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 "'옥시'는 왜 살인을 인정하지 않나?"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끝나지 않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

영국 매체 <가디언>, 한국의 가습기 살균제 참상 대서특필

영국의 대표적 진보 언론 <가디언>은 지난 5월 24일 일요판 <옵서버>에서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가습기 살균제의 참상을 영국 국민에게 알렸다. 특히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한국 옥시레킷벤키저의 모기업 영국의 레킷벤키저에 항의하러 온 한국의 항의 원정대의 활동을 자세하게 전했다.

<가디언>은 원정대 일행으로 영국을 찾아간 소방관 김덕종 씨의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김 소방관의 여섯 살배기 아들 성준이는 경북대학교병원에 입원한 지 엿새 만에 숨지고 말았다. 그는 자식이 왜 죽었는지도 모른 채 지냈다. 그러다 2011년 8월 질병관리본부가 원인 미상 폐 질환이 가습기 살균제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발표한 것을 전하는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서야 아들이 왜 죽었는지를 알아차렸다.

화재나 재난으로 목숨을 잃을 위기에 놓인 사람을 구하는 소방관인 아빠가 아들의 목숨을 구하지 못한 것은 그에게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됐다. 그는 공무원 신분임에도, 혹 나중에 있을지 모를 불이익이나 따가운 시선을 뿌리치고 휴가를 낸 뒤 멀리 이국땅으로 날아가 시위를 벌였다. 아들에 대한 회한과 사실상 '살인'을 저지르고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기업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김 소방관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같은 이름의 또 다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눈앞에 떠올랐다. 2년 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환경 조사 때 만났던 올해 열세 살의 임성준 어린이다. 그해 크리스마스 때 나는 그린 산타 복장을 하고 성준이의 집을 깜짝 방문해 선물을 주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했다.

▲ 영국에 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사연을 기사로 쓴 <가디언> 화면 갈무리.

가습기 피해자 두 어린이 김성준과 임성준의 엇갈린 운명

성준이는 치명적 호흡기 질환에 걸려 2004년 돌 때부터 인공 호흡기에 의지해 살았다. 저 스스로 숨을 잘 쉴 수 없었던 성준이 곁에는 늘 산소 공기통이 함께했다. 몸집이며 키며 모두가 또래 아이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자그마했다. 지금도 그렇다. 초등학교도 제때 다닐 수 없었다. (☞관련 기사 : 지옥에서 보낸 10년! 누가 '천사'의 날개를 꺾었나?)

엄마 권미애 씨는 성준이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 이 호흡기 질환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임을 뒤늦게 알 수 있었다. 권 씨는 아들에게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몸에 좋다고 해서, 아이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서 사서 쓴 제품이 외려 몸과 가정을 파괴하는 흉악범이 됐다. 그래서 힘들어하는 아들을 휠체어에 태워 한국방송(KBS)의 <강연 100℃>에도 출연하고 국회 공청회에도 참석해 아들과 가족의 고통을 말했다. 그것이 동병상련하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사연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통로 구실을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10여 년이 지난 요즘에는 성준이가 약간씩 몸이 좋아지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권 씨와 성준이 외에도 가습기 살균제의 참상과 옥시레킷벤키저를 비롯한 가해 기업들의 부도덕과 파렴치를 고발하기 위해 시위를 벌이기도 하고, 생업을 포기하다시피 하며 온몸으로 몸부림치는 이들이 많다. 이번에 영국 항의 방문단에 참여한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다.

2011년 원인 미상 폐 질환의 원인이 자식들과 부모, 배우자를 위해 자신의 손으로 사서 사용한 살균제임을 뒤늦게 깨달은 피해자 가족들은 다른 죽음을 맞닥뜨린 사람들이 겪지 못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을 죽인 살해자라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정신적 아노미를 겪고 있다. 트라우마를 겪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의 충격을 받은 피해자들이 많다.

가해 기업이 배상을 말하기 전에 사죄, 아니 사과라도 하는 것이 최소한의 도덕일 터인데 그들은 오리발로 일관했다.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지도 않았다. 질병의 원인이 명확하게 과학적으로, 역학 연구 결과 드러났음에도, 기업들은 법정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고 "황사나 레지오넬라균 때문에 그런 질환에 걸릴 수 있다"는, 정말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말로 피해자들을 두 번 죽였다. 가습기 살균제 판매로 벌어들인 수익금 50억 원을 사회에 내놓겠다는 옥시레킷벤키저는 그냥 인도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지금은 그 50억 원 출연마저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 런던 항의 방문단 가운데 피해자들만 따로 나란히 앉아 펼침막을 들고 의회 의사당 앞에서 100명이 넘는 어린이와 산모 등 한국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등 가습기 살균제 제품들을 앞에 펼쳐놓고 레킷벤키저의 책임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나 몰라라' 국내 옥시레킷벤키저가 피해자들을 영국까지 내몰아

2011년부터 피해자들과 함께하며 이들을 지원하는 환경 보건 시민단체 활동가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지난해 봄부터 한국의 옥시레킷벤키저를 상대로 해서는 아무것도 이루어질 것이 없다고 우려하기 시작했다. 영국에 있는 모기업을 찾아가 영국과 유럽 언론에 호소하는 것이 이들이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리게 할 수 있는 효과적 방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항의 방문단을 꾸리는 일도, 비용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았다. 차일피일하다 1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올해 초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폐 손상 조사위원회 이름으로 '가습기 살균제 건강 피해 사건 백서'가 나왔다. 이어 환경부의 2차 판정 결과까지 나오면서 영국 항의 방문 계획은 점차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왔다. 피해자 대표단들은 비용 문제로 막판 진통을 겪다 마침내 영국 대장정의 막이 올랐다. 항의 방문 대장정을 위해 환경보건시민센터 회원들과 환경 보건 전문가, 교수들이 10만~20만 원씩 십시일반으로 낸 특별 후원금이 상당한 힘이 되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공동 대표를 맡은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와 피해자 모임 대표 강찬호 씨, 강 씨의 딸이면서 피해자인 나래 양, 2011년 임신 중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후 아내를 잃은 맹창수 씨, 김 소방관으로 꾸려진 항의 방문단은 지난 18일 인천공항을 떠났다. 항의단은 유럽 국제 환경 회의에 참석한 뒤 영국에 먼저 온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을 만나 19일부터 일주일간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제품 사용으로 집단 참사를 겪은 뒤 피해자들과 환경단체가 손잡고 외국에까지 가서 이와 같은 시위를 벌인 것은 30년이 넘는 대한민국 환경 운동사에 보지 못한 장면이다.

항의 시위단의 아홉 살 초등학생 피해자 강나래 양 영국 시민 눈길 끌어

영국에 도착한 최예용 소장은 일기예보부터 챙겼다. 비가 21일까지 내린다고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떻게 해서 영국에까지 왔는데 그까짓 것 비가 대수냐고, 자신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어린 나래가 걱정되는 것은 자신이 딸을 여럿 둔 아빠로서 어쩔 수 없었다. 한국에서 무사히 도착한 일행과 함께 한인 민박집에 짐을 풀었다. 민박집에서 사용하는 주방 세제류 4종 가운데 절반인 2종이 레킷벤키저 제품이었다. 그만큼 영국 소비자들에게도 레킷벤키저는 친숙한 기업이라는 방증이었다.

영국 레킷벤키저는 항의 방문단이 영국에 온다는 소식을 한국의 옥시레킷벤키저(레킷벤키저코리아)로부터 미리 연락받았다. 서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처음에는 환경보건시민센터 관계자들을 뺀 피해자와 그 가족 대표만 만나겠다고 전해왔다. 항의 방문단이 이에 콧방귀를 뀌자 슬그머니 방문단을 만나겠다고 했다고 한다.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9살의 강나래 양이 촛불을 켜들고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주범'기업인 옥시레킷벤키저의 모기업 레킷벤키저 본부가 있는 영국 버크셔주 슬라우시의 건물 앞에서 한국 피해자들을 기리는 아침 묵념 기도를 하고 있다. 배경은 국내 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어린이의 엄마가 숨진 아들을 그리워하며 그린 그림을 대형으로 제작한 것. ⓒ환경보건시민센터

나래는 영국에서는 물론이고 국내 언론, 환경보건시민단체 회원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네이버 밴드에는 나래의 건강을 걱정하는 댓글이 수시로 달렸다. 텐트를 치고 장기 농성에 들어갔다. 밤늦게까지 시위를 하거나 홍보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행인들은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에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졌다. 피해자 대부분이 아이들과 엄마들이라는 말에 모두들 놀랐다. 그리고 피해자인 나래를 본 뒤 남의 일 같지 않은 안타까움을 얼굴 표정으로 그대로 드러냈다.

시위 4일차인 마지막 날(22일)에는 한 흑인 청년이 지난 며칠간 몇 번을 그냥 지나쳤다면서 항의단 모두에게 악수를 청하며 일이 잘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버크셔 주 슬라우 시에서 일인 인터넷 언론 활동을 하는 폴이란 이름의 할아버지는 21일 두 번, 22일은 세 번이나 시위 현장을 찾아왔다. 두 번째엔 물과 과일을 사 왔고 세 번째엔 저녁에 촛불 시위를 한다는 말을 듣고 손전등 5개와 촛불을 가져왔다. 항의단 모두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다. 영국 신사라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영국엔 신사들이 있었지만, 레킷벤키저는 신사 기업이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레킷벤키저는 결코 신사 기업이 아니었다. 회사 건물 안의 화장실도 이용하지 못하게 했다. 일행은 볼일이 있을 때는 20분을 걸어서 슬라우 시립도서관 화장실까지 가야만 했다.

이뿐만 아니라 시위 마지막 날까지 결코 책임 있는 답변을 해주지 않았다. 맹창수 씨는 22일 오전 레킷벤키저 측이 항의단에 준 편지에 사과나 책임 있는 답변이 전혀 없는 걸 보고 그 자리에서 찢어버렸다. "영국 법원에 제소하여 응분의 벌을 받도록 하겠다"는 말을 남기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분노한 항의단은 오후에는 의사당 앞에서 시위하려던 애초의 계획을 취소하고 슬라우의 본사 건물 앞에서 밤늦게까지 항의 시위를 벌였다.

항의 방문단은 26일 귀국했다. 시차에 적응하고 여독을 풀 사이도 없이 27일 낮 12시 서울 여의도에 있는 옥시 본사 건물 앞에서 이번 영국 대장정의 결과와 앞으로 활동 계획을 국민에게 알리는 기자 회견을 열었다. 손에 쥐는 확실한 결과는 없었지만, 이번 영국 항의 방문은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하나로 묶는 튼튼한 다리 구실을 했다. 이와 함께 가습기 살균제의 참상을 국민에게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를 계기로 많은 언론이 이 문제를 다시 다루었기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결코 멈출 수 없는, 사라질 수 없는, '네버 엔딩 스토리'라는 것이 영국 항의 원정이 남긴 가장 큰 족적이 아닐까 싶다.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그 가족, 그리고 서울대 백도명 교수 등 환경보건시민센터 항의 방문단이 영국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지난 21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의 의회의사당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주범 기업인 옥시레킷벤키저의 모기업인 레킷벤키저의 책임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플래카드 속에 들어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사진 중앙의 여자 어린이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아홉 살의 강나래로 피해자 모임 대표인 강찬호 씨의 딸. ⓒ환경보건시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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