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희떡 디비고 있는' 할매들

[살림 이야기] 핵‧② "철탑 다 섰따꼬 우리 싸움 끝난 거 아이다"

"이제 봄인 갑다 하며 밭에 가서 밭매고 오니까네, 만장 지술 큰상을 차리 놓았대. 이거 누가 이래 주더노 하니 한전이 채렀다고. 왜 채렀나 카니 저 철탑을 세울라고 전파가 얼매나 가는지 설명해 준대요. 퐁퐁이라 카던가 가정용품을 많이 갔다 놨대요. 우리 가져가라고." (<삼평리에 평화를>에서, 이억조 할머니)

이것이 삼평리 할머니들이 유일하게 한국전력(한전)으로부터 들은 공사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외에 어떠한 주민설명회도, 주민의견서를 제출할 시간이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2009년 3월 한전이 느닷없이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 마을에 찾아와 공사를 '선언'한 것이다. 2012년 4월 경비용역업체와 굴착기가 삼평리의 평화를 파괴하러 왔다. 마을 뒷산인 '노인봉' 발파 작업이 시작되어 산은 신음했고, 불법으로 뜬 헬기 소리에 동네 강아지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다수가 70~80대인 할머니들은 새벽 네 시, 도시락 두 개를 들고 해발 350m 산을 올랐다. 전기톱으로 잘리는 나무를 붙잡았고, 구덩이를 파는 굴착기 밑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채 얼마 버티지 못하고 경비용역업체 직원에게 갖은 욕설을 들으며 끌려나왔다. 온몸이 멍들고, 응급실에 실려 가기를 반복했다. 그렇지만 누구도 이들의 고통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해 봄부터 시작된 한전의 공사는 할머니들의 격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가을이 돼서야 중단되었다. 미완공 송전탑 23호기만 남았다.

▲ 한전 직원이 교대하려 하자, 할머니가 나오지 말라며 공사장 정문을 줄로 묶고 버티고 있다. ⓒ이보나

백번 양보해 지중화

23호기만이라도 막기 위해 할머니들은 농성을 시작했다. 5분 거리에 있는 집을 두고, 춥고 더운 조그마한 텐트에서 밤을 지새웠다.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곳에서, 허리를 온전히 펼 수 없는 곳에서…. 할머니들은 마을을 관통하는 22, 23호기 구간의 ‘지중화’를 외쳤다. 땅 밖으로 설치된 송전선을 땅속으로 묻어 달라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지중화다. 이 한 구간이라도 지중화해라!”

청도에 건설되는 송전선로는 신고리 핵발전소에서 시작하여 밀양을 거쳐 온다. 345kV 초고압 송전탑 40기가 건설되고 그 중 7기가 삼평리 마을을 포위하는 형국으로 건설된다. 특히 22·23호기 송전선로는 마을 한가운데를 관통한다. 할머니들이 열아홉, 스무 살에 시집와 맨손으로 자갈을 골라내어 일군 논 한마지기, 밭 한 뙈기가 바로 이 송전선로 아래 땅들이다. 수십 년을 딛고 산 땅을 졸지에 한전이라는 강도에게 홀랑 뺏길 순 없는 일이다. 그 땅이 어떤 땅인가? 갓 태어난 자식을 포대기로 둘러매고 일군 땅이다. 시집살이가 힘들 때면 새벽에 몰래 찾아와 눈물 훔치던 땅이다. 이제는 간간이 찾아오는 자식들에게 쌀 한 포대, 참기름 한 병이라도 줄 수 있게 하는 땅이다. 그러나 송전선이 걸리면 그 땅은 더 이상 땅이 아니다. 소와 돼지가 제대로 살지 못할 것이고, 농기계를 빌리고 비료를 사기 위해 필요한 담보대출을 못 받을 것이고, 약값도 필요하고 손주들 용돈도 줘야 하는데 땅은 팔리지도 않을 것이다. 울산 울주군의 경우 송전선 밑에 있는 과일나무들이 다 죽었다. 비가 와서 선에 고인 물이 나무에 떨어져서다. 더구나 거기 살면 "전자파인가 뭐신가 때문인지는 몰라도 논에서 일하다 보면 머리가 아프고 몸이 땅으로 꺼지는 것 같고 비오는 날이면 '웅' 하는 소리가 난다"라고 한다.
노숙하며 의견 전달한 할머니 전원 연행

지난 7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대체집행' 심리가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평화공원의 시설물을 강제 철거하겠다는 것이다. 평화공원은 송전탑 공사 진입로로, 삼평리의 평화를 기원하며 이름 붙인 곳이다. 할머니들은 실태를 알리려 전국 여행을 시작했다. 서울, 대전, 전주, 강원도 등 각지를 방문했다. 힘든 일정이었으나 할머니들은 삼평리에 힘을 보태는 식구가 많아질 거라며 행복해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대체집행 심리를 앞둔 7월 21일, 한전은 2년 만에 공사를 강행했다.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이 믿기지 않아 할머니들은 땅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할머니들은 38도(℃)가 넘는 날씨, 체감온도가 50℃가 넘을 것 같은 폭염에서도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햇빛가리개 한 장 없이 자리를 지켰다. 때로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비가 왔다. 하지만 공사장에선 기계 소리가 멈추지 않았고 하루에도 헬기가 70번씩 운행됐다.

공사장 정문으로 들어가려는 레미콘차를 보면 할머니들은 "아저씨, 여기 아니면 못 벌어먹고 살겠나? 제발 우리 주민 좀 살려 주이소. 이거 불법공사다"라고 울분을 토하며 차량 귀퉁이를 부여잡았다. 아침식사를 채 마치지도 못한 시간부터 레미콘 차량은 줄지어 집으로 들어가는 개미처럼 서 있었다. 사지가 들려 나오고, 병원에 실려 가고, 경찰에 연행되기를 반복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경북도지사를 찾아가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제발 삼평리 마을 지중화 될 수 있게 해 주이소"라며 사정했다. 도청에서 노숙하며, 공사 중단과 지중화 요구가 받아들여지도록 중재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도청은 경찰을 동원해 할머니 세 명을 전원 연행했다.

공사강행 65일째, 33명이 연행됐고 병원으로 응급 후송되거나 다친 사람은 헤아릴 수 없다. 많은 사람이 할머니들 곁에 함께 서서 삼평리의 평화를 외쳤다. 하지만 레미콘 타설과 철탑의 조립이 차근차근 진행되었고 쳐다만 봐도 숨이 턱 막히는 고압 송전탑이 공사 강행 40일째 완공되었다.

▲ 공사장으로 들어가려는 할머니와 입구를 막고 있는 한전 직원. ⓒ이보나

송전탑 뽑아낼 때까지 싸운다는 할머니

이현희 전 청도경찰서장이 주민에게 건넨 돈 봉투 때문에 청도 송전탑 문제가 전국에 알려졌다. '갑'의 위치인 한전이 '을'의 위치인 시공사에 받아낸 돈이라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한전은 그 검은돈으로 할머니들을 매수하려 들었다. 할머니들은 6년간 그랬던 것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이미 승리한 싸움이라는 증거이다.

현장에는 전선을 걸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고, 인부들이 교대하면서 일하고 있다. 할머니들은 오늘도 공사장 정문을 지킨다. "송전탑 뽑아낼 때까지" 싸운다는 할머니들과 청도삼평리345kV송전탑반대대책위는 송전탑 3대 악법인 전원개발촉진법, 전기사업법, 송변전설비주변지역보상및지원에관한법률 개정·폐지와 지중화 요구를 계속할 생각이다. 할머니들은 국가의 부조리한 에너지 시스템을 온몸으로 드러내 보였다. 대규모 핵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가 누군가의 피눈물 속에서 건설되는 송전탑을 타고 우리 집으로 온다는 것을 말이다. 또한 공공성과 국책 사업을 들먹이며 벌어지는 국가의 폭력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말이다. 이제 우리가 그 몸짓을 이어받아야 한다.

★ 함께해요


삼평리에 철탑이 완공되고 나서는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해 현장에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할머니들이 먹을 음식을 마련해 '밥 연대'를 하거나,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삼평리에 평화를>을 알리고(책값으로 대책위를 후원), 직접 후원(대구은행 508-11-009397-5, 예금주: 삼평리에 평화를 변홍철)하는 방법으로 함께할 수 있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 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살림 이야기>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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