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밥 먹고 14킬로그램 찐 간첩?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⑧] 2010년대 간첩 조작 피해자 철이 씨

"그땐 조사관이 저한테 '담뱃값을 하라'고 하니까… 그 사람이 업적을 세우고 싶어서 그러는가 보다 했죠.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도 아닐 테고. 그리고 북한에서 있던 일이라 '눈깔(정보원)'이었다고 해도 처벌은 않겠다고 하니…."

2013년 8월, 어렵사리 탈북에 성공해 중앙합동신문센터에 입소한 철이(가명, 41) 씨. '담뱃값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조사관의 얘기에 그는 담배를 쭉 빤 뒤 말했습니다.

"그럼 제가 (정보원) 했다 하시오."

그야말로 딱 걸려들었습니다. 무심하게 내뱉은 이 한 마디가 '허위 자백'의 시작이었습니다.

▲철이 씨 1심 판결문. ⓒ프레시안(서어리)

"특수부대 출신이다. 허튼 생각하지 마라"

'건수'를 잡은 조사관은 계속 캐물었습니다.

"정보원이었으면 맹세문도 읽고, 서약서도 읽고 했겠지?"
"모릅니다. 제가 정보원 했다고 하는 건 선생님 생각해서 얘기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조사는 길어졌습니다. 다른 탈북자들은 일주일 만에 끝났지만, 철이 씨 조사는 2주가 넘어서야 끝났습니다. 독방에는 달력이 없었기 때문에, 예전에 그 방에서 머문 탈북자들이 벽에다 적은 날짜 위에 표시를 하며 조사 일수를 셌습니다.

약 한 달이 지난 뒤, 2차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센터 직원들이 또 다른 방으로 데려갔습니다. 처음 들어갔던 방에 비해 훨씬 크고 조사실도 딸린 방이었습니다. 방 크기를 보고, 그제야 '아차' 했습니다. '보통 일이 아니구나. 뭔가 단단히 잘못 걸렸구나.'

조사관도 달라졌고, 조사관 수도 늘었습니다. 또 다른 방으로 갔습니다. 어두컴컴한 곳이었습니다. 조사관들은 그가 있는 자리에서 멀찍이 떨어진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순간, 남한 영화에서 나오던 고문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너 한국 몇 번이나 들어왔나."
"처음입니다."
"너 1차 조사 때 보위사 정보원이었다고 했지?"
"아닙니다. 담뱃값 하라고 해서 한 말입니다."
"야, 좋게좋게 말할 때 빨리 해결하고 가라. 왜 자꾸 불쾌하게 노나"

스산한 인상의 조사관은 그에게 계속 왜 탈북했는지를 물었습니다. 북한에서 탈북브로커 일로 체포된 아내가 수사기관에 제 남편이 한국으로 가려고 했다고 진술한 것, 송금 브로커였던 자신을 통해 송금을 받은 사람이 수사기관에서 ‘철이 씨를 통해 마약장사를 했다’고 진술해 체포령이 떨어진 이야기들을 줄줄 말했습니다.

"탈북 이유가 말이 안 된다. 다시 말해. 왜 한국에 왔나."

반복되는 질문에 입을 다물면 고압적인 태도로 "묵비권을 행사하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한 말을 하고 또 하자, 조사관이 옆에 와 책상을 발로 꽝 걷어찼습니다. 여러 번 치자 책상이 어느새 철이 씨 몸 바로 앞까지 와 있었습니다. 머리털이 쭈뼛 서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리 다 특수부대 출신이다. 허튼 생각하지 마라."


▲철이 씨. ⓒ프레시안(서어리)

"거짓말 탐지기에서 고압이 나와 죽는다"

조사관들은 철이 씨의 진술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레 조사 기간은 길어졌습니다. 힘들어진 철이 씨는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북한에서 송금 브로커 일을 할 적에, 다른 탈북자들로부터 들은 '국정원에서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한다'는 얘길 떠올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사관들은 "거짓말 탐지기를 어떻게 아느냐"며 "거짓말 탐지기 아는 걸 보니 간첩이 분명하다"고 했습니다.

"이번에 거짓말 탐지기를 미국에서 새로 들여온 걸 알고 있나? 그 기계를 동작시키자면 미국에서 박사들을 모셔 와야 하는데 그 사람들을 쓰자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너 같은 거한테 쓰지 않는다. 그리고 거짓말을 하면 고압 전류가 흘러서 죽는다. 그래도 하겠나?"

철이 씨는 그래도 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조사관들은 요청을 묵살했습니다.

철이 씨는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그럴수록 더욱 담배 생각이 절실해졌습니다.

'탈북 이유가 말이 안 된다', '다른 이유를 대라'라는 질문에 곧이곧대로 대답하면 조사관은 철이 씨를 서 있도록 했습니다. 다리가 퉁퉁 부었습니다. 눈물이 주룩 흘렀습니다. 조사실 특수유리 너머 관찰실에서 철이 씨를 지켜보던 간부 한 명이 나타났습니다. 그에게 애원하듯 말했습니다.

"좀 앉아도 되겠습니까?"
"…너 담배 피우고 싶지?"

"'나가'라는 말이 '하나원'에 가라는 말인 줄 알았어요"

조사관이 담배 한 개비를 건넸습니다. 철이 씨가 볼이 홀쭉해지도록 담배를 피우자, 그들이 말했습니다.

"아까 하나원 가는 사람들 봤나. 너도 인정하고 빨리 가라."

철이 씨는 같이 입소한 사람들이 여행 가방을 끌고 하나원행 버스를 타는 것을 창문을 통해 본 터였습니다. 마음이 다급해졌습니다.

"그땐 '인정하고 빨리 가라'는 말이, '하나원으로 가라'는 말인 줄 알았습니다. 정보원이라고 인정하면, 나도 빨리 하나원에 가게 되는 건 줄 알았단 얘깁니다."

결국 그는 태도를 바꿨습니다. 조사관들이 물어보는 대로 대충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조사관들이 구체적인 걸 물어볼 때도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어떤 임무를 줘서 보냈느냐'는 질문입니다. 철이 씨가 말문이 막히면, 조사관들은 "북한에서 기독교 목사를 비롯한 탈북 브로커들을 유인, 납치하려고 그들의 중국 거처지 등을 알아보라는 지시를 주고, 지하당 조직을 조직하라는 임무를 받은 사람도 있는데 너는 무슨 임무를 받았나?"라고 되물었습니다. 힌트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보위부 정보원 맹세문의 내용을 물을 때도 똑같은 과정이 반복됐습니다. 그럼 철이 씨는 조사관들의 이야기를 들은 대로 다시 말했습니다.

이러기를 수일 째. 전날엔 실컷 허위 자백을 하고, 아침에 일어나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시 부인했습니다. 진술을 뒤집으면 조사관들은 종일 담배를 주지 않았습니다. 독방에 있으면 담배 생각이 더욱 났습니다. 저녁 즈음 돼서 담배가 무척 피우고 싶어 결국 또 인정하면, 그때야 담배를 몇 대 피울 수 있었습니다.

담배는 철이 씨의 허위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좋은 미끼였습니다. 밥도 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평소엔 북한에서도 느끼지 못할 굶주림을 느낄 만큼 박하게 주다가 허위로라도 인정하면 순대, 보쌈, 빵에 소주를 곁들인 거한 상을 내줬습니다.

이런 식으로 허위 자백을 해서 가게 될 곳이 '하나원'이 아닌 '구치소'일 줄, 철이 씨는 그땐 꿈에도 몰랐습니다.

▲중앙합동신문센터. ⓒ프레시안(최형락)

북한에서 '종북 세력'이라는 표현을 쓴다고?

제 머릿속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 말하는 식이니, 어처구니없는 진술도 많이 나왔습니다. '종북 세력'이라는 표현이 대표적입니다. 북한에서는 '종북 세력'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남한에서나 통용되는 말입니다. 그런데 조사관들의 말을 그대로 옮겨 쓰느라 '종북 세력들의 동향 파악'이라고 진술서에 작성하면, 조사관들은 북한에서도 '종북 세력'이라고 하느냐며 북한에서 쓰는 표현대로 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민주 세력'이라고 썼다가, 그것도 북한에서 쓰는 표현이 아니라, 나중에는 '통일애국인사'라고 바꿔 쓰기도 했습니다.

"통일애국인사가 누군지 예를 들라고 해서, 합신센터 와서 본 <진보의 그늘>이라는 책에 나온 이름들을 생각나는 대로 막 얘기했어요. 조사관은 내 말을 듣더니 '임종석은 의원을 하지 않고 문익환 목사는 죽은 지 오랜데 그것도 모르느냐'고 하더라고요. 북한에서 그 사람들 동향을 알아볼 임무를 받고 왔다는 간첩이 그 사람들 근황도 모른다는 게 얼마나 웃긴 일이에요."

조사관들은 '공작원이면 문건 같은 것도 쓰고 그러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렇겠거니 해서, '공작원인입보고서'라는 문건을 상상해서 하나 꾸며 썼습니다.

며칠 후, 태국에서 철이 씨를 심문했던 키 큰 조사관이 왔습니다. 그는 태국에서 철이 씨를 조사했던 기억이 안 난다며, '기억이 없는 걸로 봐서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며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그는 공작원 인입할 때 냈던 양식을 칠판에 그려보라고 했습니다. 철이 씨는 그가 전에 꾸며 쓴 '공작원인입보고서' 양식을 그렸습니다. 키 큰 조사관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아니, 북한에서 남한에 파견하는 간첩 정도면 중앙당 부부장급 이상일 텐데, 서류에 그 사람 사진이 없는 게 말이 됩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조사관은 문제를 제대로 아는구나' 싶었습니다.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눈물이 줄줄 흘리며 그에게 그동안 합신센터에서 있었던 일들을 모두 다 이야기했습니다. 묵묵히 철이 씨 얘기를 듣던 그 조사관은 아무 말 없이 방을 나갔습니다.

ⓒ프레시안(서어리)

"우리랑 관계 나빠지면, 누가 너에 대해 보증해주나"

키 큰 조사관이 나가고, 다시 예전 조사관이 들어왔습니다.

"비행기 폭파시킨 김현희 같은 사람도 살았다. 국정원서 다 봐줘서 그렇게 사는 거다. 북한에 있었을 때 일이야 어쩌겠나. 한국은 그런 나라 아니다. 너 한국에 들어와서 나쁜 일을 한 게 있냐? 나쁜 일을 한 것이 없는데 왜 자꾸 번복하냐."

오랜 회유에, 철이 씨는 다시 넘어가 버렸습니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공작원 맹세문을, 조사관들의 힌트를 받아서 지어 썼습니다.

조사관들은 국가정보원에 철이 씨를 위장 탈북 간첩이라고 일러바친 유대용(가명)과의 관계도 추궁했습니다. 조사관들이 힌트를 준 대로 '탈북 브로커 납치가 제 업무'라 허위 자백을 했으니, 자신의 탈북을 도와주기로 했던 유대용을 납치하려 했다는 말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철이 씨가 유 씨를 유인한 증거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증거가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철이 씨가 유대용을 처음 만나기로 하고 결국 만남에 실패하기까지 총 18일이 걸렸습니다. 또, 국경에서 만나자고 먼저 말을 꺼낸 건 철이 씨가 아니라 유대용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로 유 씨를 유인해 납치할 임무를 받은 공작원이라면, 스스로 국경에 오겠다는 유 씨를 납치하지 못했다고 하는 게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건 무리였습니다.

도저히 말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하자, 조사관들은 철이 씨를 회유했습니다.

"우리도 윗사람들 앞에서 너에 대해 보증을 서야 한다. 우리랑 인간관계가 나빠지면, 누가 너에 대해 보증을 서겠냐? 너에 대해 좋게 말해줄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

다음 날, 조사 간부가 담배와 갓 담근 김치, 그리고 A4용지 넉 장짜리 반성문을 가져왔습니다. 간첩 혐의를 부인하다가 결국 조사관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실토한 탈북자의 반성문이라고 했습니다. "북한 같았으면 맞아 죽었는데 여기 와서 보니 심문관 선생님들이 친형처럼 돌봐주고 인간적으로 대해주어 진실을 말합니다…"

반성문을 죽 읽어 보니, 어딜 보아도 '감옥 간다'는 말이 없었습니다. 조사관들은 "지금 유대용은 한국에 잘 있다. 그런 문제 때문에 시간 끌지 말라"고 했습니다. 조사관들의 말 대로라면 철이 씨가 유 씨를 유인‧납치 시도를 했다 하더라도 '미수'가 되는 셈이었습니다. 꾸며서라도 빨리 혐의를 인정하고 나가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했습니다.

▲3차 조사실 구조. ⓒ철이

"국정원에서 너희 가족 정도 못 데려오겠나"

12월 초가 됐습니다. 허위 진술 내용이 늘어날수록, 철이 씨 방 냉장고에는 먹을 게 넘쳐났습니다. '이 정도 진술하면 이제 곧 하나원에 갈 수 있겠구나' 싶어, 앞으로 자신의 거취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철이 씨가 물으니 그제서야 조사관들은 한국은 법치국가라서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거라며, 검찰 조사를 받고 법원 가서 재판도 받을 거라고 했습니다. 조사관들은 판사를 잘못 만나면 교도소에 갈 수 있다면서도, 국가보안법 몇 조 몇 항을 위반했는지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길어야 2~3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래도 떨지 말아라. 우리 국정원을 믿어라"라고 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특별사면을 자주 내리는데, 석가탄신일, 크리스마스, 광복절 사면 받아 나올 수 있게 도와주겠다. 그리고 교도소 나오면 국정원과 연관된 데에서 일하게 해준다. 너는 기술도 없을 텐데, 요새 대한민국에서 일자리 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나?"

북한에 남은 철이 씨 가족들 이야기도 꺼냈습니다.

"네가 봉급을 타야 가족들도 데려오고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겠나? 북한에서 사람 한 명 데려오려면 지금은 값이 올라서 1200만 원 든다. 그리고 평양에 있는 사람도 데려다줬는데, 지방에 있는 사람들이야 국정원에서 못 데려오겠나. 무사히 데려올 수 있다. 절대로 걱정하지 말아라."

조사관들은 간첩 자백을 하는 사람들이 기자회견을 하면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피해를 당할 수 있다며, 철이 씨에 대해 절대로 언론에 내보내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6개월간의 수용 생활이 끝날 즈음, 조사관들은 철이 씨에게 한 가지 당부를 했습니다. 재판에 가서 절대 번복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민변'이라고 종북 변호사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찾아오면 절대 그 사람들 말을 듣지 말아라. 그 사람들 믿고 재판 가서 번복하게 되면, 교도소에서 3년 살 것을 5년 산다."

"삼류 첩보 소설을 보는 것 같다"

2014년 1월 중순경, 철이 씨는 합신센터에 있으면서 국정원 내곡동 수사팀의 조사를 받게 됐습니다. 철이 씨가 조사를 받으러 간 곳은 2차 조사 첫날에 갔던 어두컴컴한 방이었습니다. 내곡동 수사관들은 철이 씨 진술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다. 삼류 첩보 소설을 보는 것 같다."

탈북자를 잡아야 할 사람이 두 명이나 더 데리고 탈북한 점, 탈북 브로커를 유인해 납치할 임무를 받은 공작원이 스스로 국경에 오겠다는 브로커를 납치하지 못했다는 점 등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내곡동 수사팀의 조사가 끝나고, 2월 중순경 철이 씨는 드디어 합신센터를 떠났습니다. 그곳을 뜨기 전, 합신센터 조사관들은 내곡동 수사관들이 보는 앞에서 철이 씨 가방 안에 담배를 6~7갑 넣어줬습니다. 또 셔츠를 주며 "이건 봄에나 가서 입으라"고 했습니다. 소주도 마시고 싶으면 달라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철이 씨는 이제 조사관들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제 자신과 가족의 안위가 그들에게 달린 셈이었습니다.

ⓒ프레시안(서어리)

"국정원 밥 먹고 14킬로그램 찐 간첩?"

합신센터에서 나온 뒤엔 서울 구치소에서 수감된 상태로 다시 수사를 받았습니다.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을 때 잠깐 국선 변호사와 면담을 했지만, 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는 없었습니다. 국선 변호사와 면담하는 곳 문 바로 앞에 국정원 수사관이 8명이 와 서 있었습니다. 국선 변호사와 대화는 맥없이 몇 분 만에 끝났습니다.

2월 말경, 구치소 수감 생활을 하며 이번엔 검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검사는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서도 "그렇지만 우리가 찾아서 변호인을 데려다줄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한국의 사법 체계에 대해 아는 게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한국에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철이 씨에게 이 말은 너무도 막막하게 들렸습니다.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말과 다름없었습니다.

"내 편이라고는 누구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제가 진실을 밝히겠다고 할 수 있습니까."

합신센터에 있을 때처럼, 철이 씨는 고분고분 수사에 응했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검사가 나가 한참 동안 기다리기만 한 적도 있었습니다. 지루하고, 힘들었지만, 철이 씨는 힘들다고 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3월 중순 경 어느 오후였습니다. 구치소 방에 혼자 갇혀 있던 철이 씨는 너무 심심해서 지나가는 사동 도우미에게 읽을거리라도 달라고 했습니다. 하루 정도 지난 신문 하나를 가져다줬습니다. 읽다 보니, 어쩐지 철이 씨 얘기인 것만 같은 기사가 실려있었습니다. '국정원 밥 먹고 14킬로그램 찐 간첩…'. 자극적인 제목 아래 내용은 철이 씨가 합신센터에서 허위 자백한 내용 그대로였습니다. '지령을 받고 국경 지역에서 탈북 브로커 모 씨를 유인, 납치하려다 미수에 그쳤다'는 식이었습니다. 그제야 철이 씨는 눈치챘습니다.

'국정원에서 나를 속였구나!'

국정원은 언론에 철이 씨 이야기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얘길 뒤집었습니다. 그렇다면 북에 있는 가족들을 데려다주겠다는 약속도 거짓일 가능성이 컸습니다. 철이 씨는 분노에 치를 떨었습니다. 이제 모든 진실을 밝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다음에 계속)

* 이 기사는 미디어 다음과 공동 게재합니다.
(☞바로 가기 :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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