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이자는 간통보다 36배 나쁘다"

[유라시아 견문] 새 경제 : 할랄 스트리트

이슬람 은행

출발에는 역시 이슬람이 있었다. 무슬림이라면 누구나 메카를 방문하는 것이 일생의 소원이다. 말레이시아는 그 13억 이슬람 세계의 동쪽 끝에 자리한다. 거리가 가장 멀다. 응당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메카 순례를 위해서 평생을 준비하곤 한다. 약 50년 전, 순례자 자금 위원회(Lembaga Tabung Haji)가 출범한 까닭이다.

처음에는 오로지 성지 순례를 준비하는 저축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예금액이 금세 불어났다. 신도는 많았고, 신심은 두터웠다. 그래서 그 목돈을 종자돈 삼아 투자 및 수익 사업을 시작했다. 대성공이었다. 밑천이 원체 든든했기 때문이다. 순례자 자금 위원회가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손이 큰 기관 투자의 하나로 성장한 것이다. 그럼에도 차이는 있었다. 메카 순례를 위한 자금이니만큼 철저하게 이슬람의 원칙에 충실해야 했다. 이슬람 은행의 원조이다.

코란은 이자, 아랍어로 리바(riba)를 금지한다. 실질적인 상품과 서비스의 교환에 바탕을 둔 경제 활동만을 인정하는 것이다. 실물 경제와 유리된 금융 경제, 즉 돈 놀음을 원천 부정하는 것이다. 화폐는 교환의 수단이며, 금융은 실물 경제를 살찌우는 방편일 뿐이다. 하여 자본 자체에 대한 투기는 사회 질서를 교란시킨다. 돈이 돈을 벌어 거품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자 수취 또한 금기 사항을 일컫는 하람(haram)에 해당되는 것이다. 심지어 간통보다 36배나 나쁜 죄로 간주된다. 따라서 통상적인 은행에 저축을 하게 되면 저절로 죄를 짓게 되는 셈이다. 내세의 구원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이슬람 은행이 번성할 수 있는 문화적 기저이다.

말레이시아에서 이슬람 은행이 본격화된 것은 1983년이다. 1981년 마하티르 정권이 출범하고, 2년 후에 이슬람 은행법이 제정되었다. 이슬람 말레이시아 은행(Bank Islam Malaysia)도 설립되었다. 말레이시아 중앙은행도 무이자 은행 계획(Interest-free Banking Scheme)을 도입하여 기존의 상업 은행에서도 이슬람 금융 창구를 운영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는 말레이시아의 금융 선진화와 국제화를 앞당기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금융 시장 개혁 개방의 방향은 한국과는 전혀 달랐다. 국제통화기금(IMF)에는 빗장을 걸어 잠그고, 이슬람 세계로 문을 활짝 열었다. 걸프 만 국가들의 이슬람 금융 기관들이 말레이시아로 진출할 수 있는 장벽을 대폭 낮춘 것이다.

쿠웨이트의 파이낸스 하우스(Finance House), 사우디아라비아의 알라지(Al Rajhi) 은행, 카타르의 아시안 파이낸스(Asian Finance) 은행 등 대표적인 이슬람 은행들이 말레이시아에 속속 진입했다. 이를 발판으로 2006년에는 말레이시아 국제 이슬람 금융 센터를 설립하고, 이슬람 은행 및 이슬람 보험에 대한 외화 거래를 승인했다. 아울러 이슬람 금융 산업의 건전성과 안정성 촉진을 위한 이슬람 국제 감독 기관도 발족시켰다. 의장국 또한 말레이시아가 맡았다.

2015년 현재 말레이시아에는 16개의 이슬람 은행이 있다. 그 중 10개가 국내 자본이고 6개가 해외 자본이다. 그 밖에 6개의 개발 금융 기관, 7개의 투자 은행, 2개의 상업 은행이 이슬람 창구를 통해 이슬람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슬람 은행의 번창은 육안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하철역마다 세계 최대의 이슬람 은행인 알라지 은행의 간판이 번쩍거리고, 중심가에는 쿠웨이트와 카타르의 이슬람 은행들이 좋은 터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은행 ATM에서 현금을 인출하고 있는 고객들도 숱하게 목도할 수 있다.

현재 이슬람 금융의 자산을 합하면 약 4950억 링깃으로, 말레이시아 전체 금융 자산의 25%를 차지한다. 그 비중은 확대일로이다. 특히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가 또 한 번의 변곡점이 되었다. 월스트리트의 아성에 도전하는 '할랄 스트리트'의 야심마저 싹튼 것이다.

▲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지하철 역 ATM. ⓒ이병한

할랄 스트리트(Halal Street)

2008년 이후 이슬람 은행의 금융 자산은 연평균 20%씩 성장하고 있다. 아시아 금융 위기 무렵 1500억 링깃이던 것이 2008년까지는 1800억 링깃으로 늘어나는데 그쳤다. 그러나 2014년에는 4000억 링깃으로 폭증했다. 2020년에는 6500억 링깃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성장 속도는 기존 금융 기관의 두 배가 넘는 수치이다.

그만큼 전통적인 상업 은행과 투자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해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도 이슬람 금융 시장으로 옮겨 가는 '개종'의 추세가 뚜렷하다. 무슬림의 울타리를 넘어 만인들에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뉴욕과 런던이 주도했던 금융 자본주의의 위험성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일확천금을 노리기보다는 안정과 안전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말레이시아는 북대서양 금융 시스템의 동요에 때를 맞추어 이슬람 금융의 국제적 허브를 지향한다. 쿠알라룸푸르를 런던과 뉴욕에 버금가는 '이슬람 세계의 월스트리트'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리-문명적 위치부터 절묘하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 리비아 등 이슬람 산유국들은 막대한 국부 펀드를 보유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 자금들은 뉴욕과 런던의 금융 시장으로 재투입되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에 선진적인 이슬람 금융 시장을 구축함으로써 이 자본을 동아시아(와 남아시아)의 산업 벨트와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려고 한다. 즉, 자원과 자금이 풍부한 서아시아와 세계의 공장이자 시장이 된 동아시아를 이슬람 금융으로 엮어내는 것이다. 중동 국가들과는 이슬람의 전통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유리하고, 중국과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른 국가들과 이웃하고 있다는 장점 또한 십분 활용하는 국가 전략이다. 이슬람 세계와 중화 세계, 만달라 세계의 브로커로서 '온라인 실크로드'를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표준화와 제도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슬람 율법은 국가마다, 지역마다 해석이 다른 경우가 있다. 서아시아와 남아시아,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아울러 이슬람 세계가 원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샤리아, 즉 이슬람 율법과 금융을 접목시키는 표준화 작업이 필수적이다.

ⓒ이병한

또 이 표준화된 이슬람 금융에 특화된 고급 인력들도 전문적으로 양성해야 한다. 우선 2006년 설립한 국제 이슬람 금융 교육 센터(International Center for Education in Islamic Finance, INCEIF)가 주목된다. 석·박사 과정을 포함하여 이슬람 금융 지식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교육하는 독보적인 학술 기관이다.

직접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말레이시아 국립대학의 근방에 자리한 캠퍼스는 근사했고, 교수진은 이슬람 세계의 주요 대학 출신들로 포진되었으며, 유학생들의 분포 또한 중동과 중앙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호주(오스트레일리아)까지 전 세계를 망라했다. '이슬람 대학'인 동시에 '글로벌 대학'인 것이다. 이슬람 율법과 금융 양면에 모두 능통한 인재를 양성하고, 이슬람 금융에서의 '말레이시아 모델'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는 전진 기지라고 할 수 있겠다.

2008년에 출범한 국제 샤리아 아카데미(International Shariah Research Academy, ISRA)도 주목할 만하다. INCEIF가 교수와 학생 간의 글로벌 연결망을 만들어 내고 있다면, ISRA는 이론과 실무의 결합, 대학과 현장을 연결하는 곳이다. 이슬람 학자들과 은행가 및 경영자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이슬람과 경제학의 실용적 합류를 도모하는 일종의 實學(실학) 기관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아랍어와 영어 사이의 번역 사업도 정력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적용 가능한 이슬람 경제 및 이슬람 금융에 관한 '신지식'을 체계적으로 수립하겠다는 것이다. 근대의 좌/우파 경제학과는 일선을 긋는 '신 경제학'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새 경제

어렵사리 압바스 미라코르(Abbas Mirakhor) 박사를 만났다. 이슬람 금융에 대한 세계적 권위자라고 한다. 이 분도 전직 IMF 관료에서 INCEIF의 교수로 '개종'한 경우이다.

그는 이슬람 금융이 30년의 맹아기를 거쳐 도약기에 들어섰다고 전망했다. 모기지(mortgage)처럼 투기성이 강한 금융 공학을 거절한 점이 왕년에는 이슬람 금융의 한계라고 지적되었지만, 이제는 전 지구적 금융 공황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참에 독자적인 이슬람 주식 시장을 만들어서 이슬람 기업들에 자본을 제공함으로써 '이슬람형 자본주의'의 선순환을 이루어내야 한다고도 밝혔다.

그가 으뜸으로 꼽는 이슬람 금융의 미덕은 리스크의 공유였다. 금융의 기본은 돈을 빌리고 갚는데 있다. 빚에 기초하는 계약 관계이다. 그런데 기존의 금융에서는 그 리스크를 채무자에게 떠넘긴다. 그래서 채권자와 채무자는 늘 갑을 관계이다. 반면 이슬람 금융은 리스크를 공유하도록 한다. 채권자와 채무자를 운명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빚을 제때에 갚으라고 채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빚을 제대로 갚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독려하는 것이 채권자의 책무가 된다. 돈을 빌려준 만큼 그 사람이나 기업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나누어 갖는 것이다. 부채가 도리어 공동체 형성의 계기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슬람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 이윤은 물론이요 손실까지도 공유한다는 내용이 계약서에 명시된다고 한다. 그래서 불확실성을 줄이고 윤리적인 투자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응당 사회적인 안정성도 강화된다. 상부상조에 기초한 공유 경제의 한 형태이다. 2008년 금융 위기가 리스크의 전이와 전이로 연쇄 파국을 초래한 파생 상품에서 비롯되었다는 점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지점이다.

솔직해지자면 생산적인 인터뷰가 되지 못했다. 내가 원체 금융에 문외한이었기 때문이다. 주식은커녕 적금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기존의 금융과 이슬람 금융의 차이를 설명해주는 대목에서 긴가민가했다. 최근 각광받고 있다는 이슬람 채권 수쿠크(Sukuk)에 대해서도 감이 잡히질 않았다.

실감이 부족하니 수긍도 비판도 쉽지가 않았다. 자연스레 다음 질문의 심도가 떨어졌고, 대화의 밀도 역시 약해졌다. 밍밍한 질문이 이어지니 미라코르 또한 심드렁해지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당황했고, 영어마저 꼬여갔다. 질문과 대답 사이, 침묵의 터울이 길어졌다. 갈수록 서로 민망했다. 녹취 파일을 문장으로 옮기고 있자니, 당시의 적막감이 고스란히 전해져 재차 식은땀이 흐른다.

▲ 국제 이슬람 금융 교육 센터(International Center for Education in Islamic Finance, INCEIF) 캠퍼스 내부의 모스크. ⓒ이병한

연구실을 나오자 해방감이 일었다. 바깥 공기가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다. 새 기운은 이미 캠퍼스에도 여실했다. 이슬람 경제를 특화시킨 대학이 들어섰다는 사실부터가 신선한 것이었다. 가정과 나라의 살림살이를 다루는 경영학과 경제학이 완전히 영미권에 종속되어 있는 작금의 한국 대학들에 견주자면 부럽기 짝이 없었다.

잘 가꾸어진 캠퍼스를 따라 걸으며 21세기의 '혁명'이란 이런 것일까, 잠시 궁리했다. 머지않아 2017년이 된다. 1917년 '러시아 혁명' 100주년이 다가오는 것이다. 2017년의 혁명은 1917년의 그것과는 무척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1979년의 이란 혁명에 더 근사할지 모른다.

이란 혁명은 이슬람 세력이 최초로 근대 국가의 권력을 차지한 일대 사건이었다. 이슬람이 근대를 타고 오른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2년 후에 마하티르가 말레이시아의 총리로 등장하여 '아시아적 가치'를 발신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제 보니 그것 또한 이슬람 혁명의 후폭풍이었다.

대처와 레이건의 집권으로 신자유주의가 닻을 올리고 있던 시기에, 또 소련이 (이슬람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여 '사회주의 제국주의'의 민낯을 폭로하고 있던 시기에, 또 다른 세계에서는 '이슬람의 근대화'가 점진적으로 전개되고 있던 것이다. 과연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는 지난 1000년을 돌아보는 만큼이나, 앞으로의 100년을 내다보는 데에도 유효한 독법이다. 게다가 1979년이 바로 중국의 개혁 개방이 출발한 해라는 점까지 덧붙인다면 유라시아 전체를 아울러 '세계화'의 실상에 대한 새로운 접근도 가능할 것 같다.

물론 현재의 나로서는 이슬람 금융의 실제가 어떠한지, 과연 기존의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의 잠재력이 얼마나 있는 것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이슬람 근본주의'와는 다른 방향에서 이슬람의 미래를 개척하고 있는 조류가 도저함을 새삼 확인했다고 하겠다.

이슬람 세계에 대한 견문은 이제 초입부이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두 변방 국가를 둘러보았을 뿐이다. 이슬람은 유라시아의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문명권이다. 14억 중국, 13억 인도와 더불어 인류의 향방을 좌우할 중요한 행위자가 아닐 수 없다. 내년과 내후년에도 이슬람 국가들을 계속 방문하게 될 것이다. '21세기의 이슬람', '이슬람의 근대화'를 화두로 삼기로 한다. 이슬람의 성경, 코란부터 읽어보아야 하겠다.

지금 당장 추적이 가능한 것은 생활상의 변화이다. 무릇 제도와 사상, 가치의 변화는 일상의 변화에 기초하기 마련이다. 먹고, 입고, 자고, 노는 하루하루의 변화가 관건이다. 그 생활세계에서도 '이슬람의 근대화'는 다방면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으뜸은 할랄 산업의 대약진이다. 소비 생활이 갈수록 이슬람화되고 있다. 살펴보기로 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이병한

20대는 사회과학도였다. 서방을 선망했고, 새로운 이론의 습득에 골몰했다. 30대는 역사학자였다. 동방을 천착하고, 오랜 문명의 유산을 되새겼다. 자연스레 동/서의 회통과 고/금의 융합을 골똘히 고민했다. 그 소산으로 1000일 <유라시아 견문>을 마무리 짓고 40대를 맞이했다. 개벽학자이자 지구학자이며 미래학자를 지향한다. 인간 이전의 자연적 진화는 물론이요, 인간 이후의 자율적 진화에, 인간만의 자각적 진화를 두루 아울러야, 지구의 진화에 일조할 수 있는 미래학자의 자격이 갖추어진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공진화,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공진화, 생물과 활물과 인물의 공진화, 만인과 만물과 만사의 공진화, 개벽학과 지구학과 미래학의 공진화, 이 모든 것을 아울러 깊은 미래(DEEP FUTURE)를 탐구하는 깊은 사람(Deep Self), 무궁아(無窮我)이고 싶다. www.byeonghan.com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