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희·최태욱 대담] 야당, 무엇을 할 것인가?

남재희 "리더십과 정체성 세워야"…최태욱 "체제전환 주도해야"

야당이 문제라는 말은, 기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과 같다. 막연히 북한을 추종할지 모른다는 의심만으로 200만 표를 얻은 정당 하나를 강제해산시켜버린 정치, 사법, 언론, 자본의 위력적인 동맹을 확인하고 나니 새삼 그렇다.

다수파가 되지 못해 야당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야당이 다수파가 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표현하는 말이다. 집권세력의 실력이 변변치 않아도 야당이 번번이 집권에 실패하는 큰 이유다. 집권세력에 실망한 사람들조차 야당의 부진에 혀를 차며 정치에서 눈을 돌려버리는 건 아이러니다.

그래서 다시 야당이다. 야당의 부진이 여당의 독주로, 다시 정치의 질적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야당이 끊어내는 수밖에 없다. 불리한 정치 환경을 극복할 체력을 키우든가, 아예 판을 바꾸든가. 남재희 전 노동부장관과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 교수가 야당의 진로를 모색했다.

남 전 장관은 오랜 정치 경험과 식견에 근거해 현실적 접근을 주문했다. 한국 정치에서 제3정당의 성공이나 진보정당의 집권 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양당 질서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진보적 정책을 관철시키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주문이다.

이를 위해선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체성 확립이 선결 요건이다. 남 전 장관은 새정치연합의 정체성 혼란에 대해 "몰지각한 사람들이 중도화를 주장한다"며 "우경화의 늪에 빠져있다"고 비판했다.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새누리당과 대별되는 진보진영의 정당으로서의 정체성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남 전 장관은 "새정치연합은 정체성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라는 중요한 문제에 당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남 전 장관은 "한국은 여당과 야당이 거의 1대 1 구도를 갖추고 있다"면서 '감동의 리더십'을 강조했다. 경제지표들이 일제히 심각한 위기로 가는 추세인 만큼 "언젠가는 대중적 반란이 등장하는 시기가 올 것"이라며 "이 때 감동을 주는 정치 지도자가 나타나야 한다"고 했다.

최태욱 교수는 체제 전환을 위한 과감한 시도를 강조했다. 현재와 같은 양당 질서에서 '적어도 2등은 할 수 있다'는 기득권을 새정치연합이 스스로 내려놓아야 더 큰 승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지금 새정치연합이 해야 할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고쳐보겠다는 공세"라며 체제 전환의 요체로 "정치체제 개혁 논의를 곧바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정치체제 혁신의 이니셔티브를 쥐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 교수는 "지금 같은 양당제와 승자독식형 선거제도에선 경제민주화나 복지와 같은 약자들의 요구가 정책에 반영될 수 없다"며 선거가 없는 내년에 "국민들을 선거제도 개혁 과정에 동참시키고 새누리당을 압박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체제 전환 대통령'을 선언하고 국민 투표 방식 등을 통해 선거 제도 개혁을 해내는 것만이 보수 장기 집권을 막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남재희 전 장관과 최태욱 교수의 대담은 지난 16일 진행됐으며, 박인규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 이사장이 함께 했다. <편집자>

한국 야당은 일본 민주당과 다를까?

프레시안 : 우리 정치가 점점 일본을 닮아간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최근 중의원 선거에서 집권 보수당인 자민당이 압승을 거뒀다. 아베노믹스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은 역대 최저치의 투표율(52%)을 보였다. 야당의 몰락이 자민당 독주로, 다시 정치의 질적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이다. 이 같은 일본 정치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있을 것 같다.

남재희 : 참패도 보통 참패가 아니다. 일본 민주당이 정말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과거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 시절 오키나와 미군 기지 이전 공약이 결정적 패착이었던 것 같다. 오키나와 기지 이전 시도는 미국의 대 아시아 전략, 특히 동북아 전략의 핵을 건드리며 양국 갈등을 표면화했고, 기지 이전이 좌절된 이후 민주당은 계속 죽을 쑤고 있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번 선거가 아베노믹스가 실패했단 평가를 받는 까닭에 일찍 당겨서 치러진 것이란 점이다. 아베의 경제 정책이 경기를 더 하강 국면으로 끌어내리기 전에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생각 속에 진행된 선거였다. 아베노믹스가 일본 국민 사이에서 엄청나게 인기 있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또 하나는 이번 선거를 통해 '지난날의 영광을 되찾자’는 식의 아베의 외교·안보 정책이 전후 70년을 맞고 있는 일본 국민의 정서와는 안 맞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싶다. 선거 결과를 보니 연립 여당에 대한 지지는 60대 이상 고령층에서 많이 나왔더라. 그간 아베 정부가 위안부, 독도, 센카쿠 열도 등을 둘러싼 문제에서 가슴을 확 펴는 식의 태도를 많이 취했는데 이것이 국민 정서를 움직인 것 같지는 않다.

최태욱 : 지금도 '동아시아 공동체'를 강조하며 '미국보다 아시아가 중요하다'고 외치던 하토야마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한때는 민주당이 얼마나 선풍적 인기를 끌었나. 2009년 선거에선 총의석(480석)의 64%를 얻었었다. 당시 고이즈미-아베 라인을 타고 불거진 신자유주의 문제를 배경으로, 유권자들은 비교적 개혁적인 민주당에 표를 몰아줬다.

그랬던 민주당이 무너진 것은 무모한 안보·대미 정책이 실패한 것에 더해 무모한 복지 공약을 남발했기 때문이다. 아동 수당, 무상 고교 교육, 구직자 지원 등 엄청난 재원이 필요한 복지 공약을 남발하면서도 이것이 증세 없이 가능하다고 국민들을 꼬드겼지만 해보니 되지를 않았다. 그렇게 하토야마의 지위가 흔들리며 칸 나오토 수상이 그 뒤를 이었고 칸 수상은 '복지 주도 성장론'과 같은 생경한 개념을 꺼내놓으며 '증세가 필요하다' 쪽으로 정책 기조를 바꾸었다.

자민당과의 차별은 두어야겠고, 그럼에도 증세 없는 복지는 어려우니 '제3의 길'을 말했던 것인데, 그럼에도 민주당은 그 후 선거에서 처참히 졌다. 국민들이 보기에 '자기들 마음대로'라고 생각했던 결과다. 안보에서도 무능하고 사회‧경제 정책에서도 무능하며, 사실 이들 또한 결국은 보수 정당이란 평가가 퍼졌다. 그렇게 3년 3개월 동안 쌓인 '무능한 정권'이란 인상에서 민주당은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일본 또한 1993년 선거제도 개편으로 보수 양당제를 택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다시 대안은 자민당밖에 남지 않게 됐다. 이것이 전후 최저 투표율인 52%란 결과를 낳았다. 사실상 거의 포기했단 얘기다.

이러한 일본 상황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칫하면 다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보수 정당으로부터 정권을 가져갈 가능성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한국의 야당 또한 제대로 된 대안을 제시하고 못 하고 있는 것이 마찬가지고, 국민에게 무능하다고 찍힌 것도 비슷하다. 정치 제도 또한 실질적인 양당 체제다.

▲ 남재희 전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남재희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야당은 강하다"

프레시안 : 야권을 외곽에서 지원하던 시민사회계의 영향력이 약화되어가는 반면 자본과 보수당의 동맹은 강해지고 있다. 여기에 종합편성채널의 등장 등으로 보수 쏠림의 언론환경까지 겹쳐있다. 야당의 정치 환경이 무척 열악해졌지만, 그래서 오히려 야당이 정치의 영역에서 균형자로서의 역할을 되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남재희 : 물론 일본 민주당의 급전직하를 연구해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야당은 일본에 비해선 강한 편이라 그렇게 비관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본래 전후 초반 일본을 두고 양당제가 아닌 1.5정당 체제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한국은 여당과 야당이 거의 1대 1 구도를 갖추고 있다. 지난 대선만 해도 1%포인트 수준으로만 득표율이 뒤집혔어도 당락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국정원의 엄청난 선거 장난만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몰랐을 거란 얘기다.

일부에선 새정치연합이 다 망해가는 것처럼 혹평하는데, 꼭 그렇게 볼 것만도 아니라고 본다. 으레 정당이란 당수나 대통령 후보가 없으면 산만하기 마련이다. 새정치연합은 그간 당의 중심이 될만한 당수가 사실상 없는 상태였고 강한 대통령 후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살림이 엉망일 수밖에 없다. 내년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정리하면 지금보다는 구심력이 생길 것으로 본다.

우리가 정당을 굉장히 결속력이 강한 조직으로 생각하는데, 미국 민주당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미국 민주당은 굉장히 느슨한 형태가 아닌가. 보수 세력이 있고 진보 세력이 있으며 평소엔 오합지졸 같다가도 선거 때나 이슈가 있으면 뭉친다.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 야당은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정 체제 하에서 늘 탄압받는 조직이었다. 그러다 보니 단결력도 있었고 투쟁력도 있었다. 국민들에게도 그런 야당 이미지가 익숙해져 오늘날 야당 모습을 보고 약한 야당이라고 평가하는 것 같다.

또, 대안 제시를 못 한다고 하는데, 사실 신자유주의 이후 경제적인 대안 제시는 누구에게나 어려워졌다. 국민 경제가 세계 경제에 완전히 편입되다 보니, 미시적인 대안이 나올 수가 없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갖은 생각 다 해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던 것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시민사회 세력 또한 굉장히 약화했고 종편과 주류 언론은 사사건건 야당을 물고 넘어지고 있으며 민심 역시 불만은 있지만 현재로선 잠잠한 듯이 보이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

게다가 자본의 힘이란 건 정말로 엄청나다. 양당을 손아귀에 다 가지고 있다. 지역구 의원들 선거 자금, 돈 쓰는 거 다 어디서 나오겠나. 따지고 들어가다 보면 다 자본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자본의 비위를 안 상하게 하려고 애를 쓴다. 이처럼 상황이 어려운데도 2년 전 대선에선 득표율이 반반 가까이 나오지 않았나. 야당에 대한 민심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비관적인 수준은 아니다.

최태욱 "정치제도 개혁 없인 기울어진 운동장 못 바꾼다"

프레시안 : 그럼에도 상당히 비관적인 전망이 많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대표적인 표현이다. 최근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보수와 진보의 1대 1 진영 구축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최태욱 : 그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게 결국은 구조인데, 보수 우위의 정치 지형을 만드는 여러 구조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게 선거 제도다. 양당제를 채택한 국가는 거의 예외 없이 보수파가 선거에서 승리하는 비율이 높았다. 몇몇 정치학자가 1945년 이후 50년간 양당제 국가와 다당제 국가의 정부 성향을 비교해 봤는데, 양당제 국가에선 75%의 확률로 우파가 정권을 잡았더라. 이를 '75%의 룰(규칙)'이라고 한다.

그 이유도 설득력 있다. 양당제는 결국 중도층을 어떻게 끌어내느냐의 싸움을 만든다. 선거 때만 되면 중도 수렴 정책이 나오는 이유가 그래서다. 선거 결과를 좌지우지하는 중산층은 진보 쪽에 표를 주면 저들이 언젠가는 '극좌'가 되어 세금을 올릴 가능성을 걱정하기 마련이다. 반면 우파가 잡으면 적어도 내 것을 빼앗아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비교적 안전한 우파에 표를 던지게 되고 보수가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75% 룰은 한국에도 대체로 들어맞는다. 민주화 이후 지금까지 보면, 노무현 정부만 유일하게 진보 세력 홀로 정권을 잡은 것이다. DJP도 연립 정부였으니 선거 결과들을 다 놓고 보면 우리도 75%더라. 이 75% 룰이 유지될 것을 감지한 언론, 관계, 재계가 백낙청 교수가 말한 분단 체제에서 생긴 보수 수구 연합체에 붙어 커다란 성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선 기울어진 운동장이 평평해질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

▲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남재희 "감동 주는 리더가 나와야"

프레시안 : 기울어진 운동장론은 정치환경에 대한 묘사로서는 정확한 반영이지만, 한편으로는 정치 주체들의 능동성을 외면하게 하는 함정이 있지 않나 싶다. 가령 정체성의 위기나 리더십 문제는 환경적 문제라기보다는 야당 자체의 역량 문제다. 새정치연합을 정치 자영업자들의 연합체, 소위 '프랜차이즈 정당'이라고 한다. 리더십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이후 새롭게 만들어지지 못했다.

남재희 : 리더십 문제에서도 그렇게 비관할 상황만은 아니라고 본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중국에서 이원집정제 방식의 개헌 얘기를 했었다. 대통령한테 혼이 난 후 후퇴했지만…. 김 대표가 왜 그런 얘기를 했을까. 그건 새누리당에 '포스트 박근혜'가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내가 봐도 그런 인물은 없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오히려 행운아다. 새누리당 누구와 붙어도 유리한 문재인, 박원순에 안희정이라는 다크호스까지 셋이나 있다.

다만 아직까지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리더는 보이지 않는다. 과거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납치되고 사형이 선고되는 삶으로 '수난의 감동'이란 걸 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안 되는 경상도에 가서 외골수 정치를 하며 감동을 줬다. 그런데 지금 문재인만 해도 그런 감동을 주지 못한다. 일각에선 486에 대한 기대를 거는데, 리더로 부상할 역사적 모멘텀(계기)이 다 지나도록 아직도 리더가 없다는 건 문제 아닌가.

리더십이란 건 온몸으로 살아온 지도자가 반란적인 군중을 만날 때 형성된다. 요즘 노동 조건, 빈부 격차, 부익부 빈익빈 등 각종 지표들을 보면 상황이 정말 심각하다.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터닝 포인트(전환점), 그러니까 대중적 반란이 등장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이때 감동을 주는 정치 지도자가 나타나야 한다. 현실성도 없는 공약만 늘어놓는다고 리더십이 생기고 감동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란 얘기다.

"정체성이 없는데 어떻게 중도화를 하나"

남재희 : 다만 리더십 전에 당의 정체성을 세워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새정치연합이 언제는 개혁적인 정당이었나? 그리고 지금은 과연 개혁적인 정당인가? 역사적으로 보면 이 정당의 뿌리는 엄청나게 보수적인 한민당이다. 이승만 박사의 자유당이 오히려 상당히 개혁적인 정당이었다. 지주 세력 중심의 보수적 한민당과 싸우려면 농민-노동자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강 정책도 굉장히 개혁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중간에 역전이 된다. 그 배경에는 김대중이란 인물을 계기로 (민주당의) 기반이 호남으로 옮겨간 과정이 있다. 호남은 지주 계층이 매우 발달한 곳인 만큼 소작인들 또한 많았다. 반면 영남은 지주나 소작농이 별로 없었다. 이런 배경에서 '에이 지주 놈들'과 같은 호남 소작인들의 반항심이 개혁 심리로 연결되고, 그것이 또 탄압받는 김대중을 만나며 강화된 것이다.

그런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집권해보니 어땠나. 기대했던 만큼 개혁적인 것만도 아니었단 말이다. 노무현 정권 들어서는 더더욱 그 개혁 성향이 희석됐다. 그리고 지금은 이도 저도 아니다. 새정치연합이 과연 개혁적인 정당인가? 글쎄올시다다.

새정치연합은 리더십 위기와 더불어 정체성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라는 중요한 문제에 당면해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중도화를 주장한다. 정체성이 애초에 없는데 어떻게 중도화를 외치나. 이러니 국민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런 모습을 보고 '우경화의 늪에 빠져있다'고 하더라. 상황을 객관화시켜서 바라보기 보다는 우경화를 위해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선거 때는 이런저런 이유로 우경화만 하려고 한다.

요즘 오픈프라이머리를 얘기하는데, 100% 오픈프라이머리로 가면 정당이 중도화된다. 정당 간에 차별이 안 되고 비슷해진다. 나는 100% 오픈프라이머리 반대한다. 중앙에서 일정정도 발언권을 갖고 선택권을 가져야 한다. 완전한 오픈프라이머리가 아니라 진성당원의 투표 비중을 일정정도 인정해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최태욱 "시대 요구 못 받아 안는 야당…선거 전문 정당일 뿐"

프레시안 : 새정치연합에 새누리당보다 대선 후보군이 많고, 또 그들의 지지율이 높다는 점이 오히려 당을 안주하게 하는 또 다른 이유인 것도 같다. 국회의원들은 다음 총선만 보일 뿐이고.

최태욱 : 설령 새정치연합이 대선에서 반전에 성공할지 몰라도 총선은 다르다. 또다시 대패할 가능성이 높다. 87 체제 이후 총선에서 야당이 단독 과반을 차지한 경험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이후인 2004년 17대 총선 한 번뿐이다. 그것 또한 얼마 못 가 재보궐에서 뒤집혔다. 다음 대선에서 새정치연합이 이기더라도 2016년 총선에서 패하면 여소야대 대통령에 불과한데, 이렇게 한다고 의미 있는 정부가 될 수 있겠나.

이런 점에서 새누리당 지도부가 개헌을 세게 밀어붙일 이유는 충분하다. 총선은 분명히 이길 것 같지만 경쟁력 있는 대선주자는 보이지 않으니 안전하게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개헌뿐이다. 권력 구조를 의원내각제로 하든 분권형으로 하든 정부 구성을 국회가 하면 장기 집권이 가능하니까. 선거제도를 개편하지 않은 채로 권력구조 개편을 한다면 외려 보수의 장기 집권 체제가 형성될 공산이 더 크다. 야당이 지금처럼 개헌에 동참하는 것은 위험한 전략이다.

남 장관께서 '감동을 주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 감동이란 건 무언가 대단한 비전을 제시할 때 나온다고 본다. '아 저거구나, 저렇게 하면 되겠구나'란 생각이 들도록 설득력 있는 대안을 내놔야 한단 것이다. 물론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은 경제민주화나 복지도 그 자체로 하나의 전환론이다. 그러나 지금 체제에서 의미 있는 복지 국가나 경제민주화 사회를 만들 수 있나. 그럴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될까.

경제민주화나 복지는 이를 바라는 사회적 약자들의 요구가 정책 과정에 반영되고, 그런 정책들이 축적됐을 때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양당제다. 새누리당이나 새정치연합 둘 중 하나가 해내야 하는데 두 당 모두 의지나 역량이 부족하다. 새누리당은 보수 정당답게 수구와 보수를 충실하게 대표하고 있고, 새정치연합은 정당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공유하는 이념이나 가치 지향점이 없다. 선거 전문 정당일 뿐 내부를 보면 새누리당 못지 않게 보수적인 인사들도 있는데, 이런 정당이 경제민주화나 복지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거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국민들도 직감적으로 이미 알고 있다. '야당이 말로만 떠들지 진짜로 할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막연하지만 한때 안철수의 '새 정치'에 열광했던 것이다. 지금 새정치연합이 해야 할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고쳐보겠다는 공세다. '한국 민주주의의 새판을 짜겠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겠다'는 정치 체제 개혁 논의를 곧바로 시작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87년 체제에서 얻은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하는 것도 필수다. 새누리당은 절대 못 할 일이기도 하다.

"현재로선 제3 정당 성공 가능성 없다…정치 체제 전환만이 대안"

프레시안 : 야권의 분화 가능성 혹은 필요성이 있다고 보나? 실패로 끝났지만 안철수 현상에는 제3 정치세력에 대한 국민들의 일정한 기대가 포함됐다고 본다. 반면 양당 질서를 깰만한 정치 주체들의 능력이 형편없음을 동시에 확인한 일이기도 했다. 새정치연합에서 최근 다시 분당론이 거론되고, 위축된 진보정당들도 무언가 모색을 하는 듯 하다.

남재희 : 요즘 야권에서 신당 창당이나 탈당 이야기도 제법 나오던데 그건 대안이 아니라고 본다. 분단국가에서 진보정당이 집권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한다. 최장집 교수가 얘기하는 노동에 기반을 둔 제3의 정당도 현실 가능성이 적다. 노동도 현재는 부분화된 마당에 그러한 진보적 개혁을 표방하는 정당이 자리 잡을 수 있겠나.

그보단 진보 세력 중 큰 부분이 거대 양당 중 어느 한쪽에 들어가 밀어주며 연합 세력을 키우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렇다고 진보 세력이나 진보 정당이 없어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존재만으로도 엄청난 교육 효과가 있다. 이들은 남되, 미국 민주당처럼 새정치연합 안팎에 진보 팩션(분파)를 만들어 당수에게 영향을 주고 대통령에게 영향을 주어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정책을 추진하게끔 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최태욱 : 제3의 진보적 정당이 유력한 정당이 될 가능성이 낮다는데 동의한다.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를 선택한 나라에서 제3당이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 영국만 해도 수십 년 동안 고작 자유민주당 하나인데, 그마저도 가끔 캐스팅보트를 쥘 뿐이다. 뉴질랜드도 1970년대 초부터 제3정당 조짐이 보였지만, 한때 20% 가까운 표를 받았던 녹색당도 의석 점유율은 0%에 가까웠다.

한국은 이들 국가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다. 소선거구제가 지역주의와 결합해 있다. 이러니 새 정치를 외쳤던 안철수 세력도 결국은 호남을 잡겠다고 한 것 아닌가. 제3이 아닌 제2가 되자, 기존의 민주당을 대체해버리자는 판단을 내린 배경엔 이런 것이 있다. 현재와 같은 정치 체제 하에서 유력한 제3정당이 생긴다는 기대를 하는 것은 공염불이다.

남재희 :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진보정당이 의석을 몇 개라도 갖기 시작한 건 1인 2표(지역구 투표와 정당투표)제도가 도입되면서다. 비례대표 의원을 조금이라도 인정하면서 겨우 비비고 들어갔다. 예상컨대 새누리당은 이번 헌재 결정에 따라 선거제도를 개편하며, 비례대표 의원 수를 깎으려고 할 것이다. 현재 54석도 지키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를 넘어서서 비례대표 숫자를 늘리고 작은 정당도 연합을 해 정책 협상을 할 수 있는 결선투표제가 도입되는 게 좋겠다.

최태욱 : 물론, 내가 주장하는 정치 체제 개편이 2016년 총선 전에 성공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말한 대로 비례대표의 획기적 확대를 새누리당이 받아들일 리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당장 어려울 걸 알면서 '정치 체제를 개혁하자. 그를 위해 우리부터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공세는 가능하다. 야당은 자신들이 좀 더 선거에 유리한 방향이 아닌 정치 전체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정치 제도 개혁을 끌어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 산다. 87년 체제가 보장한 '못해도 2등'이란 기득권을 내려놓고, 새로운 선거제도로 가보자는 논의를 시작할 때다.

2015년은 통째로 선거에서 자유로운 기간이다. 이때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하고 그 충심을 알아달라고 국민에게 얘기하고, 국민을 선거 제도 개혁 과정에 동참시키며 새누리당을 압박해 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 국민이 반응한다. 체제 전환을 위한 공격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2017년 총선을 맞고 리더십을 창출한다면 다음 대선에선 해볼 만하다. '체제 전환 대통령'을 선언하고 국민 투표 방식 등을 통해 선거 제도 개혁을 해내는 것만이 보수 장기 집권을 막는 유일한 대안이다. (이 대담은 지난 19일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 나기 전에 이뤄졌다. 헌재가 통합진보당 의원직 자격 박탈까지 결정함에 따라 2015년 4월 재보궐 선거가 치뤄질 예정이나, 전국 단위가 선거는 아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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