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과' 받는 朴 대통령, 어떤가요?

박근혜가 지목한 두 희생양, 문형표와 삼성병원

메르스 사태로 정부의 무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두 명의 '희생양'이 나왔다.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 그리고 삼성서울병원장이다. 박 대통령은 17일 중앙메르스대책본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례적으로 문 장관과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을 몰아세웠다. 지난 1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정부의 초동 대응이 미흡했다"고 문 장관을 질타한 후, 보름 이상 문책성 발언을 자제하던 그였다.

박 대통령은 현장에서 문 장관에서 수차례에 걸쳐 "확실하게 돼 가고 있는 거죠?", "완전히 통제를 하고 있는 상황이죠?", "(폐쇄 조치 등 신속하게 진행) 그렇게 되고 있나요?", "보수적으로 봉쇄를 해야 되지 않나요?" 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문 장관은 답변을 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희생양은 정해진 듯하다. 이는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비판받고 있는, 박 대통령 특유의 태도와 관련이 있다. 정부의 초동 대응 미흡, 그리고 2차 진원지인 삼성병원 통제 실패 등 연이은 실패에 대한 책임 소재를 문 장관과 삼성서울병원장에게 돌리고 있는 셈이다.

물론 문 장관과 삼성서울병원장의 책임은 크다. "병원이 아니라 국가가 뚫린 것"이라고 강변했던 삼성서울병원의 당당함은 국가와 민간 모두가 메르스와의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삼성서울병원은 며칠 못가 이 발언을 주워담아야 했다. 정부의 초반 안일한 대응이 불씨를 만들었고, 삼성서울병원의 정부에 대한 불신은 기름이 돼 부어졌다.

삼성서울병원은 2차 저지선을 지탱하지 못했다. '민간 전문가' 집단으로 자부심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치외법권 지대"와 같았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치외법권 지대"의 비유는 정부의 '비밀주의'와 삼성병원의 '오만함'을 동시에 지적한다.

<프레시안>이 취재를 통해 삼성서울병원의 문제점을 선제적으로 제기했을 때도 복지부는 'D병원'이라는 해괴한 이름을 고수했다. 심지어 D병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부는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 슈퍼전파자인 14번 환자와 접촉한 이송요원은 D병원이라 불리던 시점인 지난 2일부터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을 했다. 이 이송요원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정부도 몰랐고, 병원도 몰랐다.

▲ 박근혜 대통령이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으로부터 사과를 받고 있다. 송 원장은 "메르스 사태 때문에 대통령님과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드렸습니다"라며 박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였다. ⓒ청와대

메르스 사태 사과받는 대통령, 어떻게 보십니까?

박 대통령이 문 장관과 삼성서울병원을 비판한 것은 틀리지 않았다. 청와대도 초반부터 두 핵심 방역 주체의 실패를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아끼던 박 대통령이 이날 메르스 사태의 책임자로 사실상 두 주체를 부각시킨 것은 모종의 '정무적 기획'의 냄새가 난다. 마침 새누리당 안에서도 문 장관을 경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병을 키운데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바닥 민심에 민감한 김 대표는 아마도 발 빠르게 올라오는 '여론 리포트'에 근거해 이같은 발언을 던졌을 것이다.

문 장관은 경제 전문가로 "연금 개혁을 위한 '원 포인트 장관'"이라는 정치권 안팎의 비판을 그간 감내해 왔다. 그런 그에게 메르스와 같은 감염병 대처는 애초에 무리였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사스를 제압한 질병관리본부와 메르스 제압에 실패한 질병관리본부는 같은 조직이다. 부처 수장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단적인 예로 보건 분야의 '비전문가'였던 장관의 대통령 대면 보고는, 첫 확진환자 발생 이후 무려 엿새 후에 이뤄졌다. 두 가지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으나, 확신이 없어 대면 보고를 강하게 주장하지 못했다거나, 청와대가 문 장관의 강한 요청을 무시했거나. 청와대와 문 장관 모두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셈이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제대로 대응했는가 하는 질문에 부딪힌다. 청와대 안에서는 메르스 사태 확산 초반 국면에 "상황이 심각하다"는 목소리가 나왔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같은 의견은 "극복할 수 있다"는 이른바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묻혔다. 청와대 안에서도 정무적 판단에 민감한 이들과 이른바 전문가 및 대통령 측근 그룹 간 모종의 긴장 관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를 중시하고 측근들을 믿는 박 대통령의 특성상, 이같은 기싸움의 결말은 예상 가능하다.

다른 것은 다 차치하더라도, 확실한 것은 있다. 문 장관의 인사권자는 박 대통령이다. 총리가 부재한 지금 대통령은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그것이 맞는 일이다. 박 대통령은 국정 운영의 최고 책임자다. 그런 박 대통령이 문 장관을 몰아세우고, 민간 병원장으로부터 "대통령과 국민께 죄송하다"는 말을 끌어냈다. 현재 전체적인 '그림'은 '사과받는 대통령'의 모습으로 완성되고 있는 중이다. 청와대가 배포한 '사과받는 대통령' 사진 한장에 청와대의 의중이 녹아 있다. 대통령의 잘못은 온데간데없다. 지난 2년 반 동안 봐왔던 익숙한 풍경이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도 맞다. 다만 일선 공무원과 의료진에 대한 격려 행보를 하고 있는 박 대통령이, 근래 행보의 일관성을 이어가고 싶었다면 사과를 받는 어제와 같은 장면은 없었어야 했다. 메르스 사태를 종식시킨 후, 대통령 본인부터 사과한 후, 책임 소재를 가려 문책하는 게 더 수긍이 가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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