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초 가수? 이것이 진짜 힙합!

[화제의 음반] 이센스의 [The Anecdote]

이센스 [The Anecdote] 8.5/10

근래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화제가 된 이센스(E SENS)의 정규 데뷔 앨범 [디 애닉도트(The Anecdote)]가 제작 소식이 나온 지 근 1년 만에 발매됐다. 그 사이 이센스는 3번째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됐다. 국외에서는 몇 차례 기사화된, 뮤지션이 구속된 상황에 나온 앨범의 국내 첫 사례가 된 셈이다.

발매 전부터 힙합 팬의 큰 기대감을 받아온 이 앨범은 예약 판매만으로 1만6000여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주요 음원 사이트는 순식간에 이 앨범으로 도배되었다. 숱한 힙합 뮤지션들이 앨범 발매를 응원했다.

이 화제성을 뒷받침해준 건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날선 래핑이다. 라임을 의식하지 않은 듯하지만, 귀를 쏙쏙 찌르는 영리한 라이밍이 곡 전체를 휘덮는다.

▲ 이센스의 [The Anecdote]. ⓒ케이티뮤직
랩 앨범에서는 흔한 주제인 신(scene)에 대한 화자의 감상과 성공 서사를 정리하는 곡들은 앨범과 동명의 곡에서 아버지를 여읜 화자의 가족 이야기로 넘어가며 절정을 이룬다. 대중음악의 미디어로서 기능을 완벽히 충족시키는 이센스의 뛰어난 랩 실력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앨범 감상의 쾌감이 느껴질 정도다.

팝스타 리한나, 제니퍼 로페즈를 비롯해 메소드 맨, 팻 조, 미시 엘리엇 등 유명 뮤지션과 작업한 프로듀서 다니엘 '오비' 클레인(Daniel 'Obi' Klein)이 전곡에 제공한 잘 주조된 비트는 앨범을 더 빛나게 만든다. 붐뱁 스타일(드럼사운드가 강조되는 1990년대 미국 동부 랩 앨범 스타일) 사운드가 일관된 정서로 흐르는 가운데, 개별 곡마다 약간씩 일어나는 변조는 철저히 이센스의 랩을 수동적으로 따라간다. 래퍼의 앨범답게, 랩이 주인공이고 비트는 그 자리를 넘보지 않는 미덕을 지킨다.

<쇼 미 더 머니> 등 힙합 경연 프로그램의 악영향으로 인해 힙합 문화 왜곡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이 앨범은 발매됐다. 이센스는 [The Anecdote]에서 경산의 편모 가정에서 자라나 힙합 신의 중심에 올라선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표면을 핥아 힙합 문화를 착취하는 현실을 전복한다. [The Anecdote]는 전통적인 이야기, 전통적인 비트로 탄탄히 중심을 잡은 뛰어난 앨범이다.

빈티지 트러블 [1 Hopeful Rd.] 7/10

▲ 빈티지 트러블의 [1 Hopeful Rd.]. ⓒ유니버설뮤직코리아
빈티지 트러블(Vintage Trouble)은 캘리포니아 주 할리우드 출신의 4인조 밴드다. 밴드명에서 드러나듯, 이들은 1950년대 솔(soul)과 블루스에 1960~70년대 록 사운드를 덧입힌 레트로 사운드를 주조해낸다.

[1 Hopefrl Rd.]는 이들이 흑인 음악의 명가 블루 노트와 계약 후 발표한 첫 앨범이다. 롤링 스톤스, 밴 모리슨, 조 카커 등 거장의 앨범을 제작했으며 현재 블루 노트의 대표이기도 한 돈 워스(Don Was)가 직접 이 앨범 제작자로 나섰다. 레이블이 이들에게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재킷에서부터 제임스 브라운, 척 베리 등 전설적 뮤지션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이 앨범은 장르를 가로지르는 유연함과 솔의 끈끈함,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경쾌한 기타 스트로크로 가득 차 있다.

무엇보다 밴드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할 만한 보컬리스트 타이 테일러(Ty Taylor)의 목소리가 절대적 매력이다. 전형적인 흑인 보컬리스트의 성장 레퍼토리인 교회 성가대 활동-리듬 앤 블루스 밴드 보컬의 절차를 밟은 그의 목소리는 국외 전문지의 평가 그대로 제임스 브라운, 오티스 레딩, 레이 찰스 등 흑인 음악 대가의 향기를 물씬 풍긴다. 비트 있는 곡에서는 로버트 플랜트를 떠오르게 할 정도로 힘찬 에너지를 품기도 한다. 노골적으로 옛 흑인 뮤지션의 향기를 풍기는 그의 외모(헤어스타일과 옷 차림새)마저 청취에 영향력을 미친다.

힘찬 약동감의 '런 라이크 더 리버(Run Like the River)', '스트라이크 유어 라이트(Strike Your Light)' 등의 곡에서는 이들이 록 사운드에도 크게 빚지고 있음이 드러난다. '두잉 왓 유 워 두잉(Doin' What You Were Doin')', '이프 유 러브드 미(If You Loved Me)' 등의 곡은 보다 직접적으로 여유로운 빈티지 솔, 리듬 앤 블루스 사운드를 표방한다.

일부 곡에서는 만듦새에 아쉬움이 느껴진다. 'Run Like the River'는 더 노골적으로 질주했으면 좋았을 테고, '에인절 시티, 캘리포니아(Angel City, California)'는 창조성이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인 앨범 청취에 방해를 줄 정도로 심각하진 않다. 익숙함과 흥겨움의 공존은 앨범 트랙의 끝까지 이어진다.

이들은 근래 레트로 열풍 가운데서도 두드러질 정도로 예스러운 사운드와 무대 스타일을 고집한다. 이들은 에너지 넘치는 클럽 공연과 이를 기록한 유튜브 동영상으로 일찌감치 추종자들을 만들었다. 결코 젊지 않은 나이에 주목받은 신인이지만, 긴 시간 활동이 기대되는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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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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