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10월 10일 아니더라도 쏘게 돼있다

[기고] 북핵, 해법이 틀렸다 ①

국제정치는 조폭들의 행태와 비슷하다. 조직폭력배들이 의리를 말하고 자기들만의 규칙을 설정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들의 행위를 규정하는 것은 힘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국제관계도 온갖 미사여구가 난무하고 국제법이나 국제규범, 또 국제기구 등 다양한 제도적 장치가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결국은 국가 간 힘의 논리에 의해 지배된다. 이러한 시각을 국제정치학에서는 '현실주의'(realism)라고 한다.

반면 외교 행위의 주체를 개인이나 사회적 행위자(기업, 이익집단 등)로 보고, 흔히 사회적 선호도가 국가의 외교 행위를 결정한다고 보는 '자유주의'(liberalism) 이론이 있다. 이 시각에 따르면 북한 핵 개발의 이유는 평양 정권의 국내 정치적 이해관계라고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에너지 부족문제의 해결, 정권의 강화, 외교정책의 수단(지렛대) 등이 그것이다.

남남갈등의 원인은 북핵 문제를 어떠한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른 차이에 있다. 진보진영은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이 한국이나 미국에게 위협이 되듯이 미국의 강압적 대북정책(경제제재, 예방·선제공격, 핵사용 공격의 대상 등)이나 한미 합동 군사훈련(팀 스피리트, 키 리졸브, 을지 프리덤 가디언 등)도 북한에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반면에 보수진영에서는 위기 발생의 원인이 북한의 독재정권에 있다고 보며, 그래서 이 문제의 해결방안은 그러한 정권(regime)을 교체하거나 변환시키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북핵 문제를 이 시각에서 보고자 한다면, 마찬가지로 미국과 한국에 대한 분석에서도 양국의 내부사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나 한국 보수층의 안보이데올로기 등이 그것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한국과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고, 그래서 단순히 북한 정권을 타도해야 한다는 입장은 국제관계에서 지나치게 일방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고이다. 우리의 합동훈련은 방어용이라는 주장은 그 설득력이 떨어진다. 북한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 지난 2013년 2월 12일 북한은 관영매체인 조선중앙TV를 통해 3차 핵실험 성공 소식을 알렸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그동안 미국과 한국의 대다수 연구자들은 자유주의적 시각에서 북핵 문제를 주로 북한 국내 정치 문제로 취급해 왔다. 즉 핵 개발 문제를 북한 정권의 일탈행동으로 보고, 그 원인이 전적으로 평양 정권에 있다고 가정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북한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는가, 또는 핵무기를 추구하는 북한 정권의 내부 이해관계 등에 연구의 초점을 맞추어 왔다.

또 한국의 연구자들은 제도주의적 시각에서 동북아 집단안보체제를 통해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관심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러한 제도들을 통해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관철되지 않는다면, 이 또한 성공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박근혜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이 최근 미 전문가들로부터 호평을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도 결국 미국의 이익이 충족되지 않는 금방 그 한계를 노정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시각들로는 북한의 핵 정책이나 미국의 대북정책을 제대로 설명하기가 곤란하다. 예를 들어 과거 김정일 정권의 성격은 별로 바뀐 것이 없었는데, 클린턴 행정부 이후 미국의 정책들은 대화와 타협의 온건한 입장과 제재와 압박의 강경한 입장을 오락가락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상대국가의 행위가 자신의 안보이익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을 때 비로소 구체적인 대응을 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현실주의 시각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사회과학에서 이론이라고 하는 것은 사회현상의 규칙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제관계를 보는데 이론적 시각이 중요한 이유는 그와 같은 인과관계의 규칙성을 통해 국가들의 과거 행위를 설명하거나 미래 행동을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최근 북한이 핵 및 미사일 실험에 나서겠다고 시사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떤 국가가 외부로부터 안보에 위협을 느낄 경우, 그 국가는 그러한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특히 현실주의 이론의 '위협균형(balance of threat) 이론'에 따르면 그러한 노력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것은 '균형화'와 '편승화' 전략이다.

첫째, 균형화 전략은 '내부 균형화'와 '외부 균형화' 전략으로 구분된다. 내부 균형화 전략이란 국가가 내부의 자원을 동원하여 직접 군비를 강화함으로써 위협국가에 스스로 대항세력을 구축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핵무기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특히 위협을 받는 국가가 위협을 하는 국가에 대해 군사적으로 비대칭적(열등한) 관계에 놓여 있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 이유는 핵무기는, 그것이 비록 소수일지라도, 패권국이 핵무기 보유국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외부 균형화는 가장 위협적인 국가에 맞서 다른 국가들과 연합하여 대항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패권국에 맞서려는 국가는 그러한 동맹을 통하여 대항세력을 형성할 수 있다.

둘째, 편승화 전략은 위협을 받는 국가가 가장 위협을 가하는 국가와 직접적으로 동맹을 맺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위협을 받는 국가는 그 위협을 제거할 수 있다.

한국전쟁 이래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자신의 안보에 위협을 느껴왔다. 냉전 시기 북한은 미국의 위협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진영의 논리에 의해 소련이나 중국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냉전이 끝나고 9.11 사태 등을 거치면서 안보에 대한 북한의 우려는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후원자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의 선택 가능성은 다음과 같다. 먼저 동맹을 통한 외부 균형화 전략을 추구할 수 있는데, 현실에서는 그것이 여의치 않은 형편이다. 소련 연방의 해체 이후 러시아는 더 이상 군사 동맹이 아니고, 중국은 북한의 주요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과거 소련처럼 미국과 대적할 만한 초강대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양이 외부 균형화를 원한다면 좀 더 기다려야 한다. 만일 중국이 초강대국으로 성장한다면, 북한은 중국과의 동맹을 통해 미국의 위협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편승화 전략을 위해 북한은 미국과 화해를 시도할 수 있다. 이것은 아마도 북한 정권에게 최후의 선택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시도는 북한 주권의 일부를 제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양 정권은 이미 자신의 핵을 포기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시도를 해오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러한 제안을 거부하고 북한 정권의 몰락이나 교체를 노리고 있기 때문에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편승화 전략을 통해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는 현재 상황에서 쉽지 않은 형편이다.

그래서 북한 정권은 내부 균형화 전략을 통해 자신의 안보를 지키려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의 개발이 그것이다. 북한은 미국의 위협을 억제하는 수단으로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해 2005년 2월 핵무기 보유를 공식적으로 선언했고, 이후 2006년 10월, 2009년 5월, 2013년 2월에 세 차례의 핵실험을 실시하였다. 동시에 그 운반수단 확보를 위해 1998년, 2009년, 2012년에 장거리 미사일에 해당하는 광명성 위성 발사를 시도했었다.

미국이 지금과 같이 동북아에서의 현상유지를 지속하면서 북한에 대한 정권교체 정책을 바꾸지 않는 한, 평양 정권으로서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이러한 내부 균형화 전략 이외에 다른 선택을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핵무기 포기와 관련하여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1970년대 중반 남아공 정부는 당시 소련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서 자체 핵 프로그램을 개발해 6개의 핵무기를 보유했다. 1993년 3월 클럭(Klerk) 남아공 대통령은 자국의 의회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그 당위성을 주장했다.

"남부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소련의 팽창위협은, 특히 1975년부터 시작된 쿠바 주둔 소련군의 앙골라 지역 배치는 이에 대한 억제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층 더 강화시켰다. 소련의 공격에 대해 외부지원에 의존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어느 정도 국제적인 고립을 무릅쓰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핵무기를 제조하였다"

남아공은 1991년 소련에 의한 위협이 실제로 사라지자 스스로 자신의 핵무기를 폐기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미국의 위협이 사라지지 않는 한 북한 정권이 자신들의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고, 그 능력을 강화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그 개발을 중단하고 대화와 협력의 장으로 나오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는 마치 조폭의 생리가 판치고 있는 국제관계에서 무장을 해제하면 도와주겠다는 식의 무의미한 대응이다. 따라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은, 그 시기가 반드시 오는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기념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미국의 적대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다.


(조성복 소장은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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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복

조성복 교수는 1986년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1997년 30대 중반에 독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2000~2007년까지 쾰른 및 뒤스부르크-에센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고, 2007년 쾰른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베를린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한 후 2010년에 귀국하여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국회 정책연구위원 등을 지냈습니다. 저서로 <독일 정치, 우리의 대안> <독일 사회, 우리의 대안> <독일 연방제와 지방자치>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무엇인가> 등이 있습니다. 현재 유튜브 채널 '조교수의 사치'를 통해 우리 사회현상과 정치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소통하는 활동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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