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이후 200일이 넘는 동안, 대한민국은 아직도 4월 16일입니다. 진도의 검은 바다, 세월호는 아직도 기울고 있고, 캄캄한 물속에 잠기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제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내어주며, 명랑한 목소리로 불안을 퉁겨내며, 실체 모르는 전언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절대 명령처럼 따르며, 60도로 85도로 배가 기울 때까지 삶의 마지막이 될지 모를 시간을 동영상으로 중계합니다. 자신의 몸이며 이야기였던 가족에게 사랑한다 미안하다 꼭꼭 접어두었던 고백을 전합니다. 공포가 출렁입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처럼 선실에 바닷물이 차오르고, 절규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난 살고 싶은데 왜!” “난 꿈이 있는데 왜!”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세월호는 더 많은 “왜”를 파문처럼 남기며 또 다른 4월 16일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갑니다. “왜”라는 물음에 응답할 듯 “언제든 찾아오라”던 여왕은 아이들의 부모 형제를 거리에서 떠돌게 하고, 만나 달라 애원하는 그들을 “감히 궁궐을 넘으려 하다니” 병력을 동원해 인정사정없이 내쫓습니다. 국가는 없고, 입을 꽉 다문 오만한 여왕만 있습니다. 수치심과 죄의식이 박제된 권력은 보상금의 숫자와 특혜의 크기로 추악한 거래를 하려 합니다.
구할 수 있었는데 “왜”, 백 년처럼 길었던 시간에 “왜” 동아줄 하나 내려 보내지 않았나. 세월호를 같이 저어 갔던 우리 탓이다, 백성들의 자책과 통곡이 노란 리본과 함께 이 나라를 뒤덮었습니다. 아직도 아들딸, 형제자매, 손자손녀의 시신을 찾지 못한 유족들은 스물네 시간이 암흑의 밤인 채 꿈속에서 아이들을 건져 올립니다. 시신을 찾은 유족들의 나무토막 같은 몸에선 “왜, 왜” 단장의 신음이 새어나옵니다. 일상으로 돌아간 우리는 놀다가 웃다가 기억상실의 죄를 깨닫는 듯 문득 문득 몸을 움츠립니다.
2014년 첫 4월 16일부터 214번째 4월 16일 오늘까지, 우리는 하나의 물음을 붙들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왜” 죽어야 했나. 이 하나의 “왜”는 수많은“왜”를 품고 있습니다. 답은 감춰졌고 의문만 무성합니다. 이 모든 “왜”에 대한 답을 건져 올릴 때까지 우리는 놓을 수 없습니다.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힌 진실에 대한 물음들을.
푸른 궁궐 여왕에게는 “왜”라고 묻는 유족들이 사람이 아닌 듯합니다. 재앙의 책임을 물을 희생양만 만들어내 죄를 묻곤 “가만히 있으라”, 바다 속으로 내려 보냈던 전언을 되풀이 내려 보냅니다. 내리깐 눈으로 시선 한 번 주지 않습니다. 그녀는 유가족도 만나보지 않은 채 조문 CF만 찍고는 분양소를 떠났고, 대국민담화 줌인하는 카메라 앞에서 눈물 연기를 펼치더니, 레드카펫을 걸어가며 “살려 달라” 절규하는 유가족들을 싸늘히 외면하고 한기 어린 웃음을 지었습니다. 빨주노초파남보 패션 외교를 하며, 검은 양복의 상대국 수장을 화사한 옷차림으로 맞고, 교황이 노란 리본을 달아 애도를 표할 때 블링블링 화려한 브로치로 패션을 완성했습니다.
국가 재난시 대통령의 사생활은 없습니다. 감춰야 할 7시간의 사생활이 무엇이기에 허술한 알리바이로 백성의 입을 막으려 합니까. “왜” 여왕은 사라진 7시간의 미스터리를 밝히지 못하고 “대통령 모독이 도를 넘는다” 히스테리입니까. 4월 16일 그 화창한 아침 잔잔했던 바다, 국가 재난 컨트롤타워여야 함이 분명한 그곳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전원 구조’의 오보가 오보가 아닌 사실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방팔방 구멍이 뚫린 국가, 수백의 생명은 물에 잠겼고 백성은 버려졌습니다. 이 기괴한 나라의 잔혹사가 가장 엽기적으로 또 한 번 굵게 복기됩니다.
권력 비호의 나팔수들이 백성을 선동합니다. 온 나라에 유언비어의 소음이 가득합니다. 유족이 벼슬이냐, 얼마나 큰 보상과 특혜를 바라는가,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세월호 때문에 경제가 안 돌아간다……. 목숨 건 아빠의 단식투쟁을 삐뚤어진 입으로 비아냥거리고 폭식투쟁으로 조롱합니다. 죄 없이 죽은 아이들을 반복 살해하고, 심장 펄떡이던 자식과 형제자매를 산 채로 잃은 유족들 가슴에 수없이 독화살을 꽂습니다. 사람이 할 일이 아닙니다.
차디찬 해저에 갇혀 있을 아이들이 아직 아홉. 이들이 내 자식이라면, 내 형제요 자매라면 “왜”라는 물음이 지겨울 리 없습니다. 마지막 한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 진실이 속속들이 밝혀질 때까지, 우리는 “왜, 왜, 왜” 노란 리본의 합창을 계속해야 합니다. 살았어야 할 목숨들이었습니다. 해원解寃이 없이는 진정한 애도도 없습니다. 원을 풀어주고 죽은 자들을 보내야 삶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어미와 아비들이 거리에서 천막에서 피를 토하듯 “왜”라는 물음을 토해내고 있는 이유입니다.
“왜”를 밝혀줄 세월호특별법은 여야의 속물 정치에 불구의 모습으로 타결되었습니다. 진상규명의 기대를 저버리는 얍삽하고 사악한 법입니다. 합의 과정은 추했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더러운 뱃속을 다 드러냈고, 성역 없는 조사권 보장의 특별법을 약속했던 여왕은 비인간의 차가운 낯을 드러내곤 유가족을 잔인하게 내쳤습니다. 천박한 권력은 “세월호를 잊으라”, 민생을 무기로 책임을 뭉개버리고 단죄의 칼을 꺼내드는 파렴치함을 보입니다. 그들이 바로 세월호를 잊지 못하게 하는 장본인들입니다.
예술인들이 연장을 들고 나섰습니다. “잊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며, 어떠한 방해 공작에도 세상이 세월호를 기억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세월호의 모선母船인 대한민국 호가 수장시킨 생명들, 극한의 상황에서 덮쳐오는 죽음을 고스란히 느껴야 했을 그들에 대한 기억은 세월호의 공범자이기도 했던 우리에게 명합니다. 2014년 4월 16일의 비극을 모두의 가슴에 변화의 열망이 피어나게 하는 0416으로 만들라고. 총체적 비리와 부실 위에 탐욕을 쌓아올린, 대한민국이라는 난파선을 끄집어내 낱낱이 해부하라고.
■ <세월호, 연장전> 문화예술인 선언 소셜펀치 페이지(바로 클릭!)
http://socialfunch.org/20140416
■ 작가 소개 / 박선희 소설가는 2009년 제3회 <블루픽션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 <대산창작지원금> 등을 받았다. 소설로 『파랑 치타가 달려간다』,『미미美美』, 『줄리엣클럽』, 『도니노구라파식 이층집』, 『그 놈』 등이 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