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이후 3년, 복지부는 변한 게 없다"

[기고] 2014 장애인 거주시설 거주인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 유감

<도가니> 이후 장애인거주시설 거주인 실태조사는?

지난 2011년 <도가니>로 알려진 광주 인화학교, 인화원 거주인 인권침해 사건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을 때, 복지부는 전국장애인거주시설의 거주인 인권상황을 조사하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급작스럽게 진행된 조사라 조사방식, 조사원 구성, 조사원 교육, 설문지, 분석, 지자체의 준비 등 모든 것이 어수선했고 급기야 복지부는 '조사결과 보고서'도 공개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만큼 조사과정과 내용에 있어 부실했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국회의원이 자료 제출 요구를 했음에도 "줄 수 없다"고 했는데, 국민의 세금으로 조사한 결과 공개도 못하는 상황이 과연 상식적인가.
상황이 이러니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시설 내 인권지킴이단 구성과 직원과 거주인에 대한 인권교육 의무화였는데, '도가니'란 말이 시설 내 인권침해를 가능케 하는 침묵의 카르텔을 지칭하는, 일종의 명사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내놓은 대책이 고작 이 수준이라니 정말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대책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국가의 이런 염치없는 행태를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예산 한 푼 책정되지 않은 것을 정책이라 할 수 있을까? 정작 관리감독의 가장 큰 책임을 갖고 있는 '국가'는 뒷짐 지고 남의 일인 듯 시설측만 탓하는 모양새는 국가의 품격을 느끼기보다 '국가란 무엇인가' 근본 질문을 던지게 한다.

2014년 실태조사의 실태

그렇다면 3년이 지난 지금, 뭔가 변했을까?

올 초 서울의 사회복지법인 인강재단 비리사건이 터진 후, 박근혜 대통령은 곧바로 3월 18일 전국 장애인복지시설 전수조사를 지시했다. 복지부는 즉각 조사계획을 발표했는데, 4월~5월 두 달 동안 전국의 장애인거주시설 592개를 조사하고. 6월에 조사내용을 정리해 종합대책 마련과 함께 청와대에 보고한다는 일정이었다. 대통령 지시사항이라 이례적으로 매우 발빠른 움직임이었는데, 역시나 그 과정과 내용은 허술하고 기본 원칙도 없는 조사가 되어 버렸다.

우선, 조사방식의 문제이다. 설문지는 거주인용, 직원용, 시설환경조사지 등 총 3가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인권'의 개념을 협소하게 규정한 나머지 일상적인 학대와 방치, 방임은 살펴볼 수 없고 눈에 보이는 폭력과 성폭력, 감금 등 여전히 신체적 자유권 침해에 한정되어 있었다. 일상적인 정서 학대와 자기결정권 침해가 무기력과 우울감, 더 이상 희망을 갖지 못하게 하는 매우 심각한 인권침해 임에도 불구하고, 설문지 어디에서도 그런 촘촘하고 구체적인 일상의 평범함을 분석, 해석할 수 없었다. 보장구가 지급되지 않아 하루 종일 방안에서 기어 다녀도 그걸 문제로 보지 않는 조사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번 조사는 설문지 설계에서 결과도 이미 드러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발달장애인에게는 그림설문지를 준비해 조사한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실제 조사에 참여한 조사원들의 말에 따르면, 시설 측에서 먼저 의사소통 가능, 의사소통 안됨이라는 구분을 짓고 가능한 거주인들만 면접조사를 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소통이란 방식에는 언어적 소통과 비언어적 소통방식이 있다. 자연스런 접촉과 신뢰관계 형성을 위해 시간이 필요하고 일상적인 행동 패턴의 관찰도 요구된다. 한번 만나 30분도 채 안되는 몇 가지 질문으로 그 사람의 소통 능력을 재단하는 방식 자체가 인권침해 아닐까? 인권을 조사한다면서 조사주체들이 다시 인권을 침해하는 접근방식 자체가 조사의 신뢰도를 일순간에 무너뜨린다는 것을 왜 간과한 것일까. 게다가 응답 가능한 사람을 시설 측에서 선별해 면접 할 경우 사전 준비를 시켜 무의미한 답변이 나올 수밖에 없다. 조사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복지부 지침과 별도로 각 기초자치단체에 모든 거주인을 대상으로 조사계획을 수립하라고 별도로 지시했다고 한다. 복지부는 꼼수를 부리고 지자체가 시설들과 합의한 편법을 재량(?)의 이름으로 은근슬쩍 넘어가려 할 때, 서울시만 원칙을 지키고자 한 것이다.

이렇듯 복지부는 조사대상을 전체 장애인거주시설의 거주인이라고 발표했지만 시행 과정에서는 시설규모별로 표본조사를 실시했으며, 71~99명 규모의 시설인 경우 거주인의 70%이상만 조사하도록 했다. 복지부가 국민을 상대로 거짓 발표를 한 것이다. 게다가 비리와 인권침해가 심각해 직원 20여명이 기소 혹은 불구속 기소되었던 구미 S법인의 경우, 이번 조사에서 완전 제외됐는데, 그 이유가 더 가관이다. 비리 이사진이 퇴진하고 관선이사 체제가 되었을 뿐이지만, 그걸 '시설 정상화'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여전히 비리를 저지른 직원들 과반수가 버젓이 시설에서 일하고 있어 가해자, 피해자가 한 곳에 있는 상황인데도 이를 묵과한 것이다. 도대체 이번 조사의 원칙은 무엇인지 알면 알수록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각 지자체가 모집한 조사원에 시설 직원들이 참여한 것이다. 그 어떤 조사에서도 기본은 조사대상인 당사자 배제가 원칙이다. 조사대상이 조사원이 되는 경우는 그 어디에도 없다. 조사일시, 조사방법, 설문내용들이 미리 유출되어 시설 측에서 미리 대비를 할 수 있는데 그 결과를 신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또한 복지부는 한 조사원이 거주인 한 명당 30분씩 하루 총 10명의 거주인을 면접조사토록 지시했는데, 이 또한 무의미한 결과를 예상케 한다. 장애 특성과 시설에서 오래 거주한 분일수록 쉬운 대화법과 친밀해지는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기 때문에 보통 한 사람당 1~2시간이 소요되기도 하는데, 한 조사원에게 이렇게 많은 사람을 조사하도록 한 것은 그저 형식적으로 설문지에 체크토록 한 것이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조사 내용과 방식, 과정 모두, 조사의 기본원칙이 훼손되는 매우 중차대하고 심각한 상황이다. 우리는 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반성하지 못하고 잘못을 되풀이하는 복지부

결국, 복지부는 2011년 도가니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2014년 시설거주 장애인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보고서를 내놓지 못했다. 김용익 의원실에서 자료 요구를 했지만, 이런 저런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더니 결국 대통력 보고 후 제출하겠다고 했단다. 헌데 그 후 난색을 표하며 "난감하다. 이해해달라"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니 도대체 무슨 꿍꿍이들일까?

이번 조사의 전체 기획은 복지부였지만, 시행은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가 책임졌다. 이 단체는 지난 2011년 도가니 때도 조사를 담당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2011년에도 제대로 된 조사결과보고서가 나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다시 조사 시행 주체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설마 현재 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의 과장이 한국지체장애인협회(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산하) 출신이라는 것과 무관하길 바랄 뿐이다. 국민의 세금을 사용했고 직원들과 거주인들에게 오히려 조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가중시킨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지 복지부의 해명이 궁금할 따름이다.

대책없는 대책

지난 10월 28일 복지부는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보고서 대신 <시설거주인 인권보호 강화 대책> 보도자료만을 발표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44개 시설에서 주요 인권침해 의심사례가 발견돼 8개 시설에 대해서는 수사 의뢰, 전문적인 조사가 필요한 3개 시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조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안전 및 편의시설, 청결상태 등 시설운영 및 환경 부분을 종합적으로 점검해 1400건의 지적사항을 발견했고, 854건(61.0%)은 시정 조치가 완료, 나머지 지적사항도 조치 진행 중에 있다고 보고했다.
또한 "사전 예방"에 중점을 두어, 인권침해 행위가 발생할 경우에는 "조기발견 및 신속한 구조체계" 마련 및 "종합적인 보호체계"를 구축하고 인권침해 행위는 "강력한 처벌"을 강조했다.

여기서 "사전예방"이라 함은 기존에 있던 인권지킴이단의 구성을 거주인, 직원, 보호자 각 1인씩과 변호사, 공공후견인후보자, 자체 모집한 인권 전문가, 지역주민 등 외부인사로 과반수를 채우겠다는 것이다. 기존의 인권교육도 강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의무화하는 대신 연 1회 이상으로 언급해 형식적인 교육으로 치울 칠 우려 또한 없지 않다.

이 밖에도 다양한 대책들이 나열되어 있다. 하나하나 밝히고 분석해야 하지만, 쓰는 것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이유는 분석할 만한 의미 있는 것들이 없을뿐더러 실효성도 의심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처벌 중심과 교육, 지킴이, 인권전문강사 양성, 쉼터 마련 등이 과연 근본적인 시설 거주인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번 대책 마련 역시 예산이 거의 소요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질적인 변화, 궁극적인 인권확보를 가져올 수 있는가에 의문이다. 그동안 복지부는 시설인권침해 사건이 터지면 시설조사가 대안인 것처럼 매번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미한, 아니 도대체 조사를 왜 했나 싶을 정도였다. 문제가 드러난 시설조차 제대로 정상화(?) 혹은 탈바꿈 시키지 못했고, 지역만 다를 뿐이지 매 해 같은 방식, 같은 형태의 시설 비리, 인권침해는 종합선물 세트처럼 함께 우후죽순으로 불거져 나왔다. 복지부 또한 스스로가 만든 대책이 실효성이 있다고 자문하고 있을까? 도대체 조사의 목적과 대책의 효과성에 대해 만족하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복지부는 실태조사의 근본 목적을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변화시켜야 하는지 말이다.

(이 글은 월간 <함께걸음>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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