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할머니 교사', 우리는 왜 안 될까?

[나는 어린이집 교사입니다⑪] 좋은 어린이집, 이렇게 하면 가능하다

"제 꿈은 평교사로 정년퇴직하는 거예요."

두 달 여 동안 많은 어린이집 선생님들을 만났습니다. 솔직히, 모두는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선생님들이 같은 꿈을 얘기했습니다. 어린이집 원장이 아니라 교사로 만 60세까지 아이들을 돌보고 싶다고요.

대구의 한 사회복지법인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문경자(43) 선생님도 그 가운데 한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문경자 선생님은 "우리 어린이집이라면, 그 꿈이 실현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현장 교사 경력은 13년, 노조 활동까지 하면 보육 현장에서만 20년을 넘게 보낸 이윤경(47) 선생님의 꿈도 똑같습니다. 이윤경 선생님은 수술을 받아도 좀처럼 차도를 보이지 않는 허리 디스크 때문에 지난 겨울을 마지막으로 현장을 떠났습니다. 꿈을 이루지 못한 셈입니다.

그런데 어린이집 선생님의 정년퇴직이라,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꿈이 아닐까요? 이윤경 선생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일본에 견학을 갔었는데요. 60세까지 일하고 정년퇴직하는 교사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그게 그렇게 부러웠어요."

▲보육 현장에서 20년 넘게 일한 이윤경(47) 선생님. ⓒ프레시안(최형락)


일본은 어떻게 '할머니 보육교사'가 가능할까?

할머니 교사라, 쉽게 상상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아이 돌보는 일은, 젊은 사람도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체력이 필요한 노동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할머니 교사'가 가능할까요? 이윤경 선생님이 설명해주었습니다.

"첫째로, 일본은 8시간 근무를 철저하게 지키더라고요. 물론 어린이집의 운영 시간은 길죠. 그런데 추가 인력이 있어요. 교대근무를 하는 거예요. 또 휴가도 다 쓴대요. 또 한 가지는, 보육 외에 몸 쓰는 일을 담당해주는 인력이 별도로 있더라고요. 우리는 청소부터 교구장 옮기는 것까지 다 교사들이 하잖아요. 당연히 일본 어린이집 교사가 우리보다 수명이 길 수밖에요."

이윤경 선생님은 또 한 가지 놀라웠던 점을 털어 놓습니다.

"교사휴게실과 교무실이 각각 따로 있고요. 심지어는 교사들의 개별 옷장까지 있더라고요."

충격적이었던 일본 견학은 무려 15년 전의 일이랍니다. 지금도 우리는 교사휴게실, 교무실이 모두 다 없는 곳이 대부분인데 말이죠.

"월급은 얼마나 되냐고 물어봤더니, '은행원 수준'이라고 답을 하더라고요. 그 시절, 일본 은행원이 얼마나 받았는지는 모르죠. 그런데 어쨌거나 일반 직장인 수준은 된다는 의미겠죠? 남자 선생님도 꽤 있더라고요. 보육교사로 맞벌이하는 커플도 있고요."

서울의 4년제 여대를 나온 이윤경 선생님이 1995년 서울 마포구의 한 국공립어린이집 교사로 일할 때, 받은 월급이 39만 원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고졸 생산직 월급보다 작았어요. ‘미싱’을 하는 고졸 생산직 여성이 한 달에 79만 원 받을 때였거든요. 우리 아버지가 기껏 공부시켜놨더니 애들 '똥 기저귀'나 갈고 있다고 그랬죠."

이윤경 선생님은 크게 웃었습니다.

시간외근무 휴가로 보상해주고, 육아휴직 보장해주는 어린이집도 있다!

이런 어린이집, 우리는 불가능한 걸까요? 하루아침에 어린이집 교사의 월급을 '은행원 수준'으로까지 높일 순 없지만, 가능한 것들은 분명히 있다고 현장 교사들은 말합니다. '나는 어린이집 교사입니다'의 마지막 이야기는, 소수지만 존재하는 '좋은 어린이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우리 어린이집처럼 하는 곳이 있을까, 진짜 찾아보고 싶어요. 내가 여기를 그만두면 또 이런 곳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비리가 터지고, 학대가 벌어지는 곳도 있지만, 전국의 곳곳에 좋은 어린이집도 있다는 걸 꼭 말하고 싶었어요."

문경자 선생님의 말입니다. 어떤 곳이기에, 이렇게 '자랑'을 숨기지 못하는 것일까요? 기본적으로는 "호봉대로 월급을 다 준다"고 합니다. 사실 당연한 일이지만, 당연하지 않은 곳이 워낙 많으니 자랑할 만하긴 하지요.

"또 시간외근무는 휴가로 보상해줘요. 여름휴가나 겨울휴가 말고요. 휴일에 행사를 하면, 그 시간만큼 다른 날 쉴 수 있는 거예요. 육아휴직도 보장해주고요. 지금도 육아휴직 중인 선생님이 세 분이나 있어요. 그 기간 동안은 대체교사를 쓰죠. 첫째 아이 낳고 휴직했다 복직해서, 다시 둘째 낳고 휴직한 선생님도 있어요."

이윤경 선생님이 지난해까지, 6년 동안 일했던 충청남도의 한 국공립어린이집도 똑같았습니다. 이윤경 선생님은 "보조 교사가 있어 가능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25명의 아이들을 담임교사 4명과 보조교사 1명이 돌보는 어린이집이었습니다.

"아무리 정부지원이 되는 국공립이라 해도, 시간외수당까지 줄 정도의 예산 지원이 되는 건 아니거든요. 대신 원장님이 보조 인력을 채용했기 때문에, 휴일의 근무를 휴가로 보상이 가능한 거죠."

이윤경 선생님이 일하던 어린이집은 못 쓴 연차와 오후 당직은 수당으로 지급해줬다고 합니다. 정부가 정한 보육교사 인건비 지급 기준조차 안 지키는 어린이집이 많은데, 어떻게 수당까지 줄 수 있을까. 쉽게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교사 당직 수당'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다른 데 돈 안 쓰니까"

이윤경 선생님은 "정부지원 시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여러 번 강조해 설명했습니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교사 인건비를 영아반은 80%, 유아반은 30% 지원해줍니다. 민간은 못 받은 지원금이죠.

"25명 정원의 소규모 어린이집은 사실 국공립이 아니면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사이즈'예요. 민간에서는 이 규모로는 운영 자체가 힘들어요. 그런데 국공립은 임대료가 없잖아요. 들어오는 예산을 고스란히 보육에 쓸 수 있으니까, 보조 인력 배치도 가능한 거죠."

국공립 확충이 얼마나 절실한지, 다시 한 번 강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국공립이라고, 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윤경 선생님이 말합니다.

"정부나 지자체가 최근에 대체 교사 인건비 지원 확대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 대체 인력을 어디에 투입하는지는 결국 원장의 판단이거든요. 사무인력으로 쓸지, 보육 지원 인력으로 쓸지를 결정하는 건 원장이니까요. 같이 근무했던 원장님은 '원장의 역할은 보육교사가 아이들을 잘 돌볼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늘 말했어요. 결산 감사할 때 지자체 공무원이 '교사들 당직 수당을 왜 주냐'고 해서, 원장님이 그 공무원이랑 대판 싸운 적도 있어요."

이윤경 선생님의 자랑은 끝이 없습니다. "급식과 간식은 모두 100% 유기농이고, 때 되면 교재교구 다 바꿔준다"면서요.

"저희는 된장, 고추장도 직접 만들어 먹어요. 김치는 절인배추 사다가 엄마들과 함께 만들어 겨울 내 먹고요. 음료수 사다 먹지 않고 제철 과일로 효소 만들어 간식 먹이고요. 아이들과 같이 유차 철엔 유자차를, 딸기 철엔 딸기잼을 만들고요. 12개월 밖에 안 된 아이들도 유자 씨 빼라 그러면 손가락으로 꼬물꼬물 얼마나 잘 빼는지 몰라요."

본인도 궁금해서 원장님에게 '어떻게 이렇게 운영이 가능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을 정도라네요. 그때 원장님의 대답은 이랬답니다.

"다른 쓸데없는 데 돈을 안 써서 그렇지."

많은 생각할 거리를 주는 대답이죠? 문경자 선생님도 말합니다.

"저희 원장님은 22년 동안 자기가 어린이집 주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대요. 아이들이 주인이니, 이 공간도 아이들 것이라고요. 사실 사회복지법인도 자기 돈 들여 하는 사유재산이거든요. 그런데 우리 원장님도 원장 호봉대로 월급 받아가요."

▲대구의 사회복지법인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문경자(43) 선생님. ⓒ프레시안(최형락)


"사실 어린이집은 운영자의 '마인드'에 따라, 그 운영의 90% 이상이 결정된다"는 설명이 뒤따라 왔습니다. 이윤경 선생님도 비슷한 부분을 강조합니다.

"원장들이 '나는 원장의 역할을 하는 월급쟁이'라고 생각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돼요. 그런데 국공립 중에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민간은 아예 불가능하죠. 진짜로 자기 거잖아요. 자기 소유니까, 원장이 인사권, 재정권, 운영권 등 전권을 가지고 있죠. 어디 사장하고 평사원이 맞장을 떠요?"

"'자기 소유' 민간 어린이집 원장, 어디 사장하고 평사원이 맞장을 떠요?"

선생님들이 꼽은 '좋은 어린이집'의 여러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민주적인 의사소통 구조'였는데, 어린이집이 특정 개인의 소유물이 되는 구조 속에서는 그게 쉽지 않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운영자가 열린 마음으로 교사들의 의견을 최소한 듣기라도 한다면, 이야기는 다릅니다.

이윤경 선생님이 일하던 어린이집에서는 심지어 신규 교사를 채용할 때도, 평교사가 인사위원회의 한 구성원으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원장과 함께 새로운 교사의 면접을 보는 겁니다. 원장과 평교사, 그리고 외부인사까지 3명으로 구성된 인사위원회가 심사기준표에 따라 점수를 매기며 면접을 봤다고 하네요. 이윤경 선생님은 말합니다.

"이렇게 하는 어린이집이 거의 없을 걸요?"

문경자 선생님도 '어떤 점이 좋냐'는 첫 질문에 대한 대답은 비슷했습니다. "저희 어린이집은 각 반의 운영을 해당 반 교사가 한다"는 겁니다.

"원장이 내리 꽂는 방식이 아니에요. 각자 계획부터 예산까지 짜서 올리면 원장님이 대부분 승인해줘요. 한 번도 '그건 안 된다'고 한 적이 없어요. 부모들이 교사의 운영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면, 원장님이 '부모들과 만나서 얘기해보자' 그러지 교사를 탓하지 않고요. 그러니 선생님들이 '아, 우리 뒤에 원장이 든든하게 지켜주는 구나' 믿음이 있죠."

문경자 선생님은 "우리 원장님은 정말 상 주고 싶다"며 웃었습니다. 이윤경 선생님은 "사실 우리 교육 자체가 민주적인 의사소통 방법을 잘 가르쳐주지 않아, 원장 뿐 아니라 교사도 그 방법을 잘 모른다"고 덧붙입니다.

"지금껏 안 그래왔기 때문에 누가 내 말에 토를 달면 기분이 나빠하기도 하지만, 교사들과 소통하고 싶은 원장들이 없지 않아요. 교사들은 말할 용기를 내야하고, 원장은 들을 용기를 내야해요.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거예요."

현장 교사 경력이 오래 된 두 선생님이 경험한 '좋은 어린이집'은 공통점이 많았습니다. 이런 어린이집이 '보통의 어린이집'이 되는 날이 언제쯤 올까요?

▲현장 교사들이 말하는 '좋은 어린이집'의 조건이 있습니다. ⓒ공공운수노조 보육교사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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