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부의 궤변 "해킹 프로그램은 감청 설비 아냐"

사실상 국정원에 '면죄부' 유권 해석 내려주나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국가정보원이 '나나테크'를 내세워 구입한 해킹 프로그램에 대해 "소프트웨어는 무형물이라 감청 설비로 보기 어렵다"고 27일 주장했다.

최 장관의 해석에 따르면 불법으로 타인의 사생활을 지켜볼 수 있는 해킹 프로그램은 '감청 설비'가 아니다. 이 해석대로라면 국정원과 나나테크가 주무 부처인 미래부의 인가를 거치지 않고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 것은 합법일 수 있다. 사실상의 '유권 해석'을 내려준 것으로 볼 수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미래부 장관, 감청 프로그램 마음껏 구매해도 불법 아니라고?

이날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야당 의원들은 '국정원과 나나테크가 미래부의 인가를 받지 않고 해킹 프로그램인 'RCS(원격 접근 통제 시스템)'를 구입한 것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아니냐'는 취지의 질의를 집중적으로 했다.

최 장관은 이에 대해 "통신비밀보호법상 감청 설비는 전자 장치나 기계 장치와 같이 유형의 설비라고 간주하므로, 소프트웨어는 무형물이라 감청 설비라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현재까지 소프트웨어로 감청 설비 인가를 신청한 사례가 없다"고 덧붙였다.

최 장관은 "법적으로 감청이란 실시간으로 통화 내용을 엿듣는 것인데, RCS가 어떤 프로그램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면서 "실시간으로 엿듣기가 불가능하다면 감청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RCS는 '감청 설비'의 요건 가운데 '감청' 조건도, '설비' 조건도 충족하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최 장관의 이런 주장에서는 곤혹스러운 정부의 입장이 그대로 드러난다. 최 장관의 주장 그대로 해석한다면, 누구라도 해킹 프로그램을 사전 인가 없이 무차별적으로 수입할 수 있다. 국가 기관이라고 해도 몰래 수입하지 못하리라는 법이 없다.

인가를 받지 않은 감청 프로그램을 구입한 국정원의 적법성을 변호하느라, 상식적이지 않은 해석을 내놓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연합뉴스

국가 기관의 해킹은 그 자체로 불법이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앞서 "영장을 받고 적법하게 수행하는 도·감청과 달리 해당 해킹 프로그램은 해킹 대상을 한 번 속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는 감청을 떠나 해킹 프로그램을 사용하기만 해도 불법이 된다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해킹 대상자를 속이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감청 설비냐 아니냐의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사용 자체가 불법인 프로그램을 사들이는 행태를 미래부는 사실상 방치해온 꼴이다.

"실시간으로 엿듣기가 불가능하면 감청이 아니"라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반박이 나온다. 새정치민주연합 송호창 의원은 "장관은 실시간으로 감청할 수 있는가를 얘기하는데, 우리가 다 시연해봤다. 감염 상태에서 원격 조종해서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대화 내용 녹음, 촬영, 전송할 수 있는 것이 이 스파이웨어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반박했다.

앞서 새정치민주연합 문병호 의원은 '나나테크'가 미래부의 인가를 받지 않고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 것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상 미래부 장관의 인가를 받지 않고 감청 설비를 구입하거나 판매하면 불법이다. 나나테크는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하면서 미래부의 인가를 받지 않은 게 드러났다. 실제로 허손구 나나테크 대표는 2013년 2월 28일 이탈리아 해킹팀에 보낸 이메일에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은 한국에서 불법이기에 다른 고객을 찾기 어렵다"고 적었다. 허 대표 본인도 RCS를 들여오는 것이 '불법'이라고 인지했을 가능성이 점쳐지는 대목이다.

미래부의 희한한 논리…감청 소프트웨어 깔린 컴퓨터도 감청 설비 아냐

송호창 의원은 최 장관의 이런 '유권 해석'에 "소프트웨어를 구입할 때 USB나 CD에 담아올 수 있는 것 아닌가"라며 "전자 기계 장치에 담아서 들여온 해킹 프로그램은 감청 설비가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같은 해킹 소프트웨어라도, 하드웨어인 USB에 담아오면 '감청 설비'가 되고, 이메일로 받으면 '감청 설비'가 아니라는 논리로 나아갈 수 있는 모호함을 지적한 것이다.

같은 당 전병헌 의원도 "소프트웨어가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감청 설비가 아니라면, 적어도 스파이웨어를 최종적으로 모니터하는 컴퓨터는 감청 설비이므로 미래부의 인가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최 장관은 "감청 설비를 전자·기계 장치로 하는 건 법 조항이고, 시행령에는 범용으로 쓰이는 기자재에는 예외로 한다고 나와 있다"면서 "감청 설비는 그 자체로 감청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컴퓨터나 노트북, USB는 그렇게 보기 어렵다"고 재반박했다.

최 장관의 주장대로라면, '감청 소프트웨어'를 설치한 컴퓨터를 통해 타인의 컴퓨터를 해킹, 실시간으로 들여다 보더라도 그 컴퓨터는 '감청 설비'가 아니다. 미래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구매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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