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건국67 주년" 맞아 교과서 국정화?

[분석] 국정 교과서 디데이 9월…국사 국정화 추진 '속사정'은?

박근혜 정부가 국사 국정 교과서를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친박계인 황우여 교육부장관 겸 사회부총리는 19일 KBS 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에 출연, "여러 가지 교육과정을 9월에는 매듭을 지으니까 9월까지는 (국정 교과서 관련) 결정을 보겠다"고 말했다. 9월로 '디데이'가 정해졌다. 역사학계에서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황 부총리는 "검·인정을 하다보니 7가지 교과서로 가르치는데 통일이 안 돼 있다. 한국 국민이라면 갖고 있어야 될 기본적인 역사 지식을 가르쳐야 하는데, 이것이 혼란스럽고 다양하니까 여기에 대한 많은 지적이 있었다"며 "우리가 균형 잡힌 올바른 역사를 국가가 책임지고 가르쳐야 되는 것 아니냐"고 국사 국정 교과서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똑같다. 1972년 10월 유신을 앞두고 박정희 대통령은 국사 교육 강화 방안을 보고받았다. 국사교육강화위원회를 만들었고, 1년도 채 안된 1973년 6월, 문교부는 초중고 교과서를 모두 국정으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1974년에는 국사 교과서가 모두 국정으로 바뀌었다. 갓 20대를 넘긴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의 국정교과서 추진 과정을 청와대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문교부가 내놓은 이유가 "일제 침략기에 세워진 왜곡된 사관을 씻어내고 또 해방 이후 국사학자들 사이에 있었던 주관적인 학설을 객관적으로 일관성있는 학설로 작성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상 '유신 역사 교육'의 시작이었다. 국정 교과서로 공부한 이들 60대는 지금도 박정희의 열렬한 추종자이자, 새누리당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5일 '8.15경축행사'에 참석해 시민들과 만세를 부르고 있다. ⓒ청와대

보수의 매력적인 전략, 국정교과서

국정교과서 추진이 본격화되고 있는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주고 있는 최근 역사 인식은 흥미롭다. 박 대통령의 발언과 행보를 통해 '국정 교과서' 추진의 방향성을 짚어볼 수 있을 것 같다.

박 대통령은 8.15경축사에서 "건국 67주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지난 2013년, 2014년 8.15경축사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단어다. 60주년도, 70주년도 아닌 67주년이라는 숫자는 별 의미가 없는 숫자다. 1919년 대한민국이 탄생한 이후, 1945년 광복을 맞이해 생긴 첫 남한 정부의 의미를 강조하고자 한 취지를 이해한다고 해도, 굉장히 이례적인 언급인 셈이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700만 재외동포 여러분, 그리고 자리를 함께 하신 내외 귀빈 여러분, 오늘은 광복 70주년이자 건국 67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날입니다.() 67년 전 오늘은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날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우리 대한민국은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정통성을 계승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왔고, 국가경제와 국민경제의 항구적 번영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기다렸던 광복의 기쁨은 반쪽의 기쁨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분단의 비극과 6.25 전쟁의 참화는 우리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앗아갔고, 얼마 되지 않던 산업기반마저 모두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67년 전 '건국'이 있었는데, 북한이 일으킨 6.25전쟁으로 인해 "우리 삶의 기반이 송두리째" 빼앗겼다는 인식이다. 남한 유일 단독 정부의 합법성을 부각시키고, 북한을 불법 집단으로 규정하는 식의 '뉴라이트' 역사관에 담긴 핵심 개념이 '1948년 건국'임을 감안하면, 박 대통령의 이같은 인식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건국 67주년'이라는 말 속에는 그 외에도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특히 관변단체 회장이 아니라 대통령이 직접 언급했다는 것은, 일반론적인 해석 수준을 넘어서 봐야 한다는 것이 정치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여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광복 70주년, 건국 67주년이라고 한 것은 보수, 진보 쪽을 다 아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엔으로부터 국가로 공인받은 게 1948년이므로, 건국 67주년이라는 표현도 틀리지 않다는 것이다. 황교안 국무총리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헌법 전문과 건국 개념, 독립 개념은 차이가 있다"며 이른바 '건국 67주년' 논란에 불을 지폈다. 황 총리는 "1948년은 정부가 수립된 해를 말하는 것이고, 1945년은 광복된 날을 이야기 하는 것"이라며 "다 헌법에 의해 정의되고 공감하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1948년 건국은 이승만 전 대통령 추종자들이 주장해왔던 내용으로, 이른바 '뉴라이트 사관'의 핵심이다. 노무현 정부의 '과거사 청산' 과정에서 반대 급부로 탄생한 뉴라이트는 2007년 새누리당 정권 창출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했는데, 그 결과는 '건국절 제정' 운동으로 이어졌고, 이명박 정부는 '대한민국 건국60년 기념사업회'를 출범시키는 것으로 화답했다. 그러나 이는 곧바로 비판에 부딛혔고, 제대로 된 사업도 추진하지 못한 채 폐지됐다. 그런데 2015년, 보수 정권 7년 차에 또 건국 논란이다. 또 이승만 논란이다.

이와 관련해 <프레시안>은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에게 자문을 구했다. 박 실장의 분석을 압축, 요약해본다.

"보수 세력이 '반공'으로 권력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진 상황에서 대안으로 나온 것이 집권 (보수) 세력의 없던 정통성을 만들어내는 전략인 것으로 보인다. 즉 1948년을 건국으로 보고, 나아가 이를 대한민국 발전의 시점으로 잡게 되면 많은 역사적 해석들이 달라진다. 이른바 '건국 정부'에 참여한 일제 부역자들은 애국심 있는 '관료'로 포장되고, 그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부각되며, 대한민국이 발전의 원동력으로 취급되게 된다. 일제 부역자들에 뿌리를 둔 보수 세력이 강조한 게 '자학 사관'의 폐기인데, 독재, 부역자 등 이런 어두운 역사를 부각시키는 것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학 사관'을 폐기하는 출발점은 '건국'의 정통성 세우기가 될 수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보수 진영 안에서 '뉴라이트'가 탄생했는데, 자신들이 주장하는 역사 인식을 널리 알리고 가르치고자 그들이 착수한 게 바로 교과서 개정이었다. 그들은 금성교과서를 타겟으로 삼는 한편, 뉴라이트 교과서 제작해 배포했는데, '뉴라이트 교과서' 채택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 상황이 벌어졌다. 이제 전략을 바꿔 '국정 국사 교과서'를 추진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들의 주장처럼 건국을 1948년으로 본다는 것은 이 외에도 여러 문제점을 내포한다.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임을 부각시켜 북한을 '범죄집단화'하고, 결국 '흡수 통일 대상'으로 설정하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게 된다. 대결적 남북관계를 조장하기 위해서라도 '건국'은 1948년이어야 하고, 이승만은 '국부'여야 한다."

보수 세력의 정통성을 부각시키고 외부의 강력한 적을 설정하는 것만큼, 보수 진영의 권력 유지 전략에 매력적인 것은 없다. 정부가 내놓은 광복 70주년, 건국 67주년의 슬로건은 '위대한 여정, 새로운 도약'이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는 독재와 대립의 어두운 역사가 아니라 '위대한 여정'을 해 온 밝은 역사라는 것이다 .

최근 이승만 전 대통령 예찬론을 펴고 있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비슷한 흐름 위에 놓여 있다. 김 대표는 그간 틈만 나면 좌파들의 역사관을 문제삼아 왔는데, 공교롭게도 김 대표의 부친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은 일제에 부역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보수 진영 정치인들의 뿌리가 대체적으로 이런 상황이니, '역사 세탁'은 꼭 필요하다. 일제 부역자 출신들이 '건국'의 일꾼으로 재포장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같은 내용의 국사 교과서가 국정화되면, 이 교과서를 접하는 것은 미래의 유권자다. '총성 없는 이념 전쟁'은 시작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참여한 역사학자들은 '근대 국민 국가' 사관을 정립할 필요성을 느꼈었다고 한다. 서양의 근대 개념과 국민 국가 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한 교육을 도입해 봉건 시대와 일제 강점기의 잔재를 빨리 탈피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친일 역사' 등 부끄러운 기억이 폐기됐다. 일본군 출신이었던 박 전 대통령의 '컴플렉스'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박정희 체제의 정당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진행된 '국민 국가' 교육은 이제 한계에 부딛혔다. 박근혜 정부는 '뉴라이트 교육'을 통해 보수의 정통성을 재정립하려 하고 있다. '국정 교과서 2.0'이다. 그러나 권력에 의해 진행되는 '역사 뒤틀기'는 필연적으로 왜곡을 불러 일으킬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작업'은 시작된 것 같다. 총성 없는 '역사' 전쟁이 또 시작될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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