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입양된 한국 아이, 시신으로 발견된 이유?

[문학예술 속의 반미] 광주항쟁의 영향과 미국

V. 광주항쟁의 영향과 미국, 1980~1992

4. 1980년대 문학과 미국

1980년대엔 '반미 문학'이란 말이 등장했다. 수많은 개인적 반미 문학작품 이외에 이러한 작품을 모아 편집한 책도 나타났다. 김상일이 1988년 편집해 펴낸 <반미 소설선>은 1940년대 발표된 채만식과 최정희의 단편소설부터 1980년대 발표된 유순하와 박석수의 중편소설까지 10편의 소설을 담고 있는데, 1989년 전국 노동자 문화운동단체 협의회에서 노동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추천했다. 시 분야에선 임헌영과 이영진이 편집한 <반외세 민족자주화 시선집: 아메리카 똥바다>가 1988년 출판되었다. 대표적 평론으로는 최완식의 "민족문학과 반미문학" (1988) 및 박덕규의 "80년대 반미문학론" (1989) 등을 꼽을 수 있다.

1980년대에 출판된 반미 문학작품은 너무 많기에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운데 대략적으로 네 가지 특징을 들고 싶다. 첫째, 많은 작품들이 다양한 잡지 형태의 책 (무크)을 통해 발표되었다. 무크는 1980년대 독재정권의 통제를 피하기 위한 새로운 출판 형태로 인기를 끌며 자리 잡았다. 둘째, 시가 소설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발표되었다. 소설보다 분량이 적은 데다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특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히 1980년대 초엔 혹독한 정치적 탄압 아래서 미묘함도 필요했을 터다. 그래서 일부 시인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익명이나 단체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셋째, 작품의 분량이 길어졌다. 소설에서는 중편이 늘고 몇 권짜리 장편이 출현하기도 했으며, 시에서도 수백 행의 장편 작품이 많이 발표되었다. 넷째, '반미 문학'이 '민족해방 문학' 또는 '노동해방 문학'의 핵심이 되었다. 문학평론가 백진기나 조정환의 주장에 따르면 '신제국주의' 또는 '신식민주의' 이론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반미 보고문학 (르포르타주)의 출판도 주목할 만했다. 오연호는 1989년 <식민지의 아들에게: 발로 찾은 반미 교과서>를 펴냈다. 1945년 이래 한국에 대한 미국의 지배와 '미국의 배반'에 관한 역사를 폭로한 내용이다. 다음 해인 1990년엔 <더 이상 우리를 슬프게 하지 말라: 발로 찾은 주한미군 범죄 45년사>를 출판했다. 제목 그대로 주한미군들이 1945년부터 저질러온 다양한 범죄를 보여주고 있다. 2000년 창간된 <오마이 뉴스> 대표를 맡고 있는 오연호는 그 무렵 진보적 월간지였던 <말> 기자로 수많은 반미 기사를 썼으며 1992년 아래에서 소개할 장편소설을 펴내기도 했다.

고려대학교 문학동아리 심상은 1988년 <헌법에서>를 발표했다. 한국의 미국에 대한 의존에 대해 분개하는 '낙서 시'로 미국의 헌법 1조에 미국의 영토는 한반도를 포함한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은 미국의 51번째 주'라는 해외의 비아냥에 대한 자조 섞인 대응이랄까. 이와 비슷하게 공장 노동자들은 수필이나 웅변 원고, 콩트나 연극대본 등을 통해 미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익살스럽게 표출했다.

반미적 글줄은 민주주의와 한반도 통일을 위해 죽어간 사람들의 묘비명에까지 새겨졌다. 이철규는 경찰의 수배를 당하다 1989년 5월 시체로 발견되어 광주 망월동에 묻힌 사람인데, 1993년 찾은 그의 묘비석엔 "반미자주 열사, 애국 학생 이철규의 묘"라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었다.

"미국 제국주의에 의한 한반도 분단과 그의 꼭두각시 정권이 모든 민족적 고통과 불행의 근원이므로, 우리가 미국 제국을 쫓아내고 독립된 통일국가를 세우지 않는 한 우리 민족은 불행과 고통을 영원히 제거할 수 없다"

1990년 5월 광주항쟁 10주년 기념일을 맞아 광주 '성지'를 방문하는 길에 경찰의 심문을 피하려다 죽은 신장호의 묘비에선 아래와 같은 시를 읽을 수 있었다. "여기, 식민지 땅 / 신장호 열사를 죽인 건 미국놈들 / 미국 제국이 이 한반도 땅에 존재하는 한,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다"

5. 1980년대 소설 속의 미국

앞에서 얘기했듯 1980년대에 발표된 반미 소설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크게 네 가지 범주로 나누어 소개한다.

첫째, 이른바 기지촌 소설을 통해 한국인에 대한 주한미군의 오만함이나 범죄 행위를 거부하고 있다. 과거엔 소극적으로 당하기만 했다면 이젠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것이다. 또한 1970년대까지의 소설에서는 대부분 흑인 병사들이 한국인에 대한 범죄를 주도했지만, 1980년대 소설에서는 백인들이 더 많이 악역으로 뽑혔다. 아마 1980년대 이전의 기지촌 소설에서 백인 병사를 범죄자로 그린 소설은 1965년 발표된 남정현의 <분지>가 유일할 것이다.

박석수는 <철조망 속 휘파람> (1982)을 통해 5천여 명의 송탄 주민들이 1950년대에 미군 부대에 의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집과 논밭을 빼앗긴 채 쫓겨나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1954년도 다 저문 12월의 어느 날, 마을엔 미군 18전투 폭격단이 들어서면서 동쪽 어귀 1백 80만 평의 대지를 송두리째 비행장 부지로 징발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졸지에 보상 한 푼 없이 전답과 가옥을 빼앗긴 1천 가구 5천여 주민들은 제대로 항의 한 번 못해보고 트랙터에 밀려 지금의 판자촌인 이곳 철조망 밖으로 밀려나오고 만 것이다.

'수탈을 일삼던 지긋지긋한 일제 시대 때도 우리의 숯막만은 그대로 폐쇄되지 않았었는데, 정말 숯처럼 시커먼 양키들이 들어오면서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고 흥분하면서 할아버지는 경찰서와 리사무소와 면사무소를 열불나게 쫓아다니면서 하소연했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자 그만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서 가슴만 두드리며 끙끙대다가, 미군 비행장에 F86 개량기가 원자폭탄을 싣고 들어왔다는 소문이 나돌던 이듬해 3월 말에 홧병으로 세상을 뜨시고 말았다"

위 이야기는 3년 뒤 <외로운 증언> (1985)으로 이어졌다. 10여 년 뒤 제대한 미군 병사가 미군 부대 창고를 털어 도망치려고 모의한 뒤 위 노인의 아들을 포함한 한국인들을 사악하게 죽이는 내용이다. 작가는 2년 뒤 발표한 <동거인> (1987)을 통해 송탄에 미군 부대가 주둔하면서 겪은 고통의 30년 역사를 그린다.

이 가운데 동네 이름이 바뀐 사연을 통탄스러우면서도 재미있게 묘사한다. 송탄은 예부터 참나무 숯으로 유명한 '숯고개'로 불렸다고 한다. 한국전쟁 때 "미 공군은 아군의 후퇴와 적군의 전진 속도를 계산하는 도상 체크의 잘못으로 아직 적군이 들어오기도 전인 엉뚱한 지역에 맹폭을 가해 숯고개를 그야말로 쑥밭으로 만드는 실수를" 저지른 바람에 '쑥고개' (쑥밭)가 되었다. 그 후 "숯처럼 새까만 흑인과 대낮에도 털복숭이 가슴을 드러내놓고 다니는 백인들이 함께 마을에 진주하면서부터 기지촌이 형성되고" '술장사, 색시장사, 딸라장사' 등으로 어우러지면서 '씹고개' (씹밭)가 되었다. 그러다 '내 고장 이름 바로 부르기 운동'에 따라 점잖게 '송탄'으로 바뀌었단다.

강석경의 <낮과 꿈> (1983) 그리고 <밤과 요람> (1983)은 기지촌 주변에서 퇴폐적 미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양공주들의 뒤틀린 심적 상태를 보여준다. 윤정모는 1985년 발표한 <가자, 우리의 둥지로>에서 미국으로 이민한 한인 동포의 삶을 통해 문화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퇴폐한 미국 사회를 묘사한다.

안정효의 <갈쌈> (1986)은 아들과 딸을 둔 과부가 한국전쟁 중 두 명의 양키 군인들에게 강간당한 뒤 창녀로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그린다. 그리고 이 여인이 살았던 마을 전체가 어떻게 황폐해져 가는지 보여준다. 이 소설은 영어로 번역되어 1990년 미국에서 '은색 말'이라는 뜻의 으로 출판되었다. 또한 한국에서도 1990년 <은마는 오지 않는다>는 새로운 제목으로 다시 출판되었으며, 1991년엔 같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문순태는 <문신의 땅> (1987)에서 은퇴한 양공주의 온몸에 미군들이 수치스럽게 새겨놓은 문신을 보여주면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문화적 침투를 은유적으로 비판한다. 주인공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침략에 대해서도 분개하며, 커피와 우유 그리고 버터와 빵 등을 대신해 숭늉과 된장국 그리고 쌀밥을 먹는 등 미국화한 식습관을 바꾸기도 한다. 앞에서 소개한 1980년대 말 대학생들의 생활문화운동과 연결되는 대목이다. 문순태는 이 단편소설로 1987년 이상 문학상을 받았다.

다섯 권짜리 장편 <공존의 그늘>은 이윤섭이 1988년까지 1-3권을 쓴 뒤 이신현이 이어받아 1990년까지 4-5권을 썼다. 이 소설이 출판될 때까지 9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던 유명한 저항시인 김남주를 위해 써진 작품이다. 주인공 남주는 카투사로서 미국이 '정의의 사도라는 미명 아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다양한 방법과 전술을 종종 사용하는 것을 비판한다. 그리고 미국은 결코 한국의 동맹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1990년대 초까지 발표된 아마 가장 끔찍한 반미 소설은 정도상의 <아메리카 드림> (1990)일 것이다. 같은 제목으로 출판된 반미 소설 모음집에 실린 단편 소설이다. 한 미국인 부부가 치명적인 심장병을 앓고 있는 자신들의 친아들에게 심장을 이식하기 위해 한국인 고아를 입양한다. 한국인 소년은 미국으로 옮겨져 병원에서 살해당하고, 그의 심장 없는 시신은 검은 비닐 백에 담겨 쓰레기처럼 버려진다는 내용이다.

아무리 '반미'를 강조하기 위한 소설이라도 이러한 끔찍한 주제로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싶겠지만, 실제로 이와 비슷한 소문이 1980년대 말부터 몇 년 동안 전 세계에 퍼졌다고 한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뉴 리퍼블릭 (The New Republic)> 1990년 12월 24일 자에 실린 슈리버그 (David Schrieberg)의 "죽은 아이들"(Dead Babies) 이라는 기사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는 것이다.

"멕시코 어린이들이 일상적으로 유괴되어 미국 국경을 넘어 와 살해된 뒤 그들의 심장이나 폐 등 생명의 중요한 기관들이 부유한 부모를 둔 미국의 병든 어린이들에게 이식된다고 보도되고 있다"

이 믿기 어려운 소문은 1987년 온두라스의 언론에 처음으로 보도된 뒤 1990년까지 적어도 50개 국가로 퍼져나갔다. 예를 들어, 1988년 "파라과이의 한 판사는 7명의 파라과이 어린이들이 유괴되어 살해된 뒤 그들의 중요한 생명 기관들이 부유한 미국인들의 병든 어린이들에게 이식될 수 있도록 미국으로 밀수출되었다고 발표했다" 유럽에서도 런던의 <타임스>를 포함한 권위 있는 신문들이 이 기사를 보도했다. 이에 유럽 의회는 1988년 9월 어린이들의 신체 기관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정도상은 1980년대 가장 활동적인 소설가의 한 사람으로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아메리카 드림> 이외에 적어도 15편 이상의 반미 소설을 발표했다. 그에게 소설이란 '반미 혁명'을 향한 자원을 동원하기 위한 효과적 수단이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석명이 1989년 펴낸 두 권짜리 <얼 양키들 : 소설로 본 미제 침략사>는 제목 그대로 오로지 반미적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앞에서 소개한 오연호는 1992년 <살아나는 임진강>을 발표했다. 1962년 1월의 이른바 '파주 나무꾼 살해 사건'을 소설로 꾸민 것이다. 1960년대 소설에서 다루었듯, 이 실화는 1962년 유주현의 <임진강>을 통해 이미 알려졌다. 그런데 30년 시차를 두고 두 작품엔 두 가지 주목할 만한 차이가 있다.

첫째, 1962년 단편으로 발표된 유주현의 소설이 1992년엔 오연호의 장편 소설로 바뀌었다. 둘째, 오연호의 소설엔 반미감정이 훨씬 강하게 표출되어 있다. 그래서 <살아나는 임진강>은 미군에게 살해된 나무꾼 아버지의 딸이 자신의 고향에 휘날리는 미국 국기를 머지않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끌어내리겠다고 다짐하면서 끝난다. 이 작품은 1993년 5월 연세대학교에서 <더 이상 우리를 슬프게 하지 말라>는 제목의 마당극으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