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6자회담 수석대표가 6자회담에 응하지 않는 북한을 끌어들이기 위해 새로운 카드를 꺼냈다. 북한 인권 문제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고 이를 통해 대화의 테이블로 나오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인권 문제에 극렬하게 반발하고 있는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전략이 북한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일각에서는 한미일 3국이 북한 인권 문제를 꺼내 든 것은 6자회담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마저 나오고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미국이 북한의 저항과 군사적 도발을 유도하기 위해 인권 문제를 언급한 것이라고 관측했다. 미국이 동북아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3각 군사 동맹을 강화할 필요가 있는데, 북한의 군사적 도발은 동맹을 강화하기에 더없이 좋은 구실이라는 설명이다.
남북대화도 막혀있고 한미일도 북한 압박 기조를 이어가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에서도 북한을 압박하는 메시지가 발표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이와 더불어 한반도 내 사드 배치 문제도 논의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대해 대담에 함께한 황재옥 (사)평화협력원 부원장은 "사드 배치가 동맹국인 한국의 국익과 안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측면을 강조해야 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정리를 하고 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 전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개선하지 못한 현 상황에서 사드 배치에 동의만 해주고 돌아온다면 "경제가 내리막길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고, 외교적으로 발언권이 줄어들게 된다"며 "박근혜 대통령 시절부터 경제, 외교 양 측면에서 위기에 봉착하게 됐다는 비판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 정상회담 때 박 대통령이 제대로 사드에 대한 선을 그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담은 지난 4일 서울 동교동에 위치한 김대중도서관에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다음은 이날 대담의 주요 내용이다.
프레시안 :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정부를 보면서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보는 것 같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이 형편없다는 건데요. 북핵 문제도 우리 사회가 처한 위기 중에 하나인데, 정부가 이를 다루는 방식이 좀 이상합니다. 인권문제를 통해 북한을 압박해 6자회담 테이블로 이끌어내겠다는데, 인권 문제가 북핵 문제를 푸는 고리가 될 수 있을까요?
황재옥 :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인권문제를 굉장히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북한을 상대로 인권 개선을 목표로 접근해도 힘든데, 6자회담에 나오게 하기 위해 인권 문제를 끌어들인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의문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및 대외정책으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내놓았습니다. 서유럽의 다자 안보협력기구와 같은 시스템을 도입해서 동북아 내 평화와 안정을 구축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하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가 빠져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많은 측면에서 '헬싱키 프로세스'와 닮아 있습니다. 헬싱키 프로세스는 경제나 과학·기술 등의 협력을 통해 관계를 개선시키고 동유럽의 인권 문제까지 논의를 확장시키는 것인데요. 박근혜 정부는 북한과 교류가 거의 전무한 상황입니다. (1975년 '헬싱키 협약'을 토대로 진행된 '헬싱키프로세스'는 안보와 경제협력, 인권을 묶어, 서유럽국가들이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개방을 유도했던 전략이다. 초기에는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이 동유럽 및 소련에 대한 경제 지원으로 시작됐고 이후 군사 문제와 인권 문제로 논의를 확장했다. 편집자.)
여기에 6월에는 서울에 유엔 북한 인권사무소가 개소됩니다. 미국과 유엔 등 다자기구를 통해 전방위적으로 북한 인권 문제를 압박해 들어가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압박을 하면 열세에 처한 북한이 대화 테이블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오히려 도발의 강도가 높아지지는 않을지 우려됩니다.
정세현 : 헬싱키 프로세스의 핵심은 미국과 서유럽이 동유럽과 소련을 상대로 처음에는 처음에 경제·과학·기술·문화 분야의 교류를 활성화하면서 마지막에 인권 문제를 걸고 들어갔다는 점입니다. 서유럽에서 동유럽의 인권 개선을 요구했을 때 동유럽이 이를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교류와 협력, 지원을 통해 의존성을 높여놓은 것이 주요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추후 미국과 소련의 군축협상으로 이어진 겁니다.
박근혜 정부는 인권문제가 헬싱키 프로세스의 중요한 이슈였다는 사실은 아는데 이같은 선후 관계는 모르는 것 같습니다. 헬싱키 프로세스를 한반도에 적용하겠다면서 인권을 맨 앞에 가져다 놓은 것인 한 마디로 개념이 없는 겁니다. 북한이 남한에 의존하는 상황을 만들기는커녕, 남북 간 접점도 만들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권문제를 먼저 거론하겠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중국과 러시아는 한미일의 이러한 접근 방식에 동의하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나라의 6자회담 대표인 황준국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이 중국을 다녀왔는데, 아마 중국의 6자회담 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 사무 특별대표는 콧방귀를 끼었을 겁니다. 대문으로 한참 걸어 들어간 뒤에 안방에 도착해서야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대문 앞에서 꺼냈으니 앞뒤가 안 맞는 구상이라고 판단했을 겁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박근혜 정부를 비롯한 한미일 3국은 왜 이렇게 순서도 맞지 않고 실현 가능성도 낮은 구상을 밀어붙이려고 하는 것일까요? 저의가 의심스럽습니다.
미국은 그동안 '전략적 인내'라는 미명하에 북핵 문제 해결을 사실상 방치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선(先)행동과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자신들의 사보타주(sabotage)를 정당화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여기에 한술 더 떠서 북한과 긴장을 고조시키기도 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암살을 다룬 영화 <인터뷰>제작사인 소니픽처스 엔터테인먼트의 해킹을 북한 소행이라고 단정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연초에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와 인터뷰에서 인터넷으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겠다며, 북한은 결국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은 이같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철회되지 않는 한 6자회담에 나서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달 28일부터 4박 5일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해서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한의 고위급 인사들을 만났던 하르트무트 코쉬크 독일 연방의원 역시 북한의 이러한 입장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살펴봤을 때 6자회담과 인권 문제의 연계는 정말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한 것이 아닌, 더 극단적이고 격렬한 북한의 대응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마침 북한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끝난 이후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사출 장면 공개를 비롯해 도발적인 행위를 벌였습니다. 미국은 이러한 북한의 도발 행위가 반가웠을 겁니다. 지난 4월 27일(현지시각) 개정한 미·일 방위협력지침의 연장 선상에서 한미일 3각 군사 동맹을 강화시킬 수 있는 명분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 핑계 대고 한미일 군사 동맹을 강화해서 중국을 압박해 들어갈 수 있다는 계산을 하는 겁니다.
한편으로 중국은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만들고 있습니다. 중국의 인공섬 건설은 미국이 필리핀과 인도 등을 이용해 남쪽에서부터 올라오는 자국 압박을 견제하겠다는 의도가 있습니다. 인공섬부터 일정한 구역까지는 중국의 영해가 되기 때문에 미국은 그 영해로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게 되는 겁니다.
이렇듯 현재 아시아에서는 곳곳에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북핵은 동북아 내 미·중 세력 다툼의 과정에서 미국의 대(對)중국 견제의 좋은 구실로 쓰이는 겁니다.
박근혜, 부끄러운 기록 남기지 않으려면
프레시안 : 한미일 군사협력이 강화되는 징표로 한반도 내 사드 배치가 구체화될 가능성이 있는데요. 오는 14일로 예정돼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 때 사드 도입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요? 정부는 여전히 사드에 관해 어떤 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다는 이른바 '3NO'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미국은 사드 배치에 적극적인 것 같습니다.
실제 지난 5월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방미 때 미국에서 사드 배치 이야기를 꺼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사드 배치가 동맹국인 한국의 국익과 안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측면을 강조해야 합니다. 특히 중국과 관계가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최근 사드와 관련해 8시간 안에 탐지거리를 변동시킬 수 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단거리에서 원거리 탐지용 모드로 전환할 수 있다는 건데요. 이는 북한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남한에 배치되는 사드가 언제든 중국 방어용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중국이 한반도 내 사드 배치를 계속 반대하는 건데요. 이런 상황에서 사드를 배치하면 우리가 받을 경제적 피해는 적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의 경상 수지 흑자가 892억 달러입니다. 이 중에 중국으로부터 벌어들인 외화가 600억 달러 정도입니다. 사실상 무역 수지의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사드를 배치하면 중국이 가만히 있을까요? 쉽게 생각해서 중국에서 돈 벌어서 미국의 무기를, 그것도 중국을 겨냥한 무기를 사는 건데 중국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을까요?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적 보복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중국이 설마 우리한테 경제적 보복까지 하겠느냐는 전망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우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수입해서 쓰던 것 대만에서 얼마든지 가져올 수 있습니다. 중국이 우리한테 기술을 의존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정치와 경제는 분리해서 접근할 수 있는 문제라고 하지만, 국제관계에서 정경분리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비용 문제도 있습니다. 사드 포대 1개는 발사대 6기와 미사일 72발, 레이더, 통제소 등으로 구성되는데요.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최대 2조 원입니다. 한반도 전역을 방어하려면 2~3개는 필요한데, 이 비용을 우리가 부담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드 배치 비용은 비용대로 나가고, 중국으로부터의 경제 보복까지 당하면 이것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국내 내수 경기가 많이 힘들다고 합니다. 여기에 메르스 여파로 경기 침체 우려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마당에 수출을 통해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이것마저 놓쳐버리면 정말 답이 없는 상황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런 위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드에 대해 확실히 이야기하고, 한미동맹 강화는 수사학적인 표현으로 끝냈으면 좋겠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미·일 군사 동맹이 강화되면서 미국의 태도가 좀 달라졌습니다. 과거사 문제에서도 우리에게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습니다. 정상회담을 할 때는 주는 것과 받는 것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식이라면 우리가 미국에서 챙겨올 수 있는 것이 없을 것 같은데요. 박 대통령이 이번 방미에서 사드 문제를 비롯해 미국으로부터 무엇을 챙겨올지에 대한 명확한 목표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박 대통령이 사드 문제에 대해 좀 더 공격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 미군이 오산 공군기지에 활성화된 탄저균을 들여와서 물의를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이 사안을 적절히 이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지구상 가장 강력한 독소'로 규정된 보툴리눔까지 한국에 통보 없이 들여와 실험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들을 박 대통령이 현명하게 이용해야 합니다.
박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국민들 사이에 미국에 대한 정서가 좋지 않다. 탄저균 문제만 해도 아무리 미군기지 내부라고 하지만, 실험을 하려면 누출이 되지 않게 하든가. 엉성하게 했다는 것 자체가 한국을 우습게 본 것 아니냐, 이것 떄문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상황을 설명해 줘야 합니다. 여기에 사드까지 얹으면 한국의 대미 여론이 나빠질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나는 우리 국민들이 미국을 싫어하게 됐을 때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할 자신이 없다"는 식으로 협상을 이끌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한미 동맹 강화 좋습니다. 그런데 실속 있게 강화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무엇을 얻어내기는 힘들고, 그렇다면 사드 문제라도 확실하게 선을 긋고 오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실 이 문제만 매듭짓고 와도 중국으로부터 벌어들이는 외화를 보전하는 것이니까 돈 벌고 오는 거나 다름 없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한미일 3국이 북한 인권을 언급한 것으로 미뤄보면,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을 압박하는 메시지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요. 이렇게 되면 박근혜 정부에서 앞으로 남북관계 개선은 어려워지는 것 아닐까요?
정세현 :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되면 역사적인 차원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남북관계도 개선하지 못한 채 미국이 하라는 대로 한반도 내 사드 배치에 동의해주고 오면 예상되는 결과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경제가 내리막길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고, 두 번째는 외교적으로 발언권이 줄어드는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부터 경제, 외교 양 측면에서 위기에 봉착하게 됐다는 비판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 정상회담 때 박 대통령이 제대로 사드에 대한 선을 그어야 합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정부도 문제지만 이런 정부를 제대로 견제해야 할 야당이 외교 안보 사안에서는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황재옥 : 박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사드 배치 문제를 꺼냈을 때 협상에서 힘을 발휘하려면 국회에서 이 문제를 좀 더 이슈화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대통령도 미국과 협상에서도 힘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야당은 그 흔한 대변인 성명도 발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야당은 남북관계와 대외관계 관련 이슈는 건드려봤자 손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보수와 진보라는 프레임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정세현 : '종북' 프레임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이 프레임 극복하지 못하면 집권하기 어렵습니다. 탄저균 문제, 사드 배치 문제, 북한 문제 등을 가지고 대통령이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뒤에서 밀어주는 것이 어떻게 종북입니까?
한국에 무기 구입 강요하는 미국, 그 뒤엔
프레시안 : 그동안 한국은 동맹, 혈맹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무기를 많이도 사들였습니다. 이번 사드 문제도 비슷해 보이는데요. 매번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 근원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세현 :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사실상 미국을 좌지우지하는 구조가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동안 우리는 한미 동맹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미군 무기를 많이 구입했습니다. 한미 동맹 강화는 곧 미군 무기 구매 액수 증가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는 곧 미국 군산복합체의 배를 불려주는 행위입니다.
지난 5월에 열린 제주 포럼에서 미국의 동아시아 전문가들이랑 이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들은 미국이 실질적으로 군산복합체 때문에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군산복합체가 미국의 국제적인 힘도 유지하게 해주지만, 실질적으로 경제에도 보탬이 된다는 겁니다.
미국에는 다수의 군산복합체가 있는데 이들의 협력업체라고 부를 수 있는 소위 '하청업체'들이 주(州)별로 있다고 합니다. 일부러 나눠놓았다는 건데요. 군산복합체에서 하청을 줄 때 이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통령이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표가 왔다 갔다 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안보 전문가들이 군산복합체에 필요한 이론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특정 지역의 안보 상황이 위태롭다고 이야기해서 미국의 무기를 사서 방어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전문가들이 군산복합체의 이익에 종사하는 셈입니다.
이런 원리는 북한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북한 전문가들이 북한의 군사력이 강화됐다고 이야기하면, 우리는 그걸 그대로 믿고 무기를 들여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전문가가 칼럼이나 한국에서 열리는 학술회의에 와서 이야기하면 그것이 진실이 됩니다. 그런데 이들 중에는 군산복합체와 물밑으로 연결돼있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따라서 북한의 핵 능력과 미사일 정보가 정말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 재조명해봐야 합니다.
실제 미국 내에서 일찌감치 '북핵 협상 무용론'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이 약속을 안 지켰다고 강조하면서 협상이 필요 없다는 식으로 여론을 조성하는 것인데요. 이 배후에는 군산복합체가 있었습니다.
군산복합체 입장에서는 북핵이 협상으로 해결되면 무기를 팔 곳이 없어집니다. 일단 협상을 통해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남한의 무기 시장 규모는 현저하게 줄어들 것입니다. 더 나아가 동아시아에도 군비가 감축되기 시작할 겁니다. 이렇게 되면 미국 군산복합체를 비롯, 미국 국가 경제 자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일부에서는 학자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고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 중에는 군산복합체뿐만 아니라 자금을 받고 있는 곳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 미국 내에서 일본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을 별도로 분류한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글을 쓸 때 그 포인트를 계산해서 그 전문가가 속한 연구소에 연구 기금을 제공하기도 한답니다. 그러다 보니 이를 계산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도 생겨납니다.
학자들이 '전문적인 분석'이라는 탈을 쓰고 미국 군산복합체 이익의 영속화와 확대를 정당화시켜주는 정보 해석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 우리도 명확히 인식하고, 북한의 군사력이나 대남전략 등에 대해 독자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대통령과 주변 참모를 비롯해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이런 측면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학문 자체의 탄생 배경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국제정치학'이라는 분야는 세계 2차대전 이전에만 해도 없었던 학문입니다. 그러다가 2차 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을 주축으로 하는 냉전 시대에 접어들었을 때 미국이 자국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학문이 국제정치학이고 제국 경영론입니다.
사회과학 중에서도 정치·경제·사회 관련 이론은 기본적으로 그 이론이 태어난 국가나 사회를 기반으로 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확실하게 이야기한다면 그 사회의 역사나 지향점 등을 정당화하는 이론 체계가 이른바 '학술 이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학문에는 국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배우는 것과 모르고 배우는 것과는 다릅니다. 국가의 정책을 입안하려면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미국과 우리의 국가 이익이 똑같을 수 없고, 미국의 국가 이익을 보장하는 틀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그 안에서라도 나름 우리의 국가 이익을 챙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약자의 공갈'도 칠 수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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