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브라질의 수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국제연합환경개발회의에서 '지구를 건강하게 미래를 풍요롭게'라는 목표 아래, '환경과 개발에 관한 리우선언'이 발표됐다. 국가 간 균형발전과 환경보호를 위해 개인의 노력을 넘어선 국가 정책적 책임을 제시하는 한편, 문제를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제시됐다. 이는 소비를 주도하고 시장을 구성하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디자이너에게 막중한 사회적 책임을 지우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재활용 디자인, 예술이 되다
산업혁명 이후 시장은 화려한 포장을 앞세워 매일 새로운 제품을 쏟아 내며 소비자들을 유혹하였고, 이와 함께 소비에서 폐기로 이어지는 제품의 비율도 늘어났다.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가 생활 공간마저 위협하는 지금, 재활용에 주목해야 한다. 소비를 미덕으로 여기던 과거에는 새것이 주는 만족감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이제는 물건을 남과 공유하고 버려진 것을 활용함으로써 얻는 행복이 디자인의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다.
한국에는 예전부터 남이 버린 물건을 쓰면 부정 탄다고 하여 꺼리는 관습이 있었다. 그래서 재활용, 재사용 문화가 근래에야 퍼지고 있다. 반면 일찍이 산업혁명으로 발전된 문물의 혜택을 누려온 영국에서는 그만큼 심각한 환경오염과 그에 따른 사회문제를 미리 감지하고 국가정책과 시민활동이 일찍부터 시작됐다. 반세기 전에 만들어진 자동차를 개조해서 타고, 유행 지난 웨딩드레스를 리폼(reform)해 입으며, 다양한 방식의 재활용 디자인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단순히 소재의 재활용을 넘어 경제적이며 사회적으로 영향을 주는 지속 가능한 디자인이 자리 잡고 있다.
▲ 녹슨 발전기계와 휴식공간이 어울려 있는 와핑 프로젝트(Wapping project). 군데군데 있는 현대미술작품이 분위기를 예술적으로 만든다. ⓒwww.londontown.com
영국 런던 동부에 있는 '와핑 프로젝트(Wapping project)'는 현대 예술가의 작품이 활발히 전시되는 갤러리와 유명 인사들이 자주 찾는 레스토랑 그리고 문화서적을 판매하는 서점이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이곳은 런던의 대표 명소인 '테이트 모던 미술관(Tate Modern Collection)'처럼 수력발전소였다. 1890년부터 100년 동안 런던 시내의 호텔과 영화관에서 쓰이는 전기를 발전해서 공급하던 수력발전소는 세월이 흘러 쓰임이 다하면서 문을 닫게 된다. 지역의 흉물이 된 이곳이 지역의 명물로 탈바꿈하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변화가 필요하지 않았다. 녹슨 발전기계는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게 두었고, 창문이나 내부의 인테리어 또한 바꾸지 않았다. 오랜 시간의 이야기와 현대의 예술작품, 그리고 방문객이 함께 어우러지는 이곳은 공간의 재활용을 넘어서 시공간을 초월한 예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쓰레기가 아름다운 작품이 되다니
기발하고 재치 있는 아이디어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디자인 그룹 '드로흐 디자인(Droog Design)'은 1999년 독일 베를린 남서쪽의 오라니엔바움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투입됐다. 디자이너 위르헌 베이(Jurgen Bey)는 '트리 트렁크 벤치(Tree Trunk Bench)'를 제안했는데, 정원에 잘린 채 방치돼 있던 나무기둥에 버려진 의자의 등받이를 박아 만든 것이다. 나무가 많은 지역의 특성을 살려 자연 그대로의 나무기둥을 사용함으로써 친환경 메시지를 더하고, 지역의 폐기물을 그대로 이용하여 폐기물에 대한 해결책도 제시하는 지속 가능한 디자인 모델이다.
▲ '트리 트렁크 벤치'는 사회적 가치와 친환경적 가치를 접목해 실용화 가능성을 보여준다. ⓒwww.studio.droog.com
스튜어트 헤이가스(Stuart Haygarth)는 일상에서 버려지는 쓰레기로 아름다운 조명을 만드는 작가다. 인간이 만든 물건들이 버려질 때는 보잘것없지만, 그것들을 한데 모아서 전구를 설치하면 의미 있는 조명으로 재탄생한다. '스펙터클'(2009)이라는 작품에서는 못쓰게 된 안경들을 모아 커다란 샹들리에를 만들었고, '알라딘'(2006)에서는 이가 나가거나 금이 간 유리병 등을 모아 조명 테이블을 만들었다. 또 바닷가로 밀려온 쓰레기를 모아 조명을 만드는 헤이가스는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에서 아름다움을 찾아 표현하며 재활용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타이드'(2004)). 일상 쓰레기로부터 도출해 낸 아름다움은 우리가 버리는 물건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한다.
▲ 안경을 모아 만든 작품 '스펙터클'. ⓒwww.stuarthaygarth.com
▲ 이가 나가거나 금이 간 유리병 등을 모아 만든 '알라딘'. ⓒwww.stuarthaygarth.com
독일의 예술가이자 환경운동가 H.A 슐츠는 쓰레기로 인간 모형을 만든 '쓰레기 인간(Trash People)' 시리즈를 각국의 명소들에 전시하며 생태계 파괴의 심각성을 알렸다. 쓰레기를 예술작품에 사용해 시각적인 충격을 줌으로써 어떤 진지한 글보다도 효과적으로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환경 오염이 심각해질수록 더욱 적극적인 재활용 퍼포먼스를 통해 사람들에게 경고할지도 모르겠다.
▲ 이집트 피라미드 앞에 설치된 '쓰레기 인간' 시리즈. ⓒwww.haschult.de
▲ 스위스 체어마트 산에 설치된 '쓰레기 인간' 시리즈. ⓒwww.haschult.de
폐기물을 가공하는 재활용 디자인도 있지만, 1차 사용 후 추가로 재활용을 실천할 수 있게끔 하는 디자인도 있다. 디자이너 패트릭 성은 재활용 디자인의 경험을 사용자에게 전달한다. 포장용 골판지 상자는 내용물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하여 널리 쓰이며, 입체적인 물건을 담을 때는 스티로폼이나 에어캡 같은 충전재를 넣어 상자의 빈 공간을 메우기도 한다. 상자는 훼손되지 않으면 추가 활용이 가능하지만, 물건이 운송되는 과정에서 부서지거나 찢어지면 추가 활용은 불가능하다. '유니버설 패키징 시스템'은 자원은 물론 적재공간 또한 절약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격자무늬로 나 있는 홈을 이용하면 굴곡 있는 부분도 접거나 구부릴 수 있고, 사용 후 상자를 펼치면 전혀 다른 형태의 물건을 다시 포장할 수 있다. 온라인 쇼핑을 통한 구매가 활발해짐에 따라 택배 운송도 증가하면서 자연히 포장용품의 사용도 늘어나고 있다. 추가로 재활용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자원절약을 실천할 기회를 주는 실용적이고도 재미있는 디자인이다.
▲남는 공간 없이 꼼꼼하게 포장할 수 있고, 펼쳐서 재사용할 수도 있는 '유니버설 패키징 시스템'. ⓒwww.yankodesign.com
인도에는 길거리의 쓰레기를 주우며 어렵게 생활하는 극빈곤층(Rag pickers)이 있다. 미국 뉴욕에 위치한 '홀스티(Holstee)'는 인도 수도 델리의 쓰레기를 재활용해 개발도상국의 빈곤과 환경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매일 버려지는 신문을 주우며 사는 빈곤층에게 구입한 신문으로 작은 지갑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수익금의 일부분은 비영리단체에 기부하며, 가난한 사람들이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인도의 쓰레기에 적힌 문구와 그래픽은 다른 나라의 소비자들에게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여기에 색을 약간 입혀 디자인을 완성하면, 유행에 민감한 젊은 세대들에게도 충분히 매력 있는 재활용 디자인이 완성된다.
▲ 인도에서 버려지는 신문과 플라스틱 가방으로 만든 카드 지갑. ⓒwww.holstee.com
재활용 디자인 상품, 생산만큼 소비되어야
재활용 디자인은 더 이상 유행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우리의 생존방법이다. 어쩌면 무분별하게 물건을 만들어 내던 디자이너들의 새로운 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버려지는 광고판으로 만든 가방을 메고, 자전거 고무 튜브를 활용한 지갑을 쓰며, 나무가 아닌 신문으로 만들어진 연필로 공부하는 지금 이 시대는 단순한 소비를 넘어 미래의 인류와 환경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지구상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재활용으로 만들어진 상품을 실제로 소비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기존의 새 상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공정보다 적어도 두세 가지의 공정이 추가로 필요한 재활용 디자인 상품은 가격이 높은 단점이 있다. 또한 실용성이 떨어지는 것도 현재의 한계점이라고 할 수 있다. 재활용 디자인이 보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으려면 실용성과 경제성, 그리고 재미가 더해져야 한다. 그래야 상업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고, 소비자들을 구매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재활용 디자인 상품이 더 많이 소비되어야 더 많은 쓰레기들이 재활용되며, 결과적으로는 지구 환경 오염을 하루라도 늦출 수 있을 것이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 <살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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