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는 '독재 국가'가 아니다!

[유라시아 견문] 키쇼어 마부바니와의 대화 ①

지식의 재균형

싱가포르다. 오래 벼르던 곳이다.

불과 몇 달 전, 리콴유가 세상을 떠났다. 그가 이끌었던 싱가포르의 독립 50주년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은 것이다. 장례식을 전후로 말이 참 많았다. 그러나 대개 뻔한 말들이었다.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끌었으되, 정치적으로는 독재자였다는 흔한 설명이 반복되었다. 나는 몹시 못마땅했다. 진부하고 지루했다. 그래서 몇 마디 보태고 싶었다.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꾹 참기로 했다. 50주년 현장을 직접 보고 글을 쓰기로 작정한 것이다. 나름 묵혀두고 담금질을 했던 셈이다. 지금 이 문장을 쓰고 있는 시점은 8월 10일, 아침 5시 14분이다. 어젯밤 마리나 베이(Marina Bay)를 환하게 밝힌 불꽃놀이의 잔상이 여전하다. 싱가포르에 온 지 1주일을 지나고 있다.

'유라시아 견문'을 통해 꾀하는 것 중의 하나가 여러 문명, 여러 나라의 지식인들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한국에 소개되어 있는 해외 사상가들의 분포가 워낙 편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세안으로, 인도양 세계로, 이슬람 세계로, 북아시아로 지적 재균형을 이루는 과업이 절실하다. 유라시아를 현해탄과 태평양으로 기울어진 지식장의 균형추로 삼고 싶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싱가포르는 가장 기대하던 곳 중의 하나였다. 일단 아시아학의 수준이 굉장하다. 동북아와 동남아는 물론 남아시아까지 두루 망라한다. 주요 대학과 연구소의 소식지를 정기적으로 받아본 지 꽤 오래 되었다. 개인적 소감으로는 미국이나 일본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국에는 통 알려지지 않았다. 서방(서구와 동구)에 대한 편애와 편향이 좌우를 막론하고 역력한 탓이다.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경로가 지나치리만치 기울어져있다.

키쇼어 마부바니(Kishore Marbubani) 선생을 만났다. 손꼽아 기다리던 만남이다. 그의 글과 책을 무척 좋아한다. 칼럼까지 매번 챙겨 읽는다. 블로그도 가끔 방문한다. 우선 현학이라고는 조금도 없다. 실제적이고, 실용적이며, 실무적이다. 현대판 실학자, 경세가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현재 싱가포르 대학교 리콴유 공공 정책 대학의 학장을 맡고 있다. 연구소가 발족한 2004년 이래 줄곧 학장이었다. 그 전에는 유엔(UN) 대사도 오래 역임했다. 한때는 외교관으로, 현재는 학술 행정가로, 독자적이고 독보적인 견해를 지속적으로 발신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의 학술계에서는 거의 인용되지 않는다. 가야트리 스피박이나 호미 바바보다 훨씬 더 '탈식민주의적 실천'을 하고 있는 지식인임에도 그러하다. 같은 인도 출신임에도 대접이 다른 것은 그들이 미국의 명문 대학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실력 이상으로 과대평가된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과분하게 떠받는다. 탈식민주의라는 이론조차 그 유통 경로는 철저하게 신식민주의적인 것이다.

게다가 그들을 인용하며 쓰는 학술 논문들이 한국의 탈식민화에 어떠한 기여를 하는지도 심히 의심스럽다. 내 보기에는 미국에의 학문적 종속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에 그칠 뿐이기 때문이다. 재차 한국 지성계의 병폐와 적폐를 통감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관료이자 학자로서 싱가포르의 기적에 일조했던 또 다른 인도계 지식인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기로 한다. 카자흐스탄 출장을 마치고 막 돌아온 그는 꽤나 상기된 모습이었다.

▲ 키쇼어 마부바니 싱가포르 대학교 교수. ⓒ이병한

실학자들의 나라

이병한 : 먼저 싱가포르 독립 5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소회부터 듣고 싶습니다.

키쇼어 마부바니 : 싱가포르가 독립한 것은 1965년 8월 9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독립을 당했다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 것입니다. 말레이시아연방에서 쫓겨나듯 했으니까요. 그래서 리콴유를 비롯한 당시 지도자들은 환호하기보다는 절규했습니다. 아무런 자원도 없는 이 작은 나라가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싱가포르의 남과 북에 자리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대국입니다. 더욱이 두 나라 간 영토 분쟁이 한창이었어요. 인도차이나에서는 또 베트남 전쟁이 격화되고 있었습니다. 동남아시아 전체가 대혼란인 와중에 홀로서기를 강요당했던 셈이죠.

그럼에도 2015년 현재, 싱가포르는 용케도 살아남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를 일구었습니다. 아니, 1945년 이후 독립한 제3세계 국가들 가운데 가장 성공한 국가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싱가포르인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이병한 : 상투적인 질문부터 드릴까요. 싱가포르가 이만큼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키쇼어 : 제가 학장에 취임한 이후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저는 크게 셋을 꼽습니다. 실력주의(Meritocracy), 실용주의(Pragmatism), 그리고 청렴(Honesty)입니다. 싱가포르는 건국 이래 세 가지 원리로 국가를 운영해왔습니다.

싱가포르는 독립 당시 200만 소국이었습니다. 일개 도시에 불과했죠. 아니 처음에는 도시도 아니었습니다. 어촌이었다고 할까요? 천연자원은 물론, 인적 자원도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인재에 사활적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직책에 가장 뛰어난 인력을 배치한다는 원칙을 철저하게 관철시켰습니다. 우수한 인재를 일찍 발굴하여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엄격하게 훈련시키는 선발 과정을 제도화한 것입니다.

싱가포르의 관료들은 세계 최고의 인재들입니다. 그리고 그에 걸맞은 최고의 대우를 받습니다. 부정부패에 대한 유혹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입니다. 최고의 인재를 최상으로 대우함으로써 민간 시장이 아니라 공공 영역으로 끌어들인 것이 싱가포르가 단기간 내에 제1세계로 진입한 첩경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실력주의와 실용주의는 싱가포르가 분열하지 않을 수 있었던 원천이기도 합니다. 싱가포르는 다인종, 다문화 국가입니다. 중국계가 75%, 말레이계 무슬림이 14%, 인도계가 10%를 차지합니다. 대영 제국이 남기고 간 산물이죠. 그러나 유럽의 키프로스, 남아시아의 스리랑카, 태평양의 피지, 남아메리카의 가이아나(Guyana) 등, 대영 제국의 식민지였던 다른 소국들과 비교해보십시오. 다인종의 통합과 조화에서 싱가포르는 단연 돋보입니다. 이 또한 철저하게 인종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대우했기 때문입니다.

이병한 : 마부바니 선생님부터가 그 혜택을 입은 당사자 아니신가요? 드물게 인도 출신입니다.

키쇼어 : (웃음)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병한 : 선생님뿐만이 아니라 싱가포르를 이끄는 관료들에는 유독 박사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명문 대학에서 공부한 고학력자들이 즐비한데요. 대개 국비로 유학을 마치고 싱가포르에 돌아와서 나라 일을 하는 것이죠. 아테네가 '철학자들의 공화국'였다면, 싱가포르는 '박사(Ph. D)들의 공화국'이라고 비유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키쇼어 : 글쎄요. 고학력자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죠. 그러나 그들이 곧 '학자'들(academics)은 아닙니다.

이병한 : 학자들이 아니라고요? '학자-관료(mandarin)'들 아닌가요?

키쇼어 : 그렇게 말할 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아닙니다. 한때 학자들을 대거 중용하는 실험을 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현학적이고, 또 자기중심적입니다. 일을 중심에 두고 해결책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논리적 정합성을 지키는 것을 더 중요시하죠. 그래서는 국가를 경영할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1965년 이후 격동의 세계사 속에서는 더더욱 그랬습니다. 논문을 쓰듯이 수미일관적 정합성을 추구하다가는 실패하기 십상입니다. 싱가포르는 어떠한 이데올로기도 신봉하지 않습니다. 문제를 발견하고 과제를 설정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 정치인과 관료들의 책무입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실용적이어야 합니다.

이병한 : 그럼 '실학자들의 나라'라고 불러도 될까요? 저는 그간 선생님의 글과 책을 읽으며 '현대판 실학자'라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본래 유교 국가의 이상적 인간형이 君子(군자)였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리더(Leader)겠죠. 그 리더십이라는 것도 '사'와 '대부'의 결합(士+大夫), 즉 학자이자 관료인 사람을 전범으로 삼았는데요. 종종 싱가포르야말로 '유교 국가의 근대화'의 한 양상이 아니겠는가 생각해보고는 합니다. 물론 긍정과 부정적 측면 모두를 아울러서요.

키쇼어 : 그런 개념을 고안하는 것은 역시 학자들의 일이겠죠? 저는 가타부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박사들의 나라'보다는 더 적절한 비유 같군요.

이병한 : 싱가포르 독립 50주년을 현장에서 지켜보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독립 100주년에 대한 준비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제가 지금 읽고 있는 책도 <Singapore 2065 : Leading Insights on Economy and Environment from 50 Singapore Icons and Beyond>입니다. 다방면에서 50년 후의 청사진이 제시되어 있더군요. 무척 부러웠습니다. 실은 한국도 곧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데요. 과연 이러한 오십년 대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실은 선생님도 작년부터 독립 100주년을 주제로 한 글을 정기적으로 기고해 오셨죠. 저도 무척 흥미롭게 따라 읽었습니다. 앞으로의 50년을 전망해 주실 수 있을까요?

키쇼어 : 낙관과 비관, 양면이 다 있습니다. 어느 쪽부터 얘기할까요?

이병한 : 낙관적 전망부터 들어보죠.

키쇼어 : 낙관의 근거는 역사의 방향입니다. 싱가포르가 갓 독립하던 1965년은 미국이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무렵입니다. 젊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전 지구적인 우상이었죠. 현재의 오바마 대통령보다 더 인기가 많았다고 기억합니다. 저도 하루 빨리 싱가포르를 떠나서 미국으로 유학가고 이민 가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로부터 50년,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미국의 세기에서 아시아의 세기로 이행 중입니다. 이미 작년(2014년)에 실질 구매력에서 중국이 미국을 앞질렀습니다. 지난 200년 이래 처음으로 비서구 국가가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 국가로 등장한 것입니다. 중국 뿐입니까? 현재 중국보다 성장 속도가 빠른 국가는 인도입니다. 중국과 인도가 동시에 부상하고 있습니다. 싱가포르가 독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2065년이면 이 두 국가가 G2가 되어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싱가포르는 이 양국을 잇는 최적의 위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인도의 주요 도시를 6시간 이내에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도시 국가입니다. 중국만 고려한다면 홍콩이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또 인도만 생각한다면 두바이가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21세기의 G2를 모두 공략하고 싶다면, 싱가포르만한 곳이 없습니다.

게다가 중국과 인도만도 아닙니다. 싱가포르는 현재 아시아 4대 문명권이 가장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장소입니다. 중화 문명, 인도 문명, 이슬람 문명에 서구 문명까지 융합되어 있는 곳이죠. 즉 싱가포르는 아시아에서 가장 서구화된 도시입니다. 도쿄, 서울, 상하이에 견주어 그렇습니다. 동시에 글로벌 도시 가운데서 가장 아시아적인 도시입니다. 뉴욕, 런던, 파리와 비교해서 그렇지요.

아시아 문명의 내부 교차로이자 동과 서의 교차로이기도 합니다. 저는 21세기를 동서 융합의 세기, 남북(제1세계와 제3세계) 융합의 세기로 전망합니다. 그 동서남북이 융합하는 최적의 장소가 싱가포르 아닐까요? 다가올 싱가포르의 50년을 밝게 전망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이병한

이병한 : 비관적 전망은 어떻습니까?

키쇼어 : 일단 국가의 규모가 너무 작습니다. 전형적인 도시 국가죠. 역사적으로 수많은 도시 국가들이 명멸했습니다. 베니스가 그랬지요. 한때는 외환 시장과 신용 시장 등 금융 혁신을 선도하는 선진 국가였습니다. 문화적으로도 번창했고요. 그래서 유럽의 르네상스도 이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797년 나폴레옹의 정복 전쟁에 패함으로써 몰락의 길에 들어섭니다. 결국 이탈리아의 일개 도시로 흡수되고 말았죠.

인류사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 국가인 아테네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상 무역으로 번영하면서 철학 공화국을 만개시켰지만, 결국 스파르타와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배함으로 쇠락해 갔습니다.

이병한 : 전쟁의 위협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저로서는 동남아가 어느 지역보다 전쟁의 가능성이 낮은 지역 같은 데요? 게다가 싱가포르는 동남아 국가들 중에서도 군사비 지출이 가장 많은 나라로 들었습니다. 최신 무기들로 무장되어 있고요.

키쇼어 : 동남아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것은 전적으로 아세안 덕분입니다. 아세안의 성공은 싱가포르의 성공만큼이나 20세기의 거대한 성취입니다. 제가 지금 집필하고 있는 책의 주제이기도 하고요. 아세안이 발족한 것이 1967년이었습니다. 냉전의 한복판이었고, 베트남 전쟁이 정점을 찍고 있던 무렵입니다. 그럼에도 미국이 주도하는 SEATO를 거부하며 등장한 국제기구였어요.

그런데도 공산주의 진영에 기울어진 것도 아니었고요. 오히려 역내 국가들이 주도하여 독자적인 반공 기구를 만든 것이죠. 그래서 베트남의 인도차이나 공산화 프로젝트를 저지시켰던 것입니다. 미국과 소련 가운데 한쪽을 택일하지 않고 지역 협력이라는 제3의 길을 선구적으로 개척했습니다. 이 또한 1965년 독립한 싱가포르의 역할이 컸습니다. 싱가포르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앞장서서 추진하지 않을 수 없었거든요. 또 철저하게 실용적으로 접근했습니다.

동남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다채로운 지역입니다. 아세안 6억 인구 가운데 무슬림이 2억4000명, 불교가 1억4000명, 기독교가 1억3000명입니다. 그 외 도교와 유교에 힌두교, 공산주의자들까지 있지요. 이처럼 다양한 문명이 혼합되어 있음에도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음을 몸소 입증해 보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유럽연합(EU)에 비해 정당한 평가와 마땅한 관심을 누리고 있지 못합니다.

이병한 : 그렇다면 비관할 이유도 없는 것 아닐까요?

키쇼어 : 제가 걱정하는 것은 국제 정치보다는 기후 변화입니다. 남중국해가 아니라 북극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빙하가 녹아내리고 있거든요.

이병한 : 북극요? 해수면 상승의 위협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키쇼어 : 아닙니다. 북극 항해로가 열리고 있습니다. 작년에 이미 북극을 통해 중국에서 유럽으로 직접 화물을 운송하는 해로가 등장했습니다. 즉, 말라카 해협을 통과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지요. 싱가포르가 놀라운 성취를 이룬 것에는 지리적인 위치도 매우 중요했습니다. 유럽과 중동이 동북아와 연결되려면 반드시 싱가포르를 지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지구 온난화가 지속된다면 그 이점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어요. 한때 해양 무역의 왕국이었던 말라카가 지금은 한가로운 바닷가 마을이 되어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또 하나의 위협은 싱가포르가 세계에서 가장 연결망이 뛰어난 항만과 공항을 보유한 허브 국가라는 사실, 그 자체에서 비롯됩니다. 홍콩의 사스처럼 전 지구적인 전염병에 취약할 수 있습니다. 인구 밀집도 또한 세계 최고이니 일단 병이 돌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을 초래할 수 있어요. 전 세계로의 확산 속도 또한 굉장할 것이고요. 그래서 에볼라와 메르스를 비롯하여 방역에 철두철미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의 최대 강점인 개방성이 치명적인 취약성이 될 수도 있는 것이죠.

이병한 : 기후 변화와 전염병, 모두 흥미로운 말씀입니다.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키쇼어 : 그러나 싱가포르가 실패할 수 있는 가장 큰 위기는 내부에 있습니다.

이병한 : 내부라면?

키쇼어 : 제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입니다.

이병한 : 민주주의요?

키쇼어 : 네. 민주주의요. 민주주의는 장기적으로 독재 정치보다 훨씬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합니다. 그래서 민주 정치가 장기적으로는 유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요. 독재보다 더 불안정할 수 있습니다. 당장 태국(타이)의 혼돈을 거론할 수 있겠지요. 대만(타이완)이나 필리핀도 상황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올해 연말에 대선을 치르는 미얀마의 미래 또한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병한 : 싱가포르는 사정이 다르지 않나요? 부연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키쇼어 : 싱가포르는 대중에 아부하고 편승하는 정당(populist party)이 등장하여 성공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지난 50년간 쌓아온 국부가 엄청나거든요. 기름 한 방울 나지 않지만 외환 보유고가 3000억 달러에 육박합니다. 1인당 액수로 따지면 단연 세계 으뜸이지요. 그걸 '복지'라는 이름으로 낭비하면 30년 집권도 가능할 것입니다.

현재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민주주의 국가들이 막대한 재정 적자와 부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당장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고 국가 운영을 방만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국부를 탕진하고 파산까지 이르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당장 그리스가 그러하며,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지요. 국부의 탕진과 부채의 누적은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의 고질병이 된지 오래입니다. 미래 세대에게 경제적, 생태적 부담을 지속적으로 전가하는 정치문화가 만연해 있는 것이죠.

심지어 언젠가부터 이런 '민주국가'들의 선심성 공약이 국민들의 당연한 '권리'인양 호도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적 생명을 지속하기 위해서라도 정치인들과 정당들이 과감한 구조 개혁을 시도하지 못합니다. 유권자들 눈치만 보며 끌려 다니는 것이죠. 물론 예외적인 인물도 있습니다.

가령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그랬습니다. 그는 독일의 장래를 위하여 적절한 시점에 필요한 '노동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사회민주당 출신인데도 그러했죠. 자신의 주요 지지층의 기대를 저버리면서까지 개혁을 추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독일의 국가 경쟁력을 향상시켰습니다.

2009년 이래 유로존의 위기에도 독일만은 더욱 강해질 수 있는 저력을 슈뢰더 집권 시절에 마련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대가는 무엇이었던가요? 사회민주당은 선거에서 패배했습니다. 나라를 위해 일한 결과로, 정권을 잃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혜택은 기민당(기독교민주연합)의 메르켈이 누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대 민주 국가의 커다란 역설입니다.

이병한 : 매우 논쟁적인 주장입니다. 인민행동당의 집권 논리이자 야당 탄압의 빌미가 될 수도 있겠고요. 그럼 곧바로 난감한 질문을 이어 드려볼까요? 싱가포르 모델에 대해서는 늘 부정적인 견해가 따라붙습니다. 제가 그 내용을 일일이 설명할 것까지도 없을 것 같은데요. 그와 같은 곱지 않은 시선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열린 사고와 그 적들

키쇼어 :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시각이 좁은 것입니다. 사고의 틀이 닫혀있는 것입니다. 서구 매체에서 수시로 싱가포르에 딴죽을 걸죠. 독재 국가라느니, 권위주의 정부라느니, 여러 단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침소봉대가 너무 심합니다. 가령 태형과 사형을 엄청나게 강조합니다. 태평과 사형은 싱가포르 내에서도 극히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이 전체이고 전부인양 과장합니다.

그래서 정작 싱가포르의 혁신적인 경제 및 사회 정책에는 좀체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나라의 공공 정책 입안에 도움이 될 만한 성공적 실험이 많음에도 그렇습니다. 싱가포르는 공공 주택, 공공 의료, 공공 교육 등의 방면에서 세계적인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싱가포르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요. 범죄의 온상이 되기 십상인 절대빈곤이 없고 게토도 거의 형성되지 않았거든요.

충분히 참조해볼 여지가 있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만큼이나 마음이 닫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이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설명하지도 못합니다. 모든 국가의 역사적 발전 경로는 하나라는 터무니없는 세계관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 '아랍의 봄'을 해석하는 서구의 시각을 보십시오. 마침내 이슬람권도 서구 민주주의로의 길로 들어섰다고 밖에 말하지 못합니다.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그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슬람권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만큼 다른 역사적 가능성에 대해서 사고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싱가포르처럼 그들의 모델과 어긋나는 성공 사례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깎아 내리기에 바쁜 것이지요.

이병한 : 서구도 그렇지만, 그러한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확대 재생산하는 비서구 언론도 큰 문제이지요. 당장 작년(2014년)의 제 경험도 있습니다. 한국의 진보 언론을 대표하는 신문사의 고위 관계자를 만난 적이 있어요. 이제는 아세안, 인도, 이슬람권 특파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아세안에서는 싱가포르가 취재하기에 가장 적합해 보인다고 추천을 드렸어요. 그런데 곧장 돌아오는 반응이 싱가포르는 독재 국가 아니냐? 언론의 자유도 없는 나라에 특파원을 파견하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 하시더군요. 너무 단정적으로 판단하시는 듯해 안타까웠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와 학술회의만 다녀도 기사거리가 풍성할 텐데요. 당장 저부터가 그 분이 몸담고 계시는 언론보다 싱가포르의 <스트레이트 타임스(Straits Times)>를 더 즐겨 읽거든요. 국제면의 정보가 풍부하고 칼럼들의 수준이 높아 애독하고 있습니다. '언론의 자유'라는 것도 다소 물신화된 발상 같아요. 제가 미국에 머무는 동안 절감했던 것인데요. '언론의 자유'가 넘친다는 미국서도 정작 읽을 만한 매체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거개는 폭로성 매체거나 선전선동 기구이죠.

키쇼어 : 싱가포르가 인민행동당이 영구 집권하는 일당 독재 국가라는 단정도 물신화된 것입니다. 서구 모델에는 오로지 다당제 국가와 일당제 국가만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당제 국가는 똑같은 걸로 착각합니다. 차이를 보려고 하지 않아요. 고정관념으로 미리 재단합니다. 부패하고 무능하며 폭압적인 일당제 국가들만 있다고요. 그러나 싱가포르는 20세기의 그 어떤 일당제 국가보다 깨끗하고 유능했으며, 그 어떤 다당제 국가보다 성공적이었고 심지어 개방적입니다. 지금 당장 카페와 서점에 가보십시오. 전 세계 최고의 신문과 잡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TV를 틀어보십시오. 싱가포르 때리기에 앞장서는 서구의 대표적인 방송을 매일매일 접할 수 있습니다.

이병한 : 선생님이 싱가포르의 외교관으로 일하게 된 계기도 흥미롭더군요. 대학생 때 학내 언론에서 정부에 비판적인 견해를 표하는 논설을 자주 발표하셨다지요? 그랬더니 정부에서 같이 일해보자고 제안했다고 들었습니다.

키쇼어 : 네. 리콴유 수상이 연설하러 오셨을 때, 비판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그랬더니 비서관이 만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내심 긴장했지요. 그런데 정작 채용을 제안하는 것입니다. 비단 저만의 일화도 아닙니다. 저와 학내 언론을 이끌었던 친구들도 비슷한 경로를 밟았어요. 소위 '빅 텐트(Big Tent)' 접근입니다. 정부에 비판적인 젊은 인재들을 탄력적으로 수용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비판적이라면 정부에 직접 들어와서 한번 실험해 보라는 것이지요.

'언론의 자유' 말씀을 하셨는데요. 비판의 자유는 매우 중요합니다. 다만 그러한 사고 자체 또한 서구의 역사적 맥락의 산물임을 알아야 합니다. 거개가 신정(神政) 국가였거든요. 종교 국가에서 세속 국가로 이행하는 과제가 있었기에 국가와 거리를 둔 시민 사회의 확보가 그만큼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신정 국가를 경험한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어요.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역사적 경로에 있는 국가들에서는 '언론의 자유'라는 것도 발상과 접근이 다를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 '사대부'라는 존재가 그런 것 아닙니까? 비판적 지식인을 내부로 포용하는 세속국가의 경험이 그만큼 오래되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싱가포르는 인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소국이에요. 그래서 여러 정당으로 갈라져서 정쟁에 국력을 소모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최고의 엘리트를 공정하게 선발하여 국가에 헌신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시급한 과제였죠. 빅 텐트 접근의 효과는 크게 둘입니다. 하나는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한 참신하고 젊은 피를 끊임없이 수혈하여 국가의 거버넌스를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특정한 이념을 맹신하는 공허한 비판들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정부에 직접 들어와서 일을 해보면, 기왕의 비판들이 얼마나 가당찮은 것이었는지 금방 절감하게 됩니다. 실무를 겸한 인재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죠.

이병한 : '부유한 북조선'이라고 냉소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키쇼어 : 싱가포르 국민들을 순한 양이나 로봇에 빗대기도 하죠. 권위주의적 국가의 50년 지배로 싱가포르인들은 고분고분해져서, 감히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발언하지 못한다고요. 싱가포르인들에 대한 모욕입니다. 저는 이러한 시각이 만연한 것을 서구 중심주의, 유럽 중심주의로만 비판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인종주의에요. '인식 체계의 인종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현상을 전혀 읽어내지 못합니다. 그저 기왕의 인식 체계로 흡수하고 재해석하고 결국은 왜곡할 뿐이죠.

싱가포르인들이 정말로 순한 양이거나 로봇이라면, 그것이야말로 기적이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이 살아가는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분주한 항만과 공항을 보유하고 있는 가장 개방적인 국가가 되고, 세계 4번째의 금융 도시가 되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소득 수준과 가장 많은 외환을 보유한 국가가 되었으니까요.

게다가 사법 체계 또한 가장 공정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국제적 기관의 평판은 어떻게 설명할 것입니까? 저는 싱가포르가 이상향도 아니고 천국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단점도 있고 결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독재 국가니, 권위주의 정부니 하는 상투적 단정으로 재단할 수 있는 국가 또한 결코 아닙니다.

이병한 : 다른 것이지요.

키쇼어 : 그렇습니다. 싱가포르는 다른 것입니다. 특별한 것입니다. 독자적인 것입니다. 그 결점과 단점에도 불구하고 20세기 후반 인류 전체의 역사에서 가장 눈여겨볼 만한 실험을 성공시킨 나라입니다. 그걸 부정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이데올로그들입니다.

이병한 : 선생님의 첫 책 제목이 <Can Asians Think?>였습니다. 조금 비틀어서 "Can Westerns Think?"라고 되물을 수도 있겠군요.

ⓒ이병한

건국과 수성

나는 '인식 체계의 인종주의'라는 말이 몹시 흥미로웠다. '민주'를 '천주'처럼 모시고, 자유주의 이외의 어떤 체제에도 적대적인 소위 '리버럴'에 대한 통렬한 일침으로도 들렸다. 관용과 다양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처럼 포장하지만, 정작 그들은 전혀 그러하지 않다. 그래서 싱가포르 같은 '다른 사회'를 결코 용납하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세상을 흑백 양단으로 가른다. 자유냐, 독재냐? 전체주의냐, 민주주의냐? 그래서 '다른 사회'는 몽땅 '닫힌 사회'라고 간주한다. '열린 사고'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느덧 자유주의야말로 열린사회의 적이 되고 말았다.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 마지막으로 남은 근대의 최후의 이데올로기이다.

기실 싱가포르의 발전 노선은 사회주의에도 자본주의에도 딱히 들어맞지 않는다. 시장의 '보이지 않은 손'과 정부의 '보이는 손'이 미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가장 자유로운 자유 시장과 가장 권위주의적인 정부가 신기하게 공존하고 있다. 전자만 보는 사람은 싱가포르를 신자유주의 국가라고 부르고, 후자만 보는 이들은 독재 국가라고 칭한다. 어느 쪽도 제 눈의 안경이며, 장님 코끼리 만지기이다.

실상 싱가포르는 20세기형 좌/우의 외부에 있는 나라라고 하겠다. 국가가 시장을 통제한 동구형 사회주의도 아니고, 국가의 권력을 시장에 넘겨준 서구형 자본주의도 아니다. 명과 실이 딱 들어맞는 '正名(정명)'을 아직 얻지 못했다. 나는 '중화제국의 미니어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국가의 운영 시스템이 그러하고, 다문명국가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개혁 개방 이래 중국이 유독 싱가포르 모델 학습에 열심인 것도 우연만은 아닐 것 같다.

정명을 찾고자하는 노력이 잠시 있었다.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 논쟁이다. 그러나 만개하지도 못한 채 조기에 단락되었다. 금융 위기의 파장 속에서 아시아적 가치는 '정실 자본주의'의 변명으로 치부되었고, (신)자유주의가 재차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났다.

지금은 미국과 유럽이 금융 위기의 본산이 되었다. 20년 전과는 판도가 전혀 다르다. 게다가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 했던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가 자리하는 '지형' 또한 크게 달라졌다. '미국의 호수'에서 성장했던 국가들이 어느새 '대중화의 바다' 속으로 진입해 있는 것이다. 중국계가 다수인 대만, 홍콩, 싱가포르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담론의 지형이 바뀌면 논쟁의 판세 또한 달라질 것이다. 나는 키쇼어 마부바니와 대화하면서 곧 '아시아적 가치 논쟁'이 재개될 것임을 예감했다.

마침 올해는 <신청년> 창간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20세기 중국 좌/우파의 기원이 된 잡지이다. 비단 중국뿐이랴. 1915년이면 나라를 잃은 아시아 청년들이 중화민국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무렵이다. <신청년>을 읽으며 각성했던 '신청년'들이 동아시아에, 아시아에 널리 퍼져 있었다. 그리고 1919년 5.4 운동을 전후로 동서 문화 논쟁이 일어났다.

돌아보니 1990년대의 '아시아적 가치' 논쟁이란 1920년대 동서 문화 논쟁의 제 2라운드였다. 그리고 이제 3차전이다. 동과 서의 힘이 재균형을 이루어가는 지금이야말로 진검승부일 것이다. 도래할 제3차 동서문화대전에 만반으로 준비하고 대비해야 하건만, 광복 70주년, 한국의 사정은 어떠한지 잘 모르겠다.

싱가포르의 지난 50년은 '창업기'였다. '건국기'라고도 할 수 있다. 상층부 '실학자'들이 주도했다. 나는 '독재'였다고 폄하할 생각이 없다. 창업기에는 그 때에 맞는 이치와 논리가 있는 법이다. 관건은 미래이다. 이제 수성기이다. 성숙기에 접어든다. 유능한 정부만으로는 싱가포르의 기적이 지속되기 힘들 것이다.

시민들의 자발성과 주도성을 장착할 때이다. 국가와 민간의 공진화를 도모할 때이다. 그런 점에서 2065년 청사진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프로젝트가 "자동차 없는 사회 만들기"였다. 국가의 선도와 민간의 협력이 동반되지 않으면 실현되기 힘든 '시민 참여형' 비전이다. 그래서 더더욱 솔깃해지는 담대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 구상을 처음 발신한 이도 키쇼어 마부바니였다. 대화를 이어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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