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세월호 유족 능욕하는 박근혜 정부"

[현장] 눈물의 삭발식…"머리는 또 나지만 아이들은…"

몇 번 가위질에 한 터럭 머리칼도 남지 않았다. 찰랑이던 엄마들의 검은 머리카락이 '정부시행령안 폐기하라. 세월호 온전히 인양하라'라는 글씨가 새겨진 보자기 위에 떨어졌다. 머리카락과 함께 눈물도 투두둑 떨어졌다.

"저는 오늘 군대 가기 전 아들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성인이 된 아들을 엄마 품에서 떠나보내는 부모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우리 아이한테 덜 미안하고 덜 부끄러웠으면 좋겠습니다. 힘이 없어 미안하다 애들아."

영석이는 군대에 가기도 전에 먼저 하늘나라로 떠났다. 왜 그렇게 일찍 죽어야 했는지, 아들의 죽음의 이유를 밝혀줄 힘이 없어 '영석 엄마' 권미화 씨는 그저 눈물을 떨구며 머리카락을 잘랐다.

"머리카락은 자르면 또 납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돌아올 수 없습니다. 부모들이 왜 이렇게 절규하며 몸부림치는지를 알아주세요."

▲'특별법 무력화 시도 정부 시행령안 폐지'를 요구하며 삭발에 나선 세월호 희생자 '시연 엄마' 윤경희 씨. 엄마들의 머리를 잘라주는 미용사들도 함께 울었다. ⓒ프레시안(손문상)

1년 전까지 그저 평범했던 가정주부였던 10명의 엄마들은 수십 대의 카메라 앞에서 머리를 민 뒤 노란 머리띠를 두른 투사가 되었다.

"예은아! 아빠 머리 깎는다. 얘들아, 너희가 아빠 머리 깎는 모습 못 봤을 거야. 실컷 웃어"라며 애써 웃던 '예은 아빠'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도 결국 철철 눈물을 흘렸다.

"누군가 삭발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 묻더라고요. 삭발이란 건 목숨을 언제든 내놓을 수 있다는 각오를 보여주는 것이라 합니다. 이미 죽었는데 뭘 또 죽습니까. 이미 죽었는데 예은이한테 가지 못해 여기 머물러 있는 겁니다."

"돈으로 유가족 능욕하는 정부… 배보상 절차 중단하라"


2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삭발식을 단행했다. 지난달 27일엔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제출한 안을 깡그리 무시한 시행령안을 입법예고한 데 이어, 1일엔 돌연 배보상 액수를 발표했다.(☞관련기사 : 세월호 유족들 "박근혜 '눈물의 약속'은 어디로?")


유가족들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정작 져야 할 책임은 회피하고 돈으로 희생자와 피해가족들을 능욕하는 정부가 진정 대한민국 정부냐"며 "돈 몇 푼 더 받아내려고 농성하는 유가족으로 호도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정부의 행태에 분노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날 삭발을 함으로써 유가족이 정부에 원하는 것은 배보상이 아닌 진상규명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분명하게 드러냈다. 유가족들은 "정부 시행령안 폐기와 세월호 선체 인양을 공식 선언할 때까지 모든 배보상 절차를 전면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삭발식은 정부의 배보상 기준 발표 뒤 불과 한나절 만에 결정된 사안이었으나, 52명이라는 대규모 인원이 참여 의사를 보였다. 다수 참가자가 광화문 광장에서 삭발했으나, '고운 아빠' 한복남 씨를 비롯한 네 명의 유가족은 같은 시각 진도 팽목항에서 삭발식에 동참했다. 삭발은 가족협의회 대표단, 어머니들, 아버지들 순서로 차례대로 진행됐다.

▲단체 삭발에 나선 세월호 희생자 어머니들. ⓒ프레시안(손문상)

삭발 전후로 유가족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호성 엄마' 정부자 씨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분노를 토했다.

"제가 이런 나라에서 왜 내 새끼를 낳고 키웠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에 대통령이 있습니까? 진실을 밝혀달라는데, 그 돈 한 푼 주면서 먹으라 하고…. 아이들을 수장시켜놓고 부모들까지 수장시키려 합니다. 난 내 새끼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죽어야겠습니다."

강 씨가 한 맺힌 절규를 끝으로 머리카락을 떨구자 많은 시민이 흐느꼈다. 박래군 세월호 국민대책회의 공동위원장은 시민들에게 "공명(共鳴)해서 이 사람들의 진정을 알리는 전파자가 되어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삭발 참가자 가운데는 유가족, 실종자가족뿐 아니라 화물피해기사, 생존학생 아버지도 있어 주목 받았다. 세월호 참사로 친구들을 잃은 애진이의 아빠 장동원 씨가 시민들을 돌아보며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그럽니다. 네 자식은 살아 돌아왔는데 왜 그러냐고요. 제 딸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친구들이 다 죽었습니다. 사고가 나고 처음 집에 왔을 때 학교 가는 길에 딸이 울면서 다시 집에 왔습니다. 친구가 보고 싶더랍니다. '민정이가 꿈에 나왔으면 좋겠는데 한 번도 안 나온다'고요. 그러면서 '아빠는 진상규명할 거지? 부모님들이랑 같이 해줬으면 좋겠어'라고 합니다.

국민 여러분, 정부 시행령은 우리 아이들 진상규명 정말 못 밝히는 시행령입니다. 부모들이 아이들한테 올바른 사회 만들어주도록 국민이 여러분 도와주십시오"

화물피해기사 대표 최은수 씨 역시 "우리는 화물차 기사이지만 유가족들과 같이할 것"이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머리를 삭발한 뒤 흐느끼는 '영만 엄마' 이미경 씨. ⓒ프레시안(손문상)

"1년 전 언론이 우리에게 했던 짓 영원히 잊을 수 없다"

이날 유가족들은 특별법을 왜곡하는 정부뿐 아니라 정부에 동조하는 언론에도 일침을 놓았다. 이날 삭발식에는 유례없이 많은 취재진이 몰려들어 광화문 광장이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다. 정부 시행령안에 항의하며 유가족들이 사흘 전부터 416시간 농성을 시작했음에도 광화문, 청운동을 찾는 언론은 한두 곳밖에 없던 데 비하면 과열된 취재 열기였다.(☞관련기사 : "벌써 4월, 이런 나라에서 살 수 없다")


'호성 엄마' 강 씨는 기자들에게 "우리를 동물원 원숭이 보듯 보지 말아달라. 똑바로 좀 보도해달라"고 했다. '예은 아빠' 유 집행위원장도 "언론이 지난해 우리에게 했던 짓들은 영원히 잊을 수 없다. 많은 기자들이 사죄하며 1주기에는 다른 모습을 보이겠다고 했다. 저희는 기다린다. 기대에 부응해달라"고 했다.

삭발을 마친 가족들은 "진실을 침몰시키려는 자, 우리가 반드시 침몰시키겠다"는 구호를 외쳤다.

유가족들은 오는 4일부터 양일간 정부 시행령안 폐지를 촉구하며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도보행진을 한다. 이날 삭발식에 참가하지 못한 유가족들은 4일 도보행진 출발 전 추가로 삭발을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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