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신임 원내대표는 7일 새정치연합 의원총회에서 치러진 원내대표 선거 결선투표에서 66표를 얻어 불과 5표 차이의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다른 결선 진출자인 최재성 의원의 득표수는 61표였다.
이에 앞서 치러진 1차 투표에서도 이 원내대표는 38표로 1위를 했다. 최 의원은 33표였다. 조정식 의원은 22표로 3위에 그치며 결선 진출에 실패했고, 김동철 의원 21표, 설훈 의원 14표 등이었다.
이 원내대표는 당선사례에서 "3수 끝에 여러분께서 이렇게 영광을 주셨다"며 "그 힘으로 하겠다. 참담한 이 상황을 여유 있게, 힘 있게 풀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3수'란, 그가 원내대표 선거에 도전한 것이 이번으로 3번째라는 말이다.
그는 "선거에서 패배하고 무시당한, 소수당으로서의 이 참담한 심정을 더 신중하고 진중하게 풀어 나가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향후 원내지도부 운영 구상에 대해 "고문단을 운영해 원내가 균형 있게 앞으로 나아가고 속도조절하(도록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앞서 투표를 앞두고 한 정견 발표에서 그는 "원내대표를 지낸 원혜영, 박지원, 박기춘, 전병헌, 박영선, 우윤근 의원을 '원내전략자문단'으로 모시겠다"며 "문희상 의원을 비롯한 당의 중진 의원들께도 항상 고견을 듣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었다.
그는 연설에서 "어제는 참혹한 날이었고 분노의 날이었다"며 "아침 일찍 세월호 유족들의 뜻을 거스른 시행령이 발효되었고,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던 박상옥 대법관 인준안이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 일방 통과됐다. 수십 일에 걸쳐 땀흘려 얻어낸 공무원연금 개혁안 합의가 새누리당에 의해 휴지처럼 파기되었다"며 "대여(對與)투쟁의 선봉이 되겠다"는 공약을 첫머리에 앞세웠었다. 그는 또 "박근혜 정부는 대대적인 기획사정을 예고하고 있다"며 "당과 의원님들을 지켜내겠다"고 자신이 '야당 탄압 대책위원장'을 지낸 경력을 은근히 상기시켰다.
그는 비노·비주류인 자신에 대한 지지가 문재인 대표 지도부에 대한 '흔들기'로 작용할 것이라는 일각의 분석에 반박하듯 "경제정당·실용정당의 깃발을 내리지 않겠다"며 "19대 국회 마지막 1년을 이끌어 갈 주요 전략으로 '경제민주화 시즌 2'를 준비했다. 우리 당의 '유능한 경제정당론'을 원내정책으로 뒷받침하겠다. 우리가 얻어낸 소중한 국민적 지지를 높이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종걸은 누구? 비주류 '반란' 의미는?
이 신임대표는 독립운동가인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로, 스스로도 기회 있을 때마다 이를 자랑스레 내세우곤 한다. 당내에서 배경이 되는 계파는 비주류·중도파이지만, 민족주의 이슈 등 사안에 따라 강경한 모습을 보여 왔다. 지난 2013년 일본 아베 정권의 우경화에 반대하는 성명을 일본 현지 야스쿠니(靖國) 신사 앞에서 발표하려다 저지된 게 대표적이다.
1957년생으로 '긴급조치 세대'인 그는 정계 입문 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회'(민변) 활동을 하며 시민사회 영역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변호사로서는 당시 일명 '우조교 사건'으로 알려진 서울대 신모 교수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 변호를 맡아 여성운동상을 수상하는 등 인권 변호사로 활약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정계에 입문한 후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2009년 4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장자연 리스트'의 실명을 공개해 조선일보사와의 소송에 휩싸였고 결국 조선일보사 측이 소송을 철회하면서 사실상 승리했다. (☞관련기사 : 이종걸 '장자연 리스트' 실명 공개, 조선일보 백기…'故 장자연 소송' 모두 취하)
이해찬 대표 체제가 들어선 2012년 6.9 전당대회에서는 5등 최고위원으로 지도부에 입성하기도 했고, 대선 이후에는 당 정치혁신실천위원장, 야당탄압대책위원장 등을 맡아 활동했다. 정계 입문 초기에는 당시 다수파였던 DY(정동영)계로 분류됐으나, 18대 국회 이후로는 사실상 계파가 없는 처지로 평가된다.
이 원내대표의 승리는 당내 비주류가 문재인 대표를 정점으로 하는 현재의 당권파 '친노' 그룹에 던진 견제구로 풀이된다. 1차 투표에서 이 원내대표가 38표를 얻은 배경으로는 김한길 전 대표 등 당내 비주류 그룹 중진들이 지목되기도 한다. 김 전 대표가 2.8 전당대회 전 자신과 친한 의원들을 불러 모았을 때 32명이 모였었다고 한다.
특히 4.29 재보선의 참패로 문 대표 책임론이 제기된 것은, 비주류 내에서 친노 그룹에 대한 견제 역할을 할 지도부 인사가 추가로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게 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거꾸로 주류 또는 범주류에 속한 조정식·최재성·설훈 의원 입장에서는 악재였던 셈이다. 김 전 대표와 가까운 주승용 최고위원은 선거 직후 "당내 견제와 균형을 바라는 의원들의 뜻"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전대 원내 사령탑이었던 우윤근 원내대표가 합리적이고 온건한 성향이어서, 여당과의 협상에서 '끌려다녔다'는 평을 종종 받은 것도 이 원내대표에게 호재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몇몇 사안에서 강경파로서의 인상을 남긴 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 원내대표는 특히 이완구 전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에 대해 본회의에서 야당이 똘똘 뭉쳐 반대표를 던진 데 대해, 이후 이 전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도와드리지 못해 마음이 아팠다"며 눈물지은 일로 당내 강경파 의원들과 시민사회 일각의 반발을 사기도 했었다. (☞관련기사 : 우윤근, 이완구 만나 눈물바람) 새누리당에서는 "우 원내대표 이상 가는 파트너를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칭찬 아닌 칭찬이 나오기도 했다. (☞관련기사 : 이혜훈 "친박계 연금 합의 반대, 이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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