 방향에 대해 "교과서 편찬이 자유로워야 한다"며 "대부분의 선진국에서처럼 검인정 제도를 활성화하자"는 소신을 밝혔다.

"학문 연구의 다양화와 자율적인 연구 분위기의 확대라는 의미에서도 발행 체제는 벌써 변화되었어야 했다. 더욱이 통제와 간섭에서 자율과 다양성이 존중되는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이 확대되는 시대적 분위기에 맞춰 역사 교과서의 발행제도는 바뀌어야 한다."(53쪽)

"역사 교과서가 셋이나 넷, 아니면 다섯이나 여섯 가지로 발행될 때, 교육 현장에서 교사와 학생들은 이를 선택하는 과정을 통해 더 좋은 교과서를 선택할 수 있다."(같은 쪽)

검정 체제 전환에 따른 우려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기했다.

"역사 교과서의 검인정 제도화에 따른 문제점이 예견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문제점은 발행제도가 바뀌었을 때의 긍정적인 측면에 비하면 그리 큰 일이 아니다. 적절한 심사기준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많은 이견과 이설을 조정하고 학문적 연구 성과가 수렴될 수 있어 역사교육의 내용 수준이 크게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같은 쪽)

마치, 현재 국정 교과서 반대파의 발언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내용이다.

교과서 내용 구성에 있어선 '근현대사 내용의 보강', '민족의식의 함양'을 주장했다.

"역사교육에서 저버릴 수 없는 또 하나의 기대감은 민족의식의 함양이다. 백 마디의 구호보다는 유관순이 고문당하는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는 것이 민족의식을 기르는 데 효과적일 것이며, 통일의식을 높이는 데는 이산가족의 상봉 장면만큼 좋은 교재가 없을 것이다."(60쪽)

특히 북한에 대한 역사 교육을 강조하기도 했다. "통일에 대비한 역사 교육을 정치적인 결단과 함께 실효를 거둘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할 시기가 되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원로 사학자들이 21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흥사단 강당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정예고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알 만한 분이 왜..." 학계에서 쏟아지는 탄식

"정부가 역사 교육을 둘러싼 각종 분열과 다툼을 종식시키고 학생들의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해 정부가 책임지고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적극 환영한다."

역사 교과서가 '셋이나 넷, 아니면 다섯이나 여섯 가지로 발행될 때 더 좋은 교과서'가 될 수 있다던 이 교수는 1종 국정 교과서를 찬성하는 교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동료‧후배 교수들은 이 교수의 이같은 태도 변화가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지난 21일 한국사학계 원로 기자회견에 참석한 학자에 따르면, "이날 마침 94년 집필 시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그래서 다들 '왜 이존희 교수가 보이지 않느냐'며 의아해하던 차였던 터라 (이 교수의 찬성 사실이) 당혹스럽다"고 했다. 한 현직 교수는 "주변에서 대신 사인을 해준 게 아니냐"며 되묻기도 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국정 교과서 찬성 서명 요청에 직접 응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프레시안>과 한 전화 통화에서 "1994년 준거안 만드는 데 참여했지만 이미 20년 전 얘기"라며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균형 감각이 중요하다는 게 내 소신인데, 지금 검정 교과서들이 좌편향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물론 국정은 계속해선 안 된다. 다만 교과서가 제대로 방향이 잡힐 때까지만 과도기적이라도 국정을 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균형에 대한 기대와 달리 '우편향 국정 교과서'가 탄생할 우려에 대해선 "집필진 구성에 따른 부작용이 걱정되긴 하지만, 워낙 지금 교과서가 편향돼있어서 할 수 없다"고 했다.

이 교수의 '입장 선회'에 대해 한 원로학자는 "이미 세계적 흐름이 자유발행제인데 국정 체제로 회귀하자는 것은 시대 요구에도 맞지 않고, 지금 교과서가 좌편향이기 때문에 한시적으로나마 검정을 포기하자는 주장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검정 제도 취지 자체를 무색하게 하는 발언"이라며, "알 만한 분이 왜 이런 판단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관련기사 ☞ : '국정 교과서 지지 교수' 102인 전격 해부 ①)

(관련기사 ☞ : '국정 교과서 지지 교수' 102인 전격 해부 ②)

(관련기사 ☞ : '국정 교과서 지지 교수' 102인 전격 해부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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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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