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단장은 이번 칼럼을 통해 "평화의 꿈"을 나누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동시에 이 칼럼이 "인간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저항의 편지"라고 규정했습니다. 김 단장이 전하고픈 한국 사회와 안보, 국방에 대한 이야기가 매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저는 얼마 전 한 팟캐스트 공개방송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시각 장애인 두 분이 저에게 와서 "잘 듣고 있다"며 인사를 건네더군요. 그 순간 문득 저는 이제껏 제가 해 온 일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들 시각 장애인에게는 TV는 불편한 소음이자 냉혹한 차별이었습니다. 그러나 팟캐스트는 따뜻한 위로이자 치유였습니다. 세상의 많은 이야기들을 그들이 들을 수 있도록 번역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팟캐스트의 힘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자 저는 제가 하고 있는 이 방송의 의미가 전혀 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를 모르고 사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어떤 계기로 그 의미를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남다른 책임감을 부여받게 됩니다.
유대인 정신분석학자 빅터 프랭클은 나치의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습니다. 굶주림과 추위와 온갖 모멸감으로 가득 찬 수용소에서 그는 부모, 형제, 아내를 잃었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밀려오는 죽음의 공포를 그는 어떻게 이겨냈을까요? 이 수용소 밖에는 다른 세상이 있을 것이고, 언젠가 거기에 도달할 것이라고 믿는 데서 수용소 생활은 의미 있는 그 무엇으로 바뀌더라는 것입니다.
수용소에서 해방된 그는 의미 치료법으로 불리는 로코테라피를 창안하여 세계적인 정신분석학자가 됩니다. 로코테라피란 이런 것입니다. 어떤 우울증 환자가 의사에게 괴롭다고 하소연합니다. 그러면 의사는 환자에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왜 자살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환자는 "죽고는 싶지만 애들이 있다. 할 일이 있다"라는 다양한 핑계를 댑니다. 그 때 의사가 말합니다. "거 봐라. 당신은 살아갈 충분한 의미가 있지 않느냐"고 말이죠. 철저하게 유린당한 삶의 파편 속에서도 살아갈 의미가 있다면 새로운 책임감에서 우리는 다시 일어서게 됩니다.
저는 가을이 깊어지는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앞을 보지 못한 장애인에게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광화문 사거리의 풍경을 묘사해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광화문 사거리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죠. 그걸 일깨워주기 위한 시 한 편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잘 감상해주기 바랍니다.
어떻습니까? 바람마저 무심하게 지나칠 수 없는 광화문 사거리라면, 계절의 길목에 선 우리가 그걸 깨닫는다면, 이 계절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책임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로코테라피, 즉 의미가 있는 우리의 생존법입니다.계절이 지나가는 길목에서갓 태어난 빛으로 가득 찬 하늘.북악산 저 늠름한 봉우리에서구름을 헤치며 나타난 바람.육조 앞 넓은 뜰을 지나광화문 사거리에서 멈춘 걸음찬란한 햇살이 부서지는 광장푸르던 날들의 추억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천사들의 자취지나치지 못하고, 더 가지 못하고.남루한 만장 흔들다가천막 어루만지다가서성이고 또 서성이다가한숨이 되고 만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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