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세월호 아픔'이 남긴 과제가 있다"

[전문] 항소심 첫 공판, 조희연 모두발언

지난해 교육감 선거에서 상대 후보 고승덕 변호사의 미국 영주권 의혹을 제기해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받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항소심 및 대법원 재판에서 1심 판결이 뒤집어지지 않으면,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다시 치러야 한다. 항소심 결심 공판은 다음달 7일이며, 그때까지 치열한 법리공방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등법원 형사6부(김상환 부장판사) 심리로 지난 10일 열린 항소심 첫 공판에서 조 교육감은 2심 재판에 임하는 소회를 자세히 밝혔다. 선거 당시 고승덕 후보에게 의혹을 제기한 건, '공직 후보 적격 검증' 차원이었다는 것. 그는 "공직 후보 적격 검증은 유권자의 올바른 판단을 위해 필수적"이라며 "다만 검증 활동의 정당성과 범위에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이 자리에 서 있는 것도 그런 견해의 차이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교육행정 경험이 부족한 교수 출신 학자를 교육감으로 선택한 것은, '세월호의 아픔을 겪으면서' 한국의 부모님들, 그리고 서울의 부모님들이 정말 '부모'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투표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꿔줄 사람을 간절히 바란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가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개혁을 시도한 배경에 대한 설명이다. 조 교육감의 자사고 정책에 반발한 일부 단체의 고발이 이 재판의 발단이 됐다. 조 교육감은 "저의 일부 정책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월호의 아픔을 겪으면서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을 향한 거대한 전환과 개혁의 과제를 저는 부여받았다고 생각하고, 모두를 아우르는 균형있는 교육행정에 매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지난 10일 항소심 첫 공판에 참가한 조 교육감의 모두발언 전문이다.

1. 제1심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단상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번 재판이 저 개인의 삶에서, 그리고 8만명에 달하는 서울교육가족에게 너무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변호사님께 제가 조금이라도 이야기할 수 있는지 묻고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허용해주셔서 재판부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4월에 이어 오늘은 저로서는 두 번째 법정에 서는 셈입니다. 38년만에 다시 법정에 선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만감이 교차합니다. 이번 재판을 받으며 1978년 대학생 시절 반독재 학생운동을 하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재판을 받을 당시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저의 최후진술을 듣던 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가 하는 말이 다 옳은데, 왜 하필이면 네가 그 자리에 서 있느냐". 그때는 학생운동으로 제적되고 투옥되면 거의 '인생이 끝나는' 거나 다름없던 시대였으니까,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아버님이 지금 살아계시면 어떤 말씀을 하실까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이해하는 이 사건의 본질은 <공직후보 검증을 위한 상호간 공방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밝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잘 아시듯이 교육감 선거에서 공직후보 적격 검증은 유권자들의 올바른 판단을 위해 필수적입니다.

다만 후보자간 검증 활동의 정당성과 그 범위를 둘러싸고 이견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도 그 견해의 차이 때문일 것입니다. 선관위, 경찰, 검찰 등 많은 판단주체들이 있습니다. 다양한 견해 차이를 갖는 주체들이 정의의 관점에서 판단을 다투고 법원이 최종 판단을 내리는 것이 재판이라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저의 진심이 현실에서 인정받지 못하는데서 오는 답답함과 억울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1심 재판에서도 그랬습니다. 1심 재판 이후 저의 답답함과 억울함을 표현한 것이 또 일부 언론에 의해서 거두절미되어서 마치 1심 배심원을 비난한 것처럼 보도되는 것을 보면서 더욱 답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공직후보 적격 검증과 관련된 저의 해명요구는 선거에서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에 근거했던 것이며, 유권자들의 올바른 판단을 돕기 위해 했던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과연 우리 헌법과 공직선거법 등 관련 법률체계에서 허용될 수 없는 것인지, 이번 항소심에서 현명한 판단을 받고자 합니다.

2. 이 사건은 제 입장에서는 무척 단순합니다. : 선거과정에서의 후보자 상호간의 공직적격 검증

잘 아시다시피,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유권자들의 판단을 위해 가장 중요한 후보자들의 TV토론은 세 차례나 있었지만, 지난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는 2014년 5월 23일 단 한 차례만 있었고, 그 후로는 후보자들 사이의 정책공방과 공직적격 검증을 위한 상호토론의 기회가 없었습니다.

TV토론 이후 고승덕 후보에 대해 몇 가지 의혹이 있었고, 그 중 하나가 '고승덕 후보와 자녀들의 영주권 의혹'이었습니다. 저는 후보자 사이의 공방을 하자는 차원에서 기자회견을 통해서 공개적으로 고승덕 후보께 의혹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습니다.

이러한 해명요구에 대해, 고승덕 후보께서는 정중하게 공개편지 형식으로 답을 주셨습니다. 자녀들의 영주권 문제에 대해서는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다고 인정했고, 본인의 영주권 보유 여부에 대해서는, 91년 귀국한 이후 10년 가까이 미국으로 출국한 사실이 없고, 또한 자신의 책에서 영주권이 없다고 밝혔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부인했습니다.

당시 언론은, 저의 '의혹 해명요구'와 고승덕 후보의 '해명 내용'을 함께 기사화 했습니다. 언론은 저와 고승덕 후보의 자발적인 '2인 토론회'를 생중계한 셈이었고, 유권자들은 마치 관객처럼 이 상황을 목격하면서 나름의 판단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고승덕 후보의 주관적 주장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정중하게 공개답신 형식으로 '조금 더 객관적 자료로 소명해주십시오, 우리는 미진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다시 해명을 요구헀습니다. 그런 답신을 보낸 상태에서 다음 날 아침 라디오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도 객관적 자료로 해명이 되지 않은 상태라, 저는 진행자가 여러 질문 중 하나로 물어본 것에 대해 전날 답신 내용을 읽듯이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5월 27일 오전에 고승덕 후보가 여권사본 공개로 해명을 하면서 동시에 저를 서울시선관위에 고발했습니다. 저로서는 여전히 100% 완벽하게 입증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 정도면 영주권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공방은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지난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저의 해명요구로 시작된 고승덕 후보의 영주권에 대한 공방은 고승덕 후보의 지지도를 낮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승덕 후보의 해명과, 제가 그 해명을 받아들이는 모양새가 되면서, 저의 지지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크게 미칠 우려가 많았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직후 고승덕 후보의 자녀인 캔디고의 편지가 이슈가 되면서, 고승덕 후보의 영주권에 대한 공방이 유권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저로서는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했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제게 불리할 수 있는 일을 알면서도 제가 해명요구를 하게 된 것은, 여러 정황상 고승덕 후보가 영주권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가능한 상황에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고승덕 후보 본인의 해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책 공방이 아닌, 특히 상대후보의 지지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개인 신상에 관련한 인물검증 논란을 피하고 싶었지만, 공직후보 적격검증과 관련된 정보는 유권자들에게 정확하게 충분하게 제공되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영주권 없음이 밝혀졌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고승덕 후보에게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3. 저의 숙제

사실 오랫동안 교육감을 준비하지도 않았고 교육감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던 저는, 작년 초 어느 날 '운명처럼' 교육감 선거에 '불려나왔습니다'

저는 출마를 최종결심하면서 어린 시절 듣던 성경귀절을 떠올렸습니다. 마지막 갈릴리 바닷가에서 예수가 베드로에게 말합니다.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네가 젊어서는 네 마음대로 다녔으나, 나이가 들면 사람들이 너에게 다가와 네 허리에 띠를 띄우고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저는 그저 평범하게 '바른말하는, 약간 존경받는 학자'로서 평탄한 길을 살아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김상곤, 곽노현 전 교육감들께서 모두 민교협 의장이었던 것처럼, 저도 민교협 의장을 한 연유로, 평탄하게 살던 제 삶에 일순간 변화가 생겼습니다. 선거에 나서기로 결심하면서 저는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기왕 나섰으니, 현재의 '아이들을 죽이는 교육'을 '아이들을 살리고 행복하게 만드는 교육'으로 만드는 일에 투신하자" 그리고, 30여년 동안 비판적 지식인으로 받은 훈련과 지적 고민, 그리고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를 만들고 사회운동을 한 경험이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출마한 이후 '운명처럼' 교육감에 당선되었습니다. 유권자들이 저처럼 교육행정 경험이 부족한 교수출신 학자를 교육감으로 선택한 것은, '세월호의 아픔을 겪으면서' 한국의 부모님들, 그리고 서울의 부모님들이 정말 '부모'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투표한 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꿔줄 사람을 간절히 바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당선된 것도 '운명처럼' 되었던 것 같은데, 돌이켜 보면, 당선 이후 제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침(浮沈)의 길로 들어선 것도 운명 같습니다. 1심에서 교육감직을 잃을 수도 있는 판결을 선고받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저는 저를 교육감으로 선택해 주신 학부모님들의 마음을 실현하기 위해, 때로는 거친 비판에 직면하면서도, 지금도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을 향한 개혁 작업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의 일부 정책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월호의 아픔을 겪으면서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을 향한 거대한 전환과 개혁의 과제를 저는 부여받았다고 생각하고, 모두를 아우르는 균형있는 교육행정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저에 대한 재판결과가, 많은 비용을 들인 교육감 선거를 또다시 치르게 하고, 나아가 서울시 교육행정의 공백을 초래하며, 저에 대한 투표를 통해 표출된 학부모님들의 마음을 안정적으로 이어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자책 때문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저는 저에 대한 이 재판의 무게를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 무게를 감당하면서 저는, 그래서 더욱 이 재판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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