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유아인이 '착한 사장' 될 수 있을까?

[프레시안 books] <양심 경제>

'착하면 돈을 더 번다'는 말만큼 황당한 소리가 있을까. 스티븐 오버먼의 <양심 경제>(김병순 옮김, 싱긋 펴냄)는 이런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은 기업 경영자를 대상으로 만들어졌다. 내용은 간단하다. 기업이 사람의 보편적 양심에 적합한 경영을 해야 성공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으며, 따라서 이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할 때라는 소리다. 환경을 파괴하는 제품 생산을 그만하고 지구를 살리는 일에 동참하는 기업이 되어야 하며, 소비자의 윤리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제품을 팔아야 소비자가 좋아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와이어드>, 노키아 등 다양한 기업에서 일한 'X세대'인 저자는 양심 경제에 맞는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 경영자가 조직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조직원들에게 어떤 영감을 불어넣어야 하는지 등을 책의 전반에 걸쳐 설명한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조직이다. 이는 주식회사 시스템의 속성상 변하지 않는 진리다. 따라서 '양심에 맞게 일하라'는 소리는 기업 생리에는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당장 기업의 불법적, 탈법적 경영 행위를 막기 위해 우리 사회가 마련한 다양한 규제 장치를 떠올려만 봐도 알 수 있다. 규제하지 않는 한, 기업은 더 일탈적으로 움직일 욕구를 갖기에 십상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기업인을 포함한) 독자를 위해 저자는 책의 전반부에서 이제 기업이 양심 경제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했음을 강조한다. 심각한 지구 온난화, 극심해지는 빈부 격차 등의 기업 외부 변수가 기업에 더 강한 윤리적 책무를 강조하게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 <양심 경제>(스티븐 오버먼 지음, 김병순 옮김, 싱긋 펴냄) ⓒ싱긋
결정적인 외생 변수는 '초연결 사회'를 이끄는 네트워크다. 어릴 때부터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기아, 환경 파괴, 불법적 노동, 테러 등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윤리적 소비, 유기농 식품 등 대안적 소비 행태에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세계인이 이와 같은 생각을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이와 같은 혁명적 변화로 인해 사람들이 기존 기업에 가졌던 적개심의 동전의 뒷면이라 할 만한 '착한 기업'에 더 적극적인 충성을 보이게 되었다고 강조한다. 착한 기업이 '쿨한' 시대가 다가왔다는 이야기다.

실제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일어나는 바이럴 마케팅은 이제 기업 마케팅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저자는 아예 극단적으로 기존의 마케팅은 필요 없다는 취지의 이야기까지 한다.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싶어 하는 브랜드의 제품이 더 호소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생각의 네트워크를 맺지만, 지역적 소비(원산지 표시제 도입, 유기농 식품 소비 성향 증가 등)에 집중하는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새로운 소비자의 성향은 기본적으로 '힙스터'와 겹쳐 보인다. 당장 책에 쿨한 브랜드 이미지로 자주 묘사되는 기업은 애플이다. 이러한 혁신적 이미지의 일부 기업이 아니면 책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책을 다시 풀이하면 대안적 소비자가 네트워크의 힘을 빌려 부상하고 있으니, 이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기업도 대안적 사고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책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훌륭하다. '정말 우리의 기업이 이렇게 변해, 모두가 착함을 '쿨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국의 독자로서 허망함을 감추기란 쉽지 않다.

우선 떠올릴 수 있는 건 이처럼 대안적 소비자가 과연 우리 사회에 얼마나 있느냐는 의문이다. 책에 따르면 대안적 소비자가 대세가 되어야만 기업이 움직인다. 소비자의 욕구를 따라가는 건 기업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 사회에 히피적 삶의 방식을 가지면서 홍성에서 대안 농법으로 재배되는 유기농 먹을거리의 원산지를 확인하고 슬로 라이프를 추구하는, 이를테면 한국적 힙스터가 얼마나 될까. 당장 포털에 '킨포크(힙스터의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 포틀랜드에서 발행되는 대안적 삶을 다룬 잡지)'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킨포크 스타일(킨포크에 소개되는 힙스터 스타일의 패션)'이 뜨는 게 현실이다. 한국에서 힙스터는 (대개의 경우) 단순 패션의 하나로 소비될 뿐이다. 실제 힙스터적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이는 극소수일 것이다.

저자가 젊고 새로운 소비자에게 받은 인상도 우리의 현실과는 차이가 크다. 저자는 밀레니엄 세대(1990년대에서 2000년 사이 태어나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서 낙관적 기운을 발견하고, 이들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서 '양심적인 것이 쿨하다'는 의미를 뽑아낸다. 과연 한국의 젊은이도 그런가. '삼포 세대'처럼 절망을 의미하는 신조어가 한국의 젊은이를 상징하는 유일한 언어일 뿐이다.

무엇보다, 한국의 기업이 정말 '양심에 따라' 경영하는 기업가로 변할 수 있을까. 영화 <베테랑>을 보고 누구나 공감한 건, 실제 저런 기업주가 있는 사회가 한국임을 모두가 알았기 때문이다. 당장 이 책은 소비자의 욕구에 부응하라는 경영학 교과서로서 충실한 태도를 보인다. 기업가를 대상으로 한 책으로서 진보적 내용을 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에도 양심적 기업이 되기 위해 노동 환경을 개선하라는 이야기는 단 한 줄도 없다. 혁신적 메시지에 쉽게 공감하기 힘든 이유다.

▲ 한국의 기업가가 소비자의 윤리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제품 개발에 몰두한다고 홍보한들, 이를 믿을 수 있을까? ⓒveteran2015.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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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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