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치를 학습의 장에서 협동조합이라는 틀로 실현해보고자 하는 곳이 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에 있는 '지혜공유협동조합'(이하 '지혜공유')가 그곳이다.
학습을 매개로 한 지역 커뮤니티의 건설
지혜공유는 배움을 매개로 지역에 건강한 커뮤니티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지혜'라고 해서 거창한 학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 삶 속에서의 지혜다.
맛깔스러운 김치가 자랑인 주부라면 김치 강좌를 열 수 있고, 청국장 띄우는 비법이 있는 할머니라면 청국장 강좌를 열 수 있다. 차량을 관리하고 손보는 요령도 좋은 강좌가 될 수 있고, LP로 듣는 음악 이야기나 동화 읽는 모임도 훌륭한 공부 모임이 된다. 마술 강좌도 있고, 수제 소시지 만들기 체험 강좌도 있다. 직접 만들어 먹는 에일(Ale) 맥주, 인문학으로 배우는 사주 명리학, 아이와 함께 배우는 전래놀이, 자기 주도적 학습과 입학사정관제, 심지어 만담이나 수다 형식의 소통 모임도 운영되고 있다. 말 그대로 '오만 가지 시민강의'가 다 모여 있다. 그래서 지혜공유의 모토가 '가르치면서 배우자!', '모든 시민은 학생이자 선생님!'이다.
이렇게 지혜공유는 우리 사회의 '숨은 고수'들을 발굴하여 세상으로 불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주민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더 많이 소통하고 더 많이 공유하는 틀을 만들어 가고 있다. 조합원은 6개월 만에 약 170명이 모였다.
"처음에는 저희 활동이 협동조합으로 하는 게 맞는지 잘 판단이 안 됐습니다. 사단법인의 형태로 해볼까도 생각했지요. 그런데 논의를 해 보니 사단법인으로 하게 되면 후원금의 형태로 운영하게 되는데, 그게 썩 좋게 느껴 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보다 우리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가치와 역량으로 스스로 설 수 있도록 해보자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리고 지역 내에서 뭔가 의미있는 활동을 펼친다는 점에서도 협동조합이 맞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유정길 이사장의 말이다.
스스로 만드는 배움 동아리
지혜공유의 강좌는 백화점이나 구청 등의 '문화센터' 등에서 운영하는 일반 평생학습 프로그램과 형식상 비슷하지만, 본질 면에서 다르다. 문화센터는 주최 측이 미리 교육프로그램을 짜놓고 사람들을 모아서 운영하지만, 지혜공유는 밑에서부터 학습자들 중심으로 학습프로그램을 자발적으로 준비하여 운영된다. 수강 인원이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강좌에 대한 참여도와 밀도가 훨씬 강할 수밖에 없다. 또 지혜공유는 강좌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지역 내에 건강한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는 점도 다르다.
지혜공유의 모든 강의는 유료로 진행하며, 수강료는 강사가 자율적으로 정하되, 아무리 비싸도 1회당 수강료가 조합원 출자금(2만 원)의 범위를 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강사료는 수강료의 70퍼센트(%)이며, 나머지 30%는 조합의 운영기금으로 쓰인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강사료 70% 중 10%는 지역화폐(대안화폐)로 지급한다는 점. 이용자들은 이 지역화폐로 다른 강좌를 수강하거나 지혜공유와 협약한 다른 협동조합이나 단체의 서비스를 이용할 때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강의는 조합의 강의실(두레 플러스 아트홀)뿐 아니라, 고양 시내 곳곳에서 이루어진다. 접근성이 좋은 북카페나 서점 등이 주로 이용되고 있다.
스마트폰 활용 강좌 등 인기
지혜공유에서 인기가 많은 강좌는 뭘까?
"이재정 고양시민사회연대회의 사무국장의 '스마트폰 100% 활용하기' 강의가 3차 앙코르까지 이어질 정도로 호응이 많았어요. 다양한 스마트폰 앱 활용 방법이든가 영상 촬영 및 편집 기법, 그리고 SNS 소통의 달인 되기 등의 내용이 수강생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리고 전소영 바리스타의 '행복한 커피스트' 강좌도 인기가 높았어요. 자판기 커피 대신 나만의 커피를 만들어 마신다는 컨셉이 좋았던 거죠. 그밖에도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미얀마에서 수행하신 이용성 풍경소리 사무국장의 '행복한 마음챙김 명상' 강좌와, 번역가 겸 저술가로 활동하시는 최성애 님의 '번역가와 함께 명작 원서 읽기' 강좌도 인기를 끈 강좌입니다."
지난해 연말에는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의 '대국민 상담소' 강좌도 열렸고, 올해 3월에는 '홍세화가 들려주는 생각의 좌표'라는 토크 타임도 가졌다. 시간이 갈수록 그만큼 강좌가 더 풍성해지고 다양해지고 있다.
안정적인 수익구조가 고민
프로그램이 좋아지고 있는 만큼, 조합의 경영 성과도 함께 좋아지고 있을까?
"제일 고민이 그 점이죠. 아무리 좋은 강좌가 많아도, 조합의 안정적인 수익구조가 확보되지 않으면 지속해나가기가 어려울 테니까요. 아직은 충분하지 않고요, 매우 미흡합니다. 그래서 조합원들끼리 이마를 맞대고 방안을 찾는 중입니다. 홍보도 중요한데, 협동조합과 강좌프로그램을 알리기 위해 협동조합 소식지나 지역 매체들을 통해 백방으로 노력하고는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지역 주민들 사이의 입소문입니다. 그 점에 집중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안정적인 수익구조에 대한 고민은 아마 모든 협동조합의 공통된 고민일 것이다. 사업모델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혜공유처럼 지역 기반의 활동을 펴는 조합이라면 강좌나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가 있는 지역 내 대기업이나 공공기관과 협력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도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창의적 체험활동의 문도 두드려볼 만하지 않을까.
유사한 맥락에서 또 한 가지 지혜공유에서 고민하는 일이 '협동조합 간의 협동'을 만드는 일이다.
"우리 지역에 아이쿱·한살림·두레와 같은 생협들이 있는데, 그 조합 내에서 하는 조합원 교육을 우리와 제휴하여 풀어갈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를 서로 논의하고 있습니다. 생협 말고도 지역 내 몇 군데 협동조합들이 있는데, 그분들도 우리와 프로그램 제휴를 원하고 있습니다."
최근 고양시에도 협동조합협의회가 만들어졌다고 하니, 앞으로 각 협동조합의 홍보뿐만 아니라 협동조합 간의 상호교류와 협력이 더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또다른 모색들
지혜공유가 모색하는 또다른 활동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공간의 공유'다. 불황기를 거치면서 지역 여기저기에 공간들이 적지 않은데, 이런 유휴 공간을 소유한 사람과 그런 공간이 있어야 하는 사람을 연결하는 사업이다. 또 하나는 '대안화폐'(지역화폐)다. 지역에서 통용되는 화폐를 만들어서 사용하면 외부 화폐에 의존하지 않고도 지역 내부적으로 주민들이 서로 대안적인 경제활동들을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는 계획이다.
협동은 나눔에서 시작된다. 나눔이 없으면 협동할 수 없다. 지혜공유가 '나누고 공유할 때 우리 삶이 한 뼘 더 늘어난다'는 사실을 세상에 더 많이 알릴 수 있기를 바란다.
*지혜공유협동조합
전화 : 070-7567-6552
카페 : cafe.naver.com/learningcoop
*격월간 '자치와 협동'(발행인 양홍관)은 협동조합인 삶의출판협동조합(이사장 손훈모)이 발행하는 잡지입니다. 지역자치와 협동사회경제의 활동들을 널리 취재‧보도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행복을 만들어 나가는 데 일조하고자 합니다. '자치와 협동'은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자치와 협동'은 지역자치와 따뜻한 공동체의 이야기를 담겠습니다. '자치와 협동'은 협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웃음과 훌륭한 리더십 이야기를 담습니다. (☞ 자치와 협동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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