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3일, 프레시안 북스는 허위 자백을 이끌어내는 미국 수사기관의 기법 등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허위 자백과 오판>(후마니타스, 2014년 12월 펴냄)에 관한 장경욱 변호사의 서평을 실었다. 이에 더해, 한국에서 이뤄지는 피의자 신문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짚는 장 변호사의 글을 5회 정도 게재한다. '편집자'
피의자 신문의 비밀
미란다 권리를 행사하면 피의자 신문을 더 진행할 수 없는 미국
미란다 경고(원칙)는 누가, 언제, 누구에게, 어떤 내용을 고지하는 것을 말하는가? 이는 수사관이 체포나 피의자 신문 전에 먼저 피의자에게 수사관의 질문에 대한 진술거부권(묵비권)과 변호인의 조력에 관한 권리 등을 구두로 읽어주는 것을 말한다. 수사관은 피의자가 미란다 권리를 이해하고 행사 여부를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할 수 있도록 미란다 경고를 할 의무가 있다.
미란다 경고는 미국의 연방대법원 판례에서 유래한다. 수사기관이 미란다라는 피의자를 체포하면서 미란다 경고를 하지 않고 얻어낸 자백을 유죄 증거로 쓸 수 없다며 미국 연방대법원이 미란다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수사관이 피의자를 체포하거나 신문하기 전에 미란다 경고를 반드시 해야 하는 법적 의무가 있게 된 것이다.
미국 수사관들은 체포나 피의자 신문 전에 "1.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습니다. 2. 당신이 하는 모든 말은 법정에서 당신에게 불리한 증거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3.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 4. 당신이 변호사를 선임할 수 없을 경우, 무료로 국선 변호인이 선임될 것입니다"라는 경고문을 읽어준다.
미국의 주에 따라서는 미란다 권리의 행사를 보장하기 위하여 추가 내용을 포함하기도 한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피의자가 자신의 미란다 권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질문들을 수사관들이 피의자 신문 전에 반드시 하도록 한다.
다음은 인터넷에서 검색한 필라델피아 경찰의 미란다 카드 전면의 내용이다.
우리는 당신이 다음과 같은 법적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경고할 의무가 있습니다.
A. 당신은 묵비권을 갖고 있어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B. 당신이 말한 것은 법정에서 당신에게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C. 당신은 우리가 질문하기 전에 당신이 원하는 변호사와 상의할 권리가 있고 우리가 질문하는 동안 변호사를 배석시킬 권리도 갖고 있습니다.
D. 만약 당신이 변호사를 선임할 경제적 능력이 없지만 그래도 변호사를 원한다면, 우리가 질문을 시작하기 전에 공익 변호사가 선임될 것입니다.
E. 당신은 우리에게 진술을 하더라도 언제나 원할 때에 중단할 권리가 있습니다.
미란다 카드의 후면에는 다음과 같은 미란다 권리의 이해 및 그 권리의 행사 유무에 대한 자세한 질문이 인쇄되어 있다.
피의자들에게 물어보아야 할 질문
1.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과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2. 당신이 한 말이 당신에게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3. 묵비권을 행사하고 싶습니까?
4. 우리가 질문을 하기 전에 변호사와 상의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5. 만약 당신이 변호사를 선임할 경제적 능력이 없지만 그래도 변호사를 원한다면, 공익 변호사가 선임될 것이고 그때까지 우리는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6. 당신은 지금 변호사와 상의하고 싶습니까? 혹은 우리가 질문을 하는 동안 변호사를 당신과 함께 배석시키고 싶습니까?
7. 아무런 강요나 두려움 없이 당신의 자유로운 의지에 의해, 그리고 어떤 협박이나 보상받을 약속 없이 우리의 질문에 답할 용의가 있습니까?
미국에서는 피의자가 미란다 권리를 행사하면 피의자 신문을 더 진행할 수 없다. 미국에서 수사관이 피의자에게 질문하기 위해서는 동의를 얻어야 하고, 피의자는 피의자 신문을 끝낼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미란다 경고를 하긴 하지만…
촛불 집회나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을 집단으로 현행범 체포를 할 때는 경찰 지휘자가 핸드 마이크로 크게 미란다 경고를 하거나 전경들이 미란다 경고를 하기도 한다. 때로는 피의자를 체포한 후 전경차 안에서 미란다 경고를 하거나 경찰서까지 연행한 후에야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대법원 판례는 미란다 고지는 체포를 위한 실력 행사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하여야 하는 것이 원칙이나, 달아나는 피의자를 쫓아가 붙들거나 폭력으로 대항하는 피의자를 실력으로 제압하는 경우에는 붙들거나 제압하는 과정에서 하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은 경우 일단 붙들거나 제압한 후에 지체 없이 하여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체포 전에 미란다 경고를 하지 않고 체포하면 불법 체포이고, 여기에 저항한다고 공무 집행 방해가 되지 않는다. 미란다 경고를 위반한 불법 체포 이후 수사를 통해 얻은 자백도 미국의 미란다 사건에서처럼 피의자의 유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정확히 알아둘 것이 있다. 미국은 체포 전과 피의자 신문 전 미란다 경고의 내용이 같지만,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체포 전 미란다 경고의 내용과 피의자 신문 전 미란다 경고의 내용에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의 피의자 신문 전 미란다 경고의 내용은 미국의 미란다 경고 내용과 거의 같다. 물론 우리나라와 미국의 피의자 신문 전 미란다 경고의 내용 중 다른 것도 있다. 뭐가 다른지 비교해 보자.
먼저 우리나라의 체포 전 미란다 경고의 내용을 보자. 형사소송법 제200조의5(체포와 피의 사실 등의 고지)는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를 체포하는 경우 피의 사실의 요지, 체포 이유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음을 말하고 변명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체포 전 미란다 경고의 내용에 묵비권에 관한 내용이 없다. 체포 전 미란다 경고의 내용은 피의 사실의 요지, 체포 이유와 변호인 선임권이다. 흔히 묵비권에 대한 권리도 고지하는데, 만약 체포 전 미란다 경고에서 묵비권에 대한 권리를 고지하지 않았을 때에는 미란다 권리를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불법 체포인가? 필자는 형사소송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헌법 제12조 제2항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는 규정 취지에 비추어, 체포 이후 피의자 신문에 들어가기 전에도 수사관들은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사실상 피의자 신문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체포 피의자에게 고지하는 미란다 경고의 내용에도 묵비권에 관한 권리의 내용이 포함되어야 적법한 체포 절차라 본다.
우리나라의 피의자 신문 전 미란다 경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형사소송법 244조의3(진술거부권 등의 고지) ①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를 신문하기 전에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알려주어야 한다.
1. 일체의 진술을 하지 아니하거나 개개의 질문에 대하여 진술을 하지 아니할 수 있다는 것
2. 진술을 하지 아니하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아니한다는 것
3. 진술을 거부할 권리를 포기하고 행한 진술은 법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
4. 신문을 받을 때에는 변호인을 참여하게 하는 등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것
②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제1항에 따라 알려준 때에는 피의자가 진술을 거부할 권리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행사할 것인지의 여부를 질문하고, 이에 대한 피의자의 답변을 조서에 기재하여야 한다. 이 경우 피의자의 답변은 피의자로 하여금 자필로 기재하게 하거나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피의자의 답변을 기재한 부분에 기명날인 또는 서명하게 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피의자 신문 전 미란다 경고의 내용 중 위에서 본 미국의 미란다 카드 전면에 담긴 미란다 경고와 유사한 내용이 형사소송법 244조의3 제1항에 규정된 각 호다. 네 가지 내용이다. 그리고 미국의 미란다 카드 후면에 담긴 미란다 권리의 이해 및 미란다 권리의 행사 유무를 묻는 내용과 유사한 것이 형사소송법 제244조의3 제2항이다.
미란다 권리의 핵심은 가난한 피의자도 변호인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
우리나라의 피의자 신문 전 미란다 경고의 내용과 그 권리 행사 유무에 대한 수사관의 질문 내용을 미국과 비교할 때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미란다 권리 중 우리나라에는 없는 것이 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변호사를 선임할 경제적 능력이 없는 체포 피의자가 피의자 신문 시 변호인의 참여를 요구하는 경우 피의자 신문은 어떻게 진행될까. 피의자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사선 변호인을 선임할 때까지 피의자 신문은 중단될까.
형사소송법 244조의3 제1항 제4호에는 신문을 받을 때에는 변호인을 참여하게 하는 등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고만 돼 있다. 즉, 피의자 본인이 사선 변호인을 선임할 경제적 능력이 없으면 피의자 신문 시 변호인의 참여 조력을 받을 권리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변호인을 선임할 경제적 능력이 없는 피의자가 국선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피의자 신문 시 변호인 참여 조력권을 행사하려면 우선, 그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되어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피의자에게 사선 변호인이 없는 경우 국선 변호인이 자동으로 선정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어 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돼 구속되거나, 기각돼 불구속으로 석방된 경우 그 이후 기소 전까지 국선 변호인의 선임 효력이 지속되므로 영장실질심사 이후 계속되는 구속 또는 불구속 수사에서 피의자 신문을 하게 될 때 국선 변호인에게 피의자 신문 참여를 요청할 수 있다. 그런데 해당 국선 변호인이 매우 헌신적인 봉사의 정신으로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경우가 아닌 한 피의자 신문에서 변호인 조력을 받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렇게 하기에는 국선 변호료가 현실적으로 지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만약 변호인을 선임할 경제적 능력이 없는 피의자가 체포돼 피의자 신문 시 참여 등 변호인의 조력을 받겠다고 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미국의 미란다 경고 내용을 보라. "당신은 우리가 질문하기 전에 당신이 원하는 변호사와 상의할 권리가 있고 우리가 질문하는 동안 변호사를 배석시킬 권리도 갖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변호사를 선임할 경제적 능력이 없지만 그래도 변호사를 원한다면, 우리가 질문을 시작하기 전에 공익 변호사가 선임될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변호사를 선임할 경제적 능력이 없지만 그래도 변호사를 원한다면, 공익 변호사가 선임될 것이고 그때까지 우리는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어떤 생각이 드나? 미국의 미란다 권리의 핵심은 바로 가난한 피의자도 국가의 도움을 받아 피의자 신문 시 변호인 참여 조력권을 반드시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가난한 피의자가 미란다 권리를 행사하겠다고 하면 공익 변호사(국선 변호인)가 달려오기 전까지 피의자 신문은 중단된다. 아무런 질문을 할 수 없다.
미란다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미국은 예산을 투자하여 공익변호청을 두고 공무원 신분의 공익 변호사를 고용하여 법률구조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를 참고하여 가난한 사람도 체포 시부터 즉시 변호인의 조력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법률구조 제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미란다 경고의 내용을 살펴보면 볼수록 피의자 신문에 대한 피의자의 최선의 선택지는 명확하다. 피의자가 미란다 권리를 행사하여 묵비권을 행사하더라도 아무런 법적 불이익이 없기에, 피의자 신문 시 미란다 권리를 행사하면 할수록 피의자 자신에게 가장 유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논리만 놓고 보면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미란다 경고를 피의자에게 제대로 고지·설명하고 미란다 권리를 피의자에게 이해시키고 그 권리 행사를 보장하면 할수록, 특히 미국의 경우 가난한 피의자일지라도 국선 변호인을 요청하면 할수록, 피의자에게 절대 유리하고 수사기관은 피의자 신문을 통해 증거를 수집할 것이 없어지게 된다. 이처럼 피의자 신문이 수사 절차에서 아무런 영향가가 없게 되는 일이 발생해야 정상인데, 현실은 정반대다.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에서도 피의자의 거의 대부분은 미란다 경고를 듣고도 그 권리를 포기하고 만다. 피의자들의 이런 선택이 참으로 이상해 보이지 않나? 바로 여기에 수사기관의 소위 '수사 기법'이라고 하는 '미란다 권리 행사의 유명무실화 내지 무력화' 전략과 전술이 도사리고 있다. 미란다 권리 행사를 무력화하려는 수사관들의 갖가지 권리 행사 방해 술책을 간파하고, 피의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미란다 권리를 당당히 행사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것이 변호인의 무거운 책무이다. 그것은 공정한 사법 체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헌법과 법률이 보장한 당연한 권리이다. 이 당연한 권리인 미란다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수사관들의 교묘하고 치밀한 갖가지 소위 수사 기법은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법과 현실의 수사 관행의 괴리가 크면 클수록 우리는 민주적이고 공정한 사법 체계로부터 멀어진다.
<허위 자백과 오판>(후마니타스, 2014년 12월 펴냄)에는 미국 경찰이 피의자로 하여금 미란다 권리 행사를 포기하게 만드는 갖가지 술책이 나와 있다. (관련 기사 : "오빠는 간첩"…멀쩡한 그녀는 왜 거짓 자백을 했나)
피의자 신문에 들어가 미란다 경고 이후 피의자가 미란다 권리를 포기하면, 그 이후에 이루어지는 피의자 신문은 그 적법성이 무한대로 신뢰받게 되는 위험이 있다. 수사관들은 피의자 신문 초기 미란다 권리를 포기케 하는 데 전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미란다 권리를 포기하는 순간, 피의자는 심리적 신문 기법을 훈련받은 수사관들에게 농락당하는 비운의 처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미란다 권리 포기하면 수사관이 선처? 착각은 금물
이제 우리나라에서 피의자에게 보장된 미란다 권리를 행사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살펴보자.
수사관들 중에는 미란다 원칙을 피의자 신문 서두에 읽는 요식 절차로 생각하고 '당연히 미란다 권리를 포기해야만 착한 피의자로서 좀 선처해 줄 수 있다'는 구태에 빠져 있는 경우가 아직도 많다. 미란다 권리를 행사하고자 하는 피의자를 보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기 일쑤다. 피의자는 수사관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괘씸죄에 걸려 자신이 불리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더 초조해질 수밖에 없다. 변호인은 피의자에게 묵비권 행사가 가장 유리하다고 조언하지만, 피의자가 수사관 앞에서 묵비할 당당한 권리를 행사하기가 보통의 용기가 아니고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래도 시국 사건에서 묵비권이 정착되면서 모범 사례들이 등장하고 있다. 어떤 수사관(경찰 또는 검사)은 피의자가 참여 변호인을 통해 일체 진술을 하지 않겠다고 하며 인적 사항까지도 묵비하는 등 미란다 권리를 행사하는 경우, 바로 피의 사실의 요지에 해당하는 몇 가지 신문만 한 다음 피의자 신문을 종결하고 다른 증거들을 가지고 수사를 진행한다. 그리고 향후에도 일체 진술을 거부한다는 피의자의 의사를 확인한 이상 더 이상 피의자에게 출석 요구를 하지 않는다. 이게 제대로 법을 알고 실천하는 모범 수사관이라 하겠다.
이와 달리 피의자와 함께 출석한 변호인이 일체 묵비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일체 묵비권을 행사하는 피의자에게 '계속 묵비하더라도 난 계속 질문(신문)할 권리가 있으므로 장시간 계속 질문을 이어가겠다'고 하는 수사관도 있다. 이에, 일체 묵비권을 행사하는데도 즉시 조사를 마무리하지 않고 계속 신문하는 것은 자백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를 침해하는 위법적 신문이라고 항의하며 피의자와 함께 바로 조사실에서 퇴거한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불구속 피의자의 사례다. 구속 피의자의 경우에도 일체 묵비권을 행사하는 피의자의 당연한 권리로서 피의자 신문 중단을 요청하고 유치장이나 구치소로 보내줄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이에 응하지 않고 피의자 신문을 이어나가는 것은 사실상 미란다 권리를 침해하고 미란다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것이라고 본다. 향후 이러한 사례가 발생하면 반드시 법적 쟁송을 통하여 법원의 판단을 구해볼 생각이다.
계속 신문할 권리가 있다고 우겼던 그 수사관은 이후 추가로 출석을 요구하지 않고 다른 증거로 수사를 진행하였다. 이러한 수사관은 그래도 미란다 권리 행사를 존중하는 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묵비권을 행사한다는 이유로 구속 피의자를 매일 불러,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변호인이 참여하지 못하는 피의자 신문을 계속하는 수사관들도 많다. 묵비하는 피의자를 상대로 온갖 조롱과 모욕을 주며, 피의자의 묵비를 풀고 말겠다면서 고립무원의 피의자를 괴롭히는 수사관들이다. 시국 사건에서 국가보안법 혐의 피의자를 상대로 수사하는 공안 수사기관이 이런 구태를 버리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에 항의해 구속 피의자가 출정을 거부하며 법적 쟁송을 하였으나, 법원은 구속 피의자를 신문하기 위해 피의자를 유치장이나 구치소에서 조사 장소로 강제 인치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였다. 구속 기간 내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체 묵비권을 행사하는 피의자를 상대로 종일 수십 명의 수사관이 드나들며 갖가지 교묘한 수사 기법으로 피의자를 조였다 풀었다 하는 피의자 신문을 허용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진술거부권을 사실상 행사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수사기관의 자백 강요 수사 기법을 극복하려는 피의자에게는 엄청난 시련이 따른다. 그 때문에 중도에 묵비권 행사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일체 묵비권을 행사하는 피의자를 변호하는 변호인들에게도 무한한 헌신성과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시국 사건에서 수많은 피의자들이 고통과 희생을 감내하며 미란다 권리 행사를 실천해온 결과 미란다 권리 행사의 중요성이 사회 일반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미란다 권리 행사를 수사 방해로 여기고 그 행사를 방해한 수사관들의 행태를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보장하는 미란다 권리 행사를 침해한 위법한 수사'로 판단한 판례들이 꾸준히 집적되어 옴으로써 인권 옹호와 사법 절차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묵비권 행사하는 이유라도 있나?" 묻는 어이없는 일부 수사관
미란다 권리를 방해하는 저질 수사의 행태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있다. 피의자가 미란다 권리로서 묵비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히면 바로 이런 질문이 이어지는 것이다. "묵비권을 행사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기막힌 일이다. 방금 전 묵비할 권리가 있다고 수사관 입으로 이야기해 놓고서는, 피의자가 그 권리를 행사하겠다고 하자마자 수사관이 묵비권을 행사하는 이유를 묻는 것에 아연실색한다. 이게 말이 되는가.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이유를 묻는 저의가 무언가.
이런 질문을 하는 수사관에게는 '당신이 묵비권 행사를 방해하고 있다'고 따져야 하는데, 대부분의 피의자들은 묵비를 풀고 다음과 같은 답을 한다. "변호사가 방금 접견을 하면서 묵비권을 행사하라고 하여 묵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묵비권(진술거부권) 교사하는 변호인'이 탄생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그다음에는 대개 수사관이 이렇게 질문한다. "그럼 피의자는 진술을 하고자 하였으나 변호인이 묵비하라고 하던가요?" 피의자는 그 질문에 보통 "네"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변호인의 비밀 접견권을 침해하는 수사관의 신문이 이어진다. "방금 접견에서 변호인과 어떤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변호인이 묵비권 행사를 하라고 하던가요?" 피의자는 묵비권 행사를 하겠다는 처음의 의사를 다 잊어버리고, 다음과 같이 변호인과 사이의 비밀 접견 내용에 대해 수사관의 동정과 선처를 받고 싶은 요량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사실은 저는 모든 것을 털어놓고 수사관님의 질문에 사실 그대로 진술하겠다고 변호인에게 이야기하였으나, 변호인은 제 말을 자르며 '무슨 소리냐. 내가 시키는 대로 무조건 묵비해라. 그래야 유리하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변호인과 피의자 사이를 이렇게 이간질하며 변호인의 비밀 접견권을 침해하는 수사관의 질문에 이골이 날 정도다. 필자는 묵비권을 행사할 경우 수사관들이 어떤 질문을 이어나갈지를 미리 상세하게 의뢰인에게 설명한다. 그렇지 않으면 십중팔구 묵비권 행사를 당당한 권리라고 보기보다는, 미란다 권리를 행사하면 자신에게 불이익만 생기고 수사관만 화나게 해 자신이 큰 불이익을 당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다.
아직도 미란다 권리를 행사하면 수사 절차에서 불이익을 당한다는 생각을 더 많이들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그나마 미란다 경고를 읽어주기 시작한 것도 2000년대 들어와서다. 그전에는 피의자 신문 시 미란다 경고를 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을 뿐, 실제로 피의자 신문에 들어가기 전 미란다 경고를 고지하는 수사관이 매우 드물었다. 수사관 스스로 미란다 경고를 고지하는 것이 어색하고, 수사관이라는 우월적 지위에서 공손히 미란다 경고를 하면 피의자가 수사관을 쉽게 여기지 않을까 걱정하며, 미란다 경고를 거추장스러운 절차로 생각하여 구두 고지를 생략하고 조서에 고지한 것으로 기재하고 서명 날인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러한 전근대적 사고가 만연했던 시절에 비해 많이 나아지고 있으니 이제 미란다 권리는 제대로 보장되고 있는 것일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이 미란다 권리를 포기하는 현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변호인이 피의자에게 진술거부권 알려준 게 죄인가?
시국 사건에서 집단으로 현행범으로 체포된 피의자들 중에는 인적 사항까지 진술을 거부한 경우가 있다. 어떤 변호사는 '인적 사항까지 묵비할 수 있다'고 하고, 다른 변호사는 '그럴 필요가 있냐'고 서로 다른 조언을 한다. 각자의 수준에서 자기가 판단해 묵비권을 행사하면 그만이다.
문제는 인적 사항까지 묵비하는 피의자에게, 함께 연행된 다른 피의자들에 비하여 불이익을 주는 수사관들의 저급한 수사 방식이다. 인적 사항을 묵비하는 경우 수사관은 피의자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지문 날인을 위한 검증영장을 청구하게 된다. 즉 일거리가 늘어나게 된다. 이런 때 일부 수사관은 '다른 피의자는 인적 사항은 얘기해주는데 너 때문에 나는 무능한 수사관이 되고 일거리가 늘었다'는 식으로 피의자를 상대로 짜증을 내고 무슨 불이익을 줄 것처럼 갈구기 시작한다. 변호인이 '어디 어디에서 어떤 이슈로 체포된 성명 불상자'로 특정하여 변호인 접견 신청을 하면, 인적 사항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접견을 거부하기도 한다. 그리고 구속영장을 청구할 사건이 아님에도, 체포 후 48시간 구금권을 악용하여 인적 사항 묵비 피의자는 석방 지휘를 뒤늦게 하는 불이익을 주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국 사건에서 현행범 체포 피의자들 중에는 48시간 내 여러 일정을 이유로 중도에 묵비권을 포기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공공의 목적으로 당당히 집회와 시위의 권리를 행사한 시민들이 수사관들의 치졸한 미란다 권리 행사 못하게 하기 술책 때문에 결국 미란다 권리를 포기하고 진술하게 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그런 상태에서 진술해서 유리할 리가 없다. 전문 수사관들이 피의자를 위해 조서를 꾸밀 리 만무하다. 변호인의 조력권도 불충분한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석방되고자 하는 유혹에 잘못 진술하여 뒤늦게 후회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이런 수사 현실에서 피의자에게 당당히 미란다 권리를 행사할 것을 조언하는 변호사에 대한 온갖 음해가 난무한다. 필자는 미란다 권리 행사를 조언하였다는 이유로 조사실에서 강제로 쫓겨나는 일도 겪었다. 변호인이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라고 조언도 하지 못하는가? 변호인이 묵비권을 교사하였다고 보수 언론에 대문짝만하게 나기도 하였다. '묵비권 교사'란 신조어를 만들어 시민들이 미란다 권리 행사를 못하게 하는 것이 민주 사법 수사기관이라고 자처하는 현실이 우습다.
현재 필자는 탈북 조작 간첩 사건의 피의자에게 허위 진술을 종용했다는 이유로 검찰로부터 징계 신청을 당하였고, 동료 변호사 한 분은 피의자가 진술을 하려 했는데 진술거부권을 조언하였다는 이유로 징계 신청을 당하였다. 변호인과 피의자 사이의 접견 내용에 대하여 피의자 신문에서 당당히 질문하는 그들은 변호인 비밀 접견권을 침해하며 범법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자신들을 단죄할 기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수사권을 악용하는 오만방자한 모습이다. 수사권을 남용하여, 변호사의 조언 때문에 피의자에게 큰 불이익이 발생할 것처럼 겁을 주어 변호인과 피의자 사이를 이간질하는 내용의 피의자 신문 조서를 꾸미고 이를 증거로 변호인을 징계 신청하는 것이 오늘도 벌어지는 수사 현실이다.
필자의 이 글은 미란다 권리 행사가 피의자 신분의 시민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지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쓰고 보니 필자가 미란다 권리 행사를 못하게 하는 저질 수사의 현실을 고발한 것이 오히려 시민들에게 '미란다 권리 행사를 했다가는 낭패 보기 쉽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민주 시민은 저질 수사에 농락당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자존심을 굽혀서는 안 된다. 미란다 권리 행사가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당당한 권리 행사라는 자각을 가지고, 이를 행사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수사관들의 교묘한 술책을 극복해야 한다. 그렇게 수많은 민주 시민들의 미란다 권리 행사가 쌓일수록 미란다 권리가 보장되는 수사 관행이 만들어지고, 그래야만 우리나라의 사법 절차는 더욱 공정하게 발전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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