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을 비롯한 대중음악 연구는 대중음악에 사회적, 미학적 의미를 덧붙여 관련 논의를 풍성하게 만든다. 이는 음악 시장은 물론, 대중문화를 살찌우고 그 질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다. 미국, 일본, 영국 등 세계적 대중음악 시장에서 그에 걸맞은 활발한 연구가 학계와 전문지, 일간지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게 좋은 사례다.
한국은 다르다. 평론을 비롯한 제2차 저작 활동은 시장이라 말하기 민망한 규모다. 사회적 관심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돌의 문화적 의미, 대중음악의 운동성을 주목하는 매체는 없다. 이 분야 종사자가 전업하기 힘든 구조이다 보니, 대중음악에 대한 사회적 연구도 쉽지 않다.
답답한 현실에 단비가 되어 줄 반가운 신간이 두 권 나왔다. 우리의 척박한 대중문화 토양에 자양분이 될 만한 좋은 내용을 담고 있다.
보기 드문 대중음악 교과서
<미국 대중음악>(래리 스타·크리스토퍼 워터먼 지음, 김영대·조일동 옮김, 한울 펴냄)은 지은이들이 워싱턴 대학에서 함께 대중음악을 가르치던 2000년대 초반 공동 집필한 American Popular Music의 번역서다. 팝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대중음악의 역사 전체를 개괄한 몇 안 되는 학계 저작으로 꼽힌다. 이 책을 교수의 문하에서 직접 공부한 김영대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조일동이 공동 번역했다.
미국은 팝, 곧 대중음악의 본고장이다. 블루스, 재즈, 컨트리, 포크, 리듬 앤드 블루스, 로큰롤, 솔, 록, 디스코, 힙합 등 수많은 장르가 미국에서 발현하거나 혹은 발전했다. 이 책은 흔히 모든 대중음악의 뿌리로 알려진 미국 팝의 기원을 탐험하는 한편, 최근의 조류인 힙합의 부흥까지 200년의 대중음악 역사를 다룬다. 이에 따라 미주 대륙에서 서아프리카까지, 지역을 넘나드는 다양한 대중음악 연구 결과가 채록되어 있다.
책은 단순한 연대기에 그치지 않는다. 대중음악의 형식과 스타일의 변화를 정리하고, 장르 간 미친 영향이나 변화 과정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대중음악의 사회학적 분석은 물론, 음악적 언어를 통한 분석까지 이뤄진 셈이다.
나아가 각 시대를 대표하는 명반에 대한 자세한 해설까지 수록되어 있다. 2000년대 초반의 저작물인 까닭에 최신의 조류는 수록되지 않았으나, 이 정도로 긴 시대, 넓은 분야를 총망라해 대중음악사를 기록한 책은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다.
이미 긴 시간의 무게를 지닌 대중음악은 아카데미의 연구 대상이 되었다. 레트로 열풍은 단순히 대중음악의 최근 경향이 아니며, 이 산업(혹은 문화) 전체가 과거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연구자나 평론가뿐 아니라, 대중음악을 더 깊게 들여다보려는 모든 독자가 관심을 가질 만한 책이다.
입문자를 위한 여행 안내서
<대중음악 히치하이킹 하기>(권석정·김상원·백병철·서정민갑·이수정 지음, 탐 펴냄)은 우리나라의 대중음악 전문 기자, 평론가, 음반 제작자 등이 함께 정리한 대중음악 서적이다. 앞서 소개된 서적이 전문적인 '대중음악 교과서'라면, 이 책은 대중음악 탐험의 입문서다. 책이 겨냥한 주요 독자층은 청소년이다.
보통 독자가 읽기에 대중음악 전문 서적은 난해한 게 사실이다. 워낙 전문적인 용어가 많고, 방대한 장르를 다루기 때문이다. 나아가 대중음악을 사회학적으로 해석하거나 산업론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은 한 보통의 독자는 이해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더 큰 문제는, 대중음악을 읽으려 해도 자신의 취향이 무엇인지 알기 힘든 독자가 많다는 데 있다. 특히 한국처럼 특정 장르만 일방적으로 소개되는 현실에서는 독자가 자신의 취향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이 책은 이런 이들을 위한 기초 서적이다. 장르별 전문가인 저자들이 블루스, 록, 포크, 흑인 음악, 댄스 음악이라는 큰 틀의 장르를 맡아 독자에게 해당 장르의 역사, 주요 음악인, 장르의 특성 등을 소개한다.
특히 QR(Quick Response) 코드를 책 곳곳에 삽입해 독자가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해당 음악을 귀로 듣고, 이를 통해 자신에게 맞는 음악을 찾아갈 수 있도록 했다. 독자는 책을 따라가다 아이돌 음악의 뿌리가 무엇인지, 그 원형 격의 음악인은 누구인지, 최근 유행하는 포크 음악과 과거 68 혁명기 포크 음악은 어떻게 다른지, 흑인 음악이 지금처럼 세계를 지배한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여러 유명 음악인의 개성을 한껏 살린 삽화도 인상적이다. 우연히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새로운 음악에 마음을 빼앗겼으나, 새로운 음악의 바다로 나아가지 못해 주저하는 모든 이를 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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