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신경숙 씨의 표절 논란이 크게 번지며, 문단 내부에서는 처절한 자기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신 씨의 표절 의혹은 15년 전부터 제기돼왔지만, 문단 내 상업주의와 성장주의가 건전한 문제 제기를 가로막아 결국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는 지난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최근의 표절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 제하의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지난 16일 작가 이응준 씨가 16일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 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이라는 글을 발표한 이후 폭증하는 표절 논란을 차분하게 바라보기 위한 자리다.
문인과 평론가들은 이번 표절 문제에 대해 신 씨 개인 차원을 넘어 문단계 전체가 다 함께 성찰해야 할 문제로 보고, 사태의 원인과 개선 방안을 짚어나갔다.
"치매 상태에서 집 나간 건 '엄마'가 아니라 '한국 문학'"
발제에 나선 문학평론가 이명원 경희대학교 교수는 이번 사태에 대해 '이해관계 동맹체'로 변질된 문단의 비극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우선 신경숙 작품의 표절 의혹에 대해 "명백한 표절이고 의식적인 표절"이라며, 과거에도 한 차례 논란이 있었음을 지적했다. 그는 "15년 전에 매듭을 짓고 생산적으로 논의할 문제가 지연돼서 억압돼 남아있던 것이 과거로의 회기를 초래했다"고 했다.
과거 굵직한 표절 논란에도 신경숙이 문단의 비호를 받은 이유에 대해 "신경숙은 '환금성'이 탁월한 작가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2000년대를 거치면서 문학출판이라는 게 이해관계 동맹으로 변주되며, 비평가들도 출판사의 압력 속에서 반체제 지식인이 아닌 산업적 메커니즘의 일부로서 기능을 잃어버렸다"는 것.
"신경숙의 표절 사태는 한국문학이 이렇게 돈과 패거리 권력으로 무장되어 경과했던 10년 실험이 희비극적으로, 어떤 희망 없는 변곡점에 도달한 사건으로 인식돼야 한다. 치매 상태에서 집 나가 행적을 알 수 없는 건 신경숙 소설 속의 '엄마'가 아니라 오늘의 '한국문학'이다."
문학평론가 오창은 중앙대학교 교수는 발제를 통해 이번 사태를 '한국 대표작가를 키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결과'라고 규정했다.
오 교수는 이 교수와 마찬가지로 과거 표절 의혹 제기가 있었음에도 묻힌 데 대한 성찰을 주문했다. 그는 "한국 문학에서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와야 한다는 욕망이 '신경숙 신화'를 가능하게 했다며, 이는 결국 한국사회가 갖는 성장주의 담론이 문학계에서도 퍼진 결과"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번 표절 논란에 대한 대중의 분노 또한 '성장에 대한 강박'에서 기인한다며, 문단과 독자 모두 문학의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 자문자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효인 시인은 최고의 작가를 만들어 한국 문학의 대표적 상징을 만드는 것보다는 '1만 명의 독자를 가진 50명'의 작가가 있는 사회가 훨씬 건강하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다. 문학은 대표적 상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학적 상징이 향유되는 감성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해야 온당하다."
"신경숙 사태, '셰프의 시대'의 징후"
이날 유일하게 창작자의 입장에서 자리한 시인 심보선 경희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이윤 지상주의'와 '한국문학 지상주의'가 기이한 방식으로 결탁"된 데서 문제의 원인을 찾았다.
심 교수는 창비와 문학동네가 밝힌 해명 문구 가운데 '한국문학과 동고동락해온 출판사', '한국문학이 독자의 신뢰를 찾아가겠다' 등 표현에 주목했다. 그는 "이윤 지상주의와 한국문학 중심주의의 결탁 속에서 상업성과 문학성을 모두 지닌 특정 작가에 대한 무한 애정이 조직문화로 자리를 잡고 있다"며 "이것이 바로 끝내 표절을 표절이라 말하지 못하는 사태로 만들었다"고 했다.
정은경 원광대학교 교수는 앞선 분석들에 동의하며, "결국 지금의 '신경숙 사태'는 가치 지향성을 전부 폐기한, 옷 잘 입고, 잘 먹고 사는 '셰프의 시대'의 징후"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신경숙의 표절은 의도된 것이 아니라, 과도한 '필사' 훈련이 낳은 폐해라는 점도 지적했다. 신경숙이 평소 매진하던 필사 훈련이 결국 타인의 생각이나 글귀를 자신도 모르게 모방하도록 했다는 것. 그는 다만 "능력 있는 작가들은 드러나지 않게 자기화해서 재창조하는데, 이렇게 논란이 됐다는 것은 신경숙이 작가적 역량이 없다는 얘기"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1990년대 이후 한국문학의 창작 방법이 체험을 도외시하고 책상 위에서 이뤄지는 필사 훈련과 같은 기능 훈련으로 흘러버렸다"며 또 다른 신경숙 사태를 우려했다.
"징계 시스템 필요" VS "자율성이 글쓰기 힘"
토론자들은 표절을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했다.
이 교수는 사태의 스캔들화에 대해 경계한다는 점을 전제한 뒤, 작가와 출판사 모두 표절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일 것을 촉구했다. 그는 특히 이날 신 씨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힌 사과가 미진했다고 보고, "표절이 맞다는 것을 정확하게 확정하고 어떻게 책임질지 얘길 해야 한다"고 했다. (☞관련기사 : 신경숙 표절 인정 "내 기억 믿지 못해")
토론자들은 표절의 유혹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점에서 문학 공동체 안에서 함께 고민할 문제라며, 작가 윤리 규정, 표절 관련 기준 등을 세밀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징계 여부에 대해선 의견이 갈렸다.
오 교수는 "표절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문학 내부의 자율이라는 이름 아래 방치돼왔다"며 "문학 윤리 위반 사건에 대한 내부 징계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원옥 계간 '문화과학' 편집위원 역시 "표절은 치명적인 범죄"라며 "표절 피해자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반면, 심 교수는 "글쓰기의 기본 규칙을 위반한 행위로, (신경숙이) 이에 대해 문학적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도 "자율성이 글쓰기의 힘"이라며 징계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정 교수 역시 "징계 시스템 도입은 반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뭇 대중처럼 (신경숙에게) 돌을 던질 게 아니라 마녀사냥처럼 번져가는 기이한 집단 광기의 횃불이 되어선 안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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