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희망' 싣고 모여든 사람들…"우리 살자"

[현장] '3.14 희망행동' 열린 쌍용차 평택공장…"우리 모두가 굴뚝인"

다시 '희망버스'가 모였다. 4년 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의 김진숙을 응원하기 위해 부산으로 떠났던 희망버스가, 이번엔 희망버스의 공동 기획자이자 대변인이었던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를 만나기 위해 다시 부활했다.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 그가 92일째 쌍용차 평택공장 70미터 높이의 굴뚝 위에 있다.

쌍용차 해고자 복직을 촉구하기 위한 '3.14 희망행동'이 열린 14일, 평택시 칠괴동 쌍용차 공장 인근은 그를 응원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온종일 난장이 벌어졌다. 공장 담벼락을 따라 이어진 좁은 골목 곳곳 빼곡하게 '희망 부스'가 설치됐고, 거리 음악가들의 노랫소리와 전 부치는 냄새가 가득했다.

▲쌍용차 해고자 복직을 촉구하기 위한 '3.14 희망행동'이 열린 14일, 쌍용차 평택공장 인근은 '굴뚝인 이창근'과 쌍용차 해고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온종일 난장이 벌어졌다. ⓒ프레시안(선명수)

골목 한 켠에선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들을 위한 심리치유센터인 '와락'이 작은 심리치유 공간을 펼쳤고, 또 한 쪽에선 쌍용차 해고자들의 7년 싸움을 기록한 조촐한 사진전이 열렸다. 어린 아이들을 위한 페이스페인팅 부스가, 민변의 일일 법률상담소가, 작은 손뜨개 교실과 찻집이 열렸다.

평택공장 정문부터 쌍용차 해고자들의 농성장까지 300여 미터에 달하는 담벼락엔, 각양각색의 자물쇠들이 내걸렸다. "분홍 도서관 하나 짓고 싶은 소박한 꿈"을 응원하기 위해, 굴뚝 위 홀로 남은 이창근 실장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야'라고 말하기 위해, 참가자들이 각자의 메시지를 적은 작은 자물쇠를 매달았다. (☞관련 기사 : 웃으면서 싸울거야, '분홍분홍'하게!)

'희망 자물쇠'는 쌍용차 희생자 26명을 상징하는 2만6000개에 이를 때까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앞서 이창근 실장은 "열쇠를 잘 보관하고 있다가 쌍용차 문제가 해결되는 날 자물쇠를 풀어 분홍 도서관에 다시 달아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평택공장 담벼락에 내걸린 자물쇠들. 쌍용차 희생자 26명을 상징하는 26만 개의 자물쇠는 훗날 그들을 기억하는 '분홍도서관'의 상징물로 전시될 예정이다. ⓒ프레시안(선명수)

"우리 모두가 서 있는 곳이 굴뚝…함께 살자"

전국에서 출발한 희망버스 안에서 작성된 편지는 이날 오후 70미터 굴뚝 위의 이창근 실장에게 전달됐다. 농성 89일차인 지난 11일 김정욱 사무국장이 굴뚝에서 내려온 뒤, 나흘째 홀로 버티는 굴뚝 생활이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도 굴뚝을 찾았다. 단원고 실종자인 허다윤 학생의 어머니 박윤미 씨는 '희망행동 만남' 행사에서 무대에 올라 "쌍용차에서 희생된 26명이 있는데 가족을 잃은 아픔을 우리도 잘 안다"며 "아직도 내 딸은 수학여행을 가서 333일 동안 그 차가운 바다에 있다. 바라는 건 딸과 실종자 9명이 돌아와 유가족이 되는 것"이라고 흐느꼈다.

이밖에도 지난해 봄부터 사측의 폐업에 맞서 굴뚝 농성을 벌이고 있는 구미 스타케미칼의 노동자들, 최근 대법원에서 패소한 KTX 승무원들, 쌍용차 해고자들의 마음을 치유했지만 그 역시도 해고 칼날을 피하지 못한 '마인드프리즘'의 심리치유사 등 전국의 수많은 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이 모여 쌍용차 해고자들을 응원하는 한편, 자신들의 투쟁을 증언하기도 했다.

오후 문화제에서 화상 통화로 참가자들과 연결된 이창근 실장은 "여러분은 저를 보러 온 게 아니라 우리도 당당하게 싸우고 있음을, 당신만 힘들게 싸우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러 온 것"이라며 "우리 모두가 서 있는 곳이 굴뚝이고 생존의 현장"이라고 격려했다.

그러면서 "반듯하게 승리하는 것만이 26명의 희생자 앞에 우리가 갖고 있는 인격"이라며 "함께 죽을 수 없다. 함께 살아야 한다"고 했다.

김득중 쌍용차지부장 역시 "굴뚝 앞 집회가 오늘이 마지막이길 바란다"며 "정리해고 이후 6번째 겨울을 지나 이창근 동지가 내려오고 해고자들이 모두 공장에 돌아가는 봄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쌍용차 공장 외벽에 빛으로 만든 메시지. '굴뚝인' 이창근 실장은 "또 와요"라는 글자로 화답했다. ⓒ서영섭

밤이 늦도록 계속된 '희망 행동' 문화제의 말미, 굴뚝 아래 공장 외벽에 빛으로 새긴 대형 글자가 나타났다.

"사랑해", "우리 살자."

혹자는 7년 해고 생활의 고통을 끊임없이 증언해야 했던 '종군기자'로 그를 부르지만, 스스로를 '굴뚝 청소부'로 칭하는 그에게 사랑한다는 함성과 함께 살자는 빛이 닿았을까. '굴뚝인' 이창근이 굴뚝 위에 새긴 글자에 손전등을 비춰 화답한다. "또 와요".

92일째 굴뚝의 밤이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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