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한 세월호 유족, 누가 함께 할 건가?

[주간 프레시안 뷰] 침몰하는 세월호 특조위

가슴 철렁한 소식
이 글을 쓰고 있는 4월 2일 정오부터 유가족들이 삭발을 시작합니다. 1시에는 기자회견이 예정되어 있고요. 소식을 접하고는 문을 닫아 잠그고 혼자서 꺼이꺼이 목 놓아 울었답니다. 이런 글을 쓰면 안 되는데 오늘을 어찌할 수가 없군요. 독자 여러분들께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성으로 제어되지 않는 순간이 있네요. 정제된 글을 써야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열어놓고 공감하는 일이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입니다.
가슴 철렁한 이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삭발하는 순간 유가족들을 후려갈길 아픔의 크기 때문입니다. 유가족들은 특별법 싸움 때부터 참고 또 참아왔습니다. 정부, 여당의 온갖 술책에도 불구하고 양보를 거듭하면서 말입니다. 그들의 양보 뒤에는 시민들에 대한 배려와 정부에 대한 실낱같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 큰 마음으로 모두를 안고 가는 것이 하늘에 있는 아이들에게 존경받는 길이라 생각하셨을 겁니다.

미움과 분노로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상황에서도 유가족들은 평정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시행령'을 가지고 제대로 뒤통수를 친 것이지요. 그것도 1주기를 보름 앞두고 말입니다. 삭발은 배려와 믿음의 포기를 뜻합니다. 모두 안고 가겠다는 큰 마음을 버리고 이제는 미움과 분노를 그대로 표출할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저들을 향해 죽기 살기로 싸우겠다는 선전포고이기도 하고요. 하늘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너그럽고 존경받는 부모가 되고 싶었는데 세상이 그들을 그냥 두지 않네요. 삭발하는 순간 유가족들은 아이들을 떠올리며 미안함에, 처참함에 눈물을 흘릴 겁니다. 그 광경을 상상하며 우리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56년간의 제 인생이 무너집니다. 죄의식에 온 몸이 굳어버리고 이성은 정지합니다.
다른 하나는 돈의 '유혹'을 무기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4월 1일 아침부터 해양수산부 배보상지원단이 배보상금 신청 접수를 시작한다고 유가족들에게 문자를 발송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자를 받고 아연실색하는 그들의 표정이 지금도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노리개가 되어버린 억울함, 허망함, 앞으로 닥칠 치졸한 공격에 대한 두려움이 뒤섞인 그 표정은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찰나의 순간이라도 마음을 스쳐가는 돈의 '유혹'이 감지되었을 때, 유가족들의 심정이 얼마나 갈기갈기 찢어질지 도대체 이 잔인한 권력은 생각이라도 해봤는지! 유가족들은 그 '유혹'에 의연할 겁니다. 진상조사특위 문제와 인양 문제가 풀리기 전에는 배보상 논의 자체를 거부할 겁니다.

하지만 잠시라도 스쳐간 그 '유혹'의 흔적은 유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칼날에 찢긴 고통과 아픔을 안겨줄 겁니다. 그들의 심정을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납니다. 저 처참함을 어찌하나, 저 억울함을 누가 풀어줄 것인가 하면서 말입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니어서 더 잔인한 저들의 폭력에 분노하며 또 눈물을 흘립니다. 저 자신의 무기력함에 서러워하며, 비인간의 칼춤에 치를 떨며 말입니다.

▲머리를 삭발한 뒤 흐느끼는 '영만 엄마' 이미경 씨. ⓒ프레시안(손문상)

'시행령'이 가족에게 의미하는 것
유가족들의 심정을 더 자세히 헤아려보아야 합니다. 그저 막다른 골목에 몰려 폭발한 자들이라 생각해서는 그들의 실존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별법 제정 때 유가족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작년 한 해를 특별법 제정을 위해 바쳤습니다. 맞벌이 하던 엄마들은 대부분 일을 포기했고 심지어는 아이들 밥 챙겨주는 것마저 제대로 하지 못했지요. 그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부와 정치권이 달랑 내놓은 답은 기소권과 수사권 없는 특별조사위원회였습니다. 그 아픔의 시기에 유가족들은 더 아프고 아픈 양보를 결정했습니다. 고생을 마다 않았던 수많은 시민들에 대한 배려와 정부에 대한 일말의 기대가 그 배경이었지요. 자기들이 제일 아픈데, 그런대도 바보처럼 세상을 배려하는 유가족들이었습니다. 정부와 정치권이 그토록 나쁜데도 이주영 전 해수부장관의 '따듯한 말' 한마디에 감사해하는 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유가족들의 그런 큰 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아직도 스스로를 반성하지 않습니다. 이주영 전 장관은 '팽목항의 영웅'을 가장하여 '멋들어지게' 정치권에 복귀하였습니다. 수염을 말끔히 깎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엷은 미소를 머금으며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세상입니다. 유가족들의 큰 마음은 보기 좋게 '웃음거리'가 되어버렸습니다.
특별조사위원을 임명할 때도 정부, 여당은 참 부끄러움조차 없는 이들이었습니다. 여당 추천위원에는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과 진상규명의 의지가 엿보이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으니까요. 유가족들의 대응은 역시 의연했습니다. "진상규명 의지와 안전사회 건설에 대한 자신들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밝히라"는 요구를 내놓았습니다. 어떤 사람이건 제대로 뜻을 밝히면 큰 마음으로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는 것이었지요. 그 때의 유가족들의 심정은 또 어떠했겠습니까? 억울함, 불안감을 떨치려 애쓰며, 세상을 믿고 또 상식을 믿어보려 안간힘을 쓰지 않았겠습니까? 유가족들은 인내심의 극한에 도달해있으면서도 또 다시 배려와 믿음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세금폭탄' 망언, 특별조사위원회 준비팀 무력화 기도 등 별의별 준동이 다 있었지만 유가족들은 끝까지 평정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그런 유가족들의 뒤통수를, 그것도 1주기를 보름 앞두고 사정없이 쳐버렸습니다. 배려와 믿음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유가족들에게 진상규명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시행령'을 일방적으로 뱉어내 놓았습니다. 실낱같은 믿음도 사라지고, 세상을 배려할 마음의 여백도 더 이상 자리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 있는 아이들에게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부모가 되려고 참고 또 참아왔는데 이제는 그리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시행령'은 유가족들이 훌륭한 시민, 존경하는 부모가 될 길을 틀어막아 버린 악의 도구입니다. 삭발은 그렇게 결정된 것입니다. 삭발하는 유가족들의 심정을 세밀하게 헤아리는 세상이 되어야 하는데, 이제는 돈으로 그들을 다시 찢어발겨 놓습니다. 유가족들이 삭발을 하는 순간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청운동에서의 '짐승 몰이'
유가족들에게 청운동은 정말이지 가고 싶지 않은 곳입니다. 3월 30일 월요일 오후, 유가족들은 가슴에 피멍을 안고 하는 수 없이 또 청운동을 행했습니다.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을 뚫고 불통의 대통령에게 외치기 위해 말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항상 해왔던 투쟁의 하나로 생각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본 현장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4월이 가까워 오면서 유가족들의 마음은 하늘에 있는 아이들에게로 더 간절히 다가가지요. 너무나도 처절한 아픔을 안고, 너무나도 보고 싶은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런 유가족들을 대상으로 '짐승 몰이'를 합니다. 누구에게 지시를 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경찰들은 이제 유가족들을 짐승 대하듯 이리 몰고 저리 몰고 한쪽 구석으로 틀어박습니다. 유가족들이 국회에 당당히 입성했던 작년 여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버젓이 광화문에서, 청운동에서 자행되었습니다. 30일 오후 성호 아빠가 광화문에서, 같은 날 밤 동수 아빠가 청운동에서 경찰에 끌려간 것은 그런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더 이상 가고 싶지 않은 청운동으로 유가족들을 향하게 만들고는, '짐승 몰이'를 주저하지 않는 이 부도적한 정권은 언젠가 그 죄값을 치러야 할 겁니다. 참으로 나쁜 나라입니다.
가슴 아프지만 우리 역시 충분치 않았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짐승 몰이'를 당하고 있는 유가족 곁에 우리는 없었습니다. 3월 30일 '시행령'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광화문을 거쳐 청운동으로 향하는 가족들 곁에 우리는 없었습니다. 서러운 비가 내리는 31일 광화문 농성장에 역시 우리는 없었습니다. 이순신 동상 앞 농성 텐트에는 실종자 가족들이 인양을 촉구하며 5개월을 버티고 계십니다. 실종자 가족들을 배려하여 유가족들은 세종대왕 상 앞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에서 농성을 시작하였지요. 3월 31일 오후 유민 아빠를 비롯해서 농성에 참여한 사람은 10여명에 불과했습니다. 청운동에서 철수한 가족들이 농성에 합류했지만 멀리서 보면 그저 점 하나에 불과한 외로운 투쟁이 이어졌습니다. 비를 피해 비닐을 뒤집어쓰고, 추위에 떨며 분노를 다스리며 밤을 지새웠습니다. 4월 1일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전명선 위원장을 비롯한 유가족들이 곳곳에서 우비와 비닐에 의지하며 밤샘 농성을 이어갔습니다. 광화문 광장이 넘쳐나도록 종교인, 예술인들, 학자들, 시민단체들, 시민들이 농성에 참여했던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짐승 몰이' 당하는 이 상황은 우리의 부족함에 기인한 것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의 진보, 양심은 모두 어디 갔나 하고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피멍이 든 가슴에 칼을 들이대는 자들
4월 1일부터 도배질이 시작되었습니다. "학생은 8억 여 원, 교사는 11억 여 원"하며 떠들어 댑니다. 능욕하는 자는 단지 청와대와 정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림까지 그려가며 '알기 쉽고 친철하게' 보도하는 KBS가 능욕을 상징합니다. 마치 사실을 보도하는 양 배보상 액수만을 들이대는 언론 모두는 피멍이 든 유가족들의 가슴에 칼을 들이대는 자들입니다. 사악한 해양수산부를 항의방문 하지 않는 정치권 역시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쯤 되면 아무리 무능력한 야당이라도 '시행령' 철회와 배보상 집행 중단을 요구하며 해양수산부 장관과 담판이라도 지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국회가 만든 특별법에 반한다고 청와대와 여당의 각성을 촉구하며 농성이라도 할 판입니다. 하지만 정치권은 우리의 불길한 상상의 범위를 절대 넘어서지 않는군요. 정치권의 무감각과 태만, 그리고 그들만의 리그에 신경을 빼앗기는 어리석음 덕에 유가족들은 벌거벗긴 채 능욕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먹잇감을 발견한 비루한 승냥이들이 달려들 겁니다. 엄마부대봉사단보다 더 지독한 놈들이 나타날지 모르지요. 설마 했던 '점잖은' 이들이 갑자기 승냥이로 돌변할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노리는 건 상처내고 자극해서 유가족들을 벼랑 끝까지 몰아붙이는 겁니다.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뱉어낼 것이고, 진영 간의 싸움인 양 떠들어 대겠지요. 상대를 하면 할수록 구렁으로 빠져드는 함정을 파놓고 말입니다. 이들이 들이대는 칼은 유가족들에게 상처를 내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인간임을 근본에서 부정하는 무섭고 비정한 무기입니다.
4월 2일 오후 1시, "세월호 희생자와 피해가족들을 돈으로 능욕하는 정부 규탄 및 배보상 절차 전면 중단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삭발하는 사진이 눈에 들어옵니다. 노란 가운에 '시행령' 폐기를 요구하는 구호가 쓰여 있습니다. 진정으로 묻고 싶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도 그들에게 또 칼을 들이댈 것이냐고, 그러고도 사람일 수 있냐고 말입니다. 청와대, 정부, 정치권, 언론, 극보수단체들은 사람이기를 포기하지 말기 바랍니다. 삭발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읽었다면 더 이상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더 이상 죄를 짓는다면 그 죄는 또 다른 죄를 낳고 결국 우리 모두를 헤어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말 것입니다.

침몰하는 세월호 특별조사위
흐르는 눈물을 삼키며 걱정 어린 충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시행령'에서 기획조정실장안을 빼겠다는 식의 타협제안에 응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런 것 끌어내려고 유가족들이 울부짖고 있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유가족들은 양보와 타협을 거듭해오면서 끝내 지키려했던 배려와 믿음의 가치를 4월 2일 삭발로서 던져버렸습니다. 큰 마음을 버리고 거칠고 메마른 투쟁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하늘에 있는 아이에게 미안하다 미안하다를 되뇌이며 말입니다. 광화문의 차디찬 돌바닥에서 비를 맞으며 농성을 이어간 그들에게 타협안을 더 이상 강요하지 말아주십시오. 타협하자마자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침몰하고 맙니다. 그리 놔두기에는 유가족들의 상처가 너무나도 깊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에게 남을 죄의식 역시 너무나도 크지 않겠습니까?
유가족들은 4월 4일 토요일부터 상복을 입고 영정사진을 든 채 도보 행진을 하시겠답니다. 대한민국이 대성통곡할 날이 다가오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 도보행진에 함께할 자신이 없습니다. 저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후회되어 오열하는 그들과 대면할 자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과 여러분 모두에게 호소합니다. 이제 마음으로 지지하지 말고 몸을 움직여 유가족과 함께 하자고 말입니다. 삭발한 유가족 앞에서는 죄의식이니 부끄러움이니 하는 반성의 마음조차 '사치스러운'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도 유가족들이 버린 것의 반만이라도 버리고 그들과 함께 행진하고 또 행진해야 할 때입니다. 유가족들을 보듬어 안아내지 못한다면 세월호가 바다에 침몰했듯 우리와 이 나라는 지옥으로 침몰할지 모릅니다. 인간임을 포기한 지옥으로 말입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